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터미널이 해리만큼 광채를 내뿜을 수 있을까?
마치 마을을 상징하는 수호신처럼 위풍당당하게 입구에 자리하고 있고,
다소 지루하고 평범한 사각건물에 전통의 기와를 얹어 분위기를 살리고,
산과 들어 멋지게 어우러지는 수려한 경치를 바로 옆에 끼고 있고...
고창의 서북부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해리.
지리적인 입지상 지역 주민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이지만,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해리면에는 터미널이라는 명소가 있다.
아마 그 어떤 지역도 터미널이 명소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히 버스가 머물다가는 그런 역할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밋밋하고 별 특징도 없는 평범한 건물이 대다수인데 반해
해리터미널은 한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아름다움이 극에 이른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기와궁전이 고요하고 조용한 주변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광채가 난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터미널이 세상에 알려져있지 않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해리터미널은 해리면 중심지와 살짝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해리라는 지역 자체가 인구도 얼마 안되는 조용한 시골마을인데,
이런 곳에 터미널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하다.
고창 내에서도 주변과의 연계가 무척 힘든 구석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이런 곳에 왜 터미널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점마저 생긴다.
하지만 터미널 건물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들이 싹 사라져 버린다.
여태껏 수많은 건물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눈부신 모습을 한 경우는 처음이다.
일부 기차역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기와지붕이 터미널 건물에 얹혀있는데,
저 기왓장을 보는 순간 갖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이 곳이 정말 터미널이 맞는지...
터미널이 아니라 하나의 별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의 어떤 터미널 건물이 조형의 미(美)를 살려서 건축을 했던가.
건물 자체는 밋밋할지 몰라도, 기와라는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 덕분에 굉장히 화려하게 보인다.
사실 건물 내부는 여타 터미널들과 별 다를 바는 없다.
폐쇠된 매표소, 의자 대신 놓여져 먼지가 수북히 쌓인 평상이 전부다.
해리면 자체가 고창군 내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인구가 매우 적은데,
그런 마을에서도 중심가와 한발짝 떨어져있는 까닭에 터미널은 항상 텅텅 비어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터미널이 외딴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건물 내부는 '황량함' 그 자체다.
건물 한 켠에 매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상점도 없다.
상점은 커녕 다른 데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고 전단조차 보기 힘들다.
오직 있는거라곤 평상과 자판기 몇대, 화장실이 전부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떠나가고 노인만 남은 이 곳에서,
매점 하나만이 황량한 터미널 건물을 홀로 쓸쓸히 메워주고 있을 뿐이다.
비록 적은 횟수지만 아직까지도 시외버스가 드나드는지라,
폐쇠된 매표소를 대신하여 표를 대신해서 끊어주고 있다.
경계가 모호한 대산과는 달리 해리는 당당하게 터미널 취급을 받고 있다.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는 버스는 생각보다 많다.
구시포와 선운사 등 주변 관광지 덕분에 직행버스까지도 운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무장을 거쳐 고창읍내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15~45분 간격으로 다소 불규칙하게 운행되고 있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운행한다고 봐야겠다.
해리와 근접한 곳에 선운사라는 유명 관광지가 있는만큼,
읍내로 빠지지 않고 흥덕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읍내를 거치지 않고 상하, 공음, 대산으로 이어지는 시내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고창을 방문하면서 계속 느끼는 건데, 읍내를 직접 경유하지 않고도 각 면끼리의 연계가 잘 되는 것 같다.
읍내가 군의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은,
그래도 고창 전인구의 1/3이 몰린 읍내를 미경유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
고창이 그렇게 인구가 많은 동네도 아닌데 장사는 괜찮게 될런지 내심 걱정도 된다.
구시포, 섬포 등 고창의 해안 동네로 이어지는 버스들도 종종 운행하며,
각동, 라성 등등 생소한 지명을 지닌 지역으로 이어지는 버스도 자주 운행하는 편이다.
해리의 입지가 결코 좋은 편은 못 되지만, 시내버스 연계망은 아주 철저하게 잘 되어있는 것 같다.
해리를 오가는 직행버스 시간표이다.
역시나 고창, 정읍, 전주를 오가는 버스가 가장 많은 편인데,
구시포와 선운사 등등 주변의 관광 연계 때문에 잠시 경유를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고창, 정읍, 전주행 시간표가 약간 바뀌었는데,
11:50와 12:30이 12:00차로 통합 운행하고,
17:55와 18:50이 폐지되었다는 것을 참고로 해둔다.
가뜩이나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승강장에 기둥까지 박혀서 더욱 좁게 느껴진다.
딱히 정해진 승차 위치도 없이 아무데서나 주차된 시내버스는 정신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조그만 간이터미널에서 느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묘미라고나 할까.
고창엔 참 무냉방 버스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듯한 이 버스.
마치 90년대로 돌아온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큰 차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이 지역의 차들은 대부분 조그만 중소형의 차량들 뿐이다.
게다가 터미널 주차장 또한 이렇다할 형식이 없어서,
논두렁 경계선에 아무렇게나 아슬아슬하게 주차해놓고는 한다.
논두렁과 터미널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라...
이런 것도 어딜 가서 보기 무척 힘들 것이다.
까만색 기와지붕을 얹은 해리터미널.
그리고 터미널 건물을 수없이 감싸앉는 시내버스들.
무엇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별천지이다.
이 사진을 터미널 주차장에서 줌도 땡기지 않고 찍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터미널 바로 앞에서 찍어본 해리의 경치는 너무나도 황홀하다.
노란 벼가 더욱더 누렇게 익어가는 어느 가을날의 풍경은,
그 어떤 것들도 흉내낼 수 없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렇게 넓은 들판을 감싸안는 산까지 파노라마처럼 쭈욱 펼쳐진다.
오지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오지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수려한 경치와 독특한 경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기와궁전의 이런 모습들도,
부디 손상되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첫댓글 고창에는 면단위 터미널이 꽤나 많은가 보군요,,,이 바로 아래 대산터미널과 해리터미널도 마찬가지로 처음알았답니다...^^;
고창뿐만 아니라 부안, 정읍, 임실 등 주변 지역에도 이런저런 터미널들이 꽤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
오... 좀 특이한 터미널이네요...~~ 제가 호남지방을 잘 안다니다 보니깐 대리만족을 이곳에서 하네요~
기회되면 꼭 방문해보세요. 물론 접근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가 있답니다~
어렷을적 할머니따라서 해리장에 갔다가 해리터미널에서 시골집 가는 버스 시간 맞추느라 2시간동안 기다린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한테 택시타고 가자고 징징거렸는데..기어코 할머니께서는 2시간 기다리고 버스타고 갔습니다. 지금도 가끔 할머니께서 약지으시러 해리에 가신다고 하네요..ㅎㅎㅎ.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으시군요...^^ 예쁘장하게 생긴 터미널에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그저 부럽습니다.
해리터미널도 리모델링을 했군요...ㅋㅋ 아버지께서 고창에서 관광버스하실때인 92~96년초에 명절마다 해리터미널에서 귀경객 수송을 했었는데 그때의 터미널 외관과 너무나도 다르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내부의 모습이 뭔가 평이하다고 생각되었는데 리모델링을 한 거였군요.
남도의 소박한 터미널 구경 잘하였읍니다.
보통 전북쪽도 한 덩어리로 묶어 남도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엄밀한 의미의 남도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일대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
전주에서 무주터미널만큼 멀게 느껴지는 터미널.. 잘 봤습니다. 전주터미널 시간표 답사차 가보면 고창군의 해리.상하.무장 이런 지명들은 참 뭔가 독특한 향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창에 참 재밌는 지명도 많고... 일반적인 전북지역과는 또다른 정취도 느껴집니다. 사실 고창에 관해서 모르는 점이 많았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