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관광 및 화산트래킹 여행사진』
♠. 여행일(2009년4월18일~4월21일) 3박4일 ♠. 길손 여행동호회 봄 정기행사 역사도시 서안탐방 및 화산트래킹 ♠. 행사 참석인원:51명 서안,화산 여행사진~ ~♡♡ ♠. 여행지 : 섬서역사박물관-대안탑,북광장-화산트래킹-병마용박물관-진시황릉-화청지-종로, 고루야경,서안야시장투어,성안성벽,-(옵션)장한가공연쇼-아방궁 관광
ㅡ 길손여행동호 중국 서안/화산 여행사진 ㅡ
인천국제공항 - 서안향발, 2009년 4월18일 09:50 출발한 아시아나 OZ319편
섬서역사박물관 - 중국에서 고궁박물관(자금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7만㎡의 넓은 부지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2층인 고전과 현대의 건축예술을 한데 어울려 놓은 건축물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1급 박물관
섬서역사박물관 - 중국에서 고궁박물관(자금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7만m3의 넓은 부지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고전과 현대의 건축예술을 한데 어울려 놓은 건축물로 중국 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박물관 주은래의 지시로 건립되어 1991년에 개관한 섬서역사박물관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2층 높이, 면적은 6㎢ 로, 원시시대부터 1840년 아편전쟁 중에 섬서성에서 출토된 각종 전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쪽에는 2500㎡의 주제 전시관이 있는데, 주로 실크로드 등 섬서성의 역사, 문화 등에 관련된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은 청동기, 도용, 금·은 장신구, 당나라 무덤 벽화 등이다. 동쪽에 있는 2555㎡의 역사문화전시관에는 주로 중국과 외국의 문화 교류를 주제로 한 전시품들이 있으며, 전국 각 성과 시의 문화전
당나라 고조의 능에서 나온것을 박물관으로 가져온 것임)
제2전시실은 한의 장안성과 위진남북조 시대의 유품이 전시, 제3전시실은 수나라와 당나라 유품 전시실로 당삼채의 채색도기가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3개의 전시실에 약 3천 건의 문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모두 섬서성 내에서 출토된 몇십만 건의 문물 중에 선별된 것들입니다. (사진:똥돼지, 제주도를 연상케 합니다)
금전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의 지도 (장안성의 엄청난 규모를 직감케한다) 라(隋 : 581~618) ~ 당(唐 : 618~907)의 유적들(아래)
실크로드의 풍물을 표현한 당나라 삼채천왕용
제3전시실의 대표 유물로 손꼽히는 자주빛 석영으로 만든 술잔인 "수수마노배(獸首瑪瑙杯)"
제1전시실에는 역사 시대 이전의 중국고대와 신석기 문화, 앙소 문화의 씨족 생활상 등과 주나라의 청동 제품, 서주와 진왕조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주 시대의 다리가 셋인 솥과 동탁, 청동악기 등이 세련되고 눈에 띄는 유물들. (사진:진시황릉 근처에서 출토된 시황모차 모형)
화산 버스터미널 앞 광장의 조형탑 (화산 산행후 전용 소형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험로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이동 하여야 한다)
섬서성 서안의 종로와 고루 사이의 앞쪽으로 들어서 있는 대형 백화점상가 야경
명나라때인 1384년 건립된 높이 38m의 2층 목조 건물로 못을 전혀 사용 하지 않고 만들었으며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리던 곳이였다. 종루는 서안의 시내 성곽의 중심지인 남문의 안쪽에 위치하며 동대가, 서대가, 남대가, 북대가가 교차하여 만나는 지점에 있다 (종로 야경)
서안시의 고루 - 저녁때 북울 울려 성문을 닫는 역할을 하는 고루
고루주변에 회교사원인 청진사와 청진사옆에 골동품상가와 이슬람거리의 야시장
서안 시민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 야시장 투어
서안야시장 투어 건조과일,악세사리,음식물,서민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잡다한 물건을 파는 노상상가
서안야시장 건조과일
서안성벽(명나라 초기에 당의 장안황성의 기초로 건조한 성으로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고성벽)
서안성벽 에서 (조남홍고문님과 김문기님 부부)
서안성벽에서 본 서안시의 고층건물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서안성 큰 건물의 현판은 자기동래(紫氣東來) 양편으로 욱일동승 (旭日東升) 의 현판의 건물 욱일동승-아침해는 동쪽에서 뜨오르고 , 자기동래 - 자색 기운은 동쪽에서 온다 의 뜻으로 왕조의 번영을 위해붙여진 이름 서안성 사방으로 4개의 성문인 장악문(长乐门), 안정문(安定门), 영녕문(永寧門)과 안원문(安遠門)이 있다
교자연(서안의 교자관에서 처음 만들었으며 '만두'라 부르는 속이 들어간 전병쌈을 중국에서는 '교자'라 부르며, 정작 중국에서의 만두는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2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해외 관광객에게까지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중국 서안의 대표음식인 교자연
교자연 식당가 옆으로 이집트 고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상을 축소 모방한 건물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탕취안궁[汤泉宫]을 지었고 현종(玄宗)이 이를 증축한 화칭궁[华清宫]입구 현관문
화청궁 입구의 현관에서 1호차 남성회원님
화청궁 입구의 현관에서 1호차 여성회원님
서안(고대:장안)의명소 여산아래에 있는 중국제왕들이 온천을 즐기고 경관을 감상하는 별장이며 당 현종(玄宗, 712~756 재위)과 양귀비(楊貴妃, 719~756)의 사랑으로 유명한 화청지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인 화청지(華淸池 : 화칭츠)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온천지이자 별장지였으며 서주(西周) 때, 주나라 유왕(幽王)이 이곳에 여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으며 특히, 당나라 현종(玄宗)은 60만㎡의 넓은 면적에 화려한 궁전누각인 ‘화청궁(華淸宮)을 지어 이곳에서 중국 4대 미인의 하나인 양귀비와 사랑하며 생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때문에 이곳을 돌아본 당나라 시인들이 쓴 당시 (唐詩)가 많아 더욱 유명하게 되었으며, 이 화청지에 대한 묘사라든가 양귀비(楊貴妃)의 미모를 다룬 시가 많다. (사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맹세하였다는 장생전과 화청지 전경으로 기념촬영)
환원[環園(环园): Huanyuan]은 과거 화청궁의 정원에 ‘양귀비가 화칭치에서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나가는” 모습을 새긴 대규모의 벽화가 있다. 90 개의 백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벽화는 길이가 9.15m이고 높이가 3.6m이다. 현종이 양귀비를 불러 축하연을 여는 장면은 당조(唐朝: 618-907)의 번영을 표현했다.
현종과 양귀비의 침실로 사용되었다는 비상전(飛霜殿)
하(夏) 의 창시자 성군 우왕(禹王)전 앞의 동상
화청지 안쪽으로 들어서면 막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모습의 "양귀비 입욕조각상"
목욕후 바람에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곳으로 담쟁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비하각
양귀비 입욕조각상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 서시(西施)와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인의 하나) 광동성 연산현(連山縣)의 흰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높이 3m의 입체 조각상
연화탕(蓮花湯) 현종의 독탕인데 당시에는 백옥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규모가 큰것은 궁녀들과 함께 목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귀비 그림
당 현종(玄宗, 712~756 재위)과 양귀비(楊貴妃, 719~756)의 사랑을 그린 벽화
당태종 이세민이 밤에 하늘에 별을 보면서 목욕하였다는 원래는 노천탕인 성신탕(星辰湯)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가 명주수건으로 교살(絞殺)되었다고 전해지는 그림
양귀비 사후 현종의 생활, 천세(天世)에 오작교에서 다시 만나 이승에서의 사랑을 이어갔다는 내용의 벽화
황제의 수종 관리들이 황제가 목욕한 물을 재활용하여 성수(聖水)로 알고 목욕했던 상식탕(尙食湯)
양귀비 목욕탕 해당탕(海棠湯)이라는 꽃모양의 작은 욕탕, 부용탕(芙蓉湯)이라고도 불리며 물이 들어 오는 곳과 나가는 배수구에 동전을 넣으면 복이 온다는 믿음에 많은 동전이 꽃잎처럼 흩어져 있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던 곳이라 하여 귀비지(貴妃池)라고 이름 부쳐진 누각 해당탕(海棠湯)이라는 꽃모양의 작은 욕탕이 있다
화청지의 만하정
화청지 신욱정
화청지: 27살의 양귀비를 사랑한 62세의 현종! 35년의 세월을 극복한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공연 장한가가 매일밤 펼쳐진다
화청지 우측의 정자아래로 온천수로 족욕하는 관광객들
화청지 에서 본 화청지 정문현관
황제들의 온천 휴양지이며 피한(避寒)별장이었던 아름다운 화청지
황제들의 온천휴양지 피안별장 이자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졌던 그곳 화청지
당 나라의 황실정원 이었던 부용원과 아름다운 화청지 현종과 양귀의 애틋한 사랑을 맹세한 화청궁이 한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화청지 관광을 마치고 진시황릉으로 향하면서 외곽 도로변의 건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진시왕릉 묘지 입구로 들어서면서 진시왕릉 광장에 세워진 대형 대리석 입간판
진시황릉은 여산릉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가 60만 평이며 4층 구조로 하나의 큰 산을 영상케 한다 흙으로 빚은 병사들(병마용)로 유명한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이 아니라 진시황릉의 주변에서 능을 보호하는 호위병이랍니다 병마용 박물관은 이 능을 계속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는데(밖에서도 땅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은 있죠) 밝혀진 것은 진시황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진시황의 묘만 해도 전체 면적이 2㎢(60여만평)에 달하고,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內城)과 성(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시안(西安)의 모습을 담았으며 묘역 외성곽 길이만 12㎞에 달한다니 이 정도면 무덤이라기보다 하나의 지하도시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 규모나 엄청난 유적이 자뭇 궁금해 집니다
진시황릉 유적지를 설명하는 2호차 가이드와 회원님
진시황릉 무덤 입구의 부조를 새긴 대리석 조형석탑
진시황릉으로 올라가는 계단
진시황릉 무덤최상단에 세워진 진시황릉지궁 안내탑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했던 진시황(B.C. 259~B.C. 210)의 무덤 정상부에 있는 지형도 석판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정문(세계8대 기적 중하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지궁 중심부에 위치한 묘실은 높이가 15m, 면적은 축구장만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시황릉 건축의 핵심 이라는 지궁은 황릉 봉토 지하 35m 깊이에 건설돼 있으며, 크기는 동서 170m, 남북 145m로 확인됐다. 또 묘실을 둘러싸고 있는 동서 168m, 남북 141m의 거대한 장벽(궁장·宮墻)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묘실 내부는 지하수가 침투하지 않아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확인되었으며 진 제국이 위치했던 시안 일대에는 60㎢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에 진시황 능원과 다수의 병마용 부장갱들이 산재해 있으며, 이미 발굴된 진시황 병마용 등은 이 유적들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제1전시관 - 1호 갱 (우군) -
1974년에 발굴된 갱으로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갱중 가장 규모가 큰 1만 4360평방 미터에 달한다. 키178~187 cm의 6000여 병마용이 3열 횡대로 늘어서 있으며 이들은 보병으로 추측된다. 대부분 병기나 궁노(활,석궁)등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력부대였음을 알수 있고 , 옷이나 상투에서 표정까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제2전시관과 제3전시관 - 2호 갱 (좌군) -
1994년에 개장한 2호 갱은 보병과 기병, 궁병(활과 석궁을 든 병사) 그리고 전차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 되어 있다. 1호 갱보다 규모가 작으며 900여 병마용과 기병용 안마 116필, 전차를 멘토마 350여 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완벽하게 복원되지 않아 확실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 전방에 궁병 , 그 뒤에 보병과 기병 , 좌군 중앙에 전차 부대가 배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1호 갱의 우군이 주력부대라면 2호 갱의 좌군은 기동력 있는 보조부대라 할 수 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 3호 갱 (군막) -
군을 통솔하는 사령부로 추정되는 3호 갱은 병마용 68개, 기마 4개 , 전차 1개로 아주 작은 규모다 . 그러나 군대의 기능상 가장 중요한 작전회의 장소로 추정되며 위치 또한 가장 후방이다. 다른 갱의 병마용들은 전투 자세로 서 있지만 이곳의 병마용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로 통로 양쪽에 정렬해 있는데 이들은 의식용 창들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호위병이 아닐까 추측된다.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청동지관실 (문물전시관)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동마차 전시실에는 진시황제릉 주변에서 출토된 2대의 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진시황이 터던 것을 약 2분의 1크기로 모형화한 것으로 진짜와 조금도 다름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 출토된 순서에 따라 1호와 2호로 구분한다. 무게가 무려 1톤이 넘는 이 마차는 진나라의 채색화 기예와 청동 기술 수준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케 한다. 그밖에 당시에 사용되던 무기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중 규모가 가장 큰 제1관 내부의 모습 1호갱은 토용, 말, 목조 전차와 보병을 혼합편성한 군진이다. 맨 앞쪽 3열은 갑옷을 입지 않은 경장비 보병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활을 쏘는 선봉부대이고 뒤에는 38종대의 전차, 보병이 엇갈려 배치되어 이씨는데 대부분은 갑옷을 입고 손에 창과 칼 등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주력부대에 속한다.
병마용이란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을 묻은 것인데 현재까지 3개의 갱(坑)이 발굴됐으며 그 중 1호갱에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 나올 것만 같다. 전국시대를 통일할 당시 진나라는 병사는 100여만명, 전차 1,000여승, 전마 1만 여 마리에 달하는 위풍 당당한 3군 진용을 갖추고 있었는데 병마용은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한 유물이다. 현재 발굴된 병마용은 원래 건설할 때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7천여 건의 병마용과 검, 창, 극, 긴 창, 쇠뇌, 수(殳), 화살촉, 금구(金鉤) 등 총 수량이 무려 3만 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병마용은 넓이 60m, 길이 210m, 지면에서 약 4.5m의 땅속 10개 갱에 진열되어 있는데 갱마다 병마가 10열로 놓여 있으며 전차, 포대 그리고 쇠뇌와 화살을 가진 보병대를 포함하여 발굴된 병마용은 6000여개 에 달한다.병마용은 주로 내려다 보며 관람해야 하기에 병마용의 병사나 군마가 좀 외소해 보이지만 실제 병마용의 키는 약 1.8m이다. 병마용 병사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으며 큰 관 을 쓴 것은 장군이고 장교는 작은 관, 병사는 머리를 위로 올렸다.
병마용갱의 발견의 계기된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던 자리(1번위치) 안내표지판이 있다 -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 1987年 지정(指定) -
1호갱 후미의 진열된 복원중인 병마용
1호갱 후미에 진열된 병마용과 기마
3호 갱 - 3호갱 중앙부에 출토된 전차 1량에 마용 4필로 구성되어 있다 전차는 나무로 만들어져 2천년의 세월동안 썩어서 없지만 고위 지휘관으로 추정되며 4명이 탑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지휘거 유물
전군을 통솔하는 지휘부 병마용
3호 갱 - 지휘부 외곽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입니다.
2호 갱 입구
2호갱은 기동부대 병마용으로써 동서 124m, 남북 98m로 1호갱보다 작은 편이다. 말 116마리, 각종 무사병마용 900개와 89대의 목제 전차가 진열되어 있으며 보병과 기마, 전차대가 혼합 편성되고 전방 에는 330명 궁노수가 배치되어 있다. 두번째 진은 64대의 전차로 구성되고 세번째 진은 전차, 보병,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에는 108명 기병과 6대의 전차로 구성되었다
약 6,000㎡의 2호갱은 현재 일부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기갑, 기병부대 이며 아직도 대부분이 미발굴 상태로 남아 있는 모습
2호 갱 유적 발굴현장 기물이 대부분 깨지고 흐트려져 있는 모습
2호갱에서 출토된 병마용 궁수병이며 표정과 자태가 셈세하고 세밀하여 자뭇 살아있는 느낌 입니다
2호갱 전시실의 유리과에 전시된 말과 마부의 모습
2호갱의 발굴중이 기마부대의 유적으로 파손상태가 심합니다
2호갱 발굴당시의 병마용으로 표정이 제각히 다르고 갑옷과 얼굴색상등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발굴후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퇴색되어 현재의 기술로 발굴에 문제점이 있어 후대에 기술이 업한후 발굴 을 위해 아직 발굴을 미루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 발굴을 하지 않은채 서까래 기둥으로 덮혀져 있는 2호갱 모습
궁병들이 모여 있는 궁병용부대, 말과 전차가 있는 전차병부대, 보병,기마병이 혼합되어 있는 부대. 기마병만 있는 부대등 4개의 부대가 서로 독립된 단위로 배치되어 있어 기동력 있는 주력부대를 보조하는 부대로 추정되고 있다
2호갱 일부 발굴된 병마용과 기물들이 있고 미발굴 상태로 대부분 보존되고 있다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의 동마차진열실 입구 현관계단 아래 회랑에 전시된 대형 병마용과 소녀상
진시황을 호위하는 병마용(兵馬俑)과 진시황이 생전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동마차(銅馬車)
노태우 전대통령이 퇴임 후인 2000년 6월 14일 방문하여 남기고 간 봉황무늬 도자기 항아리가 문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진시황 동마차(銅馬車) 복원 당시의 모습
진시황병마용박물관 유적관람을 마치고 잠시 휴식하면서
중국 서안시 위치한 규모과 방대하고 호화로운 궁전으로 영원불사를 꿈꾸던 진시황 황궁인 아방궁 정문 진시황당시 방대하고 웅장함이나 화려하고 호화로운 궁전은 2200년 전 초나라 항우(項羽)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는 중국"사기"에 기술이 되어 있으며 일부 고고학자들은 항우에 의해서 불탄 것은 함양궁이며, 아방궁은 불타지 않았다”라는 설이 제기 되고 있다. 현재 아방궁 건축물은 당시의 1/3 수준으로 축소하여 지은 건축물이라 한다
아방궁 정문앞 광장의 진시황 동상과 사자상
아방궁 정문 들어서면서 대형 대리석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아방궁 현관
매표를 하고 입구로 들어서자 마당 앞으로 해자가 있고 아치형 다리를 건너 웅장하고 화려한 아방궁의 정문 출입문이 있다
아방궁 입구에 있는 해자 물위에 오염물질을 한 아가씨가 수거하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아방궁 전경 (실제모형의 1/3로 축소하여 제건하였한 건축물로 당시 그 규모의 방대함을 직감할 수 있다)
진시황 동상이 있는 계단을 올라 있는 아방궁
아방궁 에서 본 앞마당과 사방으로 둘려싸인 아방궁
아방궁 2층의 진시황유적실 (옷을 랜탈하는 비용을 지급하고 황제의 옷을 입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
당나라 황제의 복장으로 정재민님 황제모습으로 한컷......
아방궁의 뒤편으로 있는 인공호수
아방궁 좌우 벽면으로 그려져있는 벽화
아방궁 벽화를 설명하는 1호차 중국현지 가이드
아방궁 우측건물을 넘어 광장에 조성되어 있는 동상
아방궁 우측 잔듸광장에 설치된 병마용 모형물
아방궁 우측 잔듸광장에 설치된 병마용과 동마차 모형물
서안 국제공항 출국수속중
서안 국제공항 면세점과 항공탑승 대기실
서안국제공항 출발전 2009년 4월21일 13:00 OZ320 기내에서.......
서안의 구불구불한 황하강을 중심으로 있는 광활한 농경지
엄청나게 넓은 경지정리가 잘된 농경지
항공기 아래로 편쳐지는 중국의 넓고 광활한 농경지와 마을
인천국제공항 착륙 계류장으로 이동 하면서
[길손동호회 중국서안여행에서......]
서안성벽에서 한경대고문님부부
서안성벽에서
서안성벽에서 |
첫댓글 회장님 화청지,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아방궁 등등 너무 상세하게 설명을 잘 해 놓았네요,,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