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이야 당장 눈앞이 관심이지만, 나이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좀체 찾지 않는 블로그에 낯선 이가 방문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건강 하신지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보고싶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67 오양호 선원 최칠환"
오양 67호 최칠환? 누군데 이 배를 알고있지? 원양어선 시절, 일등항해사로 승선하던 배 이름이다. 67 오양호라는 말에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래, 최철환! 스물다섯이던 그해, 나는 30명의 선원들과 함께 대서양 생활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연안과 대서양을 누비며 고기잡이를 하던 그 시절, 당시 갑판원 중 한명이 바로 최칠환이었다. 아마 나 보다 두 세살 아래였으니 이십 초반이었을 것이다. 최칠환이라....가만 따져보니 스무살 청년이 어느덧 쉬흔고개다. 문득 35년전 아득한 대서양 시절이 떠올랐다. 이래 글은 당시를 추억하며 쓴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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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데서 정보를 입수한 거지? 겨우 12, 3노트에 불과한 배들이 이처럼 빠르게 모여들다니. 고기가 좀 잡힌다는 소리만 들리면 순식간에 배들이 모여든다. 아마 100여 척도 더 되는 것 같다. 바다라 해서 아무데나 고기가 있는 게 아니다. 암초 주변이나 수온과 수심 등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특정한 장소에만 고기가 있다. 5월이던가? 북위 10도 세네갈 연안에서 작업할 때다.
이상 난동으로 온 바다가 도미 떼로 뒤덮인 적이 있었는데, 어데를 예망하든 아까다이라고 불리는 도미가 그물 가득히 잡혔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쩌다 만나는 희귀한 경우다. 30여명에 이르는 선원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리더십이 요구되지만 유능한 선장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저 고기만 잘 잡으면 된다. 돈 많은 사람이 대접받고 공부 잘하는 자식 두면 자식교육 잘 시킨 부모가 되듯이 무조건 고기만 잘 잡으면 명선장 대접을 받는다. 제아무리 인격이 고매하고 똑똑한 선장이라 하더라도 고기못잡는 선장은 별볼일 없는 거다.
결론은 딱 하나. 인격이 밥먹여 주나? 그러니 오나가나 돈이 문제인 거다.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100여척의 어선들 사이에 끼여들어 어로작업을 한다는 건 마치 전쟁을 치르는 일이나 다름없다. 무선전화에서는 연신 죽일 놈 살릴 놈하며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한 마리라도 더 잡겠다고 생 난리인 것이다. 악다구니를 쓰며 부딪치기도 싫지만, 우리 배의 크기가 너무 작고 낡아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20년이 넘은 300톤짜리 고물배는 이미 배밑에 구멍이 나 기름이 숭숭 샜고, 노후된 침실은 약간만 힘을 주어도 일그러지기 일쑤니 이런 배로 어떻게 저들과 경쟁을 벌인단 말인가.
모로코 남단의 몰리타니아 노우아디보 근해로 남하하기로 했다. 원래 지명은 노우아디보지만 선원들은 이곳을 뱀대가리라고 불렀다. 징그럽고 흉측한 지명이지만 해도를 펴들면 영락없이 뱀의 머리 형상이라서 이름 한 번 제대로 붙인 것 같다. 그렇다고 곧장 뱀대가리쪽으로 가려는 게 아니다. 우선 뱀대가리에서 동쪽으로 70마일쯤 떨어진 경사면부터 들러봐야 한다. 수심 50미터 전후의 대륙붕 지대와 수천 미터 경사면으로 된 이곳에서 배들은 경사면 윗부분을 따라 예망하게 되는데, 시기만 잘 맞으면 묘하게도 이곳이 고기가 많았다. 행여 했지만 물풀과 불가사리만 잔뜩 올라온다. 어느정도 예상한 결과다.
서둘러 뱀대가리를 향해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틀째 항해만 하는 셈인데, 다른 배들은 여전히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에서 작업중이다. 차라리 그냥 있을걸 은근히 후회된다. 만약 고기만 있다면 우리 혼자서 며칠이고 몽땅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뱀대가리마저 허탕치면 한정된 조업일수 동안 계획량을 채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왕복 나흘 가까이를 허비하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연일 고된 노동 때문인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좋은 선장을 만난 건가?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 연거푸 허탕이면 불만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너무 편해도 안되고 너무 힘들어도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이라면 수고 덜하고 고기 많이 잡는 거겠는데, 어데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바다 위로 달빛이 교교하게 비춘다.
누군가가 컴컴한 선수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밤새도록 항해만 하니 편하긴 하겠지만 왠지 걱정스러워 그런 거다. 당직을 서고 있던 이등항해사 역시 걱정스럽다는 표정이다. 이들은 그럴 것이다. 아니, 선장이 도대체 왜 저러지? 남들은 한데 모여 고기 잡느라 저 난리인데 왜 이렇게 한 밤을 방황하고 다니는가 말이다. 라고. 그렇다고 이유를 밝힐 순 없다. 악다구니 속에서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는 걸 어찌 말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사람 모이는 데를 가기 싫어하는 내 성격도 이런 식의 조업을 선호하는 한 이유다. 여하튼 이런 작업 방식은 실패할 확률이 클 뿐더러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이 따르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혼자면 모르되 내가 책임을 진 30여명의 선원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 주지 못한다면 나는 무능한 선장 소릴 들어야 한다. 선원들은 절대 편한 것만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도 선생에 대한 평가는 더 잘하는 법이다. 지금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선원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아무리 낡은 배지만 고기를 많이 잡아야 한다. 선장으로써 답답한 일이지만, 선원과 회사는 절대 낡은 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어획량으로만 따진다. 게다가 이들은 뒤웅박 팔자나 다름없는 신세다. 선장 잘못 만나면 한 푼도 못 벌고 빈털터리로 귀국해야 하니까. 오죽하면 처자를 두고 이 험한 대서양까지 왔을까. 그러니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고기를 많이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금 거의 확률이 없는 도박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물론 뱀대가리에 고기만 있다면 사정은 다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마치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나 다름없다. 막연하긴 하지만 뭔가 감이 왔다. 해마다 이 때 쯤이면 엄청난 양의 문어가 잡히곤 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이제야 밝히는 일이지만 뱀대가리 부근은 어로 금지구역이다. 만약 몰리타니아 영해인 이곳에서 조업을 하다 나포되면 배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거액의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그러니 워낙 위험지역이라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들이 출입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고기는 엄청나다. 특히 문어가 많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전개판에 묻어올 정도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있는 건 아니다. 꼭 이럴 때, 특히 달이 밝은 밤이면 엄청난 문어가 잡힌다.
일단 이곳에서 조업을 하려면 레이더를 철저하게 주시하며 경비정의 동태를 살펴야 한다. 우리 배의 네 배 속도에 이르는 경비정은 순식간에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비정 출동 여부만 잘 주시하면 일단 어획량은 염려할 바 못된다. 모로코와 몰리타니아이 경계선은 정확하게 뱀대가리의 눈에 해당한다. 따라서 뱀대가리 눈 근처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경비정이 나오면 얼른 모로코 쪽으로 달아나면 된다. 모로코 해역은 우리가 허가를 받은 곳이라 어로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동작이 늦으면 경계선을 넘어서까지 쫓아 올 때가 있다. 그러니 레이더를 철저하게 들여다보면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문어가 실제 있느냐라는 것이다. 만약 문어만 있다면 최고의 어획량을 올릴 게 틀림없지만 반드시 고기가 있으란 법이 없다. 위험은 또 있다. 군데군데 수렁처럼 있는 어마어마한 진흙 뻘이다. 만약 진흙뻘 위로 그물을 끌고 가면 그물은 완전히 망가지고 만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두 가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뱀대가리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이곳으로 왔을까. 그냥 편하게 배들과 뒤섞여 작업하면 적어도 불안감은 없을 텐데, 까짓 잘 잡든 못 잡든 함께 있으면 어쨌든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어쩔 수 없다. 배든 사람이든 많이 모여있으면 도무지 견디질 못하겠다. 오늘따라 조타실 현창으로 비치는 별빛이 찬란하다. 달빛 때문일까? 느닷없이 고독감이 밀려온다. 낡은 배를 타고 대서양 밤바다를 정처 없이 헤매는 내가 왠지 처량하게 보인다. 조타를 하는 이등항해사까지 연민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도 엄연히 현실은 별개 아닌가. 게다가 나 혼자 타는 배도 아니다.
선원들 전체를 책임져야 할 선장이 성격을 이유로 이런 식의 모험에 가까운 조업을 감행해도 과연 문제가 없는가? 그렇다고 한 두 번 일이 아니라 걸핏하면 이런 식으로 정처 없는 항해를 하곤 한다. 광주 사태로 시국이 한창 어수선하던 80년대 중반. 나의 무모하리 만치 도박에 가까운 조업 방식은 결국 내가 승선했던 홋데끼(single deck) - 단 갑판을 뜻하는 이 말은 당시 다른 트롤어선에 비해 가장 낡은 배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 오양 67호를 도코다이의 명수라는 소리까지 듣게 만들었다.
도코다이란 우리말로 특공대란 뜻하는데, 정말이지 특공대가 무색할 정도로 나는 온갖 위험을 무릅쓴 채 다른 배보다 많은 어획고를 올리기 위해 숱한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배들이 불법 조업으로 나포되고 조악한 감옥에 구금까지 당했지만 다행히도 우리 배는 단 한 번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 계속
첫댓글 추리소설 같은 리얼...다음편도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