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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산행정보
태백산(太白山 1567m) 강원 태백
크고 밝은 뫼(한밝뫼)
태백산은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민족의 영산'이다. 1991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이 천제단은 삼한시대부터 시작하여 신라시대에는 일성왕이 처음 제를 올린 이래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구한말에는 우국지사들이,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러운 제단이다.
태백시에서는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 태백제를 개최하며 하늘님 한배검을 모시는 천제를 올린다.
정상부에 장군단(장군봉), 천제단의 상단과 하단 등 세 개의 제단이 있고 불교나 유교가 전래되기도 전에 민족 고유의 의식이자 신앙이 뿌리 내린 곳이다.
구간 : 당골매표소-당골광장-단군성전-갈림길교량-반재-망경사-단종비각-천제단-부쇠봉-문수봉-산제당골-당골광장-주차장 (4시간30분)
태백산 정상에 이르는 길로 유일사매표소 코스가 제일 쉬운 길이지만 축제기간에는 엄청난 인파로 혼잡하다. 오히려 당골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경관도 좋고 부소봉, 문수봉을 거칠 수 있어 태백산의 핵심을 두루 살피는 루트가 된다.
당골주차장 재2매표소 입구까지 버스가 진입한다. 물론 버스 주차장은 아래에 있으므로 내려다놓고 버스는 아래로 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너른 길로 가면 길옆으로 먹거리촌이 형성돼있다.
주차장 입구에서 200m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당골광장, 이곳은 축제장으로 온갖 얼음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오른쪽 사선방향 저편에 단군성전 앞으로 탐방로가 나있다.
당골길은 넓고 등산로 옆을 따라 상수원 보호 스테인리스 난간을 해두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빙판이 되어 있다.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계곡 건너편에 병풍바위가 보인다. 이 병풍바위는 곧 무너질 것 같아 보이지만 예전의 그대로인 것을 보니 천년도 더 가리라. 너른 임도가 끝나고 문수봉 오름길이 보이는 곳 쉼터에서 교량을 건넌다.
가파른 오름길이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호식총(虎食塚)을 만난다. 그 위에는 옹달샘이 있다. 오래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이다. 100년 전만 해도 태백산은 호랑이가 많았다는데. 산 속에 너와집(능에집)을 짓고 살던 화전민들은 호랑이에게 죽으면 虎食葬을 치렀다.
범에게 잡아먹힌 뼈가 발견된 곳에 火葬을 하고 돌무덤을 쌓아 그 위에 시루를 엎은 뒤 시루구멍에 가락을 꽂는다. 범의 노예가 된 창귀가 사람들을 못 데려가도록 원혼을 위협하는 것이다.
샘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7~8분 오르면 반재 쉼터. 깨끗한 발효화장실도 있고 오뎅 파는 주부도 있다. 이곳은 백단사에서 오름길과 만나 천제단~당골광장 간 거리 4.4km의 딱 절반되는 지점이라 반재다.
이정표(당골광장 2.2km-천제단 2.2km-백단사매표소 1.6km)
반재에서부터 길은 한결 경사가 순해지기도 하고 미끄러운 구간도 나온다. 이 길로 20여분 오르면 망경사, 천제단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지만 어느 곳으로 가던지 망경사 아래서 만난다.
망경사로 방향을 잡고 간다. 약간의 오름길로 가다가 사면으로 진행한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망경사는 조망이 아주 좋은 절인데 대웅전에서 바라보니 정확히 문수봉(보살님)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절은 천제단에서 기도를 드리려는 수많은 기도객, 무속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아래 해발 1470m에서 물이 샘솟는 용정은 100대 名水로 이름나있다.
곧장 단종비각으로 올라간다.
朝鮮 6대 임금 端宗이 영월에 유배되자 漢城府尹을 지낸 이 고을 秋益漢이 태백산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갖다 드렸다. 어느 날 그 꿈을 꾸는데 山果를 進上하려고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袞龍袍) 차림의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났다. 이상해서 영월 땅으로 달려가 보니 그날 단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단종은 1457년 9월3일 영월에서 승하(昇遐)하고 태백산 山神靈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단종이 영월에서 태백으로 오는 沿道에는 성황당이 많다고 한다.
비각은 1955년 望鏡寺 박묵암 스님이 건립하고 비문과 현판 글씨는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하얗게 쌓인 눈이 빙판이 된 가파른 등산로 옆으로 쳐둔 로프를 부여잡고 天祭壇으로 올라간다.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1m)의 거대한 표지석 앞에 기념촬영 한 번 하기 쉽지 않다. 천제단에 올라 장군봉과 뒤로 온통 생채기를 안고 있 함백산을 바라본다.
이정표 : 당골광장 4.4km, 백단사매표소 4.0km, 망경사 0.5km, 사길령매표소 4.1km, 유일사매표소 4.1km, 문수봉 3.0km.
태백산 제단은 장군단, 천제단, 그리고 아래 작은 제단으로 모두 세군데 있다. 바람이 세차서 부소봉 능선 길을 피해 다시 망경사로 내려선다. 여기서 중식을 하고 문수봉으로 향한다.
부소봉은 여러 군데 주목을 식재하였지만 원래의 주목도 자주 만난다. 커다란 헬기장으로 된 부쇠봉(1,546.5m)은 중국의 태산과 그 높이가 같다고 한다. 부쇠봉 이정표 (문수봉 2.2km, 천제단 0.8km)
망경사-문수봉 사면 길로 가다보면 부쇠봉 능선에서 내려서는 길을 두 번 만난다.
도중 기품 있는 주목 여러 그루를 만나는데 아래로 텅 빈 것 같은데 위로는 무성한 잎과 줄기를 하늘로 솟구쳐 있으니 신비하고 경외감마저 든다.
주목은 몸통을 비워 천년을 더 산다. 하늘을 향해 뻗은 주목은 수백 년 풍상을 겪어낸 그 자태가 곧고 기품이 있다. 더러 썩고 말라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잘라내는 처절한 생명력. 살았으면서 자신의 속을 비웠으니 죽어서도 천년을 사는 것이다.
천년 주목과 함께 어울린 태백산의 설경은 해와 달의 기운 모아 잉태한 영겁의 그리움이다.
부쇠봉 안부를 지나니 사스레나무와 신갈나무, 철쭉도 보이고 껍질이 수평으로 벗겨져 있는 자작나무를 많이 만난다. 길은 완만하여 걷기에 좋다.
부쇠봉 안부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고 안부에 이르면 당골 하산로를 하나 만나는데 이곳은 정가바우골 하산로이다. 이 길은 반재 오름길 직전 교량 쉼터와 다시 만난다.
마지막 오름길로 100여미터 오르면 금천갈림길. 백천계곡 3.6km 팻말이 서있다. 숲을 통과하자 돌무더기가 산정을 이루고, 대여섯 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는 기도처로 유명한 문수봉(1,517m)이다.
망경사 입구에서 넉넉잡아 40분 소요. 구도자들이 쌓아올린 커다란 돌탑들이 여기저기 어울린 풍치가 좋고 바로 앞에 망경사 천제단도 보인다.
옛날 이 산봉우리의 바위로 문수불상을 다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멀리서 보면 이 봉우리가 마치 눈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여 태백산의 이름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소문수봉을 향해 400여m 내려서니 안부 갈림길(금천 3.5km, 당골광장 3.6km, 소문수봉 0.4km)이다.
왼쪽으로 내려서고 밧줄이 매어져 있는 다소 급한 비탈길을 따라 20여 분 내려가면 이윽고 계곡을 왼쪽으로 건너고, 그 5분 뒤 갈림길목을 만난다.
왼쪽은 단군성전, 오른쪽은 제당골로 하여 당골광장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이다. 병풍바위를 지난다. 그리고 두 아름도 넘는 거목들이 하늘을 찌르며 솟아 있는 하늘 정원을 만나면서 산길이 큰 길로 변한다.
태백 부소봉(1,546m)
대현버스정류소-(1시간)-현불사주차장-(25분)-차단기-(30분)-칠반맥이골 입구-(15분)-도투마리골 입구-(적설기 3시간30분/ 평상시 2시간)-부소봉-(35분)-문수봉 삼거리-(1시간30분)-칠반맥이골 입구-(30분)-차단기-(25분)-현불사주차장-(1시간)-대현버스정류소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백천계곡에서 부소봉으로 연결된 도투마리 코스와 문수봉과 연결된 칠반맥이골 코스가 선을 보이게 되었다. 백천계곡은 숲이 무성하고 골이 깊어 물도 맑고 수온이 낮아 열목어 서식지로 그동안 입산통제하며 보호하던 청정계곡이었다.
대현 버스정류소에서 이곳 차단기 까지 1시간30분.
왼편 언덕의 폐농가 한 채를 힐끗 보며 시멘트 다리를 건너 차단기를 통과, 겨울에도 풍부한 수량의 계류를 끼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길이다. 30여분, 대형그림지도와 이정표(상골 3.2km, 현불사 3.3km)가 있는 칠반맥이골 입구다.
계속 주계곡의 넓은 길을 따라 15분쯤 더 들어가 시멘트 다리를 건너자 '부소봉 3.8km' 이정표가 있는 도투마리골 입구다. 여기서 지금까지 걷던 백천계곡을 버리고 상골, 도투마리골 사이 오른편 능선을 따라 오르기만 하면 부소봉에 이른다.
표지기들이 나무에 걸린 좁은 숲길로 들자 묘 1기와 '3.7km' 이정표가 있다. 금강소나무들이 쭉쭉 뻗은 급경사 길가에는 진달래나무들이 사열하고 있다.
된비알을 지그재그로 20분쯤 오른다. 경사도가 잠시 누그러드는 곳의 묵묘를 지나 5분쯤 경사를 더 올리자 이정표(부소봉 2.7km)와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둘레를 측정해 보니 무려 4m다.
밑둥은 5m가 넘어, 그 크기에 혀를 내두른다. 일제 때 이곳의 소나무들이 모두 수난을 당했다는데 용케 살아남았다. 이 나무는 주위에 보호망을 설치해야겠다.
다시 고도를 높일수록 적설량이 늘어난다. 조금 전 보았던 소나무에는 못 미치나 큰 나무가 연이어 나타난다. 조릿대 철쭉 진달래나무 신갈나무 아래에는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느라 밭을 일궈놓았다.
능선을 따르며 뒤를 돌아보니 진대봉(980m), 조록바위봉(1087m)이 곧추 솟아 하늘을 찌르고 있는 암봉의 모양새가 특이하다. 노송을 뒤로 한 지 55분, 묘 1기가 있는 넓은 터에 닿았다. 이정표(부소봉 1.9m)가 있다. 조망과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계속 북으로 이은 능선을 따른다. 아름드리 신갈나무들이 몸을 비틀고 누덕 옷을 겹겹이 껴입은 사스레나무들이 나타나다. 눈꽃터널을 30여분 오르자 사거리 이정표(청옥산 14.9km, 부소봉 0.2km, 백천계곡 3.9km, 천제단 1.0km)가 있는 백두대간 등마루다.
부소봉으로 간다. 아담한 정상석이 있는 부소봉(1546.5m)이다. 북으로 천제단과 망경사, 동으로는 문수봉이 가깝게 있고, 남으로는 깊게 패인 백천계곡 너머로 산과 산이 겹쳐져서 시선 다하는 곳까지 보인다. 한마디로 김삿갓 김병연의 시 '수수산산처처기(水水山山處處奇)'다.
부소봉을 부쇠봉이라 하기도 하는데 부소는 단군의 아들 부소왕자를 일컫는 말을 이곳 방언으로 부쇠라 발음한다. 또 여기에 부싯돌로 쓰는 석영이 있어 그렇게 부른다는 일설도 있다.
부소봉에서는 천제단, 장군봉, 망경사, 문수봉(원술봉) 코스들이 있으나 새로 개설한 칠반맥이 코스로 산행하기 위하여 동쪽 능선을 따라 문수봉 방향으로 간다.
부소봉 헬기장을 지나 천제단과 망경사에서 오는 길과 만나 널푸레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자 온통 사스레나무 군락지다. 여기에 사스레나무를 자작나무라고 설명서 표지판까지 세워놓았다.
정가샘터(바우)골의 삼거리를 지난다. 부소봉을 떠난지 약 30분 소요에 문수봉을 코앞에 놓은 오름길에 닿았다. '현위치 ⑭번 백천계곡 3.6km, 천제단 2.9km, 문수봉 130m'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칠반맥이골을 따라 백천계곡으로 하산한다.
큰길을 버리고 오른쪽 좁은 숲길로 들어 약 5분쯤 문수봉 남사면을 트래버스하자 '금천 3.2km, 백천 3.5km' 라고 쓴 자그마한 이정표가 반기는 삼거리 숲속이다.
여기서 칠반맥이골 길은 백천이라 쓴 오른쪽 급경사 길이다. 남으로 뻗은 능선을 놓치지 않고 20분쯤 쏟아지듯 내리자 왼편에 묘가 있고, 오른편 아래 계곡 숲엔 샘이 있는 움막이 보인다.
빼곡한 신갈나무 급경사에는 안전산행을 위해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걸음을 빨리하여 45분 걸려 망주석이 있는 강릉김씨 묘에 닿았다. 묘 2기를 지나 급경사를 미끄럼 타듯 15분 내려서자 금강소나무에 둘러싸인 묘 1기가 나타난다.
이후로는 구불거리는 길이다. 칠반맥이골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급경사 길이 끝나고 노거수 2그루, 밤나무와 돌담이 남아 있는 집터다.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짓던 자리에는 일본이깔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찼다. 사이를 빠져나오니 칠반맥이골이다. 묘에서 25분 걸렸다.
계곡을 따른다. 계류를 건너자 일본인들이 황장목을 수탈해 가던 임도다. 수량이 풍부한 칠반맥이골은 와폭, 담과 소, 연이 있다. 뼝대 아래에는 움막도 보인다.
계류를 따른지 20분쯤에 다시 계곡을 건너 빠른 걸음으로 5분쯤에 아침에 보아두었던 대형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칠반맥이골, 백천계곡 합수점이다. 어스름이 밀려와 백천골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간다.
백천계곡은 숲이 무성하고 골이 깊어 물도 맑고 수온이 낮아 열목어 서식지로 그동안 입산통제하며 보호하던 청정계곡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접하며, 태백을 새롭게 느끼는 산행이 될 것이다.
현불사주차장에 대형버스 여러 대가 주차 가능하다. 여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왕복 2시간50분을 아낄 수 있다. 하산 때 문수봉 남쪽 숲속의 작은 이정표(금천 3.2km, 백천 3.5km)에서 길조심해야 한다. 이정표에서 20분쯤 내려서서 첫번째 만나는 묘에서 그대로 직진한다. 오른쪽 계곡으로 떨어지면 도투마리골로 내려서게 되니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봉화에서-태백산으로
춘양-14km(승용차)-애당2리(석문동)-1km-제1석문-2km-차돌배기-5km-깃대봉-4km-부소봉-1km-태백산-4km-당골 (춘양면사무소 주변 주차장 주차, 택시 버스 이용)
석문동은 자개동 석문에서 유래한 10승지지중 하나. 7-8월 관리비 징수.
폭1.5m의 등산로가 개설됨. 제1석문바위를 지나 왼쪽 언덕을 올라 차돌배기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며 언덕에 오르면 좌측 깊은 계곡과 큰 바위가 제2석문이다. 계곡미가 뛰어난 곳이다.
깃대봉은 청옥산 등산로와 만나는 곳이다.
태백시내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대현행 버스가 1일 10회(07:00, 08:35, 09:40, 10:45, 11:45, 12:45, 14:45, 16:00, 18:15, 19:10) 운행하며 3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2,600원이다.
경북 봉화버스터미널(054-673-4400)에서 태백행 버스를 타고 대현에서 하차.
1일 9회(08:20, 09:15, 12:05, 13:25, 15:05, 16:15, 17:18, 19:40, 21:50) 요금은 6,600원이다.
대현버스정류소에선 영주, 대전, 대구, 안동, 의성, 봉화행 버스가 있다.
운행시간은 07:30(영주 대전), 09:05(영주 대구), 10:10(영주 대구), 11:15, 12:15(대전), 13:15(대구), 15:15(대전), 16:25(안동 의성 대구), 17:25(영주 대구), 18:45(안동 의성 대구), 19:40(안동). 대현에서 대구간 요금은 16,700원이다.
태백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33-553-1567.
태백산 도립공원 주차료(당골) 중형 2,000원, 대형 4,000원. 석탄박물관 관람시간 09:00~17:00.
대현 둔지골 입구 진대봉 언덕에 있는 하늬바람펜션(054-672-4750, 011-9777-4759)은 4인실, 6인실, 8인실 등의 원룸이 있으며 예약투숙객은 태백, 석포까지 마중 산행기점까지 태워주기도 한다.
민박 혹은 산행코스 문의
부래주유소(011-367-6446) 김용주씨, 대현 대정회 이석천 회장(011-9076-6602)
식당과 숙박업소로 청옥기사식당(054-673-4459), 모리가든식당(672-6446),
청옥산자연휴양림(672-1061),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50-2849), 태백 시내의 도시락주문이 가능한 맛나분식(552-2806), 얼큰한 아구찜이 일품인 일미아구찜(552-2959) 등이 있다.
태백산눈축제
1월26일부터 2월4일까지 10일간이며 태백산 내에선 눈조각전시와 눈조각경연대회, 태백산등산대회, 전국알몸마라톤대회, 산천어낚시체험 등의 행사. 홈페이지(http://festival.taeback.go.kr)와 태백시(033-550-2081)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골광장 아래 식당가 제일 안쪽에 위치한 성원식당(033-553-3579). 상황오리가 주메뉴
태백산 약수에 유황오리와 상황버섯 황기 감초 등 한약재, 그리고 찹쌀 밤 대추 은행 등을 각목 보자기에 싸 압력솥에 각각 넣어 1시간 동안 찐 보양식이다.
최소 1시간 전에 전화로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4인용이며 3만5000원. 이곳은 특히 태백으로 전지훈련 오는 프로축구 농구 펜싱 육상 레슬링 핸드볼 선수들의 단골 식당이기도 하다.
태백산관리사무소(033-550-2741) 태백시내 한우구이전문 동영식당(581-4570)
염소탕 구이전문 초막막국수(553-3201)
태백에서 봉화 직행버스가 1일 25회 있다. 개인택시 춘양(054-672-3277)
봉화 석문동 애당2리 이장(673-1148) 동아여관(672-3109) 태백여관(672-3164)
금천동
문수봉(1517m) 아래 숨어있는 두메 잣나무골. 1926년 황지에서 면사무소 소사 장해룡(17세)이 금천 먹돌배기 언덕에서 검은 돌덩이 하나를 줍는다. 얼마 후 삿포로 전문학교에서 고열량 석탄으로 판명, 국내 최대의 석탄 산지가 된다. 금천의 옛 이름이 비만 오면 개천물이 검게 된다고 하여 거무내미골(거무내) 이었다. 95년 문수봉 주변에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하여 유명해졌다.
호식총(虎食葬)
산 속에 너와집(능에집)을 짓고 살던 화전민들은 맹수가 무서운 존재. 호랑이에게 죽으면 虎食葬을 치렀다. 범에게 잡아먹히면 그 뼈가 발견된 곳에 화장을 하고 재를 남겨 돌무덤을 쌓고 그 위에 시루를 엎은 뒤 시루구멍에 가락을 꽂아놓았다. 범의 노예가 된 창귀가 사람들을 못 데려가도록 시루를 덮어 막아놓고 가락을 꽂아 원혼을 위협하는 것이다. 호식총은 사람이 호랑이에게 죽으면 명복을 빌던 곳인데 실제로 호식총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철암동 빛바랜 검은 榮華
태백 시내를 벗어나 통리로 해서 남쪽으로 차머리를 돌리면 철암이다. 액자 속 흑백 사진으로 들어간 듯 갑자기 주위의 풍경이 색을 잃는다. 산 중턱에 산더미 만큼 쌓인 석탄 더미, 빛바랜 상점들의 간판, 무너져 가는 허름한 사택들, 한국 근대화의 비가(悲歌)가 처연히 흐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처음 탄광이 개발되면서 만들어진 동네 철암. 전형적인 탄광촌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금껏 탄광촌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퇴락한 폐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철암. 가파른 언덕에 지어진 광부의 사택들이 주인을 잃고 허물어져가고 있다.
1940년 무렵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묵호와 철암을 잇는 철암선이 개통됐고, 1955년에는 영주와 철암을 연결하는 영암선까지 열리면서 철암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시커먼 탄가루는 돈을 불렀고 그 돈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길거리의 개도 수표가 아니면 물지 않는다 했고, 집세도 서울보다 높았던 곳이 철암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되지 않았다.
이후 황지와 고한을 잇는 태백선 때문에 상권을 황지 등에 빼앗기게 됐고 석탄 대신 석유가 주요 에너지로 자리 잡은 90년대 들어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됐다. 잇따른 폐광에 철암은 죽은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3만 명이 흥청거리던 철암의 거리는 지금 채 5,000명도 안 되는 인구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철암역 위의 선탄장에선 아직도 산 너머 장성탄광에서 채취된 뒤 터널을 통해 옮겨진 탄들을 선별, 간간이 열차에 실어 보내고 있다. 이미 문 닫은 여타 탄광촌이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에 따라 카지노다 스키장이다 해서 변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철암은 아직도 석탄 산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법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탄광촌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다.
구문소(求門沼)
철암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 중간 동쪽 철암천과 만나는 곳. 동점동 자개문 옆에 위치.
물이란 자고로 산을 만나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야 하는 법이거늘 이 물줄기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물길을 낸 뒤 큰 소(沼)를 만들었다. 황지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오랜 기간 석회암 바위를 녹여내 구멍을 낸 것. 구문소 주변의 바위는 5억년의 지구 역사를 담고 있다.
삼엽충, 두족류 등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고생대 표층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라고 한다.
80평 정도의 구문소는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 '물이 능히 돌을 뚫는다(수능천석水能穿石)'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기이한 곳. 황지에서 흘러오는 갈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구무소라 한다.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 부르기도 하는 구무소는 한자표기로 구문소(求門沼)라고 쓰고 있다.
'구무'란 말은 구멍의 옛말이니 구무소는 구멍소라는 뜻이다. 구무소 안쪽에 있는 마을을 구무안이라 한다. 황지천의 옛 이름이 뚜루내 천천(穿川)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천천(穿川)이라 표기되어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5천만년에서 3억년 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구무소는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간 도강산맥이라는 특수한 지형이다. 구무소는 마당소, 자개문, 용소, 제일 윗쪽의 삼형제폭포, 여울목, 통속닭벼슬바위, 용천등으로 불리는 구문8경이 있다.
옛날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에는 석벽을 사이에 두고 동쪽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고, 서쪽 황지천에는 백룡이 살았다고 한다. 두 용은 서로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항상 다투었다.
매일 석벽 꼭대기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 위에서 싸우다 내려와 석벽 밑을 뚫으며 공격을 하여 청룡을 물리치고 그 여세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백룡이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을 용우이 산이라 하는데 구무소 앞에 솟은 산이다.
황지못
둘레 100m로 상지 중지 하지로 나뉘는데 하루 5천 톤의 물이 솟아난다.
황지는 매우 인색한 노랭이 황동지가 허름한 노승을 구박하고 쫓아내어 집터 전체가 못으로 변해버리고 며느리마저 돌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낙동강 1,300리 예서부터 시작되다"
태백시내 중심부 황지연못가에 서 있는 표지석의 글귀에서 525km 낙동강의 발원지가 이곳임을 알 수 있다. 표지석 뒤쪽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소가 있으며, 그 둘레는 약 100m 정도. 이곳에서 하루 5천여톤의 물이 쏟아져 나온다. 태백시를 둘러싼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쓰며들었던 물이 모여 못을 이룬 것이다. 이 물은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북도, 경상남도를 거쳐 부산의 을숙도에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옛 문헌인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을 살펴보면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밝혀놓고 있으며, 처음에는 '하늘못' 이라는 의미로 천황이라 했고, 황지라고도 했다.
사진여행
태백시 소도동 당골에서 천제단으로 가기 위해
인파와 더불어 당골 광장으로 올라갑니다.
얼음 조각품이 시작되고 먹거리 촌이 나오고
당골광장의 눈꽃 축제장을 지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천제단에 이릅니다
문수봉 가는 길에는 주목이 기품있게 서있습니다
문수봉은 문수보살이 계신다고 합니다
문수봉은 너덜과 돌탑으로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