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글 친구

[목우]

옛날 글 친구

김 재 욱

선조들은 반딧불로도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잣집 같은 데서야 그런 일 없었겠지만 가난한 선비들은 관솔이나 모닥불로도 공부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 2차 대전 때 석유가 제대로 배급이 안 되었는지 등잔과 호롱은 집에 있는데 호롱불을 못 쓸 때가 있었다. 접시에다 심지를 만들어놓고 아주까리기름으로 어둠을 밝혔다. 그 불 아래서 공부 하고 길쌈이며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뭇 사람들은 배우려 해도 스승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참 스승은 배울 사람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 대 때 선견지명이 있는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한문과 서예 공부를 오랫동안 하는 중이었고 우리보고도 같이 공부하자고 제의했다. 반가운 소식이어서 공부할 뜻있는 다섯 사람이 모였다.

낮에는 돈 벌고 저녁이면 다섯이 선생님 앞에 모여 주경야독하였다. 같은 공부를 하면 선생님은 쉬웠겠지만, 각자 다른 책을 읽으면 남의 글도 들을 수 있으니 각각 다른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나는 맹자를 시작하였다. 한창 한문을 폐지한다는 소문이 떠돌 때 시작했으니 미친놈 소리도 들었다. 지금 공부해서 뭣하나 소리도 뒷소문으로 들었다. 이럴 때 배우려는 우리를 선생님은 고맙게 생각하고 늘 격려해 주셨다. 학비는 물론 무료이고 선생님께서는 연세도 있으시니 조금이라도 더 가르치시려고 온갖 수고 다 하셨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문우관(文友館)에 계셨고 대학에 강의를 나가실 때였다. 집이 문우관 근처라서 새벽에 가서 연탄불 갈아 넣고 요강 비워서 씻고 이불 개고 방 청소했다. 공부하고 날이 밝으면 집에 왔다. 다른 문우보다 선생님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휴일이면 다섯이 모여 소주 한 병 어묵 두 개를 사고 무와 국물을 한 그릇 얻어서 찾아가면 선생님께서 즐거워하시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배웠다.

당시 문우관에는 우리 말고도 대학 강사 하는 분이 공부하러 왔다. 몇 년을 같이 공부하였다. 선생님 가신 후에 모 대학 교수로 퇴임해서 사회에 많은 활동과 함께 지금은 문우관 관장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요즘도 가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가족의 안부도 서로 묻는다. 우리도 한문으로 끝난 게 아니고 선배 가하자는 대로 붓글씨를 시작하였다. 물론 문우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대학 강사도 같이 갔다.

삼 년을 공부했다. 공모전에 출품해서 입상한 문우도 있었다. 부끄러움도 많고 화선지 살 돈이 없어서 채본 달라는 말할 자신도 없었다. 삼 년 동안 길영(永) 자만 쓰다가 솜씨를 한탄하며 그만두었다. 그 후 문우관 선생님은 자식 따라 서울로 가셨고 우리도 모두 흩어졌다. 두 사람은 소식을 모르고 끌어주던 선배는 얼마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두 사람이 남았는데 나는 이렇게 좋은 세월 보내고 있다. 그 친구는 젊을 때는 주경야독 하더니 요즘은 할 일이 없으니 읽고 쓰고 하며 노후를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이 문우의 특색이 있다. 직업도 같은 가구업이지만 오랫동안 배운 일도 없는데 연구하며 배워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한학과 서예도 이십 대 때 우리와 같이 배운 후로 어디서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독학으로 서예는 물론 대가이고 한학과 관계되는 것은 모르는 게 없다. 말도 쓸 말만 하고 행동 하나하나 생각해 가며 하는 아주 모범인 친구였다.

이 친구한테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물론 이 친구는 그런 것 탓할 만큼 옹졸한 친구는 아니다. 지인이 병풍 글을 부탁해서, 서슴지 않고 이 친구한테 부탁했고 친구도 쾌히 승낙했다. 여기서 실수를 하였다. 지인이 값을 물었다. 나하고 거래할 수 있는 옛날 값을 말했으니 대금이 열 폭 병풍 재룟값도 되지 않았다. 이런 실수를 했으니 그 친구를 민얼굴로는 만날 수 없다.

그렇다고 지인한테 돈 더 내라 할 수도 없고 이런 일을 두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고 하는 것 같다. 지인도 내용을 알고 있으니 웬만하면 내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냉가슴으로 끝날 것 같다. 남의 일도 내일 같이 구별 안 하고 하던 일의 결과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널 생각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선배 이야기는 또 있다. 그때는 여름이면 일이 없어 놀 때가 많았다. 그 틈을 타서 선배의 소계로 설계 공부를 시작하였다. 설계 공부가 거름이 되어 모 백화점에서 근무할 때 설계사 따로 없이 설계하여 다른 업체와 경쟁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선배와의 관계에 재미있는 사연은 한둘이 아니고 많이 있었다.

옛날 어려울 때 공부하던 모습이 떠 오른다. 단어 하나 찾으려면 사전을 뒤져야 했고 사전이 없으면 빌리려 다니기도 했다. 요즘은 컴퓨터만 치면 해답이 나오고 모든 여건이 좋아졌으니 공부할만한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과학 만능 시대가 되었다. 전등으로도 충분한데 조명등까지 있다. 컴퓨터라는 괴물도 있어 선인들이 이 광경을 보면 깜짝 놀라며 춤이라도 출 것 같다.

좋은 세상 다시 태어나고 싶다.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원 없이 공부하련다.

20.03.22.

[배정순]

지금도 예전도 늘 훌륭하신 김재욱 선생님!가지고 계식 학식도 높으신데
선생님께서는 늘 공부에 목 말라 계시네요
좋은 취미를 가지고 계셔서 늘 배우고
싶습니다.
항상 글이 멋지게 발전해 가십니다.

[목우]

배선생님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발전 한다는 말씀이 듯기 좋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