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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抽象, abstraction)’이란 대상으로서의 소여(所與) 전체로부터 특정성질이나 공통징표(共通徵表)를 분리하고, 골라내는 정신작용이다. 추상은 불필요한 계기를 버리는 사상(捨象)을 표리일체(表裏一體)로 동반한다. 추상에는 보편성 ·일반성의 정도가 있고, 고도(高度)의 추상은 언어작용과 밀접히 관계하여 보통명사나 명제(命題)의 형성, 유형화(類型化), 이론구성의 전제(前提)가 되어, 일상적(日常的) ·학문적 활동에 불가결한 작용이다. 이상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뽑아낸 ‘추상’에 대한 정의이다.
꽤 복잡한 정의인 것은 분명하지만, 20세기 미술에서의 커다란 변화를 통해서 추상에의 접근을 시도한다면, 그나마 추상의 개념에 좀 더 가깝게 근접할 수 있을 듯하다. 20세기 이전까지의 미술사에서 보여준 큰 맥인 ‘재현’의 코드 대신 새로운 기호를 통한 소통의 발전이 20세기 미술의 도드라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분명 탈관습적이고, 맥락에서 자유롭게 표현된 추상 미술 작품은 우리들, 일반 감상자들로 하여금 곤혹스러운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기존의 예술 작품이 도상적(iconic)인 기호로서 외형과 내용이 투명한 관계를 가졌다면, 입체파를 기점으로 현대미술은 도상적 기호로의 설명을 거부하는 사조로 흘러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난해함을 해결해 보기 위해 작품 옆에 붙어 서서 작가노트도 살펴보고, 작품의 제목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추상 작품은 본래부터 해석에 반대할 의도로 만들어진 냥, 작가도 그의 작품도 구체적 지시대상(referent)나 기의(記意-signifie)을 쉽사리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제멋대로의 작품 앞에서 소통을 포기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솔직히 나로서는 괜한 오기가 생겨 작가나 작품이 표현(전달)하고자 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내 자신이 의미생산자가 되어보는 적극적 방법을 진즉에 택했다. 그러던 중, 칼빈 탐킨스가 쓴 책 아방가르드의 다섯 노총각(1993년)에서“나의 아이디어는 논리적인 해석이 필요 없다.”는 마르셀 뒤샹의 친절함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스스로를 결박하고 있던 의미추궁자로서의 찜찜했던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후련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추상 미술 작품을 볼 때 조차 이성적 인식을 통해야만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관습에 철저히 길들여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르네 마그리트 서울 전시에 다녀왔다. 파이프 아래에‘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를 써놓고 감상자를 조롱하는 식의 그의 작품들은 워낙 유명해서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을 통해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막상 전시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나는 육안으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그다지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빛의 제국(L'empire des lumieres, 1954년,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을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심까지는 버리지 못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눈을 씻고 둘러봐도 ‘빛의 제국’은 만나볼 수 없었다.
르네 마그리트가 말했다. “언어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미지는 언어가 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려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과 언어로 표현된 것은 결국 같은 것이다.”당혹감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애초의 각오가 또 다시 좌절되는 수모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알듯 말듯 모호하지만 그의 말은 세 문장 자체로는 지시대상(referent)를 향한 각기 다른 표현 수단의 노력과 그 한계에 대한 언급으로서 설핏 이해되었다. 즉, 언어의 표현 장이 시각 이미지의 표현 장보다 넓고 깊다는 의미이고 가장 마지막 문장은 간단히 말해 결국 동일한 지시대상을 가리키거나 명료화하는 작업이란 점에서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런데 왜 그 옆에 ‘이렌느 혹은 금지된 책(Irene or Forbidden Literature,1936)’이란 작품이 그에 대한 이해를 헷갈리게 하는 것인지 아주 얄궂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 속에는 책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마룻바닥에는 잘려나간 검지가 우뚝 솟아있고, 그림의 오른쪽에는 층계가 있으며, 손가락 뒤에는 ‘자동인형(L'automate,1929)’나 ‘심연의 꽃(The Flowers of the Abyss,1928)’에서도 등장했던, 서로 몸을 맞대고 있는 반구 두 개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마그리뜨는 화가라기 보다는 철학자로서 불리길 평소 원했다고 하던데, 역시나 대체로 모든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말장난(?)으로 독자를 우롱하듯 그는 한 수 더 떠 말과 그림으로 나를 고문했다. 게다가 주눅 든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마그리트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상징들은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하여 시의 신비한 현실에 매우 주위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다면 잘린 손가락, 배꼽 즈음에서 맞물린 반구, 책이 없는 공간이 상징체들이 아니라면 멍청한 감상자는 어쩌란 말인가? 그 즈음되자 그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가해성 앞에서 난감해진 나는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쳐다보며 ‘이 괘씸한 노인네’하며 응수하다, 비싼 입장료가 아까워서라도 좀 더 머물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번에는 다시 전시장을 처음부터 관람하기로 하고 더 차분하고 느긋해 지기로 노력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기에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아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고,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화면에 도입해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이미지를 창출하게 되고, 이를 위한 연관성이 없는 이질적 사물들이 결합하여 일상의 평범 속에 기이한 낯설음이 끼어드는 효과도 생겼다. 그러나 후기작으로 갈수록 새장과 알처럼 유사 사물이 같은 화면 속에 배치되어도 관련성 보다는 새로운 의미를 배열하는데 복종하니, 그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미로를 헤매게 되는 내 꼴만 우스웠다.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자든가? 내 미련한 끈기에 보답해주는 작품과 마주쳤는데, 1940년에 그렸다는 ‘회귀(The Return)’가 그것이다. 이 작품에는 새와 알이 등장한다. 그리고 새의 윤곽선을 가득 채운 내부는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다. 드디어 ‘하늘을 날아 새가 알을 낳기 위해 날아가는 구나!’라는 소통이 가능한 작품 발견이다.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 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 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 골목을 뛰어 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그런 나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싫어하는 것도 참 많은 고약한 화가이지만, 그래도 솔직하기에 나로서는 그의 현학 취향을 용서할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솔직한지 그의 고백을 들어보기나 하자.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여러분도 나처럼 당혹스러울 것이다. 보이는 것만 그렸다는 그의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어째서 알 수 없는지 답답할 테니까. 그렇지만 다시 그림을 잘 보면 깨닫게 된다. 그는 나무, 발, 병, 우산, 컵 등등,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것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 그렸다는 그의 고백에는 거짓이 없다. 솔직한 인품을 최상의 인간덕목으로 꼽는 나로서는 승복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마그리뜨 앞에 엎드려 ‘내가 졌소.’인정하며 물러서는 일!
결국 나는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미술관을 나오니 밖은 봄꽃이 만발한 신나는 오후였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자유를 실재의 삶에서도 요구한다.”는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자연은 진정 자유로웠다. 자연은 사유의 피곤한 과정 없이도 오감으로 감상할 수 있어 참 편안하다. 자연은 골치 아픈 의미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로서는 존재하는 그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가면 될 일이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끊임없이 상징적 의미를 찾아서 미술관까지 왔지만 도저한 마그리트는 이런 사람들의 태도에 반대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의미를 찾으려고 사물을 본다면 결국 그 사물 자체를 보지 못하고 제기된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정신은 두 가지 다른 감각으로 바라본다. 즉 눈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눈 없이 문제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눈 자체는 마치 손이 무엇을 움켜잡듯이 바라보기 때문에 관심이 부족하면 많은 것을 간과하게 되는데, 그 어느 것도 대상을 파악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나의 회화는 오직 원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는 전향적인 시각의 단절에 도전한다.”(르네 마그리트, 시공사, pp11-12)
그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눈앞에 있는 사물은 그것을 가리는 것에 감추어져서 안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즉 봉투 속의 편지가 안 보이듯, 혹은 나무에 의해 가려져 있는 태양이 그러하듯. 궁극적으로 마그리트에게 있어서 회화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상 세계를 넘어서는 메타-리얼리티(meta-reality)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신비’라고 일컬었다. 그렇지만 자연이 그의 회화보다 훨씬 더 신비하다. 활짝 핀 봄빛, 형형색색의 꽃나무들, 걱정을 잊게 해주는 산들바람, 어디에선가 노래하는 새들, 그 존재를 어떻게 다 관찰하고 다 사유할 수 있으랴. 마그리트의 회화는 어쩌면 이 존재하는 현실들이 보여주지 않는 본질을 향한 불완전한 탐구였는지도 모른다. 한편 우리의 이성과 감각과 직관으로는 도저히 존재의 이유를 캐낼 수 없는 저 봄날의 형형한 신비는 결코 그 자체가 해석될 수 없지만, 이 신비야 말로 자연의 존재를 가능케 해준다. 자연을 보자 드디어 마그리트 스스로가 회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불확실한 영역에 머무는 현실을 절대적 영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불완전한 방편이라고 언급한 것을 나는 약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서 남겨진 그의 그림의 잔상들을 싹 잊고 불완전하게나마나 자연의 신비를 감상하게 되었다. 자연은 확실히 그의 작품들보다 더 추상적이므로 이해하려는 욕심 따위는 버리는 것이 지금껏 미술관에서 시달린 불쌍한 눈과 뇌를 들들 볶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니까.
그림책은 쉽다?
지난 2000년 국내에서 개최된 2000년 ‘어울림’ 이코그라다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에서 크베타 파코브스카(Kveta Pacovska)는 자신의 그림책 알파벳 북을 통해 [알파벳, 환희의 건축]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크베타 파코브스카는 1928년 7월 28일, 체코의 고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프라하 응용미술대학교(Academy of Applied Arts, Prague)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고 그래픽아트, 회화, 개념 미술과 아티스트 북(artist's book) 분야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 온 아티스트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던 그녀는 60년대부터는 23세부터 쌓아온 북 아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를 위해 직접 그림책을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3차원적 작업을 개발해, 그림책이라는 인쇄 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테크닉과 예술성을 통해 촉각적이고 입체적인 예술 오브제로서 그림책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부단한 창작 작업의 공으 로 199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1992년 한스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다. 또한 1997년에는 북 디자이너에게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요한 구텐베르크 상을 받았다.
붉은색을 주조로 한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선, 도형을 마주하게 될 때 독자는 충격을 받게 된다. 평면이 당연한 그림책의 영역에서 3차원적인 조형미가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 까지 하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개성이 느껴지는 현란한 원색의 그림은 원색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기하학적 모양으로 단순화된 표현과 어우러진 자유분방한 회화적 묘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루미늄 등의 재료를 책에 삽입하여 아이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게도 했고, 트레이싱지를 삽입하여 다음 장의 그림이 비치게도 하는 재료 활용의 융통성은 크베타 파코브스카가 지난 세월 동안 선보인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과감한 실험 정신을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음악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지요. 훌륭한 음악은 다른 음악이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하모니를 자랑합니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리듬으로 구성된 음악은 어른이나 아이가 듣더라도 즐겁습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동일한 유형을 반복하는 듯한 그림책은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자신만의 그림책 만들기 정신을 피력했다. 그녀는 그림책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시험에 임한다는 자세로 새로운 아이디어 구상을 위해 애를 쓰면서도,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작업 과정 초기부터 아이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느끼려 노력한다.
오돌토돌한 요철 모양의 장식이 있는 책의 표면을 만지다 보면 점자책인 듯싶다가도, 곧 아이들의 손가락 끝 감각을 개발시키고자 한 작가의 섬세한 배려임을 알게 된다. 또한 책을 펼치면 팝업북처럼 면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구멍이 뚫어진 면이 다양한 형태의 입체적 구성이 되도록 한 과감한 시도들은 기존의 2차원의 그림책을 3차원의 세계로 진화시켰다. 그 결과 그림책읽기를 통해서도 아이들은 감각 체험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3차원에 대한 접목은 파코브스카가 단순히 평면만을 다루는 화가가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크베타 파코브스카의 그림책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칸딘스키를 필두로 한 표현주의자와 말레비치를 비롯한 절대주의자들의 미학의 실체가 작품 속에 개입된 흔적들을 포착하게 된다. 거울 반사로 공간적, 지각적 그접성을 강조하는 것은 재현과정을 지표적인 기호로 환원하는 팍투라(faktura)라는 개념의 일부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재료는 매개없이 자신을 직접 재현하는 듯이 보이고, 근접성은 움직임의 잠재태 속에 구체화되어 진다. 특히 그녀가 보여주는 재제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착안해 제작한 멀티미디어를 보면, 1912년 러시아에서 미하일 라리오노프가 ‘광선주의 선언’에서 언급한 회화의 본질로서의 팍투라를 연상하게 된다. 라리오노프에 따르면 모든 회화는 채색된 표면과 그것의 팍투라(채색된 표면의 상태와 성질)와 이 두가지로부터 얻은 감흥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파코브스카의 그림책은 선보다 면이 도드라진다. 이는 로드첸코(Rodschenko)가 선과 드로잉을 회화와 색체로부터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분리하고 평면을 실제 그려진 바탕면과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회화적 기표의 필연적인 자기지시성 및 그 기표와 다른 모든 통합적 기능 사이의 접촉을 강조했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말레비치: 예술의 해체와 의식-물질의 통일, 임정희 강의록, 문예아카데미 1999년 ‘현대 미술을 바꾼 거장들’ 중에서 부분 인용)
전통적 개념에 따르며 화가 손의 숙련에 의해 제작된 그림 제작이 위에서 언급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시대의 작가들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이들은 기계적 성질, 물질성, 회화과정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술작품의 형식은 두 가지 근본 전제인 재료(즉 매체 - 색, 소리, 낱말)이고 또 하나는 구성으로 보았다. 재료는 구성을 통해 일관된 전체로 조직되어 예술적 논리와 의미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파코브스카가 체코에서 1928년에 태어난 점, 또한 체코에서 미대를 다녔다는 점, 그 시대 러시아에서는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급진적인 미술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측을 한 번 쯤 해보게 되었다.(그러나 이런 의견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확보할 수는 없으니, 참고만 하시길) 그림책이 평면을 채워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작품 제작의 도구로서 붓이 쓰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파코프스카는 자신의 그림책에서 롤러, 프레스, 콤파스, 펀치 등의 하드웨어가 자주 쓰였으며, 과감하게 종이를 자르기도 하고 4절 크기의 종이를 덧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파울 클레의 회화에서처럼 천연덕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 캐릭터들의 행동에서 음율이 느껴지는 점과 칸딘스키 추상작품처럼 면 분할과 채색 구성을 통한 이미지 조합이나 말레비치 작품에서 나타나는 운동성이 느껴져서 참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녀의 책들인 모양 놀이, 숫자 놀이, 요일 놀이 책들은 결코 만만한 그림책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점은 세 돌이 갓 지난 조카는 그녀의 그림책들을 너무 좋아한다. 아무래도 요란한 색감, 입체적 구성, 촉각이 느껴지는 재질감 등등의 팍투라의 효과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Kveta pacovska - Vertical 전시회 the Prager Museum Kampa]
아이들의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책을 보여주고 싶은 열의로, 아이들을 책상 밑에 재워가며 그림책 작업에 몰두했던 크베타 파코프스카는 지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약 50여 편의 그림책을 제작한 그녀는 유네스코가 주는 ‘국제 뫼비우스 멀티미디어 상’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2000년에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뉴 미디어 상’을, 파리에서는 ‘CD-ROM 알파벳을 위한 뫼비우스 상’에서 그랑프리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이런 좋은 상을 받게 된 영광 뒤에는 그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미래에 도움을 주고 싶은 책임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녀로 하여금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을 유난히 좋아하게 만든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존경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녀만의 독특한 그림책을 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오페라 가수였고, 유년 시절 파코프스카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 책 저 책을 넘겨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할머니는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을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직접 그림을 그려 이야기책을 만들어 크베타를 비롯한 손자, 손녀들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올해로 77살인 이 고령의 그림책 작가는 지금까지 56회 이상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가졌을 만큼 분주하게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조각가로서, 그림책 작가로서 활동해 왔다. 또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베를린 대학교(the Academy in Berlin)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고, 1999년에는 영국 킹스턴 대학교(Kingston University)에서 디자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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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울님, 혹시 르네상스에 시작된 원근법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다면 한 수 가르쳐 주심이 어떨지......가 아니라 좀 가르쳐주세요. 제가 좀 급해서요.^^
돌멩이님....한참동안 아주 가끔씩 생각해보았는데요, 조예는 없고요, 다만,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들을 보면 원근법에 충실하려던 노력의 흔적이 보여요. 아니면, <그런데 임금님은 꿈쩍도 안해요>도 한 번 살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혹은 안노 마쓰마사의 여행 그림책도 괜찮겠지만, 원근감에서 근경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점이 느껴져요.(순전 제 개인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미학전공자도, 미술자전공자도, 미술실기전공자도 아닙니다.) 또한 르네상스 작품으로 원근법을 이야기할 때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몬테펠트로의 제단화>를 많이 언급하더군요. 급하시다고 해쓴
급하시다고 했는데 이제 답을 달아 죄송합니다. 생각을 모으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사실 요즈음 고유명사를 기억 못하는 기억장애가 심각해요. 아무래도 바보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아는 것이 미천해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