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던 안동역이여 / 손인환
안동에는 볼꺼리도 많고 별미도 많다.
도산서원을 비롯해서 병산서원, 하회마을, 안동댐이 있으며 먹거리로는 안동 간고등어구이와 안동 닭찜, 안동 소주, 안동 사과가 있다.
서원과 하회마을, 안동댐은 몇 차례 찾아갔다. 다녀오면서 안내 책자에 소개된 이야기를 소상히 읽어보기보다는 큰 주제 중심으로, 아니면 필요한 부분만 스크랩하여 읽고 보관하였다.
차를 몰고 간다면 안동역은 안동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갔다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실은 그간 안동역이 절절히 보고 싶었다. ‘안동역에서’라는 노래 하나 때문이다. 애틋하면서도 노랫말 하나하나가 내 지난 청춘의 일기 같았다.
안동역을 보고 와야지 하고 몇 번이나 마음은 먹었지만 이런저런 빌미로 미루다가 이번 토요일 만사를 재치고 왕복 열차표를 즉시 예매했다.
노랫말처럼 겨울에 가야 제 맛이라 쌀쌀한 겨울 아침 7시 20분차를 타기로 했다. 누가 오라고도, 누가 가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안동역 너에게 좀 젊게 보이려고 머리 염색을 하고 색깔이 짙어질 때까지 수염을 깎고 사워를 했다. 다시 염색한 머리를 씻어내고 또 사워를 했다. 이 쯤 하면 안동역을 선볼 준비는 된 것 같았다. 6시 10분에 새벽 시내버스를 타고 역까지 가는 길은 시원스레 뻥 뚫려 단숨에 달렸다. 잠시 역에 머물다 곧 바로 열차에 올랐다. 새벽 첫 기차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았다.
열차에 올라 미리 안동역을 그려보았다. 안동은 양반의 도시에 제법 크다는 생각을 하니 예전의 간이역 모습은 아닐테고 기와로 잘 단장한 현대식 큰 역일 거라고 단정을 지었다. 역 앞은 수목이 잘 조성된 만남의 광장으로 그 한 켠에 노래비나 사연에 얽힌 비문이 있을 것으로 여겼다.
열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들고 간 시집을 읽었다. 잠이 모자랐던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던지 불국사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9시 7분이었다. 열차는 꾸불꾸불한 길을 흔들흔들 잘도 달렸다.
11시 20분에 안동역에 우리를 풀어주고 제 길로 달려간다. 아쉬워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잘 갔다 오너라. 오늘 저녁에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또 만날 때가지 마음속에 담아두자고 약속을 하고는 나는 플랫폼을 빠져 나왔다.
마음이 설렌다. 어떤 여인이 나를 기다려 마중나온 것처럼 내가 너를 마나려니 어찌나 좋은지.
사람들이 빠져 나간 후 천천히 역 광장을 나왔다. 역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안동역이라는 노래를 가수가 열창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박수를 치지 않는 그들을 바라본다. 언제 부르고 갔는지 가수는 보이지 않고 노랫소리만 내 귀에 자꾸 들린다.
노래 가삿말은 2008년에 안동의 향토 작사자인 김병걸이라는 분이 지었다고 한다. 안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애틋한 사랑의 감성을 담은 노랫말은 이렇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였나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안동지역은 겨울이 되면 내륙지역이라서 눈이 많이 온다. 눈이 많다 보니 자동차 보다는 열차를 이용하는 교통편이 다른 지역과 연결이 잘 되어 있다.
위쪽으로는 청량리, 아래로는 부산, 주변의 영주, 문경, 정선, 대구, 영천, 그 외의 지역과 연결고리가 잘 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가 아마 멀리서 오는 모양인데 버스 교통편이 열차와 연결이 안 되어 못 오는가 보다.
보고 싶은 이를 못 보는 것도 아픔이요, 괴로움이다. 사람은 늘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고통을 즐기면서 지내야 한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눈이 온 추운 겨울에 님을 마중 나왔는데 밤은 깊어가고 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걱정도 된다. 이런 저런 걱정에 가로등도 하나 둘 꺼지고 인적은 없다. 님을 마중 나온 사람의 가슴은 어떠할까? 활활 탔던 불꽃은 언제 식어 싸늘한 재가 되었을까? 그 아픔은 무엇으로 달랠까?
깊어가는 밤,
내 마음 달랠 수 없어라!
사람들이 빠져 나간 역 광장은 홀로 남는다. 간혹 줄 지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분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기차가 몇차례 안다니어 제시간 맞춰 찾아오는 손님뿐이다. 나처럼 혼자서 스마트폰 사진을 찍고 있는 몇 분이 있었다. 먼저 찍어주겠다고 하니 나를 먼저 찍어 준다. 사진을 찍어주다가 알게 되었다. 어느 아주머니는 딸과 서울에서, 어느 분은 울산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사진만 찍어주고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울산에서 온 아주머니는 돌아갈 때도 같은 열차를 타게 되었다. 돌아가는 열차라고는 5시 36분 기차 밖에 없으니.
그리던 안동역의 모습을 수없이 찍었다.
안동역은 어머니 같다. 새벽녘 추위에 떨고 갔는데 광장에 누운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게 감싸 준다. 어머니는 평생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지만 곱고 나는 늘 부족했지만 당신은 넉넉한 자태였다. 배가 고파도 배고프지 않다며 여유로움을 보여주셨듯이 안동역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넉넉함이 있었다. 조그만 ‘안동역 앞에서’라는 비문이 눈물나게 했다. 컸다면 나는 그 비문에 눌려 숨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소박하면서도 당신의 마음을 다 들어내어 보이는 게 솔직하고 좋았다. 붐비지 않으면서 여유로움으로 반겨주었다. 누군지도 기억못하고 그저 왔다가 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아닌 나를 꼭 기억해주리라 여겨지는 안동역은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여기저기서 웬만큼 사진을 찍고 나서야 배고픔을 느꼈다. 역 광장 옆 안동 간고등어 구이 집을 찾았다. 구이 하나를 시켜 정오를 넘어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고 기사 분에게 가까운 곳의 유적지나 볼 꺼리를 부탁했더니 탑동이라는 마을에 내려주고 여기서 구경을 하고 어디를 빠져 나가면 큰 길이 있는데 그 쪽에서 안동문화유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한다. 탑동마을에 갔더니 한옥 마을에 탑이 하나 우둑 솟아있는데 흙벽돌로 쌓아올린 5층탑이다. 잠시 구경을 하고 빠져 나와 안동문화관광단지로 향했다. 걸어서 40분 걸려 공예전시관을 들렀다. 도자기, 한지 공예, 천연 염색공예, 자수, 매듭을 만든 전시품이 반기고 있었다. 어느 분의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밥공기 두 개를 샀다. 연녹색에 박혀있는 반점들이 시골 아낙의 맛깔스런 솜씨를 담아내는 것 같다. 소담하게 밥을 담으면 밥맛이 절로 날 것 같다. 아까워서 밥을 담아 먹을 수 있을는지.
안동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 전통한옥마을을 찾았다. 아직 조성 중이라 별 볼 것은 없었다. 안동댐 지류의 숲 속 둘레 길을 따라서 되돌아 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시가지에 들러 다시 택시를 타고 안동 찜닭 집을 부탁했더니 역 가까운 곳에 내려 준다. 찾아들어갔더니 손님이 많다. 반 마리에 막걸리 하나를 시켰다. 다 먹지를 못하고 나왔다. 국물이 흥건한 찜닭이 술안주로는 제격이다. 밥도 곁들어 먹고 싶었지만 양이 많아 먹지를 못했다. 취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래서 살맛이 나는가 보다며 역까지 걸어서 왔더니 울산에서 온 아주머니는 나름대로 구경을 마치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시간이 가까이 오자 시원스레 소변을 마친다. 물 한 병과 안동 하회탈 빵을 사들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안동역을 홀로 남겨 두고 떠난다. 내가 갈 곳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