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둘째 일요일에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마로니에공원에 가면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단호박 풋콩 사과 햇밤 참다래 등 방금 딴 듯 싱싱한 채소와 과일, 피클과 곡물 잼, 초절임 등 가공품, 마른 나물 떡볶이, 청국장 쿠키 등 별난 먹거리까지 갖춘 장터 '마르쉐@'이 있기 때문. 마르쉐@이 특별한 까닭은 돈과 물건만 교환되는 시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시장이라는 것. 마르쉐@을 기획하고 주관한 이들을 만나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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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이 마주 보는 시장을 만들어보자 |
"마르쉐@은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농부 시장이에요. 그런 시장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의기투합했죠." 마르쉐@에서 농부팀을 담당하는 이보은(46)씨의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환경 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한 이 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의미 있고 재밌게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2011년 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단지 옥상에 조성한 텃밭에서 남는 채소를 나눠 먹을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당시 오가닉 카페를 운영하던 김수향(40)씨를 찾아갔다. 마르쉐@의 요리팀을 담당하는 김 씨와 수공예팀을 담당하는 송성희(46)씨는 여성환경연대 활동으로 평소 알던 사이. 세 명은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옥상에서 나온 채소를 나눠 먹고 그 채소로 메뉴를 만들자는 재밌는 생각이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 사고를 직접 겪었다는 김수향씨는 "내 삶의 토대인 먹거리를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알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려면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를 만나게 해줘야겠더라고요" 라고 말한다. 귀농한 경험이 있는 송성희씨도 귀농할 때 목표를 서울 생활에 적용하고 싶었다. '내가 먹고 싶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시장' 에서다. 이렇게 해서 얼굴과 얼굴이 마주 보는 시장의 그림이 그려졌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세 명은 장터라는 뜻이 있는 마르쉐에 열리는 장소를 나타낼 @을 붙여 '마르쉐@' 을 만들었다. |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디딤돌 역할 |
현재 마르쉐@은 매월 둘 째 일요일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다. 농부팀, 요리 팀, 수공예팀으로 구분되는 출점자는 2년 동안 180팀이 생겼다. 한 번에 60팀 정도가 출점한다. 최근에는 양재동 시민의숲에서 파일럿 프로그램 형태로 토요일에 두 번 열었다. 이에 대해 이보은씨는 "우리는 토요일에 장을 봐서 일요일에 맛있는 식탁을 차리는 가내식 농가를 꿈꿔요. 이런 것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농촌과 도시는 점점 멀어질수밖에 없거든요. 농부와 대화하고 직접 맛도 보고 조리법도 배워서 적용하려면 토요일에 집 근처 시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죠" 라고 말한다.
마르쉐@ 친구들 자신들이 안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사회적 과제를 안는 부담도 있다. 점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어르신, 귀농·귀촌을 시작했는데 기술이나 방법을 모르는 작은 농부와 가족, 소농을 응원하는 것도 마르쉐@의 과제. 대안적인 농사의 길을 만들어가는 데 마르쉐@이 디딤돌 역할을하고 있다.
마르쉐@과 만나면서 도시농부가 된 사람, 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사람, 도시농부를 하다가 귀농·귀촌해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도 나타났다. 갓 귀농해서 자리잡지 못한 이들이 마르쉐@을 염두에 두고 농사 계획을 하는 경우도 있다. 도시에서 거주하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생산물이 가치 있게 쓰일 브랜드를 만드는 등 아이디어도 낸다.
미즈내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