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11월 8일, 이 땅에서 일어난 한가지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사건은 이 나라의 교육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했다. 천안의 모 초등학교 5학년생의 절규와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왜 어른들보다 어린 나는 자유로운 시간도 없이 매일 학원과 과외를 받아야하고 엄청난 숙제에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 죽기 전에 그 아이가 같은 반 여자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라지 않았는가?
부모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부의 필요성과 방법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일을 사치스런 일로 치부했는지 모른다. 아이의 욕구와 필요보다는 부모의 기대와 만족으로 대화는 차단되고, 부모는 부지런히 벌어서 아이들에게 잘 먹이고 학원비나 대어주면 잘 자라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아이 편에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도 많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어 삶을 포기하고 죽음의 모험을 꿈꾸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것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화중 의원이 최근 1만 97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정신건강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어린이의 27.6%가 자살충동을 느꼈고, 53.1%는 가출충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하지 않는가.
'샘터꿈의도서관'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의 날개를 펴고 훨훨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서 2001년 7월 7일 부산 남구 대연3동에 세워졌다. 훌륭한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지역의 아이들이 좋은 책 속에서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스스로 배워 열악한 현실에서도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싶었다.
공간을 확보하고 두 아이가 가지고 있던 700여권의 책을 집에서 도서관으로 옮겨 놓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그 한 권마다 추억과 사연이 있는 책을 도서관으로 옮기기 위해 여섯 살 된 큰아이를 설득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단지 집에 있던 것을 큰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고, 혼자 보던 것을 여럿이 나누어 보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아이는 이해를 하면서도 선뜻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좋아, 그런데 내가 가져가도 된다고 하면 그 때 가져가." 나는 누구에게도 이 만한 권위있는 명령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명령 앞에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자기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어린이도서관은 '책 속의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실내를 꾸몄다. 이제 4000여권의 어린이도서와 1200여권의 부모님을 위한 교육과 교양도서를 확보하게 되었다.
우리 도서관은 초·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위치한 곳에 있다. 아이들이 자주 오가고 학부모도 자주 지나다닐 뿐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자고 홍보물을 전해 주기도 한다.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독서캠프를 비롯해서 다양한 전략적인 행사를 필요로 한다. 무료도서관이라는 것도 애써 강조해 보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요즘은 아이들을 붙들고 학원에 가기 전에라도 도서관에 와서 책도 보고 쉬었다 가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없다며 냉정하게 뿌리친다. 그리고 학원버스들이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줄줄이 아이들을 태워 사라질 때면 얄밉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한다. 학교 앞 문방구에 100원짜리 자판기로 위장한 오락기 앞에는 아이들이 벌떼처럼 꼬이는데 도서관에는 아이들의 흔적을 보기가 어렵다. 본전 생각도 나고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도서관이 없는 나라, 책 없는 도서관'이 우리의 현실이고 그나마 세워진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은 마치 유럽의 고성(固城)처럼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어서 보통 결심이 아니고서는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찾아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도 도서관은 발길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열어 두어야 한다. 가끔은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급히 화장실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 목이 마른 사람, 애써 아는 척을 하면서 구걸하는 사람의 쉼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가 바로 거기 있을 때, 그곳은 희망의 자리가 된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이 지금은 많이 찾아들지 않아도 그들이 꼭 필요할 때 책 속에서 쉴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꿈에는 변함이 없다.
평일에는 헐빈한 우리 도서관이지만 수요일 오후 시간과 토요일 오후에는 곳곳에서 모여든 아이들의 웃음꽃이 활짝 핀다. 수요일 오후 시간에는 '노래하는 아이들'이 아름다운 동시로 지은 노래를 배우며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에는 나이에 따라 책을 읽고 독서학습을 통해 이야기와 창작활동에 젖어 든다. 아이들의 눈에는 총기가 흐르고 그들의 몸짓에서 꿈이 솟아나는 샘이 넘쳐흐른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먼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곤 한다.
한편 그 아름답고 화려한 꿈의 날개를 접고 어둑어둑한 오락실과 PC방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저 아이들을 소음과 폭력의 현장으로 내몰아 붙인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가정에서는 자녀교육의 한계를 느껴 교육기관에 맡기려하고, 학교는 빗나간 교육정책과 학원에 밀려 붕괴되어 가고 있다. 학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학생들을 잡아두기 위해 전략적인 예습과외에 열을 올린다. 사교육비는 하늘로 치솟고 학교는 아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이 비극적인 순환과정이 언제쯤 끝이 날까?
나는 이런 꿈을 꾸곤 한다. 학교 안팍과 아이들이 지나는 길목에 그들을 볼모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사라지고 학교 안을 비롯해 동네 구석구석마다 아이들의 문화공간이면서 꿈을 키우는 도서관들이 세워지는 그 날을 말이다. 산을 허물고 강을 메우며 바다를 가로질러 자동차 길은 잘도 내주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뻗어나갈 길을 내주는 일에는 그리도 무심한지.
나는 오늘도 내 아이들이 뒹구는 도서관을 돌아보며 동네 아이들이 함께 뒹구는 환상 속에 빠져들어 간다.
'너희는 도서관에서 자라는 행복한 아이들이란다. 위대하게 살다간 분들의 숲을 거닐거라. 아름다운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위대한 꿈을 찾거라. 그리고 너희들만의 아름다운 희망의 세계를 만들어 가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