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화상28-1-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2008.11.2.첫째주말 법문.
부작제악 봉행제선 하며 자명정정 즉제불교 니라 나~
초월선악 여여심신 하면 즉자성합 문수행혜 니라 나~
전등록 제불통 게송에 이르기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뜻을 맑힐지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했으니 선과 악을 초월하여 마음이 여여해지면 곧 그대로 자성과 계합하여 대오견성을 하게 되며 그 깨친 바를 행하는 지혜가 문수보살행인 것임.
이 마음을 반조해 증득하지 못하면 겁을 다하도록 읽고 알고 말하여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임~
부처의 계급을 밟지 말고 다른 이의 깨친 것을 따르려 하지 말고 오직 스스로 마음을 닦고 깨쳐야 하는 것임~
[묻기를 “有說, 無說의 뜻이 무엇인지요?”하니
앙산 선사가 이르기를 유설토란 것은 곧 부처의 말씀이요, 무설토란 곧 선이니 곧 곧바로 전하여 깨쳐들게 하는 문
(徑截門:敎外別傳:不入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한 것이요”하니 “어떤 것이 응하여 불지에 들게 하는 문(應機門)이요?”하니 “그대가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박(양미동목)여 법을 보이는 이것인즉 하물며 말로써 하는 것이랴.”하자
“어떤 것이 무설토인지요?”하니“선근인이 이것이니 이가운데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하자 “그렇다면 어찌하여 고인이 이르시기를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전한다.’ 하는지요?”하니 “장경 화상이 이르기를‘비유컨대 허공과 같아서 상없음으로써 相을삼고 함이 없음(무위)으로써 用을 삼는다.’ 하였으니 선을 전하는 이도 역시 그러해서 전함이 없음으로써 전함을 삼나니 그러므로 전하되 전하지 않는 것이니라.”하자
“무설토 중에 능히 제도하는 이(能化)와 제도받는 이(所化) 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교문의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 가운데 또한 능과 소를 보지 못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옵니까?”하니
“교문의 극치에 이르는 것(至)은 곧 부처님의 마음을 깨달음이니 이름이 해인삼매(海印定)이요, 삼종세간 법인이 나타나되 길이 알음알이(解)가 없나니 이는 곧 삼종세간(기세간: 이 삶의 국토, 중생세간:불이 아닌 중생, 지정각 세간: 부처님들)의 자취가 있음이니라.
이제 조사가 법으로 대신하는 것은 한가로움에 이른 도인의 마음속에 길이 깨끗하고 더러움의 두 가지가 없음이니 그러므로 삼종세간이 곧 그것이므로 또한 출입의 자취가 없으며 이런 까닭으로 같지 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고인이 이르기를 ‘행하는 이의 마음 근원은 깊은 물과 같아 깨끗함과 더러움 두 가지가 길이 나지 않는다.’하였느니라.”하였음~
다시 말하자면 부처님의 교는 응기문, 유설문, 언설문, 정예문이요, 조사의 도를 경절문, 무설문이라 함~
6조 단경에 “진여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6근으로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만, 만상에 물들지 아니하여 진성은 항상 자재하니라.”한 것을 계합해야 하는 것임~
본래면목인 불성인 참마음은 말로써 이를 수 없으나 어쩔 수 없이 이름 하기를 반야경에서는 보리라 하고 화엄경에서는 법성, 금강경에서는 여래, 금광명경에서는 여여, 유마경에서는 법신, 기신론에서는 진여, 열반경에서는 불성, 원각경에서는 종지, 승만경에서는 여래장이라 이름하며, 또 조사문에서는 자기, 묘심, 주인공, 勿絃琴(줄 없는 거문고),무진등, 심인, 심원 등으로 이름 하는 것으로 그 본체는 인과를 뛰어나고 고금을 꿰뚫고 일체 대대가 없어서 태허공과 같이 일체처에 두루한 것으로, 이것이 일체 중생의 본래 있는 불성이며 일체세계 생명의 근원인 것이니, 이로부터 태중에서는 신이라 하고 세상에 사람으로 나오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감촉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활동(眼耳鼻舌身)하는 것이니 일체묘用의 바탕 근원인 體라 하는 것임~
따라서 체와 용은 물과 파도와 같아 물은 파도를 여의지 못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임~
이 참마음은 범부나 성인에 있어 다름없이 구족해 있고 다르지 않아, 다만 범부는 번뇌 망상의 무명에 덥혀 있어서 참마음이 현전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금강이 흙 속에 묻힌 것과 같은 것임.
일체에 두루하여 처처가 보살의 길이요, 두두 물물이 다 공덕림이며, 백초가 부처의 어머니라 하는 것임~
따라서 분별이나 사량으로 알지 못하며 사랑도 미움도 취하고 버릴 것이 없어 절대 평등한 평상심인 것임~
그러므로 이 무상무심을 증득하면, 이 몸 가죽푸대를 버릴 때가 되어도 업에 매이지 않으며, 비록 영이 되어도 갈 곳을 자재하여 뜻대로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임~
중국 자명선사 제자가 어느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선객들과 선문답을 하다가 막혀서 돌아와
“일대사를 해결하려는 마음뿐- 답답하옵니다.”하니
“수도를 하는데 불법대의를 어디에 두고 찾고 있는가?”하니
“구름이 고개위에 생기지 않으면 달이 파도 가운데 비춥니다.”하니
“네가 아직 이따위 소견을 짓느냐?”힐난하자
“스승님께서 대자비로써 저의 미혹함을 깨우쳐주옵소서.”눈물로 간청하자
“내가 너에게 묻듯 나에게 물으라.”하자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대의이옵니까?”하니
“구름이 영상에 나지 않으니 달이 파도 가운데 비취니라.”하는 말에 확철대오 하였는데 어떤 차이인지?
본래 청정한 명심묘정이 이 달처럼 하늘에 구름이 본래 없어 밝은 마음 달이 항상 밝게 드러나 비취나, 구름이 가리면 비취지 못해. 중생의 밝은 불성인 마음도 집착으로 삼독과 오욕의 번뇌구름이 가려 제대로 비취지 못하며, 구름이 걷혀야 밝게 비치는 것과 같음.
구름이 영상에 본래 생기지 않는지라, 달이 항상 물에 밝게 비취고 있다는 것으로 번뇌가 본래 공함을 요달하면 가릴 것이 본래 없어, 일체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일체상이 허환한 것이며 공한 것임을 깨달으면 번뇌가 곧 보리요 생사가 곧 열반인 것임을 요달하게 되는 것임~
드러나 진과 망을 가려 자기는 중생이므로 번뇌구름이 있어 미를 거두어야 깨달음을 구한다고 생각하는 소견을 지으면 깨달음과는 멀어지니 이것이 병통이므로 이런 소견으로는 절대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니 진상좌는 번뇌구름을 없애야 마음 달이 드러난다는 소견이며, 자명스님은 본래 번뇌가 공적하여 없음으로 항상 마음 달이 비추고 있다는 지견임~
80세에 득남을 하니 내 아들이 아니랴 라는 소견과
80세에 득남을 했어도 내 아들이 아닌가? 의 차이를 아셔야 하리다.
지혜와 삿된 소견의 차이는 이와 같아 번뇌구름이 없어야 마음 달이 밝게 비춘다는 소견과 번뇌구름이 허환하여 본래 없어 공적한 것이므로 마음 달은 항상 밝게 비춘다는 것을 깨달은 지견인 것임~
미를 가지고 깨달음(悟)을 구하지 말며, 망을 가지고 진을 구하지 말며, 깨달음을 구하거나 기다리지 말고 마음 그대로가 진공묘유 한 불성임을 믿고 꾸준히 불퇴정진 하노라면, 시절인연이 닿아 법문을 듣거나 어떤 기연이 되면 “졸탁”하여 깨치게됨~
선지식은 학인을 가르침에 자애롭지만은 않으며, 때론 악랄하다할 수단으로 방망이로 무섭게 때리는 방편을 쓰기도 하게 되는 것임~
참으로 깨칠 상근기는 선지식의 당굼질을 받아야 하는 것임~
*깨달음도 닦아야 성취하고, 복도 지어야 받음~
*가로등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함~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곁을 스치는 누구나
모두 밝은 불빛의 혜택을 보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친구처럼, 연인처럼, 희망으로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당부함~
슬슬풍송 소소우회 니라 나~~
사자교인 인데 한로축괴 니라 나~~
부불시불 이니 막작불해 하라 나~
불견차의 하면 불요본심 이니라 나~
스산한 바람에 소나무요 소실한 비에 회나무라
사자는 사람을 무는데 어리석은 개는 흙덩이를 쫓느니라
부처라 하면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말라
이러한 바른뜻을 보지 못하면 본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리라
무애심
백운화상 끝부분은 정리만 해두시고 강설은 윗부분을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