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에 사중복음의 첫 번째 복음인 중생의 복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중생의 복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하는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가운데 특별히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인 것이 믿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중생의 은혜입니다. 내가 믿어지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제 지난 날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앞에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피로 씻음받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었고 율법교사였습니다. 또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돈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이처럼 세상적으로 부러울 것이 없이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 보면 죄와 허물로 죽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 다시말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평생을 신앙생활했는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생은 누구에게든지 복음입니다. 다 들어야 하고 다 알아야 하고 다 체험해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 바로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한 십자가요 나의 십자가임을 믿어야 합니다. 거기서 죄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에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나의 중심에 모셨습니다. 이제 예수생명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생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이렇게 영적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육신이 지배하고 삶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아직도 삶의 모습을 보니 세상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생각이 자기 삶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직분도 받았고 은사도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 중심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하나님의 말씀의 젖만 먹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가 전하는 설교만 듣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2)여전히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도 여전히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3)시기와 분쟁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온유와 겸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시기와 분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고 자기 판단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기와 분쟁하는 것은 결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한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신앙인이라면 그는 아직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데 함께 가는 제자들은 서로 다툽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왕이 되시면 누가 그 오른편 왼편에 앉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느냐는 것으로 다투고 있습니다.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병정들에게 잡혀가 심문을 받고 갖은 모욕을 다 당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이 다 어디 갔습니다.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힘이 없습니다.
분명히 함께 하고 싶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이길 영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다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저들은 분명히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위협과 사탄의 시험앞에 무력합니다. 저들의 생각은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들이 변화된 것은 저들의 결심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였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하셨고 그 이후에 그들의 신앙은 생활과 일치하였습니다. 그들은 권세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결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 거룩한 말을 하고 거룩한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결의 은혜입니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제 2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중생이 제1의 은혜라고 한다면 성결은 제2의 은혜입니다.
1. 성결의 정의(성결이란 무엇입니까?)
1)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성결'이란 말은 '거룩', '정결', '성령세례', '불세례', '완전한 사랑' 등의 말로도 해석합니다. 죄인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를 용서받고 성령세례를 받아서 거룩한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9,10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깨끗케 되는 것입니다.
2)성결은 죄와 상관없이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결은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고, 흠없이 깨끗하게, 거짓없이, 진실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3)성결은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지않는 사람과 분명히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세계관이 다릅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말이 다릅니다. 말속에 믿음이 있고 거룩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속에 쌓인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말씀을 넣고 우리안에 생명을 넣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서 예수의 생각이 나오고 예수의 뜻이 나오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결은 세상에 살지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성결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세례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결의 필요성(왜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1) 성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15-16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된 피조물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닮은 인격과 성품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까 그 형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형상을 보여주고 그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 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성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의 머리에 쓴 관앞에 금패를 만들어 글을 새겨넣었습니다. 뭐라고 쓰여졌습니까? “여호와께 성결”입니다(출 28:36).
(데살로니가전서 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결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최고의 명령입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게 하셔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언행심사가 다 성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살전 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 성결은 성도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거룩해질 때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능력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무력합니다. 사탄은 더러운 영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고 더러워지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가운데 들어가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를 보십시오. 그가 악한 생각을 품고 악한 행동을 하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사울왕을 보십시오.
그도 하나님이 선택해서 왕이 되었지만 악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더러워지자 사탄이 그속에 들어가 그를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력해집니다. 죄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임을 받으면 능력을 회복합니다. 영적 권세가 나타나 세상을 이기고 원수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성결은 주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려면 성결해야 되며, 성결하지 아니하면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임하셔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우리 가운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주님과 동행하려면 반드시 우리가 성결해야 합니다. 성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결은 성도의 능력입니다. 성결은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성결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결의 방법(어떻게 성결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연약한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부탁했습니다.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결의 은혜는 성령세례를 받을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자 약속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1) 온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행 2장에서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온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증거하며 저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 때 저들은 마음에 가책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행 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회개하라"-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바로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자기가 죄인됨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향해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물질중심으로 살았던 내가 하나님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죄를 사랑하거나 죄를 만족케 하던 태도에서 죄를 미워하고 죄를 대적하고 죄를 끊어버리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그 죄의 처소에서 완전히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죄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작은 죄, 숨겨놓은 죄를 버려야 성령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기에 더러운 죄가 있으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마음의 그릇을 깨끗하여졌을 때 성령님을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으로 좆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적은 죄라 할지라도 양심에 꺼리끼는 것이 있다면 남김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2)모든 죄를 버리고 회개했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이고 인정하십시요.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저 손님처럼 계시고 여전히 내가 주인입니다. 그러면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내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이심으로는 믿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가 주인노릇하면서도 예수님만 기쁘시게 해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고 나의 노력으로 성결에 이르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그렇게 해보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성결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되실 때 우리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성결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렇게 고백하십시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시며 나의 주인이십니다.
베드로의 설교가운데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왕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손님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이시요. 우리의 왕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결심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나의 왕으로 모셔 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주인이 되셔서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속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결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다면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행 5:32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단계는 바로 순종의 단계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앞에 자기의 뜻을 부인하고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앞에 온전히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불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제사에서 제물을 잡아서 각을 떠서 번제로 드릴 때 불이 제단위에 내려와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면 내 삶 내 몸을 그 분께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롬12:1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뜻대로 살았고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늘 먼저 하나님의 뜻을 우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사신 주님의 몸입니다. 이렇게 바른 신앙관을 갖게 될 때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1)회개 2)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 들이고 3)예수 그리스도께 다 맡기는 것
4) 간절히 사모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구한다"는 것은 진실하고 강렬한 열망에서 나오는 구함인 것을 우리는 문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9)
바로 앞 절(5-8)에 나오는 끈질기게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를 주목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그냥 지나가는 기도나 열의없이 변덕스럽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열심히 사모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내 자손에게 주리니" 만일 사람이 목마르다면 "물, 물, 물"하고 찾는 갈급한 요구 뿐일 것입니다. 신체의 모든 세포들이 물을 달라고 갈급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이 오직 "성령, 성령, 오직 성령"을 갈급하게 찾을 때 메마른 땅에 물을 부어 주시듯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은혜를 받는 네 번째 단계는 간절한 요구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합심하여 기도하여 온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열망하는 기다림 속에 갈급한 심령은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그들의 목마른 영혼은 오순절에 이르자 갈증은 흡족한 성령의 단비로 채워졌던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신앙생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 사탄에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시기와 다툼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성령의 단비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제 2차적인 은혜입니다. 중생했으면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결은 성령세례를 받으면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1)회개해야.(작은 죄라 할지라도 죄에서 떠나자) 2)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인정해야 3)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라(순종) 4)간절히 사모하며 간구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결의 복음을 들으신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간구하십시다. 내 속에 있는 죄를 다 통회자복하고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그리고 간절히 사모하므로 간구하십시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성령충만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