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순수한 동시의 세계로...
11. 19 (수) 조 길 남
김은영 시인의 ‘선생님을 이긴 날’을 읽고
고양이 발자국
마루 위에
꽃이 걸어간 발자국
비에 젖은 고양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요
엄마 여길 좀 봐요
꽃무늬가 참 예뻐요
엄마가 문을 열자
고양이가 훌러덩 달아났어요.
고양이 발자국을 꽃에 비유했다. 이 시를 읽고 보니 정말 고양이 발자국이 꽃모양을 닮았다. 시인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마술사여야 한다. 고양이가 비에 젖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시인의 눈에 들어왔고 꽃무늬란 언어로 표현함에 간결미를 느낀다.
진눈깨비
눈과 비가 어울려
사이좋게 내려와요
하늘은 눈인데
땅바닥은 비예요
하늘에만
첫눈이 내렸어요.
내가 생각한 진눈깨비는 불쾌하고 교통체증일으키고 좋지않은 느낌인데 이렇게 아름답게 진눈깨비를 그리는게 시인의 눈이다.
사이좋게 내려오고 하늘에만 첫눈이 내린다고 간결하게 표시한 점이 이 시의 아름다움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진눈깨비의 생경함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토바이 방귀
산비탈 내리막길
달려가는데
방귀가 나왔다
뽕 뿡 뽕 뿡 뽕 뿡 뽕 뿡~~~
엉덩이에
오토바이를 달고
내리막길 끝까지 달렸다.
하하하. 방귀를 유쾌하게도 표현하였다.
내리막길 갈 때 방귀가 나온다면 정말 다행이다. 뛰어내려 가면서 방귀를 뀌니 소리가 안나오고 정말 오토바이처럼 될 테니까. 재미난 방구다. 장난스럽게 깔깔 웃고 달려가는 아이의 영상이 떠오른다. 그런데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데 나오는 방귀는 뭐라고 표현할까 궁금해진다. 3.4( 1행) 5 (2행) 6 (3행) 으로 구성하여 간결하게 방귀뀌는 장면을 묘사한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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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건시인의 ‘거인들이 사는 나라’
개망초 꽃
언제부터
너 거기에 있었니?
친구와 헤어져 혼자 가는 길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낯설지 않은 얼굴
너 거기 그렇게
정말 오래오래 서 있었구나?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만큼 자란 키
내가 웃음을 보이지않아도
반가워 먼저
소리없이 웃음짓는
네게서 참 좋은 향내가 난다
참 좋은 향내가 난다.
개망초꽃을 좋아한다. 달걀 후라이꽃이라며 부르며 우리 아이들과 해마다 관찰하던 그 꽃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한 시인의 눈이 곱다.
동무와 헤어져 가는 길 개망초꽃이 동무되어 여지껏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너 그렇게 정말 오래오래 서 있었구나.’라고 물을 정도로 시인의 눈빛은 다감하다.
‘내가 웃음을 보이지 않아도 반가워 먼저 소리없이 웃음짓는’ 개망초가 먼저 웃어준다고 보는 시인의 눈빛에서 배려가 느껴지며 따스한 시인의 눈빛을 배우고 싶어진다.
동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힘들었던 현실을 잊게 만들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되찾아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게 동시의 힘 인거 같다.
봄날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 봐요.
시인은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며 끊임없이 상상을 해야 참신한 시를 쓸 수 있다. 이 시가 거기에 딱 맞는 시 같다. 피딱지에서 꽃씨를 유추해내고 피딱지가 생길 때 근질거리는데 봄날 씨앗이 나오려 할 때도 근질근질하다는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다.
친구에게
네 마음이
연못이었으면...
조그만 돌로
퐁당
뛰어들어
동그란 내 이야기
들려주게
한 가닥 실바람 되어
사르르
물무늬 만들어
다정한 내 마음
전하게
네 마음이
조그맣고 동그란
연못이었으면
연못가에서
돌을 던질 때마다
이는
잔물결이
즐거워
즐거워
웃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친구야 너 떠나간 뒤
이제야 깨달았다.
네 웃음 뒤에
숨겨지던
슬픔의 사금파리처럼
파르르
떨리는 아픔 보이지 않게
애써
지우려는 것임을...
제비꽃
겨우내
들이 꾼 꿈 중에서
가장 예쁜
꿈
하도 예뻐
잠에서 깨어나서도
놓치지 않고
손에 꼭 쥐고 나온
꿈
마악
잠에서 깬 들이
눈 비비며 다시 보고
행여 달아나 버릴까
냇물도 함께
졸졸졸 가슴 죄는
보랏빛 고운
꿈.
‘아주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소중한 것입니다.’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오래 잊혀지지 않는 일, 보고 듣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맛보는 모든 일, 갑자기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들을 모두 시로 썼답니다.
무언가 상상하는 일은 즐겁고 그 즐거움은 시가 되어 나온답니다. 여러분들도 나처럼 마음속에 담겨 있는 시를 꺼내 놓아보라며 결코 서두르지 말고 콧노래처럼 저절로 흘러나올 때까지 한번 기다려보래요. 정말 기다리면 상상한 것들이, 모든 경험한 일들이 시가 되어 나올까요?
내게 시인들은 특별히 태어난 사람들 같은데 말이죠.
상상한 것들을 사물에 비유하여 생각을 해낸다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하고 시간적이 여유가 있어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야 가능한 일인데 이 시인은 참 작은 것들에도 눈 놓아 마음 놓아 시를 잘 썼습니다. 제비꽃을 들이 꾼 꿈 중에서 가장 예쁜 꿈으로 표현한 걸 보니 보랏빛을 좋아하는가 봐요. 손에 꼭 쥐고 나온 꿈이라며 애지중지 소중하게 아끼는 모습에서 제비꽃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고 간결하게도 잘 써서 눈을 감아도 이 시가 떠오릅니다.
연목가에서는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연못에서 홀로이 울적한 마음 된 소년이 떠오르고 그 소년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그림이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어 시인들은 행복하겠습니다. 시를 읽으면마음이 넉넉한 부자가 된 거 같아 행복합니다. 시인들이 새로운 시어를 많이 창조해서 시를 즐기는 대중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선사해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보며 두 편의 고운 시집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