아이들의 이름
내 큰딸의 이름은 최지아. 한문으로는 知我, 영어로는 Jia. 한국어와 영어로도 발음도 좋고 뜻풀이도 쉽다. 국제언어로 표기해도 알파벳 숫자가 셋에 불과하다. 知我는 ‘나를 안다’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응용해서 내가 대학시절에 작명한 이름이다.
아들 이름을 ‘최대한’이라고 미리 작명했다. ‘최대한’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숱하게 사용된다. 대한의 語源은 옛적 우리나라 서남부에 존재했던 마한 진한 변한의 三國을 통틀어 일컫는 國名 즉 大韓이다. 영어로는 Daehan이며, 발음 또한 쉽다. 국제적 발음으로는 ‘따이한’이다. 崔大韓은 내 둘째 아들의 이름이다.
큰 아들의 이름은 내가 직접 짓지 않았다. 아내가 아들을 낳자마자 나는 폐암으로 病床에 누운 대전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시외전화로 알리고,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남들보다 뒤늦게 본 첫 손자이기에 할아버지가 첫 손주의 이름을 짓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전화기를 통하여 이름을 알려 주셨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불러주는 이름 자 가운데 나는 ‘정숙할 정(貞)’에서 ‘바를 정(正)’으로 바꾸었다. 내 성격처럼 올바르고 올곧은 뜻을 지닌 ‘正’ 자를 택해서 출생신고를 했다.
'正’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한문으로는 5획이기에 셈(숫자)을 헤아리기에도 아주 적합하며, 붓글씨로 멋들어지게 쓸 수 있다. 솥단지를 뜻하는 鉉(현)을 합성한 이름 崔正鉉은 '올바른 솥단지'를 뜻한다. 무쇠솥으로 지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 산다는 뜻을 지녔다.
내 둘째 딸의 이름은 아내와 상의해서 지었다. ‘지나’는 한글로 발음하거나 쓰기에는 아주 쉬우며, 영문으로 표기하면 Jina. 세계적인 감각으로 보면 발음하기 좋고, 영어 알파벳이 네 개이므로 표기하기도 아주 수월하다. 한문으로 '知娜(지나)’를 표기하면 조금은 어렵다. 한글세대는 娜(나)를 읽고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름풀이는‘예쁜 것을 안다’라는 뜻이다.
내 막내아들은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최대한이란 이름을 바꾸어 달라고 몇 차례 떼를 썼다. 그가 고교 1학년인 2002년 6월 월드컵 축구 경기 때이다. 전 세계인은 수백만 명의 한국인 붉은악마가 한국(월드컵 경기장에서 개막)과 일본 경기장에서 ‘대한민국!' 함성 지르며 응원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대한’이란 용어는 당당하며 신명이 나는 이름으로 고양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보다.
네 명의 아이들 이름을 열거했으나 내 손자와 손녀의 이름은 아직껏 짓지 못했다. 내가 미리 작명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들 형제가 스스로 짓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내가 스무 살을 갓 넘었을 적에 미리 지어놓은 것을 비추어본다면 쉰다섯 살인 내가 지금쯤 손자와 손녀의 이름을 작명했어야 이치가 맞다. 그런데도 아직껏 망설인다. 아이의 이름은 아이를 잉태하고 키울 어미와 아비의 몫이다라는 게 내 持論이다.
‘할아버지가 미리 지어놔도 좋지요’라고 큰아들(22세 현역)과 둘째아들(17세 고1)이 내게 부탁한다면 나는 기꺼이 작명하는 수고를 감수하겠다. 하지만 두 아들이 군복무와 학업에 더 열중해야 할 시기이므로 나는 시간을 더 두고 봐야겠다.
삼십여 년 전에 작명해 둔 이름이 더 있다. 손녀의 이름은 최리(崔梨). 리는 외자여서 부르기 쉽고 한문의 梨(리)는 하얀 배꽃을 연상케 한다. 또 최리(Choi-ry)는 영어의 cherry와 음색이 비슷하다. cherry가 性(처녀)에 관한 숨은 뜻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한 번쯤 외국어 전문가에게 문의해야겠다. 손자의 이름은 최회장이라고 지을까 싶다. 사람들은 崔會長이라고 부를 것이다. 만약에 많은 사장을 거느린 대재벌의 會長님이 된다면 ‘최會長님 ’또는 최會長 - 會長님’이라고 부를 것인지 이것도 궁금하다.
知人의 둘째 딸 이름은 로사. 외국인의 이름이다. 로사를 소리 내어 발음하면 듣기 좋고 어감도 좋고 음절이 간단하다. 더욱이 영어 ‘Rosa’는 ‘장미꽃’를 연상케 한다. Losa로 표기되는지도 모르겠다. 로사를 한문으로는 뜻풀이가 쉽지 않다. 마땅한 한문이 생각나지 않아서 지인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슬 롯자에 모래 삿자’라고 대답했다. 露沙(砂)다. 모래 삿자도 두 개이니 어느 것을 택하였는지 궁금하다. 이슬과 모래가 합성된 글자가 무엇을 음미하는지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知人은 ‘露沙(砂)는 대자연을 의미하는 뜻이다’라고 덧붙인 것 같다.
나는 귀가 어두운 탓으로 그 당시에도 뜻풀이를 선명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슬과 모래’라는 語意에서 이슬 내리는 모래밭을 연상하며 더 나아가 지구와 우주만물을 형상화하였는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知人은 기독교 信者이므로 종교에서 부르는 이름을 딸의 이름으로 작명하였을 것이다. 서구적인 발음이 무척 귀에 감미롭고 이채롭게 들리며, 이국적인 장미꽃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지은 知人의 심안이 돋보인다.
이름은 보다 신중하게 지었으면 싶다. 동서양인 모두가 발음하고 표기하기에 쉬워야 하고 숨어 있는 語義도 좋아야 한다. 한글과 한문으로 풀이하면 좋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왜곡되어 전혀 엉뚱한 별명과 희롱거리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름이 변용되는 폐단을 예상해야 한다. 어른들이 지은 이름 때문에 당사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호적(주민등록부)에 오른 이름을 법으로 개명하려면 가정법원의 재판을 거쳐야 할 만큼 절차는 번거롭고 노력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말로 지은 예쁜 이름이 많다. 알파벳으로 쓰면 걱정이 먼저 앞서는 이름도 많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 국제적으로 불러야 할 이름인데도 글자가 너무나 길고 받침(終聲)이 복잡해서 외국인이 부르기에 낭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국언어에 서툰 외국인이라도 간단하게 발음하고, 소리 나는 대로 외국어로 표기할 수 있다면 한국적인 이름은 더욱 선호될 것이다.
2002. 10. 20.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