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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끝나지 않은 노래 원문보기 글쓴이: 터사랑(김승규)
87년 6월항쟁 이후, 소위 '떴다'는 신진 창작자들의 노래
이영미의 민중가요 이야기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87년에 굉장히 유행했던 신곡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6월항쟁 연세대(1987.06.19)
이 노래는 안치환 작곡이라고만 흔히 알고 계실 텐데 안치환은 연대 '울림터' 출신입니다. 3~4학년 즈음에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87년에 완전히 대박이 났죠. 선배들이 데모를 하다가 잡혀가는 걸 보게되면서 가슴이 움직여야 노래를 짓는다는 안치환이 박영근의 시 몇 구절을 따와서 곡을 붙였습니다. 들어보면 확실히 문승현과 이성지의 영향이 절절하게 보입니다. 예컨대 문승현이 잘 쓰는 리듬패턴이 보이고 못갖춘마디입니다.
'솔아 푸르른 솔아'
△최루탄속 `6.10시위`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집회를 끝낸 대학생들이 10일 오후 서울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차도에 누운 채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흩어지고 있다.
성균관대 '소리사랑'이라는 노래패가 있었는데요. 85년 즈음에 나온 '광야에서'라는 노래가 '소리사랑'의 멤버 문대현씨가 지은 노래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꽃', '동지를 위하여'의 작곡자이고 문승현의 동생이기도 하죠. 문대현은 툭툭 트이는 호방한 느낌이 나죠. 처음에는 성균관대에서만 부르다가 87년 노래가 복잡해지는 시기가 되면서 대학동아리의 난다긴다하는 문대현 등의 학생들의 노래가 뜨기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한열아 부활하라' 추모테잎, 그리고 안치환
이영미의 민중가요 이야기
올해는 6월항쟁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87년 5~6월 즈음 대학생들은 명동성당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는데요. 명동성당에서 거의 밤샘을 했던 그 대열에 샐러리맨들, 넥타이부대들, 장사하시는 분들, 일반 시민들이 가세를 하니까 정권이 드디어 겁을 먹기 시작합니다. 차기 여권의 대통령 지명자였던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겠다는 단안을 내릴 수밖에 없기까지에 이릅니다.
△ 연세대 정문앞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오늘은 이한열 장례식과 관련된 노래 두 곡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곡은 사실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인데요.
'그 날이 오면' 문익환목사 조사
정말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데요. 저는 당시 그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이해주 교수가 넋풀이 춤을 추실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셨다고 그래요. 장례식이 있기 전 그 해 봄에 ‘바람맞이’라는 공연을 연소극장에서 하셨는데 그 창작 춤 중에서 물고문으로 죽는 장면을 형상화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히 박종철 열사를 떠올리게 했고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었죠. 6월항쟁이 끝나고 나서 ‘이해주 바람맞이’가 연대 노천극장에서 공연될 때는 2만명의 관객이 모였습니다. 당시 유료공연이었는데도 말이예요. 재야예술 공연권 중에서 최초로 암표가 등장했던 공연이었습니다.
△ '한열아 부활하라' 테잎
당시 울림터 중에서 노래를 잘 짓는 학생이 안치환이었습니다.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히트곡을 이미 하나 만들어낸 경험이 있었구요. 이 테잎에서는 5~6곡을 직접 지었는데요. 그 중에 가장 유명한 노래가 ‘마른잎 다시 살아나’라는 이한열 추모곡이었어요. 이한열 추모와 관련된 노래를 꽤 많이 만들었죠. 안치환의 창작역량이 최고조로 올라간 그런 테잎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