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윤지원의 추억거리는 대부분의 축구와 관련됐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어느새 함박웃음을 짓는다.
“한번은 기말고사 끝난 다음날이 K리그 올스타전 전날이었는데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약속했었어요. 그런데 올스타전 선수들이 훈련을 한다고 해서 약속을 깨고 보러 갔거든요. 친구들을 잃을 뻔했죠.(웃음)”
“축구를 보느라 밤을 샌 적도 많아요. 2월 5일 날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번째 경기를 보고, 다음에 올림픽대표팀 사우디전을 봤어요.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고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전교 1등을 했겠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시험공부를 할 때는 일어나고 싶어도 못 일어났는데 축구 할 때는 눈이 번쩍 떠져요.”
그 중에서도 최고의 추억거리는 ‘눈물의 인터뷰기’였다. 논문자료를 준비하며 만난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과의 이야기다.
“성남 홈경기장이 저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경기장이예요. 마계대전을 다루기도 했고요. 5월 5일 날 제주 유나이티드와 성남의 경기를 보러 갔는데 우연히 신태용 감독님을 만나게 됐어요. ‘찬스다’라고 생각하고 ‘제가 이런 주제로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인터뷰 부탁 드립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그런데 약속날짜에 갔더니 감독님께서 바쁘셔서 다음에 오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그 때 약간 서운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약속 날짜에 또 찾아갔는데 이번엔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속상한 마음에 구단 사무실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어요.(웃음) 그랬더니 구단직원이 혹시 모르니까 선수단숙소에 가보라고 하셔서 가봤더니 숙소에 계시는 거예요. 그렇게 눈물로 일궈낸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웃음)
하지만 축생축사(蹴生蹴死)인 그녀가 이번 3호 논문을 끝으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지금은 새로운 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2012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에 대해 쓰고 있어요. 드라마 같은 동메달 획득에 정말 감명 받았거든요. 홍명보 감독 지휘하에 3년 6개월 동안 만들어 낸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싶었어요. 제목은 ‘홍명보의 3년 6개월간의 기록’ 이 정도로 할까요?(웃음) 하지만 이번 3호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고3이 되거든요.”
“그리고 초중고리그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번 논문의 주제를 ‘초중고리그’로 바꿀까도 생각해봤어요. 팀 수도 많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중등리그와 고등리그 결승전 볼걸(Ball Girl)을 했었는데 응원단이 각 학교 학생들 밖에 없어서 안타까웠죠.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써서 초중고리그를 알리는데 힘써보고 싶어요.”
당당한 축구소녀 윤지원은 남성축구팬과 아직 축구의 맛을 못 본 비(非)축구팬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여자축구팬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너 축구 좋아해? 아~ 꽃미남 선수 좋아하는구나~’라는 식이예요. 물론 멋진 선수를 보러 축구장에 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선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해요.(웃음) 여자축구팬 중에는 멋진 축구를 보고,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고 저같이 논문을 쓰거나 이야깃거리를 즐기는 팬들도 많거든요.”
“그리고 축구 보러 경기장에 많이 와주세요. 솔직히 저 같은 경우에는 ‘경기를 보러 간다’라는 생각보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러 간다’라는 느낌이거든요. 경기장 분위기나 서포터즈 응원 모습도 경기만큼 재미있답니다. 직접 보세요!”
분명한 목표도 있다. 스포츠 방송작가. 아직 시간은 많다. 철저히 준비해서 꿈을 이룬다는 각오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송작가가 꿈이었어요. 처음에는 예능작가 지망생이었는데 지금은 K리그를 알리는 스포츠작가가 되고 싶어요. 팀과 경기에 대한 스토리를 전하고 싶어요. 지난번에 2군 프로야구 선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왜 우리 K리그 선수들은 안 다루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해낼 거예요.”
“약속을 지킬 자신은 없는데, 이번 홍명보 자선 축구대회를 끝으로 공부에 집중하려고요. 일단 마음만 먹었어요. 앞으로 수능 잘 봐서 스포츠작가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저 놀러 다니는 거 아니예요. 축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공부하는 겁니다. 응원해주세요!”
글=박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