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산일지[예봉산]
○ 일자 : 2007. 1. 21(일요일).
○ 장소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예봉산
○ 참석 : 백두대간 부부, 요산요수 부부. 4명
○ 한강 따라 남양주까지
여의도에서 한강을 거슬러 강변북로를 타고 달린다. 평소답지 않게 오늘은 막힘없이 달린다. 백두대간을 만나기로 한 덕소역까지 30분 만에 도착하다.
덕소역에서 백두대간 부부를 픽업하여 또 한강을 끼고 달린다. 남양주 능내리 조금 못 미친 곳 천주교 공원묘지가 있는 곳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능내리에는 1978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혼자서 버스로 택시로 어렵게 찾았던 다산(茶山)선생 묘소가 있던 곳이다. 근 30년 만에 능내리를 찾기로 하고 오늘은 다산 선생이 형제분들과 자주 올랐다는 예봉산에 오른다. 오늘의 산행 취지를 이해해 주고 기획해 준 백두대간께 감사를 드린다.
○ 예봉산
팔 베고 누우면 눈 아래에는 한강 물이 넘실대고 -
산허리가 온통 한강에 휘둘린 산, 예봉산.
작년 여름이던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를 내려 보며 검단산을 오르던 것이.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산이 예봉산이다. 조금 더 큰 사람이 양쪽에서 어깨라도 벌릴 양이면 맞닿을 것 같은 거리이다.
산 어귀에 도착하니 예봉산을 오르는 초입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대간의 설명에 의하면 산행 코스가 여덟 가지란다.
우리는 제 7코스인 소화묘원(천주교 신당동 교회 공원묘지)에서 출발한다. 11시 20분.
날씨도 화창하다. 절기로는 어제가 대한(大寒)이라지만 마치 봄날 같다.
천주교 공원묘지는 가파른 산기슭에 꽤나 넓기도 하다. 차도(車道)를 따라 오르기도 숨이 찰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일반 승용차는 나보다 더 힘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원이 한강을 바라보는 양지(陽地)에 있어 따뜻할 뿐만 아니라 고개만 들면 한강의 웅자를 볼 수 있음이다. 산허리가 온통 한강에 휘둘린 산, 예봉산. 팔 베고 누우면 눈 아래에 한강 물이 넘실댄다.
강 너머 검단산은 응달쪽이라서 곳곳에 눈밭으로 하얗다.
우리의 산행은 양지바른 오르막이라 눈밭이 없다. 능선까지 오르막 경사가 심해 숨이 벅차긴 했지만 눈이나 얼음이 없어 다행이다.
1시간 반쯤 왔지만 예봉산 정상은 아직 멀다. 조금 못 미치는 이곳은 견우봉과 직녀봉이다. 직녀봉 정상(589.9m)은 헬기장 시설이 있는 평지로 점심 먹기 좋은 장소이다. 직녀봉 안내판 아래 밥상을 펼친다.
점심 후에 계속되는 예봉산행은 전혀 새롭다. 직녀봉과 예봉산이 능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다. 직녀봉을 내려와 예봉산을 새롭게 오르는 형세이다. 율리 고개를 지나면서 직녀봉을 내려오는 곳곳이 응달진 곳이라 미끄럽다. 아이젠을 착용하고서야 어렵지 않게 하산이 된다.
다시 오르는 산행이 힘들다고 느낄 즈음 정상에 도착된다. 서울 근교의 유명산치고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정상석도 초라하다. [683M 예봉산 정상 ++산악회]. 행정기관이 아닌 산악회에서 설치한 표시석이라 하더라도, 정상에 당당하게 서있지 못하고 쫓겨날 자식처럼 한 곁에 서있다.
저 아래 흐르는 한강물은 많지 않는 수량으로 한가롭고, 그 너머에는 검단산의 뒷덜미가 눈밭으로 하얗다. 고개를 조금만 왼쪽으로 돌려보라.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한데 어울려 광활한 호수를 이루니, 팔당댐이다. 등 뒤로는 멀지 않은 곳에 운길산이 저기 있다.
하산은 팔당 2리 쪽으로 길을 잡으니 지름길이다. 급경사이지만 최단거리로 쉴 겨를도 없이 굴러 내려온다. 팔당 2리 안내 표지판이 있는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16시 30분이다.
조금 기다리니 시외버스가 온다. 그곳에서 산행을 출발한 천주교 공원묘지는 10분 거리이다. 한강의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교통도 편리하다.
○ 능내리 다산 유적지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버스정류장 한구간 거리에 능내리가 있다. 승용차로도 금세다. ‘다산선생유적지’ 안내 간판이 있어 찾기도 쉽다.
1973년 대학 3학년 때 강진에 있는 다산 유배지를 답사한 후, 1978년 겨울에 혼자서 다산 묘소를 찾았다. 그 때에는 벌판에 묘소만 있고, 부근에서 장작불을 피운 채 무슨 공사인가를 하고 있던 풍경이 기억된다. 근 30년 만에 와 보니 여러 가지로 정비 되어 있다. 기념관이 들어서고 다산 생가도 복원 되고 인근 어구도 온통 관광지 냄새가 나는 식당가로 변했다.
당시의 기억이 희미하다. 기록 해 놓았을 텐데 찾을 길이 없다. 오늘 다산 선생 묘소에서 바라보는 한강물도 그 당시에 보았는지 기억에 없다. 무엇보다도 우선 주소도 변동이 있었던 것 같다. 능내리의 주소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예전에는 ‘와부면 능내리’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내 기억이 변한 것인가? 현장이 세월과 함께 변색되어 가는 것인가?
기념관 안에 있는 유배시절을 설명하는 다산초당(茶山草堂)의 모형은 너무도 깨끗하고 단아하다. 마치 세도가의 별장 마냥 풍류깨나 넘치게 그려 있다. 선생의 유배시절을 왜곡하는 모습이다.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에 가면 더욱 이런 모습에 마음이 언짢다. 선생이 그 곳에서 초당(草堂)을 짓고 유배생활을 한 곳인데, 마치 다산초당이 어느 양반들의 풍류놀이 하던 정자(亭子)라도 되는 듯이 복원해 놓았다.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이나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의 세연정(洗然亭)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은 송강 정철의 식영정(息影亭)이나, 송순의 면앙정(俛仰亭)이라도 되는지 오해하지 않을까 두렵다.
선생의 유배시절을 왜곡하는 다산초당의 別莊化(?) 사업은 이제 그만 멈춰주실 것을 바란다.
2007. 1. 21.
요산요수 이 철 환 쓰다.
첫댓글 잘 읽었네....다음에는 다산 선생이 자주 올랐다던 운길산.. 수종사를 다녀옴이 어떠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