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4월 3일) 눈이 정말 많이 왔다.
4월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 것은 내 기억엔 없다.
뉴스에서는 4월에 눈이 온 것은 19년 만이라고 하지만
이런 많은 눈은 내 기억엔 없다.
그땐 서울에 살아서 이렇게 가깝게 느끼질 못했을까.
올 겨울 들어 두 번째로 많이 온 눈은 4월에는 볼 수 없는
멋있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나 혼자 보기 아까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더불어 숲 식구들에게
보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거기까진 좋았다.
난 또 고립됐고 목요일에는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가야 하는데
내 생각에 목요일까지 녹을 눈이 아니었다.
내 눈에 보여진 눈의 나라는 지금이 4월이란 것을 잊게 만들었다.
(나의 나쁜 머리도 단단히 한 몫 했다)
4월은 영하로 내려가도 이틀이면 다시 영상의 따뜻한 기온이 되어
이틀이면 눈이 녹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한 마디로 헛고생 한 것이다.
끙끙 거리며 눈을 치우고 난 다음 몸살에 걸려 누웠다.
눕기 전에 잠시 컴퓨터를 켜고 숲속의 소리를 열었다.
난 숲에 들어오면 경조사 난은 습관이 안 돼서 거의 안 보고
숲속의 소리난에만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나간다.
정한진님의 글이 숲속의 소리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난 영원히
정한진님이 모친상을 당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결국 이승혁님께 본의 아니게 또 다시 귀찮게 폐를 끼쳐드리게 되었다.
승혁님께 문자를 해서 정한진님께 나의 작은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누워 본격적으로 끙끙 앓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약을 먹어 내 몸이 약통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약을 먹지 않고 참아보려 했으나 열이 있어 해열제를 먹어야했다.
비몽사몽에 문자가 들어왔다는 신호가 들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문자를 열었다.
"선배님! 정한진입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감사해서
한동안 정리가 안 됐습니다!
제가 선배님을 알지만 만남이 잦지 않았기에
어쩌나 하는 마음 뿐이었어요.
지금은 선배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동안 쓰신 글의 본질이 공감이셨잖아요.
그 마음 고맙게 받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중년의 한 사내가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열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우린 다 같은 더불어 숲의 나무들 아니었나?
문상도 중요하지만 혼자 서울역에서 허공을 쳐다보지 않게
마중 좀 나가지!!!
솔직히 말해 난 정한진님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정한진님이 신선생님을 존경하고 신선생님의 사고와 철학을
닮고 싶고 흠모하여 함께 숲을 만든 더불어 숲의 나무란 것은 안다.
그렇다면 얼굴을 모르건 알건 간에 슬픔에는 같이 슬퍼하고
기쁨에는 같이 기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야 "더불어"라는 단어가 되는 것 아닌가?
지하철 역에서 만감이 교차하여 허공을 응시하는 외롭고
고독한 한 사내가 더불어 숲의 나무란다.
만남이 잦지 않아 잘 모르는 나무에게 마음의 위로를
받은 것을 당황해 하는 더불어 숲의 나무란다.
더불어....
도대체 더불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만남이 잦던 안 잦던 알건 모르건 간에 더불어 숲의 나무들은
기쁨은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픔은 같이 슬퍼해야 하는 것이
더불어 숲 아니던가?
우린 더불어 숲 안에 또 다른 각자의 숲들을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더불어 숲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뿌리님들에겐 감사드린다.
그리고 정한진님이 내게 보낸 문자를 허락없이 올린 것도 함께 사과드린다.
하지만 우린 결함이 많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다시 생각하고
잘못 된 것은 고쳐나가고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숲은 소통과 공감의 바람이 불어야한다.
그래야 나무들이 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썩지 않고 잘 자란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 보다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
진정한 이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던가....
더 쓰고 싶어도 열이 아직 안 떨어져 어지러워
더는 못 쓰겠다.
솔직히 더 쓸 것도 없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더불어"라는 뜻을
모든 나무님들과 뿌리님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욕 먹을 것을 각오하고 이 글을 올린다.
감악산에서
열에 들떠 수업도 못 간 박명아가
추신
영어 시험에 붙었다고 조교에게 연락이 왔다.
분명 떨어져야 하는데 붙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나이가 많아 불쌍해서 붙여준 것 같아 붙어도
마음이 좋지 않다.
첫댓글 그루터기님들 경조사 난에 경조사를 올리고 가장 잘 보는 숲속의 소리에도 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모든 나무님들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만해도 숲속의 소리만 보고 나가거든요.
답글에 대한 댓글을 먼저 쓰고는 본문을 읽고 다시 댓글을 수정합니다...
경조사난에 있는 글을 숲속의 소리에도 올릴까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길들여져야 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었지요... 경조사칸의 위치를 바꾸던지, 말씀대로 경조사를 당분간은 숲속의 소리에 게시하던지 의논하겠습니다...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박명아 선배님께서 본문에 하신 말씀은 전체 더불어 숲에 대한 애정과 한 사람, 한 나무를 배려하는 사려깊은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 경로(가보놀 멤버나 정한진선배나 이승혁선배)를 통해서 바로 알게 되시겠지만 ^^ 정한진선배님의 모친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아픔을 함께하려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비를 함께 맞았습니다. ^^ 오늘 박명아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아! 앞으로 박명아 선배님과 함께하는 시간과 소통을 더 늘려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앞으로 자주 부르겠습니다... 자주 만나요~
더불어 숲은 진정 더불어 숲이 되어 있습니다. 15년째 이 숲에 있는 제가 증명합니다... 누가 더 많이 참여하고 서로를 알아가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박명아 선배님의 따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글이었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런 몸상태로 문자를 보내셨던 거였군요...ㅠㅠ 지금은 쾌차하셨나요?
무작정 제통장으로 부의금을 입금하셔서 정한진씨한테 계좌로 보내려고 했더니 답장이 없었는데
그날 저녁 마침 정한진씨가 번개모임을 주선해서 부랴부랴 다른 선약 끝나자마자 번개모임에 가서
직접 전하고 박명아님 핸폰번호도 알려줬습니다.
아마 '서울역'에서라 함은.....인천에 사는 정연경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을겁니다. ㅋ
아~~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다들 더불어 숲이였는데 저만 따로 숲 하나를 만들고 있었군요. ㅋㅋ 그렇담 다행입니다. 그런데 전 그냥 가끔 숲으로 글을 올리는 것으로 남겠습니다. 건강과 지리적 여건이 너무 열악해서요. 이젠 제 건강에 대해 제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러니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지겹겠어요. 제가 다 이렇게 지겨운데... 차라리 홀로 아픈 게 마음 편합니다. 제발 아플 때는 자식이건 친구건 아무도 오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미안한 마음 때문에 더 아파요. 죽을 병도 아니고 하루이틀 아픈 것도 아닌데 와서들 걱정하는 게 신경이 쓰여 더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