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강설(청봉선사) 10-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持經功德分 第十五 (경을 지니는 공덕)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中日分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後日分에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기를 如是無量百千萬億劫을 以身布施라도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낮에 다시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저녁에도 역시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기를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 겁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淸峯:목숨까지 수없이 바칠 수 있는 아낌없는 보시로 세세생생 수 없는 생의 시간과 공간 동안 지은 복과 비교해서(경을 지닌 공덕이) 더욱 뛰어 남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다. 삼일분은 새벽이 초일분, 정오가 중일분, 오후 늦은 시각이 후일분으로 하루를 삼등분 한 것이다.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信心不逆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何況書寫 受持讀誦하여 爲人解說이리요.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으면 그 복이 저보다 더욱 뛰어나리니, 하물며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일러줌이겠는가?
淸峯:왜냐하면 유루의 복은 상으로써 집착하게 되는 것이니,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다함이 있고 인과를 받는 것이나 이 경의 도리인 일체의 형상이 본래 공적함을 요달하여 나도 없고, 모든 법이 없음을 확실히 체인(體認)하여 깨달아 알면 몰록 부처를 이루는 것이므로 복이 어찌 지혜로써 성취한 이 공덕에 비할 수 있겠는가?
거슬린다는 것은 역행하거나 퇴전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須菩提야 以要言之하면 是經은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이나니
수보리야! 요긴한 것으로써 말하면 이 경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말로써 이를 수도 없는 한량없고 끝이 없는 공덕이 있는 것이니,
如來爲發 大乘者說이며 爲發 最上乘者說이니라
여래가 대승심을 일으킨 자를 위하여 설하는 것이며, 최상승심을 일으킨 자를 위하여 설해 주는 것이니라.
淸峯:대승이라 하는 것은 지혜로 능히 일체법을 건립할 수 있는 근기요, 최상승이라 하는 것은 집착을 여의어서 분별심을 내지 않아 구하고 제도할 것이 없으며 열반도 증할 것이 없음을 요달하는 일체지를 증득할 근기를 말하는 것이니, 곧 무생인(無生忍)이며 대 반야를 이루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대 인력(大忍力)과 대 지혜력과 대 방편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곧 이 경을 듣는 이가 믿고, 알고, 실천 실수(實修)하여 불도를 성취할 수 있는 근기(根機)임을 일컫는다.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여 廣爲人說하면 如來가 悉知是人하며 悉見是人하나니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 功德으로 如是人等은 卽爲荷擔如來 阿?多羅三?三菩提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해 준다면, 여래가 이 사람을 모두 알며 이 사람을 모두 보나니, 한량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된 것으로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여래의 무상정등정각을 짊어지게 된 것이니라.
淸峯:하담(荷擔)은 짊어짐 또는 갖춤이라고 하는 뜻이다.
곧 여래와 같은 정각을 갖추어서 둘 아님이 되는 것이다. 무상의 도리를 요달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해 주어 그 뜻을 알고 행하여 수행함으로써 능히 깨달아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게 함이니, 그 공덕은 비할 바가 있을 것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깨달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짊어(荷擔)졌다고 하는 것이다.
何以故하면 須菩提야 若樂小法者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卽於此經을 不能聽受讀誦爲人解說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소승법을 좋아하는 자는 내라는 소견, 사람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에 집착하여 곧 이 경을 능히 받아 듣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해설하지 못하느니라.
淸峯:소승은 지옥을 피하고 천당에 나기를 원하며 생사를 싫어하여 열반이나 구하는 나(자아)에 집착하는 작은 생각을 내는 이를 말한다. 소승인 자는 자기에 국집(局執)하는 아상이 있으니, 상을 여읠 수 없거늘 어찌 무상 무착의 이 대승법을 깨달아 남에게까지 일러주겠는가?
四見, 四相을 다시 설파하면, 상(相)을 세우면 상분으로 인해서 견분인 상견이 생기고 또 견분의 그림자인 상분 즉 육경과 아상, 인상 등 4상인 상분의 허상에 집착하게 되고 견분인 망상에 끄달리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컫는 명칭이 四見, 四相인 것이다.
뒤집어 살피면 깨달은 분상에서 보면 몰록 자기의 자성을 깨닫게 된 것을 아상이라 하고, 상대적인 집착심을 버렸으되 깨달은 바 상대적인 차별법이 있음도 아는 지견을 인상이라 하고, 깨달음과 증득한 이치가 함께 사라진 이치가 있다고 아는 지견을 중생상이라 하고, 존재의 이치를 깨닫고 주관적인 지각을 잊지 않음을 수자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4상 4견은 일체의 모습과 일체 견해의 근본이 되며 아상으로 인하여 모든 집착과 모든 애호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며 취사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신심명에 이르되 “상대적인 시비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워 마음을 잃는다” 했으며 또 “사랑과 증오의 마음이 없으면 환하여 명백하리라” 했다.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이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所應供養하리니 當知하라 此處는 卽爲是塔이라 皆應恭敬하며 作禮圍繞하고 以諸華香으로 而散其處이니라.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만약 이 경이 있다면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불탑과 같아 모두가 응당 공경하고 예배하고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곳에 흩게 되느니라.”
淸峯:사람이 이 경을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 무위, 무상의 도를 수행하면 곧 이것이 불탑과 같으니, 즉 부처(法身)와 둘 아니게 되(化身)므로 그 공덕(報身)이 무량 무변한 것을 설하신 것이다. 수지한 공덕의 과보를 총괄하여 말씀하기를 수지독송이 곧 여래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수지독송으로 여래의 실상을 심오하게 깨달아 일체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음을 분명히 깨닫기 때문이다.
能淨業障分 第十六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
復次須菩提야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여도 若爲人輕賤하면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이나 以今世人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고 當得阿?多羅三?三菩提이니라
“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현재)에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는 것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되고 마땅히 무상정등정각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니라.
淸峯:전세는 망념된 마음이요, 금세는 상에 집착함이 없이 깨달은 마음이니 사량 분별, 번뇌 망상을 이미 여의었으므로 업이 생길 것이 없어 그대로 불, 보살인 것이다. 이것을 설한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전생 업장이 악도에 떨어질 만하되 이 경을 수지 독송한 공덕으로 타인의 질시를 받고 가볍게 여기게 되어 업장을 여의고 정각을 성취하게 된다 하신 것이다.
須菩提야 我念過去無量阿僧祇劫에 於然燈佛前에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여 悉皆供養承事하되 無空過者였으나
수보리야! 내가 생각하면 과거 한량없는 아승지겁인 연등불 이전에 八백四천만억나유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뵙고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헛되이 지냄이 없었으나,
淸峯:헛되이(소홀히) 지내지 않았다 하는 것은 곧 지극하게 모셨다 하는 뜻이며 나유타는 십억이 洛叉(10만)가 되고, 十洛叉(낙차)가 俱?(구지)가 되고 十俱?가 나유타가 되니 무량수의 수로 봄이 옳다.(인도의 아주 많은 수량의 표시)
若復有人이 於後末世에 能受持讀誦此經하면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는 百分不及一이며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는 所不能及이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계합해) 읽고 외우면, 그 얻는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 더 나아가서 모든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淸峯:아무리 크나큰 복덕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무상의 도의 이치를 깨달음은 무여 열반에 이르름이니, 비유가 불가능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공덕 가운데는 모든 복덕이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於後末世에 有受持讀誦此經하여 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하면 或有人聞하고 心卽狂亂하여 狐疑不信하리라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다음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을 내가 모두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곧 몹시 혼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니라.
淸峯:미혹한 중생이 비할 데 없는 무량 무변 무상정등정각을 생각으로 헤아려서는 의심하지 않고 믿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능히 무상심을 깨달아 무상행을 하여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혼란스러워 믿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當知하라 是經은 義도 不可思議며 果報도 亦不可思議이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경은 뜻도 가히 생각으로 미칠 수 없고 과보도 역시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니라.
淸峯:무착 무상은 업이 공하고, 과보 또한 공함을 요달하게 되므로 인(因)도 과(果)도 본성이 공(本性空)한 것이어서 태허와 같은 것이다. 상이 없음을 요달하면 집착이 끊어져 행하여도 행함 없는 행함이니 즉 집착이 없는 무념 무상의 행이 능히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을 무명 중생의 생각으로서는 능히 헤아려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무애심: 16분은 녹음부분이 빠져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