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불교와문학 가을호 양효숙 수필>
거꾸로 읽는 서사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서니 지나온 인연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많아진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를 힘들게 한 이가 오히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퍼즐이 다르게 꿰맞춰진다. 그때 그 순간에 대한 상황을 거꾸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선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도 모두 지나간다는 지나감에 대한 감사가 일어난다. 과거의 어느 장면으로 걸어 들어가 해석을 다르게 하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장면이 연출된다. 인연이 연인으로 읽히고 역경 또한 경력으로 제자리 잡는다.
이야기인 서사를 거꾸로 읽으면 사서가 된다. 마흔셋에 동두천 공립중학교 사서로 출근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느끼지 못한 설렘이 함께 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다니던 직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출산예정일 전날까지 다녔던 치과 원장님이 내게 독하다고 했다. 며칠이라도 쉬었다가 애를 낳으러 가야지, 서른여섯의 만삭인 나를 어이없고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원하던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퉁퉁 부어 있는 내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나를 향해 아름답다는 말도 하실 줄 아는 분이었구나 싶은 게 울컥했다. 그분만의 서툰 표현에 상처받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지금 내 나이였던 원장님과 스물한 살의 내가 만나 십오 년을 함께 했다. 탈북자들이 모여 있는 하나원에 주말이면 가서 이를 치료해주고 말레이시아 방기섬에서 의료선교도 했다. 인슐린을 맞아가며 당신 재능을 흘려보냈다. 늘 덤으로 산다는 말을 하며 당신 몸 또한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당신보다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았다. 노후에도 일이 있어야 하고 일을 놓는 순간 팍 늙을 거라며 자기만의 동선과 이야기를 만들었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단골 환자와 지내다가 치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무리수가 뒤따르고 더 이상 욕심이란 걸 인정했다. 그녀 나이 팔십이었고 오래된 당뇨와 치매로부터 당신을 지켜낼 수 없었다. 노환은 마치 당신이 유능한 치과의사라는 걸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선 치아부터 무너뜨렸다. 다른 치과에 가지 않고 결손 치아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맑게 웃었다.
애 낳으러 가는 내게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안 그래도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듯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걸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다. 원장님은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치과의사로서 여장부처럼 살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성이 크고 늘 당당했다. 하지만 가족사에 사연이 있는 만큼 가끔 욱하는 성질을 당신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치과 진료실뿐만 아니라 대기실에도 긴장감이 고조됐다. 치아 모형에 기포라도 생기는 날이면 내가 반쯤 죽는 날이다. 날카로운 치과 기구들에 찔리기도 하면서 후줄근한 그녀의 가운을 주물러 빨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물기어린 주먹으로 훔치며 거울을 봤다. 그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견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다잡았다.
위축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난 퇴근 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내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만 부모 잘 만나서 최고학부를 나온 그녀에게 묘한 열등감을 가졌다. 지리산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의 그늘과는 또 다른 그녀만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능을 보고 원하던 문창과에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대학에 합격할 줄 몰랐다며 대놓고 축하해주지 않았다. 전임 간호조무사들도 대학에 간다고 공부를 하긴 했는데 아무도 가지 못했다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생각보다 그 말이 더 냉정하게 들렸다. 아무 대책도 없이 그만두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툭 던진 말에 그녀 또한 당혹감을 내비치며 하룻밤 지난 후 내게 협상의 손을 내밀었다. 근무시간을 줄여서 가보는 데까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정작 마지막 마무리는 내가 아닌 당신 딸과 함께 했다.
지금도 치과에서 당신과 함께 일하는 꿈을 꾼다. 당신에게 야단맞지 않으려고 긴장한 내가 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오십 대 후반의 모습으로 꿈속에 이따금씩 찾아왔다. 가끔 죽은 이들이 꿈에 찾아오면 단호하게 생사를 구분하며 거절했는데 당신에겐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인생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이란 말을 곱씹는다. 생전에 당신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며 내게 글로 표현해 보라고 주문했었다. 이리저리 피해 다녔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7호선 전철역 인근에 자리 잡았던 치과 간판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치매에 걸리지 않길 그렇게 원했는데. 그나마 예쁜 치매에 걸린 당신 소식을 종종 들었다. 부고 소식을 듣고 당신의 아름다운 그늘에 대해 두루 생각한다. 당신의 장례식을 치른 후 몇 달 뒤 내 아버지도 돌아갔다.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원망했던 아버지 덕분에 난 당신을 만난 거라고. 어느새 학교도서관 사서로 일한지도 치과에서 일한 만큼 흘러가고 있다고. 나만의 이야기 그늘을 만들며 나아가는 중이니 지켜봐 달라고. 우선 내 안부부터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