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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담은 편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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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편지쓰는 사람들 |
| 아내 새해 선물로 쓴 편지
작년 연말 새해를 앞두고 아내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주머니 사정을 보니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고생만 한 아내를 생각하면 감동이 매우 큰 선물이었으면 했다.
궁리 끝에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다운받아 편지를 쓰고 봉투를 손수 만들었다. 내 아이디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편지선물은 아내에게 기막힌 아이템인 것 같다. 비용은 190원, 감동 효과는 무한대!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입구를 마무리한 후, '이제 보내야지'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 부치지?'하는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집, 사무실 가까이에 우체국은 없고, 거리를 오가는 길에 우체통을 본 기억도 없다. 사무실 동료들에게 물어도 근처에서 우체통을 본 기억은 없다고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무작정 사무실 근처를 뒤졌다. 하지만 그 옛날 흔하디 흔했던 제비 모양이 그려진, 빨간색 사각형, 귀여운 우체통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다다르고 보니 요즘 세상에 편지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쓰기를 그토록 좋아하던 나마저도 전화, 핸드폰, 이메일의 편리함에 빠져 편지를 써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거리에 그 흔하던 우체통이 사라질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거리를 오가며 우체통이 발견되면 언제라도 부칠 요량으로 외투 속주머니에 그 편지를 넣고 다녔다. 결국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우체통을 발견하지 못하고 새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아내 몰래 아내 핸드백에 편지를 넣어주는 방법으로 전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신년연휴를 맞아 한해 계획을 세워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편지쓰는 사람들'이라는 봉사모임에 관한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모임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런저런 내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하!'하는 감탄과 더불어 며칠 전 새해 선물로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가 생각나 빙그레 미소지었다.
'재소인'에게 희망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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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모임에 참석한 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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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편지쓰는 사람들 |
| 연초 '편지쓰는 사람들(www.letterpeoples.com)' 회원으로 가입한 후 나는 2개월째 '재소인'(모임에서는 재소자를 '재소인', '편지친구'이라 부름)들과 편지 나누는 봉사를 하고 있다. '편지쓰는 사람들'(아래 편쓰사)은 전국 각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편지로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순수 민간 봉사모임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명의 편쓰사 회원들이 700여명의 재소자들과 수시로 편지를 나누고 있다.
현재 '편쓰사'의 대표이면서 이 모임을 만든 강지원(37)씨는 모임의 시작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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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대표 "편지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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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원 회장 |
| "어느 날 문득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편지 한 통을 받고 싶지 않으세요? 그런 분들께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원하시는 분은 먼저 신청 편지를 보내주세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었던 저는 몇 년 전 한 TV사와 맺은 계약이 갑자기 취소되자 친구들에게 사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10여통 보냈습니다. 하지만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실망한 저는 한 단행본 잡지에 위의 같은 자그마한 광고를 냈습니다. 그때가 1998년이었습니다.
위 광고 문구를 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낯선 이에게 편지를 보내실까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답니다. '편지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인데 전혀 낯모르는 이에게 누가 편지를 쓸까?'라는 생각에….
잡지에 광고가 실린 것도 몰랐고 또 그 잡지가 서점에 나온 것도 모르고 있다가 며칠 만에 우체국에 들러 사서함을 열었을 때 갑자기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편지들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한참동안 수북한 편지들을 읽으며 가슴이 설레고 감동으로 코끝이 시큰해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있을까요? 그때껏 살아온 제 인생을, 제 가치관을 완전히 달라지게 했으니….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슬픔에 빠진 사람들,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지쳐있는 사람들….
어느 날 문득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뭔가 기쁨을 주면 좋겠다. 막연하게나마 뭔가를 주고 싶다. 물질이 시급한 사람들도 많지만 애정 어린 관심이나 따듯한 말 한마디가 더 절실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어 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요?
다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편지"였습니다.
편지쓰기를 시작한 뒤 제 생활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편지를 쓰고, 편지를 받고 또 다시 쓰고 받고…. 마치 편지를 쓰고 받기 위해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온 종일 편지만 쓰다시피 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 혼자서 답장을 하기엔 너무도 벅찰 만큼 수많은 편지들이 왔습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교도소에서 오는 편지들이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재소인들의 편지 쓰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재소인’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되묻습니다. 교도소란 단어와 함께.
어찌 보면 참 생소한 단어지요. 처음 저도 그랬습니다. 낯설고 어렵고 불편하고 이질감이 들고…. 이상하게도 두려움은 거의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그분들과 편지를 나누는 동안 인간적인 연민과 안타까움이 깊어갔습니다.
예외는 늘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만 그분들의 대부분은 환경이 불우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그 속에 나오는 사례들과 유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 그 프로는 꽤나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죄를 탓하기 전에 주어진 환경과 상황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던….
그 얘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너무 길어지고 깊어질 소지가 많아 마무리에 대한 압박감.
편지쓰는 사람들이 올 해로 8년째에 접어듭니다. 미혼으로 시작을 했다가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그냥 미소지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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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원하는 사람은 늘고 공급은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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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모임시 편지발송 작업을 하고 있는 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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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편지쓰는 사람들 | 이렇듯 '편쓰사'는 재소자(편지 대상의 80% 차지), 군인 외에 우리 사회의 외롭고 지쳐 있는 이웃과 편지를 나누는 가운데 그들의 사연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마음으로나마 함께 나누고자 하는 민간 봉사모임이다. 1998년 5월에 창립되어 현재 200여명의 회원들이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 나눔 외에도 홈페이지 운영, 격월 소식지 발간, 연 2회 전국모임(지역별 월 1회 모임), 연말 교도소 물품 보내기 등의 활동을 겸하고 있는 '편쓰사'는 회원들 각자가 월 5천원씩의 회비(편지친구와 편지교환 우편료는 회원 각자 부담)로만 운영되고 있다. 강지원 대표는 자신의 집을 모임의 사무실로 쓰며 가정일과 모임의 일을 겸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국내 경기도 어렵고 사회가 어수선하다보니 편지를 원하는 대상자는 점점 늘고 있는 반면 개인적 어려움이나 사정으로 모임 회원은 오히려 줄고 있어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들의 수요와 공급차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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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 우체국에 비치된 소식지(격월간)와 후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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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편지쓰는 사람들 |
| 강지원 대표는 2005년 새해 들어 몇 가지 소망을 어렵게 털어 놓는다.
- 사무실을 겸한 작은 쉼터가 만들어지는 것 - 재소인과 편지를 나눌 회원이 늘어나는 것 - 이벤트를 겸한 전국모임을 통해 모든 회원들을 두루두루 만나보는 것 - 편쓰사의 책 출간 - 재소인들과의 편지 나눔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 - 홈페이지에 새 글과 답글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 홈페이지 하루 방문객이 500명 이상 -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임을 위한 정기적인 후원자나 단체 확보
작년 연말에야 편쓰사 회원으로 가입해 2개월여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강지원 대표를 비롯한 전국의 회원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내 앞길만을 살피며 걸어왔는지, 지금껏 걸어온 내 길 주변의 고통, 가난, 슬픔들을 얼마나 외면해왔는지'를 깨달으며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제라도 미력하나마 나의 정성어린 편지 한 통이 우리 사회에서 정을 그리워하고,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손난로와 같은 온기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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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소인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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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소인들이 보낸 편지 |
ⓒ편지쓰는 사람들 | ○○ 형님 전(前)에 드립니다.
영원히 정지 되어 흘러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속죄의 시간들 속에서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칠흑 같은 교도소의 새벽을 깨웁니다. 창밖은 아직도 어둠에 잠겨있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체 곤히 잠들어 있는데 회색 하늘 사이로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있다가 새로운 한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묵상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 합니다.
형님! 조금 전 까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죄지은 우리들에게 마치 때리기라도 하듯 요란 하게 들리었습니다. 하지만 천둥소리와 번개 치는 모습을 오래 간만에 보아서 싫지만은 않았고 마치도 하늘에서 레이저 쇼를 보는 듯도 했습니다. 정말 비가 세차게도 내리네요.
맑은 날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비만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다 하늘에 있는 물이 모두 바닥이 나면 어쩌죠? 지금 시간이 새벽 3시30분 지나서 4시로 향하고 있는데 잠은 오지 않고 자꾸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에 곤히 잠든 사람들을 깨울까 염려까지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흡혈귀 아들인 모기가 없어서 동료들이 시원하게 잘도 자고 있네요.
참! 저 형님께 칭찬 받을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는 한 달 전에 시험을 친 워드프로세서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두 번째는 타 공장과 운동 시간에 친선으로 실시한 씨름경기에서 제가 우승 했다는 겁니다. 작년 체육대회 때도 교도소 내에서 3등 해서 바나나 10박스를 따냈는데 이번엔 제가 1등 했습니다.
비록 친선경기지만 기분이 좋았고 동생들도 보고 있어서 자존심 구길까봐 내심 걱정 했는데 동생들에게 체면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말에 교도소에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합니다. 몇몇 사람들만 찍는데 찍어서 형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체중을 줄인 뒤 처음 사진을 찍는 거라서 이상하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이해하시고 보시기 바랍니다.
형님 !날씨가 계속 찌뿌드드합니다. 건강 조심 하구요. 얼마 있으면 ○○이와 ○○이 방학 하겠네요. 제가 어렸을 때 방학하면 부모께선 더욱 바빠지고 개학하면 비로소 당신네들이 방학 하신다고 좋아 하셨는데….
이번 방학 때 애들과 휴가 계획 잡아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은데 그럼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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