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엑티브하게 감동을 준 팀이 여럿 있다. 일반 콩클에서 겨뤄도 될만큼 경쟁력 갖추었다."
2014년 10월 14일 오후 1시, 국립극장이 시끌시끌하다. 시도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오른 지역대표 17개 합창단이 해오름 극장 주변을 점령(?)하고 발성 연습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합창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2014 전국 골든에이지 합창 경연대회'가 열리는 날. 붉은 옷 갈아입기 시작한 남산, 장충동 고갯마루 가로수 사이로 리무진 버스가 줄지어 들어서고 대회가 막을 올린다.
올 해로 세 번째 맞이하는 본 대회는 Golden Age(어르신)들이 합창을 통해 건전한 여가예술 활동을 실현하는 무대다. 2012년 첫 해는 음원을 통해 지역 예선을 보았으나 지난해 부터 희망 팀이 많아지면서 시도별 예선을 거치고 있다. 올해는 경기 4팀, 서울, 부산, 인천 각 2팀, 그리고 광주, 울산, 충북, 충남, 경북, 전북, 전남 각 1팀으로 총 17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이 중 11개 팀이 혼성(남자 5명이상)이고, 남성 1팀, 여성 5팀이다. 국민의례와 심사위원 소개에 이어 심사기준을 발표한다.
심사위원으로는 나영수 전 국립합창단 지휘자,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 김현슬 전 광주시립합창단 지휘자, 유병우 코리아 남성합창단 지휘자, 이상길 안양시립합창단 지휘자, 박차근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이사장, 박신화 안산시립합창단 지휘자로 모두 7명이다. 박차근 심사위원이 심사기준을 발표한다.
첫째, 음악의 기본요소를 보겠다. 음정, 박자, 리듬, 프레이징, 템포 등이다. 둘째, 소리를 보겠다. 2B다. 먼저 밸런스. 얼마만큼 조화를 이루는가의 문제다. 다음은 블랜딩으로 섬김, 배려, 절제 등이 얼마만큼 녹아들어 있는지의 문제다. 셋째, 잘 부르려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즐기며 부르고 있는가를 보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노래하는 이들이 즐기면서 부를 때 메시지가 잘 전달된다.
경연이 시작된다. 태안 푸른솔합창단이 충남 대표로 첫 무대에 오른다. 이어서 인천 서구합창단 '갈채'와 인천 미추홀 은빛합창단이 등장한다. 인천 두 팀 모두 혼성 합창단으로 2012년에 창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미추홀 팀의 아카펠라가 돋보이고, 몸짓과 레치타티브도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충북 청주청노합창단은 암 등 스스로의 질병을 딛고 일어서 봉사하는 특성을 지닌 팀이다. 부산 예그리나합창단의 '백학'이 흐를 때는 지난 겨울여행지 바이칼호수가 어른거렸다. 다음 경기도 세 팀이 연속 무대에 오른다. 광주 고운소리합창단은 노인복지관 이용자로 구성한 팀으로 지역사회 봉사에 힘쓰고 있다. 용인 고은여성합창단은 2004년 창단하여 각종 행사는 물론 경연대회 수상실적이 많은 팀으로 고운 소리를 자랑한다. 고양 호수그린합창단은 반짝반짝 특별한 의상과 머리 장식으로 시선을 모으며 열심히 노래한다.
전남 동여수울림합창단, 울산 한사랑합창단에 이어 전북 전주 해피콰이어와 광주 북구시니어합창단 연주다. 전주 해피콰이어는 여자 29명, 남자 14명의 구성으로 소리가 조화롭다. 2014 전국 환경노래합창경연대회 대상 수상 직후 같은 곡으로 참여한 듯. 그래서인지 복장도 드레스가 아닌 흰 바지에 몇가지 색깔의 티셔츠가 특이하다. 다음 경기 성남시니어여성합창단과 부산 해운대No老실버합창단이다. 성남시니어 팀의 소리가 아름답다. 특히 작은 소리에서 여성의 섬세함이 묻어난다. 이어 유일한 남성 팀 3927콰이어다. 지휘자 최홍기님, 자신이 편곡한 두 곡을 지휘한다. '청산에 살리라'에 이어 '제비'는 원어로. 장쾌하다. 이어 서울 강북구립실버합창단이 오르고, 경북 구미장수실버합창단이 경연 대미를 장식한다. 강북구립합창단 역시 2005년 창단하여 각종 대회 수상실적이 있는 팀으로 저력을 보여준다. 본 경연이 모두 끝나고 앵콜공연과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지난 해 대상 팀 '춘천카톨릭신협청춘합창단 앵콜공연과 국립합창단 축하공연이다. 춘천 팀이 4곡을 부른다. 1년사이 원숙해진 모습으로 청중을 압도한다. 복장은 전통 한복 모습으로 소박하며 친근하다. 역시 우리 것이 좋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하얀 행주치마와 머리수건이 정겹다. 카톨릭 신협에서 종교를 초월하여 지원하고 있기에 팀원 중 25%는 기독교인이 아닌 팀이다. 지역사회 자선공연으로 문화역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모범적인 합창단.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 송경애님이 단원의 퇴장을 일일이 돕고 자신은 끄트머리에 퇴장한다. 지휘에서의 뒷모습과 함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뒷모습. 한 폭의 그림이다. 국립합창단은 구천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새로 맞아 활기찬 모습으로 아카펠라 4곡을 연주한다. 원어로 성가 3곡, 그리고 '향수'를 노래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이상길 심사위원의 심사평이다.
나이가 들면 고음도 거칠고 비브라토에 발음진행도 어렵다. 호흡도 짧아지고, 그래서 끊어지기도 하고 싱고페이션도 잘 안 지켜진다. 그러기에 쉬운 곡을 익혀서 아름답게 부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차츰 '합창적 가치'를 추구하면 좋은 울림으로 퇴색되지 않은 소리로 좋은 음정과 화음으로 들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어려운 곡을 선택하여 잘 소화하지 못한 팀이 있어 아쉽다.
한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나이 듦에도 불구하고 액티브하게 감동을 준 팀들이 있어 반갑다. 반면, 학예회 모습으로 귀엽게(?) 연주한 팀도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지난 해보다 성숙했고, 일반 콩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춘 팀들이 있다는 점, 그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대상은 전북 전주해피콰이어에 돌아갔다. "수준에 맞는 노래로 화음이 조화로웠으며 보기에 아름다웠다"는 평이다. 우수상은 두 팀으로 경기 용인고은여성합창단과 서울 3927 콰이어, 장려상은 세 팀으로 인천 서구'갈채', 경기 성남시니어합창단, 인천 미추홀 은빛합창단이다. 경기 고양호수그린합창단이 특별상을 수상하며 경기도는 참가 4팀 중 3팀이 우수상, 장려상, 특별상을 각각 받았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수도권에서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지방이라고 소외되지 않는다. 한편 우수상, 장려상, 특별상 수상 팀은 모두 수도권 합창단이다. 실력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요인은 리더의 문제일지 싶다.
경연을 떠나 오늘 최고는 춘천카톨릭신협청춘합창단 앵콜 무대다. 당당한 자부심과 겸손함이 부럽다. 팀이 빛나고, 춘천이 빛나고, 강원도가 빛나고, 무엇보다 리더가 빛났다.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은 '감동'을 주고 못 주고의 문제라고 한다.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다. 혼신을 다해 불러야 한다. 몰입해야 얻을 수 있다. 겸허한 자부심으로 일궈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팀.. 감동을 주어 고맙다.
어둑어둑해지는 장충단 고갯마루를 거슬러 되오른다. 장충동 족발집에라도 들러 올 수 있겠지만, 다섯 시간 여..노래를 배불리(?) 들은지라 곧장 한남대교를 건넌다. 고속도로 아스팔트에 그새 어둠이 내리고 퇴근 길 차량들로 이룬 붉은 꽃밭 대열에 합류한다. 오전 오후 일정이 꽉 차 있던 날, 갈등을 겪다 결단내고 다녀오는 길이라서 호젓하다. 불쑥 'A New Life'가 터져 나온다. 지킬앤하이드 루시가 된다. 차창으로 들어 온 가을바람이 동무 하잔다. 그려~~ 좋다!
고음 불가로 공포와 두려움 가득하지만, "언젠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날이 온다!", "할 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A New Life !
첫댓글 공연장에 와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각팀의 특징과 모습에도 시선이 가지만
심사 기준과 심사평에서 배워지는게 많습니다.
즐기며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지,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리더와 단원들의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까지도....
그리고 한 사람의 후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좋은 기운들.
깨닫는 바 많아 다시 한번 마음 추스리고 즐거운 노래 부르기에 도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