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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금전산(金錢山·667.9m)은 낙안 주민들이 낙안읍성(樂安邑城·사적 제302호)의 수호신이라 부르는 산이다. 낙안읍성 북동쪽에 암팡진 모습으로 솟구친 ‘바위산’ 금전산은 특히 해질녘이면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빛나 주민들은 ‘큰바위 얼굴’ 같은 성스런 산이라 하며, 그런 풍광을 늘 옆에 두고 살기 때문에 낙안은 늘 평화롭고 주민들 정서가 편안하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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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초, 금전산은 절정의 가을을 구가하고 있었다. 숲은 오색 빛깔을 띠며 아름답게 빛났고, 기암들은 바위꽃 되어 반짝였다.
- 산세가 좋은 금전산은 명산답게 명찰도 깃들어 있다. 산아래 태고선원 금둔사는 고려 고찰로 보물 2점이 지금도 남아 있고, 산정 바로 아래 위치한 금강암은 절집의 앉은자리가 동국 제일의 조망대로 꼽힐 만큼 대단하다. 이러한 조망 덕분에 매년 1월 1일이면 새해 첫 일출을 맞기 위해 낙안 주민들까지 오르곤 한다.
이렇게 멋들어진 산세에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남짓이면 산정에 올랐다 하산까지 마칠 수 있다는 점(송년산행 때면 전날 밤늦도록 얘기와 술을 나누느라 다음날 제 컨디션을 내기 어려워 짤막한 산행이 어울린다)과 더불어 산기슭에 한 해 동안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이 들어서 있고, 승용차로 20분 남짓 거리에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순천만 갈대밭이 있다는 면에서 송년 산행지로는 적격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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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멋진 조망대 역할을 하는 형제바위. 낙안 벌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아래) 의상대에서 낙안읍성을 바라보는 순천 산악인들. 왼쪽부터 조광래, 정용원, 맹동현씨, 조햇님군, 조승래씨.
- “어휴, 눈 부셔. 산이 빛을 내네요. 저것 보세요, 바위병풍 같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빛나잖아요. 저래서 ‘쇠돈산’이라 부르는 거 아닐까요.”
낙안온천 주차장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는 금전산은 아침 햇살 아래 절정의 가을을 구가하고 있었다. 낙안 들녘은 황금빛과 단풍빛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났고, 오색 단풍으로 꽃단장한 금전산은 새털구름 날리는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천상의 세계처럼 돋보였다.
발아래 낙안 평야 펼쳐지는 의상대는 동국 제일의 조망대
오늘 산행에 동행하는 순천 산악인 정용원씨는 취재팀을 만나자마자 금전산 이름은 부처의 500제자 중 ‘금전비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일러준다. 금전비구는 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팔아 연명하는 가난한 약초꾼이었는데 석가모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약초를 판 돈으로 꽃을 사서 공양을 올렸고, 그 갸륵한 정성에 감복한 석가모니가 채약사를 제자 삼고 ‘금전’이라 이름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실상 ‘금전산’ 이름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백제 위덕왕 30년(583년) 금둔사(金芚寺)를 창건한 담혜화상(曇惠和尙)이라 전해진다. 담혜화상은 금전산 곳곳에 솟구친 기암괴석이 500나한을 연상케 하기에 500나한 중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다는 ‘금전’ 비구를 산 이름에 인용했다는 것이다.
“낙안 벌에서 금전산을 바라보면 영락없이 쇠금(金) 자 같아요. 어쨌든 산기슭에서 온천수가 콸콸 솟는 것만 보아도 ‘금전’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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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호젓한 분위기의 금강암 길 초입부. 2. 금전산 정상. 3. 거대한 바윗덩이가 서로 기대어 만들어진 극락문.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 정씨는 순천에서 로또 1등 당첨자가 하도 많이 나와 이유를 궁금해하던 터에 금전산과 같은 ‘돈을 부르는 명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금전산 이름이 ‘로또산’으로 변하기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 주었다.
낙안온천 주차장에서 만난 순천노스페이스산악회 회원 5명과 조승래(부등반대장)씨 아들 햇님(초교 6년)군은 도로를 가로질러 금강암 등산로로 들어섰다. 잡목에 가려 답답하던 산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이 벗겨지더니 등 뒤로 낙안 들녘이 펼쳐졌다.
“정말 넓지 않아요. 남쪽을 빼놓곤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기도 하고요. 저런 지형 덕분에 옛날부터 곡식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대요. 왜놈들이 곡식을 약탈하려고 어지간히 괴롭혔나 봐요. 토성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돌로 성을 쌓았으니 말이에요. 하기야 저렇게 넉넉한 들녘이 있어 이 산이 금전산이 됐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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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단풍빛와 새털구름 날리는 하늘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금전산. 앞에 보이는 암봉이 원효대다.
- 조승래씨는 낙안읍성의 유래에 대해 얘기해 준 뒤 “풍수가들은 낙안온천 뒤편 멀리 솟아오른 백이산과 금전산 북쪽 옥녀봉, 동쪽 불재와 연결된 오봉산·제석산을 전체적으로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전하기 위해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풀어헤친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으로 꼽는다”며 “낙안읍성 남쪽 평촌리 평촌못이 옥녀의 거울에 해당하고, 이런 풍수 덕분에 예로부터 낙안 고을에 미인이 많이 났다” 알려준다.
산행을 시작한 지 20분쯤 걸었을까, 밑에서 바라보았던 기암지대가 나타나고 바위꽃 위에 올라앉은 금강암(金剛庵) 의상대(義湘臺)가 바라보인다. 벌써 의상대에 올라 가을빛과 조망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금강암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 암봉을 동대(東臺), 왼쪽 암봉을 서대(西臺)라 하는데 동대를 원효대(元曉臺), 서대를 의상대라 부르고 있다. 산행 전 낙안읍성자연휴양림에서 숲해설사로 근무하는 이은호씨는 “낙안주민들은 원효대를 ‘동대바구’, 의상대를 ‘서대바구’라 부른다” 일러주었다.
2층 높이쯤 되는 너럭바위 위에 올라서자 조망은 한층 더해진다. 산아래 낙안온천 뒤로 오금저수지의 코발트빛 물빛은 가을을 집어삼킬 듯 강렬한 빛을 띠었다. 한때 암벽 코스를 내려고 금전산을 자주 찾았다는 광양 산악인 김병석씨는 “오른쪽 원효봉은 암봉 두 개로 이루어져 형제봉이라 불렀는데 암봉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단독 암봉으로 모습이 바뀌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거 그냥 갈 수 있어요. 술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들 햇님군과 함께 산행에 동참한 조승래씨는 낙안 들녘을 한가운데 두고 보성 제2위 고봉인 존제산(704m)에서 조계종과 태고종의 양대 고찰인 송광사와 선암사가 깃들어 있는 조계산(884m)에 이르기까지 호남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자 입에 대지도 않는 술을 들먹이며 분위기를 돋운다.
“암릉 산행하기에 정말 좋은 산이에요. 한데 한쪽은 금둔사가 막아놓고 또 한쪽은 식수원을 보호한다고 산행을 막는 바람에 멋진 바윗길이 그냥 버려져 있는 거예요.”
김병석씨는 의상대에서 금둔사 쪽으로 뻗어내린 암릉을 가리키며 “예전에 있던 금둔사 기점 코스뿐 아니라 조망도 좋고 스릴도 넘치는 암릉이 여럿 있는데 절과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산행이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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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김병석씨가 극락문 직전 나뭇가지에 걸린 염주를 훑고 있다. 2. 극락문을 향해 오르는 순천 산악인들. 3. 산장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금강암.
- 금강암 오르는 산길은 바위 타고 하늘 오르는 길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능선에서 벗어나 왼쪽 바위골로 들어서자 나무를 깎아 만든 굵은 염주를 엮은 백팔염주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염주를 잡아당길 때마다 염주가 나뭇가지에 걸려 “드르륵, 드르륵” 나는 소리는 괜스레 숙연케 한다.
염주 나무를 지나자 극락문(極樂門)이 나타난다. 거대한 바윗덩이가 기암에 비스듬히 얹혀 바위굴을 형성해 놓은 극락문은 부처 세계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굴을 빠져나가 계단을 올라서자 금강암. 백제 27대 위덕왕 때(577-580년)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한 이후 의상이 중수하고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1158-1210년)이 호남제일의 관음도량으로 번창시켰다는 금강암은 한때 당우가 여럿 있었으나 여순사건 때 원통전과 지장전, 산신각 등이 소실된 이후 폐사 상태로 있다가 1992년부터 재건되고 있다는 암자다. 스님 한 분이 머물고 있는 암자라기보다는 산중도인이 머무는 돌집 같은 분위기였다.
“내년엔 산도 더 많이 오르고 건강도 지켜야겠어요”
“부처님 앞에 앉는 게 조금 미안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점심 장소도 없을 겁니다.”
아직 정오가 안 됐는데도 금강암 암자 앞 평상에는 등산객들이 배낭을 풀고 조망을 성찬 삼아 점심을 먹고 있다. 순천 산악인들은 법당 앞보다 의상대가 훨씬 낫다며 자리를 옮긴다.
이제 10년을 조금 넘긴 마애불이 낙안 벌판을 굽어살피고 있는 의상대는 금전산 최고의 조망대였다. 마애불 앞 너럭바위에서는 낙안 벌 주변을 빙 둘러싼 호남 명산 명봉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조망 때문에 의상대 일원이 매년 1월 1일이면 일출 맞이 산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하는가보다.
“게장 한 번 맛봐요. 아마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맛 못 봤을 거예요.”
맛의 고장답게 순천 산악인들 배낭에서는 맛깔스런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까무잡잡한 간장게장과 돌산 갓김치 등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흐르는 음식이 한 상 차려졌다.
여기에 정성스레 깎아 온 과일이 후식으로 등장하니 모두 대만족. 음식도 맛있지만 주
변 풍광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금강암에 닿기 전 조망바위에서 망설였던 능이술 한 병이 슬그머니 밥상에 올라오고, 한 순배 두 순배 도는 사이 산은 더 한층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년 산행 계획은 어떠세요. 글쎄요,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여러 곳을 다녀야 하는데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네요.”
정용원씨는 몇 해 전부터 틈틈이 해외 트레킹을 즐긴다. 작년과 재작년 히말라야 고쿄 트레킹과 랑탕 트레킹을 통해 고소와 체력에 자신감을 갖은 그는 지난봄에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해냈고, 얼마 전에는 중국 사천성 명산 스쿠냥도 다녀왔다. 내년에도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다. 몽골 사막도 가고 싶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와 높은 산도 찾고 싶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순 없어도, 그냥 넋 놓고 보내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일행 중 연장자인 조광래(63)씨는 내년에도 건강 산행에 주력할 생각이다. 그는 젊은 날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살다 보니 165cm가량의 키에 몸무게는 80kg에 육박했고, 공복시 100 이하여야 하는 혈당이 250이 넘어가는가 하면 혈압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운동이 등산이었다. 지금 몸무게는 62kg 안팎에 혈당과 혈압 모두 정상이다. 지금 상태를 잘 유지해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게 조씨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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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나니 세상이 더욱 화려해진다. 산은 한층 더 울긋불긋하고 기암마다 부처인양 따스하게 느껴진다. 허재성 기자는 나를 쳐다보며 씩 웃는다. 나는 ‘능이술에 살짝 맛간 부처’ 이제 ‘단풍 신선’이라도 된 양 사뿐 사뿐 걸어 정상으로 향한다. 의상대에서 정상까지는 숲길 따라 약 10분 거리. 돌탑 2기가 세워져 있는 정상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별로다. 그래도 숲이 그늘 돼주고, 방풍림 돼주니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밥상 펼쳐놓고 점심을 즐기고 있다.
정상 갈림목(오공재 2.44km, 낙안온천 1.74km, 불재 3.4km)을 지나 불재 능선길로 접어들자 화려한 산세는 사라지고 고즈넉한 숲길로 바뀐다. 벌써 힘을 잃은 나뭇잎들은 길바닥에 나뒹굴고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쓱, 쓱” 소리낸다. 모두 하던 말 끊고 낙엽 밟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왜 궁굴재라 부르는지 알아요?”
궁굴재 갈림목(휴양림 1.2km, 정상 1.1km, 불재 1.3km)에 닿자 먼저 도착한 순천 산악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궁굴재는 능선 일대에서 베어낸 나무를 산 아래로 내릴 때 사면이 워낙 가팔라 짊어지지 못하고 굴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금전산은 이렇게 산이름에서부터 지명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가 많다.
산 동쪽 순천-낙안 간 58번 지방도가 가로지르는 불재는 고갯마루 가까이 도를 닦기 위해 굴 속에서 공부하던 처사와 얽힌 얘기가 전한다. 옛날 낙안에서 순천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던 군수는 처사가 공부하느라 자신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지 않자 괘씸하게 여기고, 처사를 놀려줄 생각에 밥 짓기 위해 부탁한 불씨를 말꼬리 채에 담아주었다. 활활 타올랐다 꺼지려니 예상했던 말꼬리 채에 담긴 불씨를 아무 문제없이 가지고 가자 처사의 신통력에 감탄, 이후 고개 이름을 불재(火峙)로 부르게 했다는 얘기다.
“다른 얘기도 있어요. 옛날 불재는 아주 험준해서 호랑이뿐 아니라 백년 묵은 여우와 불여우가 자주 나오는가 하면 낮에는 산적들이 들끓어 감히 넘지 못했대요. 그러던 어느 날 괴나리봇짐 메고 고개를 넘는 한 나그네를 백여우가 홀려서 죽게 하자 하늘에서 갑자기 불벼락이 떨어져 여우들이 죽었다 하여 이후 불재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어요.”
궁굴재에 모인 회원들은 금전산 내의 지명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 모두 한 마디씩 거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제 오후 불재를 넘을 때에 산세가 깊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듯이 궁굴재에서 휴양림 가는 길 역시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오히려 때죽나무, 참나무, 나도밤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들이 오색빛깔을 자아내며 은은하게 빛나는 산길이었다.
휴양림에 내려서자 주변은 더욱 화려해졌다. 단풍나무 은행나무는 울긋불긋 반짝이고 새털구름 휘날리는 가을하늘은 우리를 빨아들이듯 강렬하게 빛났다.
“야, 정말 산이 빛나네요. 내년엔 이렇게 모든 일이 환하게 잘 돼야 할 텐데. 이것 봐라, 시간이 제법 됐는데요. 온천욕하고 낙안읍성에서 꼬막에 막걸리 한 잔 한 다음 순천만까지 가려면 서둘러야겠어요.”
찬란한 가을빛을 받으며 낙안민속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선 순천 산악인들은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서둘렀다. 금전산 산행은 온천과 낙안읍성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단다. 거기에 낙조를 맞이하며 지난 한 해를 돌이키려면 순천만 갈대밭도 가야 한다니. 순천 산악인들은 50~60대가 주축을 이루었건만 금전산을 오르내리는 사이 10여 년은 젊어진 듯 활기찬 표정으로 낙안온천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