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움이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화가 김범석의 전시회에서
범석 형을 처음 만난 것은 전주의 茶門이라는 전통찻집이었다. 찻집이지만 한정식도 팔고 청주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집이었지만 대낮 다문의 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마시는 청주의 맛이 좋아서 나는 전주에 가면 마루에 비스듬히 걸쳐 앉아 청주를 한잔씩 마시고 차도 한잔 마시곤 하는 재미를 즐기려고 종종 다문에 들른다. 마루에서 내려다 본 흙바닥의 마당과 우물, 건너편에 자리 잡은 큰 유리를 가진 방, 이런 풍경들이 나를 편하게 한다. 어느새 형님과 누님이 되어버린 주인 분들이 직접 만든 야생차를 한잔 얻어먹으며 나누는 한담도 솔솔한 재미가 있다.
지인의 선배였던 범석 형과 나는 우연히 다문 마루에 앉아서 청주 한잔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형의 평화로운 눈빛과 다소곳한 몸짓은 여성스런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후에도 우리는 이러 저러한 곳에 자주 만났다. 그리고 형의 전시회도 가게 되고 작업실과 가정이 있는 여주도 몇 번 다녀오게 되었다.
2007년의 전시회 '길'을 관람하며 형이 새로운 변화, 아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다가왔다. 2년 전 전시회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파랑, 빨강, 녹색등의 색채감과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어떤 생동감(뜨거운 질주) 그리고 시대의 고발자로서의 화가라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녹색풍경, 리버사이드 모텔)
처음 관람을 마친 날은 아쉬웠지만 형의 손님들이 많아 나는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다시 화랑을 찾았고 형의 그림들을 다시 유심히 보았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을 하는 존재이니까. 형의 후배 화가랑 우리는 낙원상가에 있는 생선 매운탕 집에서 생산매운탕에 소주 한잔하고, 인사동의 귀천에 가서 차도 한잔하고, 생맥주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작업실에서 그리고 전시회장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눈 탓인지, 형의 후배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인지 다양한 이야기들 오갔다. 화가들이 느끼는 고통도 다른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돈이 유일무이한 가치기준이 되어감에 따라 느끼는 압박감을 두 화가의 모습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예로부터 계속되는 생존과 예술사이의 긴장이 우리 자리에도 흐르고 있었다.
범석형의 그림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부모님의 인생, 그리고 자신이 손수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흘렸던 땀과 노력, 발품을 팔아 그린 그림이 있다. 이런 것이 내겐 감동으로 다가온다. 원근법의 부재와 손이 많이 간 세밀한 붓의 터치는 형이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가 아닌 발로 뛰며 다양한 시선에서 개개 사물들을 얼마나 자세하게 보았는가를 말해준다. 이와 더불어 하늘 부분이 작고 땅과 산으로 가득 찬 화면은(평론가는 이를 전면성이라 표현하였다.) 김제 촌놈 김범석과 그의 부모들이 느낀 강산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
그의 산수화는 고전적인 산수화의 세계화는 무척 다르다. 삶의 체취, 땀의 체취, 하찮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관심, 이런 진지함이 나를 감동케 하는 모양이다. 풍경에 등장하는 모텔, 과수원 위와 아래를 지나가는 고속도로와 국도, 길거리의 시골 다방, 시골길과 만나는 자동차도로, 일렬행대로 늘어선 작물(자본의 풍경), 계곡을 잇는 거대한 다리, 묘지, 간판 등, 일반적으로 산수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그의 풍경에 나타난다.
산수의 풍경에 이물질로 등장하는 것들을 내뱉어 버리기보다 어쩌면 형은 대자연속에서 끌어안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여주-문막-숭고, 42번 국도) 이물질을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순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그리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그는 트럭과 함께 들판을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잘라버리는 것이 속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현실이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이런 진지함과 고집이 나는 좋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자신이 마음 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과감히 꺼집어내어 화폭에 담은 듯하여 이전의 온화하기만 형의 인상과는 다른 느낌이 왔다. 그래서인지 형의 눈빛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어떤 날카로움이, 반가운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형 저번 전시회랑 사뭇 분위기가 다르네요." 하며 나는 나의 느낌을 늘어놓았다.
"나는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 하지만 이젠 그 소리가 도전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놈으로 들려."
"경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지. 이게 동양화냐 서양화냐 이런 말들 말이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수묵이든 물감이든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아."
형은 자신이 느낀 대로 자신의 기준으로 그리고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듯하다.
"남 눈치 보며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
"아직 젊잖아, 부딪쳐 보는 거야."
이러한 꿈틀거리는 말들은 취직문제 등으로 위축된 내 영혼을 꿈틀거리게 하였다. 마음을 편하게만 해주는 것은 작품이 아니다. 예술이 애완동물처럼 길들여져 가는 시대에 꿈틀거리는 영혼을 만나서 반가웠다.
정말 예술을 사랑한다면 돈 있는 사람들아! 예술가를 애완동물로 만들지 말고 그가 시대의 선지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울지어다! 그가 당신의 주문 제품을 생산하는 날 아름다움은 이 땅을 떠날 것이고, 비상하는 영혼이 빠진 껍데기,쓰레기만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작품이 아니라 자산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야만의 시대에 최소한의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자 한다면 눈을 똑똑히 뜨고 제대로 보자.
"예술가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다른 눈을 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란 본래 국가의 위험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은 변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그의 모든 충복들은 그대로의 지속만을 원하고 있지요." -프란츠 카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