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꾼과 고바우영감 ***
~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고향. 情의 고향 찾기에 앞장 설 터 ~
1996.04.01 글 / 전흥열 운영위원
1945년 9월 15일 해방을 맞아서 부친의 신탁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압구정 집에 귀의한 때가
8살 때이니까 금년이 꼭 50주년이 됩니다. 돛단배에 이삿짐을 싣고 상살 비탈의 거센 물결을 헤치고
당시 우리 집에 도착하니 흉수로 집이 침수됐던 흔적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이삿짐을 풀었습니다.
농지래야 고개 넘어 천수답 6마지기와 장솔 하천 갈대밭이 전부였습니다.
비가 충분히 오면 모를 내고 아니면 못내는 천수답의 논. 호밀. 메밀. 수수. 조를 주로 심었던. 모래밭.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농지들이었습니다. 부지런하신 부친을 따라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농사하던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중재로 큰아버님 소유의 뒷동산 배 밭을 인수하면서부터 조금씩 삶의 터전이
잡혀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말의 언북초등학교(6.25때 소실) 시절과 청담동의 언북초등학교 시절의 파란만장한 구구절절의
이야기들은 이루다 적을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장난을 유별나게 잘하고 특히 뱀 잡기를 좋아하여
잡은 뱀을 여학생들에게 놀라게 했던 장난 끼는 드디어 땅꾼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주서방네 자두서리. 중천씨네 복숭아서리. 윤덕현씨 댁의 수박서리. 옥골 머너금 범식씨
댁의 밤 서리. 미꾸리. 메기. 쏘가리. 잡아먹기 기성씨네 배움 털기. 등 많은 못된 짓을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동중학교를 들어가 서울로 유학을 하면서 나의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의 좌우명은 “1. 시간은 돈이다. 2. 침묵은 황금이다.
3. 인생은 봉사다.”로 정해놓고 촌음을 아껴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이웃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던 중학시절은 참으로 유익했던 3년간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좌우명을 “1. 건강함으로 질병을 이기자. 2. 신앙심으로 죄악을 이기자.
3. 노력함으로써 모든 인간들에게 이기자.”란 비교적 현실적 생활관을 가지고 고바우 영감이란
별명을 얻은 해학적이고 낭만적인 고교시절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나는 다시
고향 압구정으로 돌아와 통학을 하였고 졸업과 동시 압구정을 오랫동안 떠나 살게 되고 그것이
압구정과 마지막이 될 줄이야...
타향살이를 하면서 압구정에 대한 향수는 좋은 면보다는 비판적인 향수가 더 많았습니다.
교회가 들어오지 못하던 마을. 그렇다고 그 어떤 뚜렷한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봉건적이고
폐쇄적이고 답보적인 사고방식으로 꽉차있는 압구정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고방식. 남을 헐뜯고 흉보고 뒷말을 많이 하는 풍속도는
나를 고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면서 가훈을 “1.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가 난다. 2. 책 읽는 소리가 난다.
3. 감사하는 마음의 소리가 쉬지 않고 난다.”는 것으로서 항상 명랑하고 노력하고 범사에 감사 한다는
생활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의 좌우명은 “양복(養福). 양기(養氣). 양재(養財).
로 정하여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 마음을 비우고 살 수 있는 사람. 절약 검소한 사람이 되도록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북의 실향민들도 찾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압구정 실향민들은 찾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고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찾아볼 수 없는 고향 압구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고향 압구정을 다시 만들어 내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고향 압구정 만들기에 우리 동참합시다. 동참 인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동참 인들은 향우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가 향우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동참 인이 되실 수 없습니다.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어야 동참 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울 줄 아는 분들이어야 합니다. 마음의 고향 압구정향우회를 만들기 위하여서는 기쁜
마음으로 동참 하셔야 합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동참 하셔야 합니다. 세계화를 맞이한 20세기
마지막 문턱에서 지난날의 슬프고 괴롭고 불미스러웠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일들만을 추억하면서 미래의 압구정향우회 후손들을 위하여 우리 모두 꼭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힘을 모아 마음의 고향 압구정향우회를 건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