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동해바다와 어머니의 발
동해시는 '동해항 황산저장탱크 설치' 문제가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었습니다.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동해시의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고, 현장답사를 하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모 기업이 지난 20년 동안 동해항을 통해 아연정광석을 들여오면서 공해방지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아 동해항과 주위 바다가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주민 설명회도 제대로 하지 않고 황산저장탱크를 설치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정부지 바로 옆에는 어린이집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옮겨 적을 수는 없습니다만 공인기관의 측정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동해항에서 검출된 아연, 납,
카드뮴은 기준치보다 수십 배에서 수천 배가 높았습니다.
보고서대로라면 청정해역 동해항은 거대한 중금속 바다라고 할수 있엇습니다. 특히, 동해항에 설치하려는 7,500톤짜리 황산저장탱크 2기의 경우 독극물로서의 위험도가 워낙 높아 10만 동해시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공공기관과 기업과 시민들의 상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건 다반사입니다. 그렇기에 적법절차에 따라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최소한 황산저장탱크 설치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동해시와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의 성의 있는 업무처리를 원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동해바다를 보며 이리저리 해결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직 장관인 저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동해시노인요양원을 찾아서 어르신들의 발마사지를 해드렸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발을 씻겨주고, 회사에서
사장이 사원의 발을 씻겨주고, 군대에서 상사가 부하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에 대한 기사는 언제나 저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체험을 하고 보니, 감동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받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나누기 전에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교훈처럼 '섬기는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발마사지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두 발에 크림을 골고루 바른 후에 경락을 따라 마사지를
하면 되었습니다. 교본을 보면서 하는 것이어서 함께 한 요양원 사회복지사님들의 솜씨처럼 시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제가 힘은 좀 쓰는 편이라(?) 그것으로 때웠습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어린애가 된다더니, 어르신들은 저를 웃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워낙 연로하신 데다
약간의 치매증상이 있는, 올해 99세의 안순자 할머니는 쉽게 매트에 누우려고 하지를 않아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부끄러운 발을 어디에 내미느냐!"며 한사코 뒤로 빼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마사지를 하는 15분 내내 "황송해서 어쪄! 황송해서 어쪄!" 하시는 바람에 어설픈 자원봉사자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2007. 2. 3
출처 :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첫댓글 좋네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김두관님은 당신을 사랑 하십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