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2009. 10. 17(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김한솔 PD ▣글 : 지현주 작가 ------------------------------------------------------------------------
[春.林.而.紅.樹.非.華.升.畵.閣.而.初.陽]
‘그녀는 봄날의 숲, 가을의 단풍, 아침의 햇살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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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에 대한 아름다운 찬사! 그녀는 바로 의자왕의 증손녀, 백제의 마지막 공주 부여태비였다.
잃어버린 백제 역사 속에 1400여년동안 감추어졌었던 부여태비! 그녀가 돌연히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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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태비 재연은 2009미스코리아 진 김주리가 맡았다. 김주리는 미스코리아다운 자태로 아름다운 부여태비를 재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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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공주, 부여태비의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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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백제는 660년, 멸망의 길로 들어서 사라졌다. 유민들은 당나라로 끌려가 당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묘지석에 적혀있던 831자의 기록과 함께 되살아난 부여태비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자왕의 증손녀로 백제의 마지막 공주였던 그녀가 당나라를 세운 황제의 옆에 함께 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방송최초로 부여태비의 생애를 추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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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족과 결혼한 부여태비 -남편을 왕위에 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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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태비의 남편 사괵왕이 다스렸던 함곡관 |
그녀의 묘지석은 부여씨가 괵지역의 왕비라고 설명하고 있다. 괵지역의 왕은 당고조의 증손 이옹. 그녀는 이옹과 결혼함으로써 당황실의 일원이 되었다. 부여태비는 후에 그녀의 아들이 왕에 올라 왕비에서 태비로 격상된 것이다. 그렇다면 부여태비라는 지위는 이옹과의 결혼으로 높아진 것일까? 보다 구체적으로 부여태비의 삶을 파악하고자 이옹의 자취를 따라가던 중 부여태비는 이옹의 둘째부인이며, 당의 대대적인 정권교체로 좌천되었던 이옹이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왕좌에 복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여태비의 힘에 의해 가능했던 이옹의 화려한 컴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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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유민들의 희망, 백제 왕가(王家)의 자존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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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고성 터 |
당나라는 백제의 멸망 후 건안고성에 백제 유민들을 모여 살 곳을 만들어주고, 백제가 존재했을 당시의 형식대로 백제국의 태자를 인정하고 이곳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에 백제유민들은 나라를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당나라 안에서 새롭게 성장해 나갔다. 중국 전쟁사의 한 획을 그은 양비천 전투의 주인공 흑치상지를 비롯해 사타충의, 난원경, 순장군 등 백제 유민들은 당나라 군대의 요직을 차지하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러한 백제유민들의 활약이 커질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백제 유민을 상징하는 부여태비의 지위도 함께 격상됐을 것이다. 살아있는 왕가의 후손, 부여태비는 백제 유민들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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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유민들을 위한 그녀의 선택 -부여태비의 애가哀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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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에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백제 유민들이 모여 백제의 명맥을 유지하며 건안고성에 살아가던 즈음 그녀는 이옹과 결혼을 결심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여인이 아닌 왕족의 선택이었다. 국가를 이어나가야한다는 왕족의 의무를 실현하고, 유민들을 하나로 묶어 잘 살게 하기 위한 길이었다. |
결혼 후에도 그녀는 현모양처로써 생을 다할 때까지 어질며 덕행 있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백제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슬픔과 노력이 있어야 했는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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