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品 第一
7. 게송으로 답하다
(2) 문수보살과 미륵보살의 과거 1
천신과 인간들이 받드는 세존께서
마침 삼매에서 일어나서 묘광보살을 찬탄하시되
‘그대는 세상의 눈이요, 모든 사람들이 귀의하고 믿으리니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받들어 지니라.'
여기에서 그대는 세상의 눈이요, 모든 사람들이 귀의하고 믿으리니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받들어 지니라.
묘광보살은 다시 말해서 현세의 문수보살 되겠지요.
과거의 묘광보살에게 그렇게 일월등명 부처님께서 부촉을 하십니다.
참 정말 영광스런 그런 부촉이지요.
‘그대는 세상의 눈이요'
부처님께 이런 부촉을 듣는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귀의하고 믿으리니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받들어 지니라.
부처님의 법장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중생들을 교화 하신
그 설법의 내용들이 바로 부처님의 법장 입니다.
그래서 법장 또는 법보장 법의 보배가 갈무리 되어 있는 곳,
아주 초기에 페엽이라고 하는 페다라스 나무 잎에다가 경을 썼을 때는
나뭇잎이라서 간수를 잘 하기 위해 큰 대 바구니를 만들어서
큰 대바구니에다가 내용별로 경전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까야라 라고 해서, 바구니라고 하는 그런 의미도 되고 그렇지요.
그런 것이 창고 또는 담는 갈무리 하는 곳, 그래서 감출 장(藏)자를 잘 씁니다.
내가 말한 법문은 오직 그대만이 아느니라.’
라고 세존께서는 묘광보살을 찬탄하여 기쁘게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법화경을 말씀하실 때 육십 소겁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말씀하신
최상의 묘한 법을 묘광법사가 모두 다 받아 지니었으니,
이 법화경을 설하여 대중들을 기쁘게 하고
그 날 즉시 천신과 인간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도리를 이미 너희들에게 다 말하였으니
나는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리라.
그대들은 일심으로 정진해서 방일(放逸)하지 말라.
부처님은 매우 만나기 어려워서 억겁에 겨우 한번 만나느니라.’ 하였습니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도리를 이미 너희들에게 다 말하였다. 그랬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그 깨달음의 내용을 다른 말로 하면
“모든 법의 실상의 도리다.” 그렇게 이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그 깨달음의 내용을 다른 말로 하면은 모든 법의 실상의 도리다.
그러니까 모든 존재의 실상을 부처님은 꿰뚫어 보았고,
그래서 노병사를 문제 삼고 출가를 해서 수행을 했는데,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닫고 보니 한꺼번에 해결이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노병사로부터 벗어난 편안한 삶을 구해서 출가를 했고 수행을 했지요,
그러나 노병사의 완전한 해결은 매일매일 행복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고,
영원히 평화로울 수 있는 일시적인 처방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지요.
또 일시적인 어떤 방편을 빌어서 잠깐 행복 하려고 한다면,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한 순간이고 세속적인 행복의 방법이지요.
세속적 행복의 방법은 그렇습니다.
내가 무엇을 갖고 싶을 때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갖고 싶은 것을 쟁취 했을 때,
그것이 명예가 되었든, 아니면 부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노력을 해서 쟁취했을 때 그때 순간적으로는 행복 할 수가 있습니다.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깨달은 분들은 그렇게 일시적인 방법 말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철저히 끝까지 행복할 수 있는 완전한 해결책이 없을까?
하는 그런 관점에서 어떤 세속적인 그런 행복의 길을 버리고
출 세간적인 행복의 길을 선택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불교라고 하는 것이 일단은 좋아서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고
부처님도 닮아 가려고 하고, 환희심도 내고 그렇게 하고는 있습니다마는,
참 이것이 제대로 부처님의 안목, 깨달은 사람들의 안목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인생을 보고,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방법을 고스란히 써서,
나의 행복도 그렇게 해결 하리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갖기 까지는,
이것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사실은 아니예요.
그러니까 참 큰 문제이기는 합니다.
큰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다행인 것이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가 자꾸 닮아 가는 것입니다.
닮아 간다 하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하게 여겨지지만,
사실은 또 아주 쉬운 것이고 또 간단한 것입니다.
평소에 관심 없는 일은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그것이 나의 것이 안 되지만,
관심만 갖게 된다면 참으로 상상도 못하는 그런 일을
아주 편안하고 쉽게 내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사례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나이 들어서 컴퓨터 공부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마음만 내면 별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나 마음을 못내는 사람은 태산준령 같이 보입니다.
불교 공부하는 것이 그렇고 나이 들어서 특히 경전공부 하는 것이
이런 새로운 기 자제를 만질 줄 아는 능력이 그렇고, 그렇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면 “태산 준령도 평지처럼 보인다.” 하는
그런 이치와 마찬 가지로,
깨달은 사람들의 그 어떤 행복을 위한 방법이나
우리들이 지금 추구하는 행복의 방법을 그 코드를 맞춘다고 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서 당부하신 이야기가 그렇지요.
그대들은 일심으로 정진해서 방일(放逸)하지 말라.
절대 게으름 피우지 말라 그랬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똑 같은 그런 훈시를 하셨습니다.
“절대 방일하지 말라.”그리고 ‘부처님은 매우 만나기 어려워서
억겁에 겨우 한번 만나느니라.’하였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꼭 알아야 할 일이기도 하고
자주 우리가 떠 올리는 이야기가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다.” 그럽니다.
참 그런 말을 정말 너무 쉽게 우리가 떠 올리고 자주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말 그것이 가슴으로 실천이 잘 안 되기는 합니다마는,
참으로 사람 몸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랍니다.
"맹구우목"(盲龜遇木) 이라고 해서 그 어느 정도 확률인고 하면
저 드넓은 태평양 바다 밑에 눈이 먼 거북이가 있는데
백년에 한 번씩 숨 쉬러 수면위로 올라 온다고 하자.
백년에 한 번씩 바다 밑에 있다가 숨 쉬러 올라와서 한참 숨을 쉬고 가야 하는데,
뭔가 의지할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올라 온다고 올라오다 보니, 큰 판자가 있고
그 판자가 마침 구멍이 나 있더라.
그래서 그 구멍 위로 고개를 쳐들고 앞발로서 의지하고
고개를 구멍 난 판자위로 고개를 쳐들고 숨을 한참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하는,
그와 같이 어려운 확률을 우리가 뚫고 말하자면은
사람의 몸을 받았다 하는, 이런 말씀 입니다.
수억 만분의 일의 확률도 안 되는 그런 정도지요.
백년 만에 한번 거북이가 올라오는데 올라오는 그 자리에
넓은 바다에 마침 그 순간에 판자가 그 곳에 떠 있을 까닭도 없고,
설사 판자가 떠 있다 한들 바로 그 자리에 있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고,
또 있다 하더라도 마침 고개를 드는 그 자리가 구멍이 난 판자라고 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확률입니다
그와 같이 참 어려운 인생을 만났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 몸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 만나기 어려우니까,
그 어려운 것을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하고 참으로 값진 삶, 보람 있는 삶을 살아서
참으로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찾도록 바랍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정진해서 방일하지 말라."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 그리고 억겁에 겨우 한 번의 만남이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마음에 새기면 불법이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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