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
그 에 얽힌 사연, 즐거웠기도 했고 아쉬웠기도 했던 추억이 있다.
'86년 늦은 봄이었던가 당시 증권회사 대리로 근무하던 초,중학교 동기인 친구의 권유로 주식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 나에게는 공무원 박봉으로 재형저축 월10만원씩 3년 부어서 만든 500만원이 있었다.
그 돈을 친구의 증권회사에 증권계좌를 만들어 입금하고 주식매매는 친구에게 일임하였다.
낮 에만 여는 증권시장 직장생활하는 몸으로는 직접하기는 힘들고 전문가인 친구가 있으니까...
내 기억으로 그 당시 지수가 100포인터 언저리 였었고 상.하한가 선이 5% 였었던것 같다.
친구가 투자를 잘해서 전화해 물어보면 하루에 십만원도 올라있고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근로자증권처축 120만원을 부산은행 주식에 투자해 3년후에 약400만원을 만들기도했다.
그 전에 아버지께서 내 친구의 부탁을 받고 친구의 증권회사 환매조건부채권 계좌에 4000만원을
투자해 놓으셨는데 '87년도 초에 그 돈도 아버지 도장을 슬쩍 가져와 출금해서 내 증권계좌로
넣어서 4500만원으로 본격적으로 주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 4000만원은 아버님이 '91년도에 돌아
가실때 까지도 그리 된줄 모르셨기 때문에 별 말썽없이 넘어 갈 수 있었다.
'87년 6월 중순경 그때 5공말기로 직선제 개헌요구 데모등으로 한참 소요가 들끓던 때이라 주식이
상당히 내려가 있어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그 돈으로 몽땅 주식을 구입해 놓고 기다렸는데...
마침내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더만. 그 다음날 부터 주식이 오르기 시작하는데 일주일만에
2000만원이 올라 버리더만... 그러다보니 직장에 출근하면 항상 싱글벙글 부서에서 회식을 하면
나이트클럽 2차는 내가 가끔 쏘곤 했었다. 한참 주식이 오르던 때라 100만원 정도를 1달에 한두번
정도 찾아쓰도 별로 표도 안났다. 그 때 내 봉급이 20~30만원 이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노...
'87년말인가 '88년초에는 신용도 일부 걸고해서 구입한 내 주식 1억5천만원이 모두 상한가를 치므로
하루에 750만원씩 3일 달아 오른적도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그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처음 나왔던
"월드카 르망" 1대가 왔다 갔다 한다고 했었다. 하한가 치면 또 그만큼 내리기도 했으니까...
'86년봄에 지수 100에서 시작했는데 노태우6.29선언, '87년말 대통령선거. '88올림픽 특수, 3저현상
(저유가,저금리,저달러)등으로 '89년초에 지수 1000을 돌파하였으니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나..
그래서 그당시 6~7년동안 친구 주변에서 같이 주식하던 중학교 동기 서너명과 친구의 부산상고 동기
서너명과 초등동기 1명 등 9명이 같이 계 모임을 하면서 그림, 고가구, 골동품도 구경하러 다니면서
두어점 구입하기도 하고 부산 문화회관에 클래식음악 공연도 부부동반하여 가끔 관람하러 다녔고,
집 사람에게는 모피코트도 사주고 우리방 장롱도 600만원 상당 하는 걸로 바꿨다. 주식 맡아 해 주는
친구 집들이 할때 250만원 상당의 전축도 선물하고 이자없이 40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JC(부산항도청년회의소)에도 친구들 모두 같이 가입하여 JC 활동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사업을
하거나 주식을 주업으로 하는 친구들은 해외 자매 JC방문도 다니고, 나는 군이란 특수성 때문에
해외 여행을 못갔지만 반면에 부산지구JC체육대회(부산지구JC 21개 로칼이 모두 참여함) 10키로
단축마라톤대회(로칼당 5명,총105명 참가)에 참가하여 3위로 입상하기도 하고 항도JC 로칼 바둑대회
에서 우승을 하기도 하였으며 88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사전 방문하기도 하였다.
부산지구JC체육대회 10키로 단축마라톤대회에서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모습, 주변에 항도JC회원 들이 응원차 같이 뛰고있다.
부산지구JC체육대회 10키로 단축마라톤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여 트로피 받는 모습 1990.6.17
부산항도JC 월례회에서 주제발표 하는 모습 1988.10.26
부산항도JC바둑대회애서 우승하여 트로피 받는 모습 1987.11.26
88올림픽 잠실 주경기장 방문 모습 1987.10.30
'88올림픽이 끝나고 '89년초에 이미 고점을 찍은 주식은 그후 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인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흥청 그리면서 주식을 하였는데 신용으로 산 주식 (내돈 50% 증권금용에서 빌린돈 50% 이른바
신용거래)이 '93년도엔가 주식이 50% 정도 내리니 증권회사에서 반대매매(강제매매)하여 증권금융에서
빌린돈을 회수해 가 버리니 내돈은 하나도 없다. 이른바 깡통계좌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별로 후회는 없었다. 주식을 하는 동안 봉급생활자로서는 할 수 없는 문화생활도 누려봤고
새로운 세계도 경험해 봤고 내 돈으로 내가 즐겁게 잘쓰고 집안식구,친척, 직장동료들에게 여러턱
쏴도 봤으니, 증권회사 지점장까지 하고 나온 친구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건 주식이 한참 잘된다고
직장을 관두는 건 절대 안된다고 하고 집이나 부동산 담보대출해서 주식하지 말라고 적극 충고해준
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안 그랬으면 직장 관두고 부동산 담보로 대출해서 주식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 월급은 장난이었다. ㅎㅎㅎ 그러고 보니 그때 친구에게 빌려준 돈 4000천만원은 남아 있었네..
그 돈을 오랫 동안 형편이 안 좋았던 친구가 형편 좀 나아졌다고 2022년 초에 절반을 갚아 주더라..
물론 이자는 없고 .. 그리 따지고 보면 4500만원으로 시작해서 2000만원 건졌으니 2500만원 손해
봤네.. 손해 본 돈과 이자는 그 당시 돈 찾아서 흥청 망청 즐거운 생활 한걸로 땡친다고 생각할란다.
하지만 한가지 후회되는 건 있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을 때, 왜 부동산으로 말을 갈아타지 않았느냐
하는 점 인데, 공무원하기전에 친척 형뻘되는 사람과 서면에서 부동산사무실 차려놓고 점포소개,
금전대차등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않아 6~7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 둔 경험도 있고, 매일 금액이
불어나는 주식에 빠져, 구입해 놓고 느긋하게 기다려야하는 부동산엔 눈을 못 돌렸다.
그리고 당시 집이 있었고 작으나마 월세가 들어오는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덜 했던것 같다.
'98년말 직장 퇴직후에 겪은 상한가 따라잡기 등 그 후의 주식이야기도 다음에 함 해볼까 한다.
왕년에 잘 안 나간 사람 어딨노 하면서도... 넋두리 읽어준 친구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