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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을 의지한다.” 책상물림의 이상론도 아니고 꼬장꼬장한 도학자의 입바른 소리도 아니다. 7세기 중국 당나라를 통치하던 태종 이세민의 말이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통치철학이었지 싶다. 그는 ‘정관(貞觀)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뤘으며 중국 역사상 가장 정치를 잘한 제왕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사후 태종과 가까운 신하들이 정치의 득실을 논한 문답을 엮은 『정관정요(貞觀政要)』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더불어 통치술에 관한 동서양의 고전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책은 제목 그대로 당 태종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청년 시절 아버지 이연을 도와 군사를 지휘한 것부터 20세이던 617년 천하를 다투기 위해 거병해서는 1년 만에 당 나라를 세우고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에 승리해 29세에 황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과정을 소상하게 다뤘다. 오긍이 지은 『정관정요』가 정치에 중점을 둔 반면 이 책은 집권 이전기를 다루는 등 인간적 풍모를 담아내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당 나라 건국 후) 세민은 궁중에서 고종 황제를 모시고 연회를 할 때마다 여러 비빈을 대하면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나 황제가 천하를 얻는 것을 보지 못한 태목황후(태종의 친모)를 그리워해 흐느껴 울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는 푸단(復旦·복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당대사(唐代史)를 전공한 두 저자가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소설적 서술을 한 덕분이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사학자로서의 비판적 자세도 잃지 않는데 615년 수 양제가 안문(雁門)에서 돌궐의 부대에 포위되자 그 구출 작전에 참전한 이세민이 “많은 깃발과 북으로 병사가 많은 듯 위장하는” 책략을 제시해 큰 공을 세웠다는 정사(正史)의 기록을 “사관(史官)의 지나친 찬사로 실제로는 스스로 겨우 지킬 수 있었을 뿐”이라 지적하는 대목이 그런 예다.
빛나는 부분은 역시 “비천한 사람이라 하여 임용하지 않은 일이 없고 멸시받는 사람이라 하여 존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태종의 용인술에 초점을 맞춘 7장이다. 그는 심지어 황위를 놓고 벌어진 골육상쟁에서 형 건성의 모사였던 위징(魏徵)을 중용했을 정도였다. 위징은 이후 태종에게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또한 뒤집을 수도 있다”는 투의 직언을 거듭해 태종이 “내가 오늘에 이른 것은 위징의 힘”이라 했을 정도로 명신(名臣)이 되었다.
책은 흥미로운 일화도 적지 않고, 특히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겐 시사하는 바도 풍부하다. 그래도 찾아보기를 마련하는 등 편집의 노력만으로는 덮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원저 자체가 지닌 한계 때문이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표방한 직후인 1980년대 중반에 쓰인 이 책은 ‘계급투쟁’ ‘계급모순’ 등의 용어가 등장하는 식으로 마르크스주의 사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기에 고구려 원정 실패를 언급하지 않은 점도 태종의 이상화를 경계했다는 저자들 스스로의 다짐에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꿈은 열정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열정이라는 단어는 enthusiasm입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는데 en(안에) + theos(신)의 합성어입니다. 내 안에 있는 신이란 뜻입니다. 열정은 신을 발견하거나 내 안에 모셨을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던진 불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생 텍쥐페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를 만들고 싶으면, 사람들을 모아 나무를 자르게 하지 말라. 그들에게 작업을 할당해 줄 필요도 없다. 그냥 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바다에 대한 끝없는 동경심을 일으켜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세한 기술을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다만 목표를 보여주실 뿐입니다. 목표가 보이면 열정이 생깁니다. 열정이 목표를 향한 길을 만들고 우리 한 걸음을 옮기게 만듭니다. 요셉은 바로 그 꿈을 향해 달려왔던 사람이었고 결국 그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애굽이라는 제국도 그 꿈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이 이 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애굽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런 도전과 위기의 시대에 애굽 땅에 요셉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애굽의 복이었습니다.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였습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38) 39절에서는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하며 요셉을 칭찬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요 지혜와 명철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 3,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둘째는 미래를 보는 사람입니다. 바로가 요셉을 향하여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는 그가 바로의 꿈을 정확히 해석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꿈은 곧 애굽의 미래였다는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능력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상품이 히트할지 어떤 주식이 값이 오를지 미리 안다면 우리는 곧 부자가 될 것입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안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능력은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노력한다고 하여 주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먼 미래를 보는 능력은 주셨습니다. 앞에서 말씀했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작은 미래에 관련된 것입니다. 알면 좋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사실 결정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지리산 등반하는 과정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지리산을 등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목표는 천왕봉입니다. 그러나 종주를 하다보면 반야봉이니 세석평전이니 하여 중간 목표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작은 미래이고 큰 미래는 천왕봉입니다.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을 향해 가다보면 어떤 때는 앞서갈 때도 있고 뒤쳐질 때도 있습니다. 샛길로 돌아갈 때도 있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 다시 돌아나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즐거워하기도 하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천왕봉이라는 목표이고 거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미래의 행복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큰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달려나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작 소유해야 될 것은 이런 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꿈으로 주어집니다. 나라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10년 20년 이후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나라나 사회가 이렇게 되길 원한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꾸는 자가 많으면 그것이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요셉은 지혜와 명철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지혜와 명철은 꿈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그 꿈에 대한 대안 프로그램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47절에서 49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7년 동안 풍년이 들었을 때 요셉은 곡물들을 각 성에 저축해두도록 조치합니다. 그렇게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들기 시작했는데 각국에는 기근이 들어 식량이 없었지만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가득했습니다. 요셉의 지혜와 명철함이 애굽을 위기에서 건져주었고, 애굽을 부요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지혜의 보고인 잠언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 10)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생각이 명철해집니다. 요셉이 대표적인 지혜의 사람입니다. 지혜와 지식은 다릅니다. 지식이 정보라면 지혜는 그것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지혜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결정합니다. 지혜는 지식이 잘 활용되도록 조정합니다. 지혜는 지식의 옥석을 가리는 능력이고 그것이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만듭니다.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일을 행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2,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사야서는 메시야 왕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이사 11, 2) 지도자들이 현명하고 그 결정을 올바르게 해야 백성이 편안합니다. 이 현명함은 분명한 철학과 가치관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분명히 서 있는 사람은 현명한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정치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이 알량한 통치술이나 테크닉을 갖는 것보다 분명한 철학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맹자가 꿈꾸었던 인의 정치가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와 명철의 정치와 일치한다 생각합니다.
맹자의 책에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양혜왕이 사방의 적들에게 지고난 후 이 치욕을 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묻자 맹자는 “토지가 사방 백리라도 왕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고는 인자한 정치를 해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이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장정들에게는 효성과 우애와 충성과 신용을 가르쳐 부형과 윗사람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를 들고서도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인정을 베풀지 않는 나라를 징벌한다면 그 백성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하며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맹자』 편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양혜왕이라는 사람이 맹자를 찾아서 물었습니다. “나라의 이익이 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맹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이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면 관료들은 자기 집안의 이익만 생각하고, 백성들 또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되어 나라 전체가 자기만을 생각하게 되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도덕적으로 바르고 의롭게 다스리는 것이 곧 지도자의 지혜와 명철입니다.
지혜와 명철을 단지 테크닉 정도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작은 것입니다. 큰 것은 방향성과 철학이고, 방향이 정해지면 이를 달성할 수 있는 테크닉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요셉을 보면 흉년에 곡식을 방출하는데 그냥 무상으로 주지 않고 돈을 받고 팝니다. 이것은 테크닉입니다. 바로에게 도움이 되고 애굽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요셉은 취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셉과 같은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정상의 자리에 선 요셉
그처럼 바로가 정상의 자리에 선 때가 46절에서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밝히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와서 13년만인 30세에 그 꿈대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꿈을 향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정상에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0년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입니다. 다중지능 이론을 주장했던 하버드대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있습니다. 이 분이 창조적인 인물 7명을 조사했습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간디, 스트라빈스키, 마서 그레이엄 등이었습니다. 이런 위대한 인물들의 삶을 조사하면서 가드너는 한 가지 공통적인 결론을 얻었습니다.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약 10년에 걸치는 숙성 기간이 요구된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치고, 10년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피겨의 김연아 선수나 수영의 박태환 선수도 얼추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0년의 시간은 단순히 허송세월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매진하는 시간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엔더스 에릭슨은 『재능논쟁의 사례』에서 프로 연주자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8,000시간의 연습시간이면 엘리트 연주자가 되고, 4,000시간이면 음악교사, 아마추어들은 2,000시간 정도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2-3시간씩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 1년이면 대략 1천 시간이고, 10년이면 1만 시간입니다. 요셉의 13년도 대충 여기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연마하고 닦았습니다. 요셉은 어느 날 갑자기 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대가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정상의 자리에 앉게 해주십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우리를 높이시는 이유는 혼자만 잘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복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만물들이 살듯, 요셉의 지혜와 중재로 애굽의 모든 생물이 삽니다. 54절입니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57절입니다.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중동지역에 기근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요셉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굶주림을 면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복되게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절반만 이룬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세상을 복되게 하면 그때서야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자기만 명예롭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대통령의 자리에서 국민들을 복되게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대통령이 됩니다. 지도자 중에는 독재자도 있고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도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았느냐 아니면 백성을 복되게 하기 위해 그 권세를 잘 사용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평판 전문가’ 로사 전 IMD 교수가 말하는 한국 정치인善-興-能-格-權 키워드로 내년 대선 예비주자 분석
평판 전문가인 로사 전 교수는 출간 예정인 저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은 개혁과 신명 을 뜻하는 ‘흥(興)’을 갖춘 지도자를 가장 원한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평판인식 차이(Reputation Gap)’ 이론으로 알려진 평판 전문가이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인 로사 전 교수(45)의 신간 ‘평판을 경영하라’(위즈덤하우스)가 다음 주 출간된다. 국제인재개발센터 주최 ‘전략적 평판 경영 특별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전 교수를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미리 입수한 책 내용에는 2012년 한국 대선을 평판 전문가로서 예측한 부분이 있다. 전 교수는 “국민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당은 먼저 흥(興·개혁과 신명)과 선(善·진정성)을 갖춰야 하고, 그 다음이 능(能·능력)”이라고 강조했다.전 교수는 2010년 84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인 인식조사 결과를 IMD팀이 개발한 평판 측정 도구로 변환해 분석했다. 이 도구는 선, 흥, 능, 격(格·세련미와 품위), 권(權·권위)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측정한다. 1997년, 2001년, 2005년 등 세 차례 영국 총선 연구에 이 기법이 활용된 바 있다.
분석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흥’과 ‘선’에 대한 국민의 평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인물로는 박근혜 전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홍준표 대표 등 네 명을 선택해 분석했다. 박 전 대표가 ‘선’과 ‘능’에서 압도적으로 앞서지만, ‘흥’에서는 김 지사가 근소한 차로 박 전 대표를 따돌렸다. 홍 대표는 ‘흥’이 다소 높게 나타났으나 나머지 부분에서 저조했고, 이 의원은 네 명 중 가장 약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 손학규 대표, 정세균 정동영 최고위원 등 네 명을 분석했다. 국민은 민주당이 ‘흥’을 갖추기를 강하게 원했지만 네 명 리더 모두 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키워드에서 한나라당의 박 전 대표처럼 압도적으로 앞서는 사람은 없었다. 한 전 총리만 ‘선’에서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교수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대선주자 모두 ‘흥’이 가장 부족했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흥’을 갖춘 지도자를 가장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 후보에 대해선 “본격적으로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박원순 후보는 ‘흥’보다는 ‘선’이 강합니다. 그런데 국민이 민주당에 절실히 원하는 게 ‘흥’이니 이와는 차이가 있죠. 반면 나경원 후보는 ‘흥’과 ‘격’이 높은데, 여기서 ‘흥’은 개혁보다는 신명에 가까워요. ‘격’은 인기를 높이는 데는 좋으나 표심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전 교수는 “2012년 한국 대선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며 “당과 리더의 평판 정도를 미리 따져보면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정당이나 리더의 약점을 발견해 개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요셉은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후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51절과 52절입니다.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므낫세, 곧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에브라임, 곧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잊어버리고’ ‘창성케 하는’ 것 이 두 단어가 현재 요셉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들입니다.
성경에 요셉의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그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형제들에게 배신당한 아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억울함, 자기 인생이 이렇게 끝날 것 같은 답답함. 요셉은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주마등 같이 자신의 과거가 스쳐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과거, 우리 상처를 깨끗이 잊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이사 43, 18-19) 정상의 자리에 선 순간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는 이제 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 연단의 도구였다는 고백으로 바뀝니다. 과거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에베 1,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룻기에 보면 룻의 시어머니가 타향 땅에서 과부가 되고 두 아들을 잃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자기 이름을 나오미, 곧 “감미롭다, 사랑스럽다”가 아닌 마라 “쓰다”라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이 유력한 사람인 보아스와 결혼하고 자기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주자 사람들이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룻기 4, 15) 하며 나오미의 인생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를 잊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시련의 시절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이제는 요셉의 인생을 창성케 합니다. 기반을 잡고 가문이란 것을 이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성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꾸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간척지를 개간하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신선한 물로 땅을 씻어 소금기를 빼내야 합니다. 그렇게 수고하다보면 그 땅이 옥토가 되고 거기서 백 배의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요한 16, 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하나님은 우리 수고를 헛수고로 돌리지 않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기 전 13년 동안은 그 손에 아무 것도 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총리의 자리에 오르자 일약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손에 쥐었습니다. 사실 이 13년은 허송세월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땅을 다지고 거름을 주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 양이 차고 때가 되자 그 기반 위에서 요셉을 창성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소망을 이처럼 우리을 창성케 하시는 하나님께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 모든 수고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