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 생명의 푸르름으로 더욱 빛나는 계절입니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춘기라 할 때 왜 봄 춘(春)자를 쓰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겨우내 무채색으로 숨소리 낮추던 생명들이
저렇게 아우성치며
신록으로 앞 다투어 젊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내 청춘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春字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스스로 누릴 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잃고 나서야 아쉬워하는 것이
이 아둔한 인간의 한계인가 봅니다.
오늘도
복주여중 운동장에 모였는데
계절의 여왕답게 5월의 푸르름이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회장님은 안동문화해설사반 행사 관계로 백운정에 계신다 하고,
우리 모임의 영원한 중심축인 연두님은 오늘따라 바쁘시다고 하고,
구름체꽃님은
집에 손님을 뒤로 하고 부군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총무의 의무감에 억지 참석하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이나, 건진님께는 미안하기도 하고요...
오늘의 답사 참가 회원은 2기 회장님, 권정현님, 김금희님, 김명환님, 김정일님, 류시대님, 여환지님, 여환지님 자제분, 장연숙님 9명입니다.
오늘의 답사 장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일대입니다.
제비원 통로로 가지 않고, 송현으로 가서 새로난 4차선 길로 영주 방향으로 가다가 예고개에서 봉화방면으로 갔습니다.
먼저 암각화가 있다하여 찾아갔으나
인터넷 정보의 오류로 찾지 못하고 돌아서서 선오당(善迂堂)으로 향합니다.
선오당(善迂堂)
선오당(善迂堂)은 조선중기의 학자인 이시(李蒔 : 1569~1636)의 호(號)로, 현판 글씨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서예가인 김성근의 글씨입니다.
선생의 성은 이(李)씨이고 휘(諱)는 시(蒔)이고 자는 중립(中立)이고 호는 선오당(善오堂)이고 영천인이다. 사람들이 광해조에 덕행을 숨기고 세상을 피해서 은거한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부친 휘 덕홍(德弘)은 퇴계(退溪)선생의 뛰어난 제자로 사람들이 간재(艮齋)선생이라 불렀다. 1569년에 출생했고, 글을 배우면서 이미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를 위하여 수양하는 학문)을 알았고, 일찍부터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심경 근사록 주자서 퇴계집 등에 마음을 붙이고 깊이 몰두하여 음미했고, 한강(寒岡) 정선생(鄭逑)의 문하에서 공부하니 선생이 그의 정미한 뜻과 심오하고 치밀함을 칭찬했고, 오계서당에서 강회를 개설하니 정한강(寒岡 鄭逑) 장여헌(旅軒 張顯光) 김계암(溪巖 金?) 등 여러 선생이 모두 참여했다.
셋째 아우 강이 광해조에 벼슬하고 북론(北論-仁穆大妃의 폐위논의)이 바야흐로 널리 퍼지자 선생이 오로가(烏鷺歌)와 조주후풍가(操舟候風歌)를 지어서 풍자하여 훈계했으나 아우가 끝까지 듣지 않았고, 매우 참혹한 화를 당하자 선생은 더욱 속세에 뜻이 없어 평소의 저술을 손수 불태우고 문서 상자에 남기지 않았다.
오로가를 살펴보자.
까마귀 지저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에 검은 때 묻힐세라(*묻힐까 두렵구나)
진실로 검은 때 묻히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오로가’에서는 까마귀와 백로가 등장하는데, 까마귀는 당시 북인 정권에 속한 인사를 가리킨다. 작자는 아우들이 북인정권 인사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경계한 시조이다. ‘흰 깃에 검은 때를 묻히면 씻을 길이 없다’고 한 것은, 일단 북인 정권에 편입되면 도덕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불명예를 입게 된다는 것을 충고했으나, 아우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동생의 화가 그에게까지 미쳤지만 스승인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그의 시조와 편지를 들어 변호함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평생 학문을 하였고 많은 제자를 길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에 관한 문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당시의 어수선한 시대 상황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선오당 바로 오른쪽 언덕에 있는 청천와(廳天窩)로 갑니다.
청천와(廳天窩)
이 건물은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의 손자인 청천와(聽天窩) 이영전(李榮全)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영전(1601∼1678)의 자는 원길(元吉)이며 호는 청천와이다. 평생 고향에 은둔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홍여하(洪汝河)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청천와집(聽天窩集)』이 있다. 정자 주인의 호를 따라 당호를 정한 것으로, 하늘의 순리를 따른다는 의미를 가진다.
자리를 옮겨 오계서원으로 갑니다.
이 곳은 선오당으로부터 채 오리도 안되 보이는 거리이지만 영주시에 속합니다. 원천리에서 조금 서북쪽으로 향하면 봉화군이니 원천은 3개 시군의 경계지역입니다.
오계서원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 간재 이덕홍이 세운 오계정사의 후신으로 정사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지자 1600년(선조 33)에 이덕홍의 장남인 이시가 쌍계마을로 이건하고 한호의 글씨로 관성재·관서헌의 편액을 걸었다. 1665(현종 6)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존사를 건립하였다.
1691년 오계서원으로 승격하고,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 침수 피해가 있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다.
군자정(君子亭)
영남 사림의 대표적 인물인 이황 선생의 제자로서 학문적인 책을 많이 남긴 이덕홍(1541∼1596) 선생이 공부 하던 정자이다. 선생은 10여 세에 이황의 제자로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거북선을 육지에는 거북선 모양의 수레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 많은 책을 남겼다. 군자정은 조선 선조 3년(1570)에 지은 것으로 정자의 앞쪽에는 군자당이란 연못이 있고, 서쪽에는 이덕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현종 6년(1665)에 지은 오계서원이 있다. 군자정은 조선시대 사림의 전형적인 정자이다.
여기서 꽃반지님이 준비해오신 간식을 먹고, 답사에 참여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남양사지 3층 석탑을 찾아갑니다.
남양사지 3층 석탑
통일 신라 말기의 탑으로 추정되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보이나 사진위 뒤쪽에 가보면 근래에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종교의 힘은 참으로 큰가 봅니다.
우리 땅 어느 곳을 가더라도 절이나 절터가 없는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교회의 십자가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일본은 기독교 신자가 채 3%도 안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온지 한세기 만에 이렇게 성(盛)한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불교가 들어 왔을 때에도 그랬겠지요. 아마 국토가 반도에 위치한 사정 때문인지 그로 인한 민족성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남양사지 3층 석탑 자리에서 현지인을 만나 안내를 받아 암각화를 찾아갑니다. 이 분께서는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우리에게 수고를 아끼지 않은 고마운 분입니다.
암각화(巖刻畵)
물가에서 설명만 들었습니다. 바위 위에 인공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확인할 길이 없고, 인터넷에 올라온 위치도 실제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물이 줄었을 때에는 바위가 배모양을 띤다고 합니다.
이곳 녹전 양조장 장남이 대학동기인데, 농학박사가 되어 공직에 있습니다. 안내해 준 분께 물었더니 지금도 친구의 부친과 동생이 양조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하는군요. 사사로이 왔다면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싶지만 일행과 함께 일정을 마치고 안동 시내로 이동합니다.
저녁 식사는
정일님께서 닭개장을 추천하였으나 못드시는 분이 계신가 봅니다. 추어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최가네추어탕이 1번 후보였으나 경상도추어탕이 2번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가 3번 후보인 설악추어탕에 가서 먹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 집은 체인점이 아닙니다. 7,000원입니다.
구름체꽃님(총무)은 주문만 해놓고 뒤꼭지가 땡겨서 바로 퇴장하였습니다. 소주 한 병 추가하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대님과 정일님의 영남 유림에 대한 혜안 덕분에 답사의 뼈대가 서는 것 같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늘 답사를 풍부하게 해 주시는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답사에 참석한 모든 분께 감사하고 다음 달을 기약합니다.
갈색으로 쓰여진 자료 출처 : 다음 카페 영천이씨대종여로
첫댓글 역시 슈렉님이시네요. 한번 더 공부한 느낌입니다.
저 그날 미운털 조금밖에 안 박혔어요(가족들에게...) ^^
다행입니다.ㅎ-
와~ 역시 슈렉님은 답사 고정!!! 전 대구에...
평소 제대로 안 하니... 시댁인 대구로, 친정인 구미로 나름 바쁜 날들이었습니다.
저 지난 달에 행사 겹쳐서 못갔고요. 다음 달에도 안동대 일이 겹쳐서 불참 예약입니다.ㅠㅠ
맛있겠다. 설악 추어탕이 어딘지... 남편이 추어탕 좋아해서 가끔 가는데 우린 늘 남선추어탕 갔는데...
안동에 있는 대부분의 추어탕집에 가 보았으나, 제 입에는 이 집이 최고. 농협파머스 대각선 방향 건너편 골목안에 있읍니다.
답사에참석못하여 죄송하구요 좋은글올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답사후기를 읽으면서 한번더 공부하게되네요 글 솜씨가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