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 숙성시켜 손으로 직접 늘린 국수 수연소면 30분 지나도 뭉치거나 퍼지지 않아
아시아인에게 국수는 영혼을 담은 음식이다.■
영국 BBC의 유명 음식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세계적인 아시아 퓨전요리 전문가인 켄 홈이
KBS1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에서 한 말이다.
국수는 동양의 순수한 전통요리 가운데 하나다.
약 2500년 전 중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국수는 동양 특유의 ■면식(麵食) 문화■를 이뤘다.
이탈리아의 면 ■파스타■도 13세기 말 마르코 폴로에 의해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동방견문록■엔 기록돼 있다.
시초는 중국이지만 국수요리는 한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와 이탈리아 등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했다.
일본의 음식문화학자 이시게 나오미츠의 저서 ■문화면류학■에 따르면, 국수를 뜻하는 중국어 ■몐(麵)■은 ■밀가루■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밀가루가 아닌 재료로 만든 국수는 그 앞에 재료의 이름을 함께 붙여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메밀국수, 녹두국수가 그 예. 요리법에 따라선 물(잔치)국수, 비빔국수, 볶음국수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쫄깃한 면발과 깊고 풍부한 육수, 면 위에 올리는 형형색색의 고명■.
국수는 영양, 맛, 씹는 질감에서 진정 매력적인 음식이다.
■ 귀한 날, 특별한 날에 먹던 고급요리
당초 국수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고급요리였다. 밀 자체가 귀했을 뿐더러,
딱딱한 밀을 제분하기란 당시 기술로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과거 국수는 직접 면을 뽑고 국물을 우려내는 등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음식에 속했다.
그래서 면식문화가 발달된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관혼상제 때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었다.
길고 가는 국수가닥은 ■좋은 일이 오래도록 이어지게 해 달라■는 의미와 더불어 ■장수(張壽)■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국수 언제 먹여 줄 거야!■라는 말도 생겨났다.
혼기가 찬 사람에게 ■어서 결혼식을 올려 결혼잔치에서 국수를 먹게 해달라■는 의미다.
불교문화가 국수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시게 나오미츠의 저서에 따르면, 사찰에서는 식사로 국수가 상대적으로 자주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명의 승려를 위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식사를 만드는 사찰이기에, 만들기 까다로운 국수도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것.
또 승려들이 둘러앉아 큰 솥에 끓인 국수를 건져먹는 식사 분위기를 즐겼던 것도 국수가 발달한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채식을 하는 승려들에게 국수의 글루텐은 각종 영양분을 보충해주는 ■별식■이었다.
글루텐은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 몇 가지 단백질이 혼합되어 존재하는데
이것의 함량은 밀가루의 종류를 결정하기도 한다.
■ 인류 최초의 ■패스트푸드■
중국 송나라 시대에 국수 문화가 꽃피웠던 이유는 도시의 탄생 때문이었다.
당나라가 몰락하면서 각종 규제가 풀려 상공업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도시가 발달하고 국수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국수는 주로 노동자나 상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면발이 가늘어 빨리 익을 뿐 아니라
국물과 함께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 최초의 ■패스트푸드■로서 국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400년 전 일본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도시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는 메밀로 만든 국수,
즉 ■소바■였다. 에도에 모인 전국의 건설 노동자들은 빨리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이 국수를 즐겼다.
이후 195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즉석라면이 만들어지면서 국수는 패스트푸드로서 계속 발달했다.
■ 국수도 숙성시켜야 맛!
와인, 치즈, 김치■. 이들의 풍부한 맛은 ■숙성■에서 나온다.
국수의 풍미인 담백함과 쫄깃함 역시 숙성 정도에 의해 좌우된다.
숙성을 통해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 성질을 높인 식품이 바로 ■수연면■이다.
국내에서는 ■수연소면■으로 부르기도 한다.
■수연법■은 일본에서 선호하는 수제 국수제작법.
이 방법으로 만든 국수는 쫄깃함과 담백함에 있어 국수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밀가루에 물을 넣어 개면, 단백질이 부풀며 껌처럼 결합됨으로써 글루텐이 형성된다.
글루텐의 특징은 끈기와 탄력. 여기에 소금을 넣어 반죽을 단단하게 만들면 면발은 더욱 쫄깃해진다.
수연소면은 강력분, 중력분 등 여러 종류의 밀가루를 섞어 쓴다. 면발의 탄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다.
같은 밀가루와 소금을 쓰더라도 물의 양이 적으면 글루텐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기계로 국수를 뽑을 때는 손으로 만드는 수연소면보다 물의 양을 적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물을 많이 넣으면 반죽이 물러져 기계작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수 제조기계의 발달로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 더 늘었지만, 수연소면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양이다.
반죽이 다 되면 숙성과정을 거친다. 숙성을 통해 글루텐 형성이 촉진돼 국수가닥이 끊어지지 않은 채 명주실처럼 뽑아 낼 수 있다.
글루텐 조직이 오징어 결처럼 한 방향으로 가지런하기 때문이다.
숙성이 끝나면 사람이 직접 반죽의 숙성상태를 확인하면서 국수 모양으로 조금씩 면을 늘인다. 그리고 다시 숙성시킨다. ■
늘이기■숙성■늘이기■숙성■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완벽한 국수 가닥을 만든다.
손으로 만들지만 일반 소면보다 면의 굵기가 더 가늘다.
모두 8단계의 반복되는 숙성과정을 통해 글루텐 형성을 높인다.
일반 소면이 만들어 지는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수연소면은 30배가 더 길다.
숙성을 통해 글루텐이 많이 생성될수록 면발이 쫄깃해지고 전분 맛이 덜 나면서 국수의 깊은 맛이 난다.
■ 봄, 가을에 생산돼 1년 지나야 최고의 풍미
수연소면은 고구려 때 중국에서 전해진 뒤 내려오다 1970년대부터 제품으로 출시됐다.
일반소면에 비해 쫄깃하고 전분 냄새도 거의 없으며, 면발이 매끄럽고 쉽게 퍼지지도 않는다.
사리 상태에서 일반소면은 15분 정도 지나면 면끼리 뭉치거나 퍼지지만,
수연소면은 30분 이상 지나도 면끼리 달라붙는 현상이 적고 쫄깃함이 유지된다.
수연소면은 숙성과정에서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씨가 건조하면서 따뜻한 봄, 가을에 생산되는 제품이 가장 맛이 좋고 생산량도 많다.
강식품 강희탁 회장은 ■수연소면은 생산된 후에도 계속해서 숙성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일본의 ■면류대백과사전■에는 ■생산된 지 1년이 지난 면이 가장 맛이 좋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숙성이 될수록 면이 더 투명해지고 쫄깃해 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