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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만의 시간 -황순원
◈ 줄거리
벌써 이틀째,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주 대위는 현 중위, 김 일등병에게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고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걷기 힘든 주 대위를 김 일등병이 업게 되고, 현 중위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슬쩍 주 대위의 허리깨의 권총을 바라보며 자결을 기다리지만 주 대위는 그 시선을 모른 체한다.
현 중위는 몇 번째 꿈속에서 본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황달 든 태양이 한복판에 있는 누런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황야 한 가운데로, 정강이 중턱까지 누런 흙이 잠겨버린 그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것이니 잘 간직하라던 제일 긴 정강이털이 잠기려는 순간이다. 발밑으로는 왕개미의 주둥이에 잘려나간 개미떼의 시체가 수북한 개미구멍이 있다.
능선굽이에 이르러 나아갈 길을 가늠하던 일등병에게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말대로 능선으로 갈 것을 명령한다. 퍼득 현 중위의 눈은 다시 주 대위의 권총으로 가고, 현 중위는 또 한번 아까의 꿈을 보게 된다. 작은 샛구멍이 있었지만 개미들은 그냥 본래의 구멍으로 나오며 여전히 목이 잘리우고 있었다. 해거름때 구렁이 한 마리를 구워 먹고 잠시 자리를 비운 현 중위를 보며 주 대위는 김 일등병에게 그가 떠났음을 알려주고 김 일등병에게도 여기를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김 일등병은 말없이 주 대위를 업는다.
저녁때쯤, 주 대위와 김 일등병은 현 중위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김 일등병은 죽음을 몸 가까이 느끼게 된다. 아군의 폿소리를 들은 주 대위는 자고 있던 김 일등병을 깨워 발길을 재촉하고 바로 그때 폿소리 사이로 개 짖는 소리를 듣게 된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김 일등병에게 총을 겨누며 자신을 업으라 명령한다. 김 일등병은 귀 뒤의 권총 때문에 걸음을 옳겨놓게 된다. 마침내 김 일등병의 귀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어렴풋이 사람의 그림자와 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김 일등병은 귀 뒤에 와 밀고 있던 권총 끝이 별안간 물러나면서 업힌 주 대위의 몸뚱이가 무겁게 탁 내려앉음을 느낀다.
◈ 작품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안에서 목숨을 건 세 사람의 심리와 삶의 방식을 통해 전쟁과 인간성이라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황순원의 단편 소설이다. 황순원은 6·25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너와 나만의 시간’은 낙오와 부상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세 병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 대위, 현 중위, 김 일등병, 이 세 사람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아군을 찾아 막연히 남하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보다는 죽음에 공포가 이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주 대위는 부상당하여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나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김 일등병에게 업히면서도, 자살을 권고하는 듯한 현 중위의 눈빛을 알아채면서도 그는 삶에 대한 실날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왕개미에게 목을 잘리는 개미떼의 꿈을 계속해서 떠올리던 현 중위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위협받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부상당한 주 대위를 버리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다음날 까마귀에게 눈알을 파먹힌 채로 발견된다. 그러나 현 중위의 시체를 발견한 김 일등병과 주 대위를 휩싸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 아니라, 다음은 내 차례라는 공포감이다. 삶에의 욕구를 바탕으로 쉴 새 없이 걸음을 놀려왔던 김 일등병은 마침내 모든 희망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나 결국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된 생존에의 본능이었다. 끝까지 인간애를 가슴에 담고, 부상당하여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주 대위를 버리지 않는 김 일등병과 삶에 대한 욕망을 끝까지 놓지 않는 주 대위는 결국엔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즉 이들의 강인한 생존에 대한 욕구가 바깥으로 형상화된 것이 결국 개 짖는 소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개 짖는 소리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소리이기 이전에, 그들 내부에서 솟아나는 생에 대한 의지의 소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죽음에 직면한 세 명의 병사들을 통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하에서 인간 개개인이 각각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존재에 대해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본능적인 생존에의 의지와 기독교적 인간애는 황순원이 특히 힘을 싣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 혼자만의 생존을 위해 동료들을 떠나는 현 중위가 가장 먼저 시체로 발견되는 아이러니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총을 들이대면서까지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주 대위와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하는 김 일등병의 모습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황순원은 간결한 문체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 세 사람의 심리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황순원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이 극단적인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게 하고, 그로인해 죽음 앞의 인간이라는 화두를 천천히 객관적으로 음미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 등장 인물
*주 대위: 학도병(學徒兵) 출신. 중상을 입고도 끝까지 삶에 대한 집념이 강한 인물. 자신을 버리고 홀로 떠나간 현 중위의 마음을 헤아리며 원망하지 않는다.
*현 중위: 학도병 출신. 현실적인 인간으로 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향해 움직이는 인물. 패주하면서 아름다운 연인의 입술과 그녀의 편지를 떠올리며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의욕을 다진다. 탈주를 거추장스럽게 하는 주 대위를 버리고 혼자 샛길로 가다가 낭떠러지에서 추락사함.
*김 일등병: 19세. 농촌 출신. 따뜻한 인간애를 지녔지만 의지가 부족한 인물. 주 대위를 버리지 않고 산을 내려가 결국 살아남는다. 독특한 기질이나 개성적인 성격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 핵심 정리
▶갈래: 단편 소설
▶성격: 리얼리즘, 실존주의
▶배경: 6·25전쟁 당시 초여름, 산봉우리와 계곡이 첩첩한 깊은 산 속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전쟁의 비극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 연대감의 아름다움
▶표현상의 특징
(1)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겪는 등장인물들의 사건과 심리를 간결한 문장과 사실적인 묘사로 형상화함
(2)인물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출전: ‘현대 문학’(1958)
◈ 구성
* 발단: 부상당한 주 대위와 함께 무작정 걷고 있는 현 중위와 김 일등병
* 전개: 현 중위의 꿈
* 위기: 현 중위가 떠나버리고 난 후 얼마 안 있어 주 대위와 김 일등병은 현 중위의 시체를 발견
* 절정: 주 대위는 김 일등병의 걸음을 재촉하며 총을 겨눔
* 결말: 드디어 인가를 찾아낸 주 대위와 김 일등병
◈ 작가 소개
황순원(黃順元 1915-2000) 소설가. 시인.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 소설과 “별과 같이 살다”(1947), “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 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단일성에 걸맞는 개인의 문제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삶의 총체적 인식에 주력하여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았으며,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