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라는 유명한 일본 소설가와 그의 장애 아들에 대해 린즐리 캐머런이란 작가가 쓴 nonfiction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작가였으며 199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첫 아이인 오에 히카리는 1963년에 태어났는데,
두개골 밖으로 뇌의 일부가 빠져 나와 있는 뇌류(腦瘤 : cerebral herniation)라는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뇌류에 대한 수술을 받은 후로는 시각장애, 자폐증, 발달장애, 간질 등의 여러 증상이 동반되었다.
처음에 겐자부로는 장애 아들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뇌류 수술을 받다가 아기가 죽어버리고 자신들이 짐을 덜게 되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고 겐자부로는 고백했다.
그러나, 겐자부로 부부는 장애 아들의 양육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아이의 양육에 매달리게 되었다.
일본사회가 전통적으로 장애인을 허용하지 않고 격리시키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겐자부로 가족이 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밖에 돌아다니는 것조차도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까다로운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온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중에 태어난 동생들까지도 히카리의 일상생활을 돕는 일을 아주 어려서부터 해야만 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겐자부로는 자신의 아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여러 편 썼다.
그 중에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소설로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겐자부로는 자신을 잘 표현할 능력이 없는 장애 아들을 소설에 등장시킴으로써
소설 속에서 아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글쓰기는 또한 자신에게 현실의 고통에 대한 환기통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겐자부로 부부와 가족들은 헌신적으로 히카리를 돌봤으며
그러던 중 히카리가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 들은 음악은 정확하게 기억을 할 수 있었다.
히카리의 부모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히카리의 음악적 재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드러나게 되는데,
한 번 들은 곡을 바로 악보에 옮겨 적을 수 있었으며 결국 작곡까지 하게 되었다.
그가 작곡한 곡들은 곧 유명해졌으며 그는 작곡가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 히카리는 음악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아들의 장애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소설을 통해 아들의 삶을 글로 써오던 겐자부로는
더 이상 아들을 소재로 하는 글은 쓰지 않겠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글쓴이 린즐리 캐머런은,
뇌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백치’에 대한 연구자들의 말을 인용해서,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천재백치 20여 명 중에서 창의력을 가지고 작곡까지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히카리 외에는 이제까지 없었다고 말한다.
창의력이란 물론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만 갠자부로 부부가 히카리에게 들였던 헌신적인 노력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기를 임신한 부부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아기가 어떤 기형도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과거에는 초음파 검사나 기형아검사가 없었기 때문에 낳는 순간까지 아기에게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 대해서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짐으로 여기면서 그렇게 살아갔던 것 같다.
히카리가 1963년생이니 겐자부로도 같은 경우였을 것이다.
뇌류 수술 후에 합병증으로 나타난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온 가족이 헌신적으로 돌보고 키워내어
결국은 장애 속에 숨은 재능을 발견하여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기까지의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라
한 가족에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마이클 샌덜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란 책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유전자를 선택해서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예기치 않은 일을 감수하게 되고 불협화음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며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이론가의 허무한 외침처럼 들렸던 마이클 샌덜의 이 말이 겐자부로와 히카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결혼 후에 아이를 최소한 둘은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의사로서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임신과 아이의 양육은 늘 내게 무거운 짐으로 작용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내 아이가 장애아라면 나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매 임신 때마다 아이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했던 것 같다.
마이클 샌덜의 말을 빌자면, 나는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아의 부모가 되는 것을 하늘의 형벌 정도로 끔찍하게 생각한다.
겐자부로의 가족에게서도 봤듯이 장애아 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매달려 헌신해야 하므로
가족 개개인의 삶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겐자부로 또한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고뇌했던 모습을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 있으며
소설 속에서 그러한 고뇌에 대해 답을 하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건 어렵지요. 그렇지만 일단 부모가 된 이상 그만둘 수 없어요. 안 그렇소?’라고.
겐자부로와 히카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장애아를 키우는 가족의 어려움을 간접 경험해보게 되었고,
과거의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갠자부로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읽고 있는데,
장애아를 낳은 아버지가 겪는 마음의 갈등을 너무나 진솔하고도 예리하게 묘사한 갠자부로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장애아의 부모로서의 간접 체험을 진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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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하고 애쓰고 있다고 마이클 샌덜은 말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서 낳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이클 샌덜이 생각하는 생명윤리의 시작점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삶을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로 여기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많이 받고 태어난 자는 더욱 겸손해질 것이며
자기보다 적게 받고 태어나 살고 있는 약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돌보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보건소에서 근무할 때에 어느 장애인 학교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학교는 시설이 꽤 좋은 학교였고, 그곳에 드나들던 엄마들의 얼굴도 밝아보였던 기억이 난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수용적으로 바뀌고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시설과 재활시설이 많아져서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댓글 네 저도 책 읽어보고 싶네요. 친척중 사촌동생이 장애가 있어서 안타까움있었지요. 지금은 미국에서 가족이 생활하는데 일주일에 두번정도는 교회 모임에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나름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