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가야지 ?
새벽에 가야 한다면서 그랬 자나
왜! 가기 싫어서 그래 …
아니 애들은 다들 갔어 응!
그래 준비 하자
나와 아내 둘이서만 가는 단출한 여행이라 준비는 그리 어렵지 안 했다. 아침도 간단하게 먹고, 따라서 콘도가 예약되어 별도로 취사 도구니 텐트니 번잡함 없이 그저 간단한 옷가지 몇 개씩 만을 준비하고, 애들과 같이 갔으면 했는데 학교니 학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 하는 수 없이 서운한 마음을 뒤로 하고 2001년 7월 21일 토요일 09시 14분 집을 나셨다.
목적지는 삼포 해수욕장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033-631-3811/1) 이다 예전에 “삼포로 가는 길” 하는 유행가 가사가 관련이 있는 곳 인가 하고 여러 곳을 뒤져 보아도 삼포란 의미와 관계를 찾지는 못 했다 올림픽 대로를 따라 팔당대교를 지나는 데는 그리 복잡한 도로 사정도 아니 였고 날씨도 약간 구름이 있을 뿐 여행하는 데는 부적합 할만한 장애 요인은 없었다. 지난 가믐 때 설악산 다녀 올때 양평을 지나 북한강 줄기에는 물이 너무 없어 애처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비도 많이 오고 해서 물이 많이 있겠다 한 마음속 생각은 착각 이였다 가만히 생각하여보니 서울에만 380mm 의 비가 와서 물난리 였지 이곳은 아니 였다. 운전 하는데도 매우 편안 했다 요즘 “무인단속카메라” 가 있어 운전 하는 데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운전자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게 또한 무인 카메라라 한다 여행 후 돌아와서 받아보는 속도 위반 통지서 때문이라 한다. 어느 주점에서의 옆 좌석의 술 취한 취객의 말이 떠오른다 교통 순경 아저씨 보다도 더 무서운 게 그것이란다, 아마도 음주 운전 시를 말하는 듯 싶다, 그래서 인지 길가에 교통순찰 아저씨는 보기 힘들 정도였다.
철정검문소를 지나 인제, 원통을 지나 한계령 분기점이다 이곳으로 가면 한계령으로 양양이야 그리고 미시령, 진부령 길로 들어 섰다 내가 보기에는 산과, 냇가 와 바위가 가장 잘 어울려 저 있는 구간이 설악생수공장 까지의 도로가 아닌가 한다. 아! 좋다. 참! 여보 배고프지 아침도 간단히 먹고 내가 맛있는 황태구이를 사줄게 하니 돈 많이 같고 왔나 봐 그럼! 당신과의 시간인데 언제 돈 써 하며 백담사 입구를 지나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 그 유명한 황태덕장이 많다는 용대리이다. 우리가 갈 길은 미시령 이지만 전에 맛있게 먹어본 진부령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그 집은 새로 단장 중이였고 꿩 대신 닭이라고 바로 앞집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 복잡한 집이 맛있데 하며 들어선 집 원조용바위식당(033-462-4079) 도착한 것이 12시 35분 이였다.
황태구이정식 2인분(1인분 6000원) 과 동동주 1/2되 (3000원)을 시켰는데 반찬은 고추 잎 무침, 깻잎 저림, 김치, 장아찌 와 황태국에 황태구이 나로 써는 참 맛 있어서 어때 맛 있지 하며 운을 띄운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서 하는 것이나 같은데 하며 집에서 요리 했던 본인의 솜씨와 같다고 은근히 자랑 하고 싶은 정도 였나 보다 그런데 아저씨 황태국 어떻게 만들 길래 이렇게 뽀얗게 곰국같이 되요 하며 묻는다 싱싱한 황태만을 오래 삶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언제부터 황태가 유명 했던 건가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60년 초 북어를 먹어 본적이 있다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고향 우리집에서는 제사에 껍질을 벗긴 북어를 꼭 제사상에 올린다 그리고 그 딱딱한 북어를 잘게 얄게 찢어 고추장에 찍어 드시던 아버님 별미 여름 점심 이다 그런데 요즘은 북어 살이 딱딱하지 안고 푸석 푸석하다 예전에는 동해 바닷가에서 명태를 말려 북어를 만들었고 요즘은 진부령 고개를 넘어 산속에서 명태를 말려 황태를 만든다고 한단다 동해 바닷가의 겨울 날씨는 아침,저녁에는 춥고 낮에는 따뜻하다 그래서 눈이 왔다가도 빨리 녹아 명태 살이 단단하게 된단다. 그런데 진부령 산속에서는 겨울 내내 춥고 눈도 많이 와서 명태에 눈이 쌓였다가 다 녹기도 전에 다시 눈이 쌓이고 하기를 여러 번 아니 열번 정도를 반복하는 동안 명태 살은 단단하지 안고 부드럽게 된다고 한다. 이 방법은 북한의 실향민이 북한에서 했던 방식이라고 한단다.
미시령을 넘는데 주변의 나무들이 매우 싱싱하고 깨끗해 보였다 가믐 때 보았던 나무 보다는 훨씬 더… 구름이 많이 끼어 산 등마다 걸처서 마치 성난 말들이 앞 발을 들고 싸움하려 달려 드는 듯한 무겁고 무서운 듯 하다 아마 산 너머에는 비가 오는 듯 싶어 보였다. 정상에 다 달아 멈추려 하니 그냥 가자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구름이 많아 빨리 가고 싶은가 보다 서서히 내려오다 세계 잼버리 대회장을 지나 대명 콘도를 바라 보면서 이정표가 통일전망대, 청간정이 있었다. 그래 내가 가는 곳이 청간정을 지나야 하니 속초 시내를 안 거치고 가는 길이구나 하며 들어섰다. 참 한적한 산골 동네 였고 차량도 없고 농로 보다는 넓지만 콧노래를 중얼 중얼 거리며 농촌 풍경도 보면서 신선이 따로 없는 듯 느끼며 지날 수 있었다.
곧 이어 큰 도로가 나왔다 그것이 바로 7번 국도다 부산에서 북한 함경북도 온성까지 가는 해변 길이다. 여름철에는 가장 피서객이 몰리는 도로로 들어서자 마자 청간정 이정표가 나온다 관동팔경 중에서 남쪽에서는 제일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올라가서 보면 참 경치가 좋고 시원하다 현판은 이승만 전대통령의 글씨이고 안에는 최규하 전대통령의 방문 친필이 걸려 있다 옛날에는 가장 경치 좋은 자리에 누각을 세우고 평상시는 쉼터로 사용 하고 위급 시에는 지휘소 또는 관측소로 사용 하였다 한단다. 조금지나 조그마한 어촌 동네의 모퉁이에 천학정이라고 마을 정자가 있다 참 탐스럽고 아담하다 바다를 내려다 보면 스크버 다이버들이 훈련 하느것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안내판의 지붕 설명이 팔작지붕을 팔자지붕으로 잘못 표기 되여 있고 낡은 마루 바닥 하나를 누군가 떼어 놓고는 끼우지 못 한 채로 있었다. 아마도 우물마루의 특성을 모르는 탓인가 보다 그래 슬그머니 끼어 놓고 왔던 지난번 봄 생각이 난다. 계속하여 통일전망대 쪽으로 올라 가다 문암해수욕장, 백도해수욕장 그리고 삼포코레스코가 보인다 이곳이야! 내 생각에는 길에서 좀 그래도 약간은 해변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믿었는데 바로 길 옆 이였다. 아무튼 도착 하여 501호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후 02시 30분 이다.
바닷가 해수욕장을 먼저 갈가 관광을 갈까 물으니 날씨가 흐린 탓에 해변가는 것은 내일로 미루고 떠나기 며칠 전부터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아프다고 하며 사우나에 가서 찜질을 하겠다고 간다고 한다 나도 가자 구 하는데 가기 싫은 곳이 사우나라 방에 있겠다고 하니 미안하게 생각 되였는지 어떻게 있어 하며 걱정한다 괜찮아 혹시나 하고 책을 가지고 왔지 “ 돌 베게 “ (사상계 사장 이였던 장준하씨 지음) 말야 책보고 있을 테니까 염려 붙잡아 매고 같다 오시구려 하고 책을 보기 시작 했다 돌 베게는 창세기 28장 10-15장에 나오는 야곱의 돌 베게 이야기로 결혼 일주일 만에 일본군 징용으로 떠나면서 아내에게 일본군에서 탈출할 때 그 암호로 약속 하였던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게를 찾는다 ”, 또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게가 나를 기다리 겠는가” 일본 징용으로 중국 중지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제비도 넘기 힘들 다는 파촉령을 넘어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르는 6천리길 7개월 동안 그리고 1945년 8월 18일 해방 후 김구선생과 함께 주한 미군사령관 이였던 하지중장의 주선으로 미군용 수송기 C-47로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 했으나 일본군의 저지로 다시 돌아갔다 다시 1945년 11월 23일에야 김구, 김규식, 이시영등 15분이 다시 김포공항으로 도착하여 한국민주당 송진우당수, 한국국민당 안재홍당수, 인민당 여운형당수, 조선인민 공화국 허헌 국무총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구미 위원장 단장대표 이승만과 함께 정부 수립 준비까지의 약 2년간의 이야기 이다.
내 기억으로는 오후 6시 30분 정도 되어서야 아내는 들어와 저녁에 무엇을 준비할까 묻는다 참 둘이서 여행하니 좋은 점이 있다 여럿이 오면은 여자는 음식준비 하랴, 치우랴, 술상 차리랴 그리고 다시 치우랴 피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움을 포개게 되고 그래도 식구들이 좋아하니 나보다도 모두 즐겁기를 바라는 한국의 여성들 소박하고 대신 어려워 할 줄 아는 대견 스럽고 한편 으론 또 고맙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밖에 나가 간단히 먹고 들어오자 했더니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그래 좀 어때 옆구리는 개운해 아니 그래도 아직 좀 아 퍼… 밖에 가까이 순두부 백반이 눈에 띄어 들어 같다 아가씨 삼포라는 이름에 무슨 유래가 있어요 혹시 유행가 가사와 관련 있어요 하니 모른다고 한다 반찬에 저린 꽁치 구이가 참 간이 맞아 맛있게 그리고 이동 막걸리까지… 그리곤 비가 부실 부실 내리어 해변 근처만 둘러 보고 방에 들어 왔다 아내는 내일 아침을 걱정 한다 내일 아침 일찍 관광을 갈 것이니까 가다가 해장국을 먹지 하고는 TV뉴스를 보는데 MBC 방송은 자막이 움직여 못보고 KBS 은 그런대로 약간 볼 수는 있으나 웅하는 잡음 소리와 화면이 자주 흔들려 피곤하게 볼 수뿐이 없다. 그래서 1층 안내에게 문의 하니 이곳은 군 작전 지역 이여서 군 통신망 관계로 TV시청을 잘 못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삼포가 무슨 유래가 있어요 하니 모른다 한다. 아무튼 뉴스도 다 못보고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 시간을 보니 5시 30분이다 잠결에 아내는 쌀을 물에 담그라고 한다 그래 쌀을 담가 놓고는 다시 잠에 들었다. 여보 그만 일어나요 관광 간다면서 그래 얼른 일어나 보니 7시 30분이다 얼른 세수를 하고 준비하여온 반찬, 열무 물김치, 김, 고추멸치 볶음, 산나물, 고추장으로 아침을 먹고 지도책과 카메라를 챙기면서 썬 그라스 가지고 왔어 하니 생각은 했는데 잊었다 한다. 결혼 20년 만에 거금을 들여 처음 사준 것인데 아!! 아쉬워라 썬 그라스 쓰고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던데 하여튼 08시 50분 콘도를 출발하여 송지호를 지나, 진부령 길과 만나는 간성을 지나 거진, 화진포를 지나 대진포구의 등대를 보며, 동해안의 최고 북단에 위치한 포구와 등대라 한다.
조금 지나면 통일안보 공원이 있다 그곳에서 통일전망대 관람 수속을 하고 09시 30분 안보 교육을 받고 각자의 차량으로 다음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와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발급 받고 작전지역을 말하는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으로 들어 간다 첫번에 만나는 것이 명파초등학교 개울 옆에 3단으로 부서져 놓여 있는 다리를 본다 전쟁의 흔적이다. 말로만 듣던 최북단에 있다는 명파초등학교가 아닌가 아담한 단층 건물이다. 그리고 논, 밭 그리고 해변을 끼고 쭉 가면 통일전망대에 도착 한다. 이곳이 7번 국도의 총착지가 아닌가 가고 싶어도 더는 못 가는... 바로 앞에 교회 종각과 비슷한 삼각형의 탑문에 “평화 통일” 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화장실 출입문 이였고, 여자, 장애인, 남자로 구분 되여 있다. 화장실 입구에 평화통일 이라 하니까 충남 서산의 개심사의 “해우소” 가 생각 난다 화장실에서 모든 근심걱정을 다 버리고 통일 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였다. 전망대에 올랐다 그렇다 TV에서 북한과 금강산을 이야기할 때 바탕 배경 화면으로 항시 보여 주던 그곳 육지에서 쭉 바다로 뻗어 있는 마치 반도 같이 야특막하게 연결 되여 있던 작은 산 그곳이 “ 구선봉 ” 북한 땅이다 비록 날씨가 흐려 금강산은 구름 속에 숨어 있어 보지는 못했지 만 육로로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내 욕심 인가...
다시 되돌아 대진포구를 지나 화진포로 그런데 동해안에는 해변 가까이 호수가 많다 그것을 석호라 한다 이것은 강물에 실려온 모래가 바다 물결에 맞 부딪쳐 강 하구에 쌓아지기를 거급 하여 이룬 모래톱이 길게 바다를 가로 막아 생긴 호수를 말 한다. 강릉의 경포호, 속초의 청초호 와 영랑호, 고성의 삼일포 와 송지호 그리고 화진포, 통천의 강동포 와 천아포등이 있단다. 이곳 화진포도 석호의 하나이다 이곳은 8.15 해방 시는 38도선 이북이라 북한의 땅이 였다가 6.25 전쟁시 용감한 우리의 국군 용사들 덕분으로 현재는 우리 땅이다 그래서 화진포에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김일성 별장이 있고 화진포 내쪽을 마주 보면서 이승만 별장 과 이기붕 별장이 있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유물과 약력을 보면서 왜 대한민국과 조선이 연결 되지 안 했을까 하는 의야심이 약간은 이해 될 듯 싶다 1875.4 황해도에서 태어나, 1895.4 배제학당 입학, 1898 독립협회 구국운동에 참가, 1899.1-1904.8 매일신문 과 xxx국신문을 통해 고종황제의 보수정권을 비판한 이유로 반정부 죄목으로 한성감옥투옥, 1907.6 조지 워싱턴 대학 학사, 1910.2 하버드 석사, 1910.7 프린스턴 대학 박사, 1945.10 귀국.
언젠가 답사를 할 때에 어느분이 건봉사 불이문, 홍교를 이야기 했는데 전혀 어떤 곳 일까 감히 안 잡혀 이해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찾아 가는구나 내심 속으로는 기뼜다 모르는 한 부분을 확인 하는구나 하는 맘에 아내에게 표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가지 말자 하면 어쩌지 하여 조용히 실행에 옮긴다. 가던 길을 되돌아 간성 대대리 검문소에서 다시 한번 확인 하고 진부령으로 향하여 불과 5분 아니 6분 정도 지나니 돌로 된 乾鳳寺 입구가 있다 길 따라 한참 들어 가다 보면 어느 부대 담 앞에 “적멸보궁 금강산 건봉사” 방향표시가 붉은색으로 있다 그렇다 설악산 신흥사 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등을 말사로 두고 있었으니 금강산 건봉사가 맞지 도로는 새로 포장 되여 상태가 매우 좋고 입구에 가니 부도 밭이 보인다 내가 보았던 중에 제일 많다 원래의 길은 부도 밭 앞이 였나 보다 지금은 건너편에 넓은 길로 새로 포장 되여 주차장까지 있다 입구를 지나 들어가니 작은 홍교를 지나 수색3중대의 부대정문을 돌아서서 바로 건봉사 주차장이다. 우선 생각 했던 것 보다는 불이문이 적게 보였고 돌 기둥에 “금강저” 무늬는 또렸 했다. 들어서서 왼쪽은 南無阿彌타佛/나무아미타불 의 돌 기둥이 있고 오른쪽에 능파교 여수의 흥국사 홍교 보다는 적었지만 잘 어울어져 있었고 대웅전 입구에 바라밀 문양의 상징기호가 새겨진 두개의 기둥을 지나 대웅전 앞 뜰 적멸보궁에 웬 대웅전 ??
아! 여보 배고프지 그래 12시 30분이니까 점심 공양 시간이다 절 밥을 먹고 갑시다 제의하고 공양간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친절히 들어오라 한다 들어서 앉아 스텐 대접에 밥을 뜨고, 밥 위에 무생채, 호박무침, 오이 장아찌, 김장끝 총각김치 와 냉국 그리고 밥상에는 김장끝 김치와 고추장이 있다. 비벼서 먹는 그 맛이 작년 석가탄신일에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점심 공양, 계룡산 갑사, 신흥암 등에서 잊지 못할 그 맛들이… 여름에 작년 묶은 김장 끝 김치 검게 찌들어 마치 버리고 싶은 김치건만 그리고 묶은 김장끝 총각 김치 알타리 크기가 손가락 반만한데 반으로 쪼게 놓았고 군내가 나련만 냄새까지 시큼한 제 맛이다. 고추장 맛 어느 종가 집에서 아끼는 묶은 고추장 그 맛을 아십니까. 아시면 그 맛이야 하세요.. 후식으로 떡과 과일을 먹고 나오니 절로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공양간 부엌에는 여러 마리의 제비가 앞문에서 뒤문으로 거리낌 없이 드나드니 아마도 부처님 집이라 생각 된다.
1878년 큰 산불과 6.25전쟁 때 전소 되여 그런지 빈터가 많다 무악대사가 머물던 의정부 회암사 보다 크다 그리고 적멸보궁은 어디에 있지 저 위쪽 끝을 보니 일반 집 모양의 구조가 있다 단청 된 것을 보니 보통 집은 아니듯 싶어 가서 보니 입구에 “ 이곳은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입니다 “ 의 알림 판이 있다 그런데 왜 이곳에는 사람들이 없고 기도 드리는 보살 두분 뿐이 였고 뒤에 양산 통도사 처럼 금강 계단에 모셔져 있었다. 밖에 나와 보니 위로 올려 보는 것과 위에서 내려 보는 것과 차이가 있나 빈터가 넓다. 주차장 한구석에 만해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의 시비가 있고 그 옆에 조령출의 칡 넝쿨 노래시비가 있다. 한용운은 이곳 만일선원에서 삼하안거를 성취하고 조령출은 이곳에서 출가 하였다 한다. 그런데 난데 없는 “충성” 외침의 함성소리가 주차장 바로 뒤의 부대에서의 소리다. 이곳은 1358년 나옹화상이 증건 하면서 절 서쪽에 봉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건봉사라 하였다 한다.
다시 진부령 길을 돌아서 송지호 가기 전 공현진에서 왕곡전통 마을 길로 들어 섰다 불과 1.3Km 라 한다 봉우리가 다섯 개로 마을을 둘러 싸고 있기에 전쟁도 피해 갔다 하고 1988년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 제1호로 지정 되었다 한다 이곳은 양통집 구조로 한 용마루 안에 앞 뒤로 방을 꾸민 집을 말한다 그런데 오손 도선 모여 재미 있게 사는 마을 전체 풍경이라 들어가 보기가 미안하게 느껴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오는 길에 어! 저 간판 좀 봐 “멍멍이와 꼬꼬네” 재치가 있네 보양 음식점 간판은 좀 보기에 산뜻하지 못하고 개운하지는 안은 데 이경우의 느낌은 좀 다르군
1750년 불타고 3년 뒤에 재건축된 지금으로 부터 248년 전의 고가옥이 있다 하여 보고 갑시다. 문패를 보니 현재의 주인 어명기 씨이고 조부 어용수 선생이 1860년 구입 하였다 한다. 그래서 “高城 魚命驥 家屋 / 고성 어명기 가옥” 이란다 들어 가는 입구부터 작은 검은색 대리석으로 방향표시가 잘 되여 있고 주변은 모두 산불로 큰 나무는 없고 키 작은 잡풀과 어린 나무만 근근히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구나 삼포 콘도에서 서쪽의 산이 민등산으로 바위가 유난히 하얗게 들어 나 있어 이상하다 하였더니 산불로 인한 것이구나 다행이 집안에 까지 자동차가 들어 갈수 있어 도착하니 한 인자하시고 곱게 나이 드신 할머니 아니 머리는 하얗데 얼굴은 어느 양반 집 맏 며느리 같으신 분이 방문을 열면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물으신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책을 보고 찾아 왔다 하니 선뜻 예! 하며 들어와서 자세히 구경하시라고 안내 해 주신다 팔작지붕에 장대석 위의 안채와 곳간채만 남아 있다 부엌과 외양간 그리고 2층의 큰 쌀 항아리 밖에 발방아집과 뒷간 당시로서는 상류층의 양반 집인 듯 싶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할머님 같으신 분이 정동교회 여성 신도회 회장을 역임 하였고 현재는 서울에서 사시면서 한 달에 1-2회 정도 와서 청소하고 관리를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현재 정동교회 여성 신도회 회장을 2회 역임하시고 장로가 되신 저의 외숙모님도 잘 알고 계시니 참으로 받가웠고 문화유산 답사가 취미인 나로서는 굉장히 고맙게 느꼐지는 분들이다.
관광은 이것으로 끝하고 콘도로 돌아오니 기억으로는 오후 04시가 넘었던 듯 싶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바닷가로 가려 했으나 여전히 몸이 아프다 하며 불편해 하여 잠시 쉬기로 하고 편안한 낮잠을 즐기고 눈뜨니 오후 07시경 여보 내일이면 떠나는데 오늘은 생선회를 먹읍시다 하여 콘도 앞 삼포횟집(033-632-0367)에 들려 우럭을 시켰다 친 철하게도 오징어와 멍게도 함께 주어 소주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고서 아줌마 삼포가 무슨 뜻이 있어요 모르는데요 앞바다에는 하나 둘씩 오징어 잡이 배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백사장에는 폭죽이 불을 뿜고 광장에는 100원 동전으로 접시, 재털리에 올리기, 풍선 맞추기, 과녁, 농구공 과 공기총 게임은 제철을 만난 듯 소리를 지르며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아! 아저씨 혹시 삼포라는 이름에 무슨 이유나 유래가 있나요 모르겠는데요 그저 이름이겠지요 한다. 그리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고 콘도로 돌아와 뉴스를 보니 홍천 과 양평에 비가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내심에는 이번 가는 길에는 북한강 줄기에 물이 꽉 차있겠군 생각 되였다.
마지막 날 아침 05시에 눈을 떠 시계를 보고 다시 잠에 들었다 다시 06시 30분 경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 하였고 아침은 어제 아침 먹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간단하게 해결하고 카메라만 챙기고 모두 짐속에 행여 진부령 정상에서 한 장 찰칵 하려고 하며 07시 50분 콘도를 출발하여 간성을 거처 진부령으로 그런데 진부령은 매우 완만 하였다 미시령과 한계령하고는 전혀 다르게 차량도 전혀 힘들지 안고 아니 벌써 정상 562m 사진은 당연히 없는 거지 아니 이것이 무엇이야 이곳에 패션 쇼가 있나 “닭이 옷 벗는 날” 이 간판은 통닭 집 입니다. 한참을 내려 가는데 도로 옆에서 갑자기 거수 경례를 하며 한 군인이 양구까지 부탁 한다고 한다 그래 뒤 좌석이 비여 있어 태우고 물으니 집이 부천인데 아버님이 경영하시는 공장에 이번수해로 침수 되여 청원휴가를 받아서 도우려 가는 길이라 한다. 참으로 갸륵하여 나는 서울 가는데 함께 가면 되겠지 하니 매우 고마워 한다. 이야기를 해보니 아버지의 연세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그러니 더욱더 지금 내친구들의 아들이 거의 다 군에 가 있다 그래서 마치 친구의 아들을 데리고 가는 기분으로 속도도 지키면서 양구를 지나 인제를 지나고 그 군인의 이름은 김형찬 이병이다.
인제 선착장인 군축교를 지나 조각공원의 가나고개를 넘으면 홍천이다 고개를 넘으니 확실히 비가 많이 온 것이 실감 난다 도로위로 물이 흐르고 나무뿌리며 쓰레기 들이 널려있고 도로 밑에 집들이 물에 잠겼던 흔적이 있다 아니다 다르랴 차량들이 멈추고 앞에의 차량 행렬은 길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산사태가 있었나 보다 약간씩 움직이며 지날 때 냇가 다리 옆은 엉망이다 물에 떠내려온 나무뿌리등과 쓰레기 등이 다리에 걸려 있어 흐르는 물은 방향을 바꾸어 옆으로 주택 그리고 밭 논으로 밀어 닥친 것이다 냇가의 구비 구비에 물보라가 일고 있다 물살이 빠른 것이다. 아니 이것은 어떻게 큰 다리가 끊어지고 다리에는 나무뿌리가 산 더미처럼 쌓이고 앞 동네는 밀려온 물과 모래로 작은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고 119구조대원이 있고 경찰들이 도로 정리를 하고 있다 이곳이 신문에서 보니 한 동네가 모두 잠기고 실종1명 사망5명의 사고가 발생한 주촌면이다 어쩌랴 계속 홍천 시내 가까이 까지는 모두가 그러한 상황이 연속 이였다.
홍천 시내를 지나며 강물은 대단 하였다 갈 길이 바뿐 나 아니 뒤 좌석의 군인을 생각하여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계속 양평에 오니 바다 같은 강이다 왜 이리 바쁘게 넓게 흐르고 있는지 물의 위력과 무서움을 재삼 느낀다. 양평의 한 휴게소에서 두부 탕으로 함께 점심을 먹고 바뿐 듯 서울로 향해 향해 종로5가 1호선 지하철역 입구에 내려 주고 집에 돌아 오니 오후 03시 50분. 비록 삼포의 의미를 확인하지는 못 했지만 여기 까지가 내가 본 金剛山 南쪽 이야기 이다.
김형찬 이병!!
아버님 공장이 잘 수습 되고
충성!! 하며 귀대 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