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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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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한국교회사 - 한국 기독교회사 p121 - p170 요약
최윤길 추천 0 조회 52 09.09.03 07: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 교 회 사



내 용 : 한국 기독교회사 p121 - p170 요약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민족의식(national-identuty)을 철저하게 지속시켜 온 한국은 근대에 이르러 온갖 시련의 고비를 겪게 된다.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의 한국전래 이전에 이미 천주교는 1세기 앞선 18세기 말에 들어왔으며, 자발적인 전도활동과 수용을 통해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서학연구는 곧 신앙행위(복음의 전달)의 실천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는 19세기 말(1870년대 이후)에 선교사들을 통하여 들어왔다.

1832년 충청도 서해안 고대도(古代島)에서 조선에 통상과 선교허가를 요구한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암헤르스트(Lord Amherst)에 승선해있던 네델란드 선교회 소속 선교사 칼 귀츨라프(K. F. A. Gutzlaff,1803~1851), 1866년에 조선선교의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순교한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1840~1866), 병인교난과 토마스의 순교로 혼란했던 시기에 한국 선교에 대한 열의로 활동했던 스코틀란드의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 알렉산더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과 1884년 9월 중국주재 미국북장로회 선교사였던 알렌(H. N. Allen. 1858~1932)이 내한한 것을 시초로 1884년 6월 27일 재일 감리교 선교사 맥레이(R. S. MacLay. 1824~1907)가 한국을 방문하여, 고종 임금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선교활동의 윤허를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1885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언더우드(H.G.Underwood)와 미국감리교 선교회 아펜젤러(H.G.Appenzeller) 선교사가 내한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남긴, 만주 목단(牧丹) 주재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1842~1915))와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등 많은 선교사들로 인해 한국개신교 선교의 본격적인 시대가 시작되었다.


 한국선교에서 비록 미국계의 교파는 아니라 할지라도, 교회론에 있어서 교파적 형태의 신학을 취하는 교파의 선교가 여럿 있었다.

 코르프 (C.J.Corfe,1865~1921)와 여섯 사람의 성직자와 랜디스(E.B.Landis,1865~1898)등 두 명의 의사를 파송한 영국 성공회의 선교, 1889년 선교사 데이비스(J. Henry Davies)목사와 그의 누이동생 데이비스(Miss M.T Davies)을 파송한 호주 장로교의 선교, 공식 파견 선교사가 아니고, 개인 자격으로 내한한 열정의 청년 맥캔지 목사 (William John McKenzie,1861~1895)가 속했던 캐나다 장로회의 선교, 펜 위크(Malcolm C. Fenwick)에 의하여 한국선교가 시작된 침례교회와 1904년 하와이 이민으로 떠나던 손흥조(孫興祚)와 하와이 개발공사의 계몽원이었던 임기반(林基盤)에 의해서 한국에 도입된 안식교의 선교, 1907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두 선교사, 즉 김상준(金相濬,1881~ 1933)과 정빈(鄭彬)에 의해 시작된 성결교회, 1908년 10월 본영(本營) 런던에서 호가드(R. Horrard,1861~1935)정령이 서울에서 구세군 영(塋)을 창설하면서 시작되어진 구세군의 선교, 얀치히(Yantchihe) 마을의 4백여 가구, 사례치어(Saretchje)마을의 조선인 600가구 중 450가구가 등록한 러시아의 동방 정교회의 선교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는 시작되었다.


 기독교의 한국선교는 비단 교파교회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선교에서 그 선교지 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 하나를 제기한다. 윤치호는 1893년 감리교 신앙의 우월성에 긍지를 가지면서도 그것은 감리교라는 기관에 생명을 주는 정신이 위대해서이지, 그 기관과 조직이 위대해서가 아니라고 하였다. 미국 장로교 본부의 해외선교 총무였던 로버트 스피어(Robert E. Speer)는 자립 주체적 교회의 형성은 한국의 경우 민족의 정신이나 비전 및 의무라는 민족의 주체의식과 나라의 의식에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토착적 교회형태의 독자적 확립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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