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붙는 물질(우빠다루빠)
눈이 안 볼거리는 달라붙는 거리(대상)가 됩니다. 그래서 달라붙는 몬(=물질)(우빠다루빠)이라합니다. 볼거리를 ‘사람’ ‘재료’로 잘못 보면 달라붙음이 (나는)이렇게 말해야 해. (나는) 이걸 해야 해. (나는) (거기) 가야 해. 따위로 생각합니다. 보는 걸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달라붙음이 일어납니다.
무엇에서 이 달라붙음(우빠다나)이 일어납니까?
달라붙음(우빠다나)은 보인 몬(루빠, 물질)에서 일어납니다.
몬이 달라붙는 거리(대상)이고 그래서 우빠다나라 부릅니다.
우빠다루빠는 큰 요소 물질(마하부따루빠)을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큰 요소 물질은 바탕 곧 뿌리요소(물라부따)입니다.
달라붙는 몬(물질, 우빠다루빠)은 참으로는 네 큰 요소에 따라 일어나는 물질입니다.
모두해서 스물여덟가지 몬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넷이 큰 요소물질(마하부따루빠)입니다.
스물여덟가지 몬에서 네 큰 요소를 빼면 남은 스물 네가지 몬이 우빠다루빠(큰 요소에서 나온 물질)입니다.
여섯 느낌문은 모두 저마다 거리(대상)를 압니다. 눈문은 보고, 귀문은 듣고, 코 문은 냄새 맡고, 혀 문은 맛보고, 몸 문은 닿고, 마음문은 생각합니다.
모두 탐냄과 달라붙음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느낌문은 또한 우빠다루빠(달라붙는 물질)입니다.
여느(보통, 속된) 사람들은 우빠다루빠를 모릅니다. 그들은 큰 요소 물질(마하부따루빠)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름과 개념(빤냣띠)을 알 뿐입니다.
여느 사람들은 표, 꼴, 모습(니미따)이 물질(루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람모습(틀, 꼴), 사내모습, 계집모습, 동물모습, 물건모습을 몬(=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은 물질이 아니라 참으로는 큰 개념 표(빤냣띠 니미따)입니다. 얼굴, 머리, 허리, 손, 발은 또한 이름일 뿐이고 개념일 뿐인 작은 개념 표입니다. 거룩한 사람들만 우빠다루빠(달라붙는 물질)와 마하부따루빠(큰 요소 물질)를 압니다.
왜 달라붙는 물질이라고 부릅니까? 봄이 있자마자(보자마자) 보이는 물질에 ‘내가 본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거울을 들여다 보고 ‘이건 나야’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나’, ‘남’, ‘사내’, ‘계집’, ‘있음(존재)’, ‘값진 금속’, ‘보석 보배’, ‘재산’ 따위 생각도 일어날 겁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들이 탐냄과 달라붙음. 업(깜마, 짓)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빠다 루빠(달라붙는 물질)라고 부릅니다.
볼거리를 볼 때, 저것이 아름답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 대상은 바라는 거리, 달라붙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달라붙는 물질(우빠다루빠)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닿을 때, 생각할 때, 그 대상들은 달라붙는 거리들이고 그래서 우빠다루빠라고 합니다.
루빠를 참말로 모르면, 잘못 알게 됩니다. 이것은 끝내 잘못 봄, 바람, 달라붙음이 됩니다. 대상들을 ‘나’ ‘남’ ‘사내’ ‘계집’ ‘집’ ‘차’ ‘보배’ 따위로 잘못 보게 됩니다. 달라붙는 거리로 될 것이고, 그래서 달라붙는 물질(우빠다루빠)이라 합니다.
루빠만을 알아야 합니다. ‘나’ ‘남’ ‘사내’ ‘계집’ ‘있음(존재)’으로 알면 안 됩니다. 루빠(물질)를 ‘사내’ ‘계집’ ‘있음(존재)’으로 보면, 달라붙는 무더기(우빠다 칸다)가 됩니다. 열매는 괴로움 참이 될 겁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이 일어남(일어나는 말미)이다. 이것이 물질이 없어지는 말미다.’로 알면 달라붙는 무더기는 일어나지 않을 거고, 괴로움 참(둑카사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빠라마따루빠(끝참물질)를 알면, 괴로움이 없어지는 참이 되고, 닙바나를 얻게 됩니다.
몸은 큰 요소 물질(마하부따루빠)입니다. 몸을 ‘나’, ‘남’, ‘사내’, ‘계집’, ‘있음(존재)’으로 ‘나’, ‘나에게’, ‘나의’, ‘내것’으로 보면 일어나는 루빠(물질)는 우빠다루빠(달라붙는 물질)가 됩니다.
들을 때, 우빠다루빠가 됩니다. 냄새 맡을 때 달라붙는 몬이 됩니다. 보이는 것은 볼거리입니다. 그러나 볼거리로 보지 않으면 ‘좋다’, ‘나쁘다’, ‘좋아 한다’, '싫어 한다‘, ’바란다‘ 따위로 됩니다.
이것이 바람과 달라붙음입니다. 그래서 대상이 달라붙는 물질입니다.
들리고 있는 것은 소리일 뿐(오직 소리)입니다. ‘이것이 소리이다’하고 알지 않으면 ‘내가 듣는다’, ‘이것은 저 소리다’, ‘이것이 일어난다’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모두가 우빠다루빠가 되어 끝납니다. 냄새 맡을 때, 냄새만임을 모르면 좋다 나쁘다가 일어나고 그래서 다시 우빠다루빠가 되어 끝납니다. 닿을 때 그것이 만져지는 대상임을 모르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곧 계집이 닿는 것은 좋다거나 좋지 않다고, 그래서 달라붙음이 됩니다. 그러니 대상은 달라붙는 대상이 됩니다.
생각할 때, 생각대상을 모르면, ‘내가 생각한다’, ‘이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어떠하냐?’ 따위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빠다루빠가 될 겁니다.
우빠다루빠와 닿아 윈냐나가 일어나고
윈냐나가 있는 데는 어디에나 무더기가 있습니다.
이 무더기가 달라붙는 무더기라
그래서 괴로움참(둑카사짜)이 있습니다.
그것을 빠띳짜 사무파다(말미남)이라 합니다.
이걸 아는 이는 참을 아는 이라고,
오랜 옛날 슬기로운 분이 말했어요.
여섯 가지 느낌 대상에서 일어나는 앎은 모두 큰 요소를 모릅니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둘 다 바람과 달라붙음을 일으킵니다.
좋아할 때 달라붙음이 있습니다. 그건 아주 또렷합니다.
좋아하지 않으면 싫어함이 있을 겁니다. 싫어하기 때문에 노염이 일어나고 이 노염이 이어지면 없어도 좋은 달라붙음을 차례로 일으키는 미움과 나쁜 뜻이 될 겁니다. 여기서 달라붙음이 오래 남아 있는 원한과 함께 일어납니다.
이 달라붙음은 싫어함과 함께 일어납니다.
바람과 달라붙음이 있을 때 업(깜마,짓)을 짓습니다.
바람과 달라붙음이 업을 일으킬 때, 비슷하게 이어지는 무더기, 다른 말로 비슷하게 이어지는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달라붙는 무더기 괴로움(우빠다나칸다둑카)이라 합니다. 이것은 빠띳짜사뭇빠다(말미남, 연기)라고도 합니다. 붓다는 ‘요 빠띳짜 사뭇빠다 빠쌋티 소 담마 빠쌋티(말미남을 아는 이는 담마(흐름)를 안다.)’고 말합니다.
달라붙는 물질과 만나면 곧바로 앎이 일어납니다. 눈을 떠 보세요. 그러면 봄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눈앎 일어남입니다. 봄이 달라붙는 물질과 닿아서(닿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봄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것은 그 사람이야’, ‘이것이 일어나’, ‘이건 좋고 이건 아니냐’ 따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마음무더기(찌따칸다)가 됩니다. 다섯 무더기가 됩니다. 이 마음(찌따칸다)은 달라붙는 대상입니다. 괴로움이 됩니다.
이것이 말미남(빠띳짜 사뭇빠다) 성질입니다. 이것을 알면 담마를 안다고 합니다. 볼 때 볼거리가 달라붙는 물질입니다. 이 볼거리는 큰 요소 물질에 달려 있습니다. 이띠루빵(이건 물질이야), 에타까루빵(물질일 뿐이야, 곧 네 큰 요소 물질이야) 그것은 우빠다루빠(달라붙는 물질) 너머로 가서는 안 됩니다. 누가 이 너머로 가면 다섯 무더기가 될 것이고, 그러면 끝내 괴로움 참이 일어나는 바람과 달라붙음이 됩니다.
‘이것이 물질이다.’라고 아십시오. 그러면 느낌(웨다나)이나 알아보기(산냐) 쪽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무더기가 모두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면 다섯무더기가 함께 일어나는 괴로움이 없을 겁니다. ‘이것이 물질이다’라고 슬기로 아는 것이 ‘아빈녜야’입니다. 빠린네야는 서로 다름을 압니다. (사람, 존재, 빤냣띠로부터 마음, 물질이 다름을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