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철인클럽 '제주국제3종경기'서 돌풍 이성희씨, 여성 1위 올라 이훈복·김은파씨도 입상 총 14명이 '2009 철인'에
지난 12일 오전 7시 제주 서귀포 중문해수욕장. 바다 안개가 가득하고, 집 담장만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든다. 수트를 입어 펭귄 모양을 한 550여명의 선수들이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다. 선수들은 출발한 지 5분이 지났는데 파도에 밀려 50m 지점에서 허우적거린다. 이윽고 파도를 넘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1시간13분이 지나자 이훈복(51)씨가 상륙한다. 김은파(46)씨도 1시간40분이 넘어 해변에 도착한다. 수영을 마친 선수들은 파도에 시달려 구토를 하며 비틀거린다. 이성희(41)씨는 자신의 기록에 30분이나 늦은 1시간48분을 넘겨 500등 정도로 뭍에 오른다.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 경기를 치르는 '제주국제 철인3종경기대회'이다.
쉴 틈 없이 '바꿈터'에서 사이클을 타고 가파른 '돈네코 고개'를 넘자, '평화로 13개 언덕'은 온통 안개다. 고글을 벗고 달려도 선수들은 응원 나온 가족조차 알아 볼 수가 없다. 135km 지점을 지나니 이제는 바람이다. 시속 30km가 넘는 맞바람에 사이클 속도가 10km도 채 안 된다. 게다가 옆바람에 넘어진 사이클, 접촉 사고로 부상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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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다 온몸을 휘감는 바람은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이다. 제주철인3종경기를 완주하고 지난 19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사이클로 몸을 푸는 김은파, 이훈복, 이성희 철인(왼쪽부터)./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고통이 스멀거리는 이 지점에서 김은파씨는 삶을 되새긴다.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찾아 후지쓰, 대교 등 다니던 직장을 던지고, 1년반이나 아프리카 종단 등 세계 일주를 하였다. 자유여행가로 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3종 경기. 그녀가 헤쳐온 길이 이곳에서 만난 안개나 바람과 닮았다. 김씨는 "힘들었지만, 나만의 여행을 즐기는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니 편했다"며 묵묵히 페달을 밟는다.
바람이 가실 때쯤 이성희(금촌농협)씨가 김씨를 넘어서며 한마디 남긴다. "언니, 먼저 갈게!" 이씨는 풀코스만 10번째 완주하고, 04·07년 제주대회에서 1위를 해 '하와이 코나 아이언맨'대회를 참석한 국내 1, 2위를 다투는 철인. 그녀는 작년 5월 클럽 사이클 훈련에서 추돌 사고로 어깨 인대가 끊어져 3개월간 병원 신세를 치렀다. 부상 와중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깁스한 채로 4개월간 산행 끝에 백두대간을 완주해 내었다.
숨 가쁜 사이클을 끝내자 천근이나 되는 다리를 마라톤이라는 철벽이 가로막고 있다. 마라톤은 세 바퀴 순환 코스. 이성희씨는 앞서 간 이훈복씨를 보고 "선배님, 꼭 1등 하세요"라고 말을 남긴다. 철인대회를 3회 완주한 이훈복씨는 하루에 서너 시간을 짜내어 운동을 한다. 농사나 일을 할 때도 훈련하듯이 하니 일상이 운동이 되어 버렸다. 음식점, 통나무 학교 등 일을 3번이나 바꾸고 과음을 하다 보니 늘 위궤양을 달고 살았다. 재기의 몸부림으로 운동에 매진하자 병도 사라지고 지금은 행복한 농부다. 그도 07년 이 대회 사이클에서 낙상하여 쇄골 복합골절로 2번이나 수술을 하고, 올 초에는 경운기에 치여 무릎까지 다쳤다. 그 여파 때문이었을까? 총경기 거리 226km 중 10km를 남기고 그는 50대 1위 자리를 이수형(인터넷 동호인 클럽 '아이언 윙')씨에게 내주고 만다. 5분의 차이로 2위를 한 그로선 안타깝지만 웃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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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2일 열린 제주 국제철인3종경기에 참석한 일산철인클럽 회원들이 수영 부문 출발에 앞서 파이팅을 하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일산철인클럽 제공
국내 유일의 국제철인3종경기인 제주대회는 일본·미국등 전 세계 선수들과 전국 124개 클럽 동호인 4000여명 중 55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들 건각들도 제한시간 17시간을 넘겨 최종 150명이 탈락했다. 파도와 안개와 광풍을 견디며 온몸이 너덜거리는 고통을 이겨낸 이들. 마스터즈(일반인 부문)에서 이성희는 여성 전체 1위(12시간51분49초), 이훈복은 50대 초반 2위(11시간32분07초) 김은파는 40대 후반 3위(14시간32분46초)를 하며 기염을 토했다.
2002년 창립하여 60여명이 활동하는 일산철인클럽(회장 문상익)은 이번 대회에 16명이 출전하여 입상자 외에 이우일(30), 임진영(45), 이희문(42), 안호성(38), 문상익(54), 이정선(53), 안중근(43), 최희영(38), 김학성(49), 정문철(48), 이승종(49) 등 14명이 '2009 철인'에 올랐다.
'왜 이렇게 힘든 운동을 하냐'고 묻자 그들은 "17시간 이내 완주하는 것보다 세상은 언제나 어려워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달리다 보면 인간사의 어려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철인이란 칭호나 등수가 아니라 땀에 적셔진 훈련과 도전에 있습니다. 이번 입상은 덤이고, 해냈다는 성취감과 멈추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철인경기를 하는 매력입니다"고 입을 모은다.
☞ 철인3종경기란?
트라이애슬론의 한 부문으로 킹코스라고도 한다.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달리기 42.195km를 17시간 안에 완주하면 철인의 칭호가 부여된다. 국내에선 제주와 태안에서 대회가 열린다. 하프코스는 철인 경기의 반으로 춘천, 철원대회가 있고 올림픽코스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로 통영, 대구, 설악, 인천, 서울 등 9개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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