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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다, 손 들어!” 범인들은 그리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고, 다섯 사람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뿐이었다. 흔하디 흔한 건물털이 사건. 하지만 무심한 시계 바늘이 계속해서 돌아가는 동안, 문제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씩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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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주워들을 게 있다고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도청하지? 하려면 선거 캠프를 해야지 말이야.” “그러게. 게다가 저쪽(민주당 후보 맥거번)보다 19퍼센트나 앞서고 있는데 말이지…. 어디서 보냈는지 모르지만, 우리 쪽은 아닌 게 틀림없어.” 하지만 틀림이 있었다. 6월 19일, <워싱턴포스트>는 다섯 명의 침입자 중 미국인인 제임스 매코드는 전직 CIA 요원이며 닉슨 재선 운동본부의 경비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그들의 수첩에서 역시 CIA 출신이며 닉슨을 위해 일했다고 알려진 하워드 헌트의 전화번호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갔다. 6월 20일에는 민주당이 닉슨 재선 운동본부를 상대로 수백만 달러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백악관에서는 워터게이트와의 연관성을 완강히 부인했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쿠바인들 몇몇이 벌인 하찮은 절도 미수 사건일 뿐이며, 매코드는 조직과 무관하게 사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당시 FBI는 이 사건을 수사하며 닉슨 재선 운동본부에서 다섯 명의 범인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것, 재선 운동본부와 이들이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것 등을 밝혀냈으나 공표하지는 않고 있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만이 그런 사실을 계속 보도하고 있었는데,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들은 말이라면서 사흘이 멀다 하고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이 익명의 제보자는 2005년에 가서야 FBI 간부인 마크 펠트였다고 공개되었다). 닉슨은 <워싱턴포스트>에 유형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한편 CIA를 움직여 FBI의 수사 활동을 막으려고 획책했으나 둘 다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여론은 아직 이 사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1972년 11월, 닉슨은 종전의 예상대로 민주당의 맥거번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워터게이트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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