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관법요 2
天氣溫溫新春日 하늘 기운이 따뜻한 새로운 봄날에
新芽初自聳離眞 새싹이 처음 돋아 오르매 스스로 진을 여의고
傍人若問何奇特 무엇이 기특하냐 누가 물으면
南山燒炭北山紅 남산에 숯을 구우니 북산이 붉었도다 하리.
전수의발(傳受衣鉢)
대한 불교 달마회 법회에서 혜암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중국 동산 양개 선사(洞山良价禪師)의 법문을 들어 아래와 같은 법어(法語)를 하시었다. 즉 어느 중[僧]이 동산 선사에게 와서 문(問)하되
『오조(五祖) 홍인 선사(弘忍禪師)의 법(法)을 이어받아 육조(六祖)가 될 사람은 당시 오직 신수 대사(神秀大師)라고 누구나 추측하였고, 그는 오조 문하(門下)에서 가장 오랜 수학(修學)을 했을 뿐 아니라, 학력이 출중(出衆)하여 대중(大衆)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분으로서 그는
時時勤拂拭 하여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勿使惹塵埃 니라 진애가 묻지 아니하도록 하라.
라는 게송을 바치고도 어찌하여 달마(達磨) 스님으로부터 역대 조사(歷代祖師)가 이어받아 온 의발(衣鉢)을 오조(五祖)로부터 받지 못하였습니까?』라고 하니, 동산 선사께서는 말씀하시되
『육조 혜능 대사(慧能大師)께서
本來無一物 인데 본래로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 냐 어디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 보냐.
라 하고, 오조(五祖)로부터 의발을 전수(傳受)하였으나, 나[洞山禪師]는
直道本來無一物 이라 직도는 본래 무일물이라고 이르더라도
也未合得也衣鉢 이니라 또한 아직 합당히 의발을 얻었다고 못하리라.』고 하시고
『차도(且道)하라. 즉 또한 일러라. 어떤 사람이 합득(合得) 즉 맞음을 얻을 것인고?』
하시니 중(僧)이 구십육 전어(九十六轉語)를 하였으나, 모두 서로 계합치를 못하였다.
그러나 말후(末後)에 이르러
『설사 장래(設使將來)라도 타역불요(他亦不要)니라. 즉 설사 일어 가져오더라도 또한 부당합니다.』하니, 동산사(洞山師)께서 수긍을 하시었다 하시고, 혜암(惠菴)선사 께서는 대중(大衆)을 향(向)하여
『이 법문에 대하여 내가 대중에게 묻겠는데 동산(洞山) 선사는 「직도(直道)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하시었으나, 나[惠菴]는 「직통(直通)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하여도 의발(衣鉢)을 받지 못한다 하겠노라.』하시고
『시회 대중(是會大衆)이여, 자세히 관(觀)하라. 「직통(直通)은 어떻게 하여야 의발을 받겠는가?』하시니, 대중이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스님은
『나보고 누가 이 도리(道理)를 묻는다면 이와 같이 이르리라.』하시며
『여하보림(如何保任)이니이꼬? 즉 어떻게 보림을 하오리까? 라고 하겠다.』하시고, 곧 이어서 아래와 같은 송(頌)을 하시었다.
到頭般若鉢은 머리에 이은 반야발이는
任運落前境이니 임의로 운전하여 앞 경계에 떨어졌으니
北山一發花가 북산에 한 꽃이 발하니
忽地前山紅이니라 문득 한 땅 앞산이 붉었도다.
인생(人生)의 진면목(眞面目)
불생 불멸(不生不滅)이 참 묘법(妙法)인데, 우리는 무한한 세상을 살아 오면서 얼마나 많은 형상을 바꾸었던가? 천상(天上)세계·인간(人間)세계·귀신(鬼神)세계 등의 갖가지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몸을 받을 때마다 껍데기를 바꾸어 썼다.
선업(善業)을 지어서는 천상이나 인간에 났고, 악업(惡業)을 지어서는 귀신이나 축생의 몸을 받아 영겁(永劫)으로 무수한 고통을 당했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일체 중생이 자기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을 망각(忘却)한 데 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이 미(迷)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밝은 마음이 왜 미(迷)했는가? 번뇌와 망상, 그리고 욕심에 덮여 청정(淸淨)한 마음이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비유로 말하면, 청천(靑天)의 밝은 달이 나타나지 못함과 같나니, 그 검은 구름은 번뇌 망상에 비유한 것이요, 밝은 달은 마음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잘 수양하여 저 서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을 벗겨 버리는 것과 같이, 마음의 구름을 벗겨 버리고, 밝고 맑은 본래의 고향 달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눈으로 모양을 본다. 그러나 송장은 눈이 있어도 물건을 보지 못한다. 눈이 아닌 한 물건이 있어 무엇이든지 보지마는, 무엇이 보는지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한 모양도 볼 수가 없다. 아무리 볼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검은 구름을 벗겨 버리고 밝은 달이 나타난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미움과 친함이 없어진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생사를 면한 것이며, 아무리 보려고 하여도 한 모양도 볼 수 없을 때에 고해(苦海)를 벗어나는 것이다.
일체 중생이 나고 죽을 때 항상 육체만을 보고, 나고 죽는다 하지만 나고 죽음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망념(妄念)된 생각으로 난다 죽는다 하는가? 난다 죽는다, 간다 온다,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것은 하나의 명상(名相)뿐이요, 실체(實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없는 동시에, 개인 개인의 그 신령스럽게 비치는 불성(佛性)은 시방 세계를 통하여 두루(頭頭)에 항상 밝고, 물물(物物)에 항상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때에 그렇게 나타나는가? 혹은 눈에 보이는 색도 있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있을 때, 그 때에 바로 그것은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눈에 색이 보이고 귀에 소리가 들릴 때에 밝게 나타난다고 하지마는, 눈에 보이는 색도 없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없을 때에는 그것은 어디에 나타나는가? 그 때 그것은 잠자코 있다가 때를 당해 인연이 오면, 오늘 이와 같이 이 「법어집(法語集)」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나타나는 자체는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의 설법도 미칠 수 없고, 천하 선지식의 전법(傳法)으로도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타나는 자체에는 인연도 끊어졌고 대(對)도 또한 끊어진 것이니, 이것은 시방 세계(十方世界)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참 면목(面目)이며, 천하 선지식의 참 면목이며, 오늘 이 대중의 참 면목이다.
그 뿐 아니라 일체 중생이 고금을 통해 그것을 수용(受用)해 오지마는,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개개인이 본래 갖추고 있는 참 면목인 것이다.
身是正法藏 몸은 바로 이 바른 법을 감추었고
心爲無碍燈 마음은 걸림 없는 등불이니
照露諸法空 모든 법의 공함을 다 비추나니
一切皆明見 일체를 모두 환히 보네.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同一點)
부처님께서 가비라국 정반왕(淨飯王) 왕가(王家)에 태어나실 때, 대지(大地)에 광명(光明)을 놓아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땅에서는 금련화가 솟아나 그의 두 발을 받드니, 그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칠보(七步)를 걸으시고, 두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시며, 사자후(獅子喉)하시기를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무능존아자(無能尊我者)라.』하셨다.
이것은 「하늘과 땅 또 사방에 나보다 높은 자가 없다」는 뜻이다. 또 「태자 서응경(太子瑞應經)에도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곧 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제일 높다.』하셨다.
이 말씀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온갖 견해(見解)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석가 세존의 이 말씀의 근본 뜻은 바로 알기 어렵다. 석가 세존의 「오직 <나>만이 홀로 높다」하신 이 말씀은 석가 자신 곧 육신(肉身)이 홀로 높다는 뜻이 아니다. 일체 중생, 심지어 저 곤충까지도 천상 천하에 가장 높은 <나>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세존께서 세상에 나시면서 그 진리를 교시(敎示)하시기 위하여 세존 자신이 홀로 높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지 아니한다.
기독교 성경에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곧 영생(永生)을 얻으리라.』하였다. 그런데 이 말에 <나>라고 한 말씀은 예수 자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가진 참 <나>를 가리킨 말인 것이다.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천국(天國)에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를 다 버리고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였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 자신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나>를 따르라는 말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물으면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이라 하니,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본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석가 세존의 「천상 천하에 나만이 홀로 높다」는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요, 예수님의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신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니, 여기에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상법(事相法)으로 말하더라도 밖으로 쓴 즉 나타나고, 안으로 거둔 즉 감추는지라, 밖으로 공경하는 것을 들어서 안으로는 참된 성품을 밝히고, 나의 성품과 밖의 형상이 서로 응함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불상(佛像)을 위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로 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도리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우상은 배척해야 된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식 밖의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십자가는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성경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부처님도 예수처럼 믿을 것이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님 말씀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가정에서도, 부모는 불교도요 자녀는 기독교도라 해서 그 의견이 서로 같지 않음을 흔히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도 불교를 믿는 부모에게 효도를 달리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불교를 믿는 부모들도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믿는 진리(기독교와 불교)가 겉으로는 다르지마는, 그것은 마치 은 파도를 여의지 아니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와같이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임을 알아야 하며, 그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남의 옳지 못한 말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비유를 들어 보이리라.
가령 달 밝은 밤에 접시·사발·동이·항아리 등 무수한 그릇에 물을 떠놓고 보면, 그 그릇마다 달은 다 비추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니, 기독교니, 천주교니 하는 것 등은 곧 접시달·사발달·항아리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즉 그 그릇은 각기 다르나 그 달은 같은 달인 것이다. 보라. 청천에 떠 있는 달은 우주에 오직 한 몸만 비추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면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깨끗한 정신으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에서 철학이 어떠니, 심리학이 어떠니, 인생관이 어떠니 하고 떠들며 말하낟. 그러나 그것은 다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다. 참으로 위에 것을 달관(達觀)하여 인생이란 것을 철저히 타파(打破)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다 자기가 과거에 어디에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만 번 계교(計較)하고 사량(思量)하여 이르더라도, 그것은 다 뜨거운 불 위의 한 점[一點] 눈[雪]이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글이야 한 자도 모르더라도 내가 전생에 어디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 그 온 곳을 알아야 한다. 그 온 곳을 진실로 밝게 알면, 따라서 내생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참된 인생관이 성립되는 것이고,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金仙耶蘇本面目 부처님과 예수님의 본래 면복이
人前各自强惺惺 각각 사람 앞에 스스로 똑똑하게 밝았으니
一坑未免但埋却 다만 한 구덩이에서 면하지 못하고 묻히면
不知身在眼子靑 몸 가운데에 푸른 눈알이 있음을 알지 못하리라.
과해농주(過海弄舟)
만공(滿空) 선사와 혜암 스님, 그리고 진성(眞性) 사미 3인이 어느날 배를 타고 안면도 간월암(看月庵)으로 향하는 해상(海上)에서 만공 선사께서 묻기를
『진성아! 배가 가느냐, 물이 가느냐?』하시었다.
그 때에 진성이 아무 말이 없자 혜암 스님이
『배도 가지 않고, 물도 가지 않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만공 선사께서
『그러면 무엇이 가느냐?』하자 혜암 스님은 만공 선사에게 수건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에 만공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네 살림살이가 언제 그렇게 되었나?』하셨다. 여기에 혜암 스님이 답하기를
『이렇게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라고 하시었다.
불상흡유(佛像吸乳)
어느날 만공 선사를 모시고 수덕사 큰 방에 이르니 우연히 선사께서 불상을 쳐다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젖이 저렇게 크시니 수좌들이 굶지는 않겠구나!』고 하시니 그 때에 내가 묻기를
『무슨 복(福)으로 그 젖을 먹을 수 있겠나이까?』하니, 만공 선사께서 돌아보시며
『자네는 웬 복(福)을 그렇게 지웠는가?』하시거늘 내가
『복을 짓지 않고 그 젖을 먹을 수가 있사오리까?』하였다. 이에 만공 선사께서 이르시되
『저 사람이 부처님을 건드리기만 하고 젖을 먹지는 못하는군!』이라 하시었다.
그 때 만공 선사의 물음에 대하여 아무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으나, 지금 생각하건대 부처님의 젖을 빠는 형용이라도 지어서 보여 드렸어야 옳았을 것이다.
성적(惺寂)이 역망념(亦妄念)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서의 일이다. 조실 한암(漢岩) 선사께 내가 묻기를
『성성 적적(惺惺寂寂)할 때에 망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였다. 그 때에 한암 선사께서
『성성 적적일진대 망념이 있을 리가 있나?』
이 때에 「성성 적적이 곧 망념인 것을!」하는 생각으로, 내가 재배(再拜)하고 물러 나왔다.
여기서 눈 밝은 학인(學人)들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심야밀화(深夜密話)
전강(田岡) 스님과 용화사(龍華寺)에서 어느날 밤 내가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전강 스님이 느닷없이 나를 심하게 꼬집어서
『아야!』하고 잠이 깨었다. 나를 꼬집은 전강 스님이 아픔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가섭 미소에 대하여 일러라.』하고 소리를 쳤다. 내가
『……[ ]…….』(파설할 수 없어 기록 안함.) 라고 한 마디를 이르니, 전강 스님은
『내가 이런 말은 비로소 처음 듣겠소.』하였다.
무자십종병(無字十種病)
망월사(望月寺)에서 용성(龍城) 선사가 조실(祖室)로 계실 때, 대중이 조실 스님에게 사뢰기를
『지금 제방에 월분과도(越分過度)하는 학인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에 대해 무슨 문제를 하나 내주시면 제방(諸方)에 돌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용성 선사가
『「무자 십종병(無者十種病)을 여의[離]고, 도장 일구래(道將一句來)하라」란 글귀를 각 선원(禪院)에 돌려 일러 가져 오너라.』하시므로 이 법문을 제방에 돌렸다.
당시 이 법문에 대하여
① 만공 선사의 회답은
『승(僧)이 문(問) 조주(趙州)하되 「구자(狗者)도 환유 불성야무(還有佛性也無)니까?」조주 운(云) 「무(無)」』
용성 선사 평왈(評曰)
『무공철추(無孔鐵 )라 즉 구멍없는 쇠방망이로다.』하였다.
혜암 주(註)하되
『쇠방망이란 것은 구멍이 있어야 자루에 맞춰 쓰는 것인데 구멍 없는 쇠방망이는 쓸 데가 없는 것이다.』라 하였다.
② 혜암 선사는 위 용성 스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선락 여하(先落如何)오? 십종병(十種病)에 먼저 떨어진 것을 어떻게 하리까?』하였다.
③ 또 보월(寶月) 스님 답왈(答曰)
『나개 무자(那箇無字)는 기종병호(幾種病乎)아?』
④ 용성 선사 자답왈(自答曰)
『포화(匏花)가 철리출(穿 出)하여 와재 마전상(臥在麻田上)이라.』
혜암 평(評)
『한경와병인(閑境臥病人)이라. 즉 한가한 경계에 병들어 누운 사람이라.』
⑤ 혜월(慧月) 스님 답왈(答曰) 맹성(猛聲) 일할운(一喝云)하고
『아차일할(我此一喝)이 시야비야(是也非也)?』하였다.
용성 선사 평왈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
혜암, 용성 선사의 평(評)에 대한 평(評)
『불시불시(不是不是)라. 혜월 스님의 답은 최사현정( 邪顯正)이라.』
⑥ 성월(性月) 스님 답왈(答曰)
『망월영두운(望月嶺頭雲)이요, 금정산하적(金井山下賊)이라.』
용성 선사 평왈
『도적이 미신(微身)이라. 즉 도적이 조금 드러났느니라.』하였다.
끽다(喫茶)
박대륜(朴大輪) 스님과 차를 마실 때의 일이었다.
대륜 스님
『차맛이 어떠시오?』
혜암 스님
『앞산에서 숯 굽는 맛이라.』
교자(敎者)와 선자(禪者)의 문답(問答)
[ 교 ] 『정혜(淨慧) 등(等)을 배워 불성(佛性)을 밝게 본다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 선 ] 『우리 집에는 안과 바깥종이 없느니라[我家無奴婢].』
[ 교 ] 『보살이 중생들의 고통을 보시고 자비심을 일으키시는 것은 어째서 그러한가?』
[ 선 ] 『자(慈)란 부처를 이룰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며, 비(悲)란 중생을 제도할 것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것이다.』
[ 교 ] 『그렇다면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法)이 중생을 제도(濟度)할 수 없는 것인가?』
[ 선 ]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가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요, 그렇다고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가 없다고 말하면 그것도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진실한 부처는 입이 없으니 설법할 수 없고, 참으로 듣는 것은 귀가 없거늘 그 누가 듣겠는가?』
[ 교 ] 『그렇다면 일대장교(一大藏敎)는 쓸 데 없는 것인가?』
[ 선 ] 『일대장교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참으로 밝은 사람이면 바로 달을 볼 것이요, 우둔한 자는 그 손가락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사자는 흙덩이를 던지면 그 던진 손을 물지마는, 개는 그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과 같느니라.』
[ 교 ] 『믿어서 알고 실행해 증득(證得)하는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등각(等覺), 묘각(妙覺)은 비추어 고요하며, 번뇌(煩惱)를 굴려 보리(菩提)가 되고 생사(生死)를 굴려 열반(涅槃)이 되지 않겠는가?』
[선] 『등각과 묘각은 막대기를 걸머진 귀신(鬼神)이요, 보리와 열반은 당나귀를 붙들어 맨 말뚝이며, 명구(名句)를 인정(認定)하는 것은 똥덩이를 입에 문 것이요, 부처[佛陀]와 조사(祖師)가 되려는 것은 지옥(地獄)에 들어가는 업(業)이다.』
[ 교 ] 『부처라, 조사라 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인가?』
[ 선 ] 『부처란 환화(幻化)의 몸[身]이요, 조사란 늙은 비구(比丘)니라.』
[ 교 ] 『어찌 일체 보살과 부처님께서 보시고 증득하신 곳이 없겠는가?』
[ 선 ] 『자기의 눈[眼]을 어떻게 보[見]며,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증득(證得)하겠는가? 교(敎)에서도 「머리[頭]가 본래 그대로 있는데 스스로 얻었다[得] 잃었다[失] 하는 생각을 내며, 마음이 본래 평등한데 스스로 범부(凡夫)다, 성현(聖賢)이다 하는 소견(所見)을 일으킨다.」하였으니, 어찌 이 발광한 것이 아니겠는가?』
[ 교 ] 『필경에 그 이치가 어떠한고?』
[ 선 ] 『자기 본분상(本分上)에는 본래 이름이라는 것이 없지마는, 방편으로 불러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할 말이 있으나, 다음으로 미루어 밝은 날에 하리라.』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선가구감」(禪家龜鑑: 「선가귀감」으로 일반에 통용되나 佛家 특히 禪宗에서는 재래식 운음에 따라 「구감」으로 표기함.-編者)에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
『뜰 앞에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
이 화두에 대하여 청허(淸虛) 스님은
『이것은 「용궁장경(龍宮藏經)에도 없는 격외선(格外禪)이다.』하시고,
魚行水濁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鳥飛毛落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
하시었다.
내가 양산(粱山) 통도사(通度寺)에 있을 때다. 여기에 대해서 한 생각이 나기에 저녁 공양을 마치고 통도 내원사(內院寺)에 건너가 조실방(祖室房)에 들어가서 조실 혜월(慧月)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조실 스님이
『어떻게 건너왔느냐?』하시기에, 나는
『여쭈어 볼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하였다.
『무슨 말인지 말해 보아라.』
나는 말하였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話頭)에 대해 청허(淸虛) 스님은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맞습니까?』
조실 스님은
『그것은 꼭 맞는 말이지!』하시었다.
『어째서 맞습니까?』
『그야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지는 것은 본분(本分)의 도리(道理)가 아닌가?』
『스님, 그러면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고 나는 그것을 일었다. 내 읽는 소리가 떨어지기 전에 스님은 깜짝 놀라면서
『아차, 내가 잘못 살폈구나. 「뜰 앞의 잣나무」 화두에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는 것이 맞지 않는구나. 그래, 혜암 수좌 말이 맞다.』
하셨다. 얼마 뒤에 나는 또 정혜사(定慧寺)로 만공 조실 스님을 찾아 뵙고 여쭈었다.
『뜰 앞의 잣나무 화두에 대해 청허 스님은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하셨으니, 이 말이 맞습니까?』
라고 하니, 만공 선사께서는
『청허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그것이 정말인가?』하였다.
『「선가구감」에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가구감」에 그렇게 말했어도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어디 그 책을 가져와 보아라.』
마침 그 때 누더기를 입은 한 수좌가 걸망에서 「선가구감」을 꺼내어 만공 선사께 드렸다. 스님은 그것을 펴 보시고
『보아라. 이 글의 내용을 그 겉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의 안 까닭을 살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상 두 분의 말씀이 다 꼭같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한두 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만족할 것이 아니로구나.」생각하고, 나는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 뵈옵고 여쭈어 보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서울 대각사(大覺寺)에 계시는 용성 선사를 찾아가 뵈옵고, 위에서와 같이 여쭈어 보았다. 용성 선사께서도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지. 청허 스님의 말씀은 허물 구(句)를 말씀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공부(工夫)란 샅샅이 살펴 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것도 위의 두 분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청허 스님이 어찌하여 정전백수자화에 대하여
『어행수탁이요, 조비모락이라.』고 말씀하시었는지 한 마디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공부란 참으로 여러 선지식(禪知識) 스님을 찾아 탁마(琢磨)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청허 스님이 「선가구감」에서 분면히
「이것은 격외선인지라, 고기가 가니 물이 흐리고, 새가 날으니 털이 떨어진다.」고 하시었는데, 우리는 청허 스님의 이런 허물 구(句)에서 안 까닭을 분명히 찾아야 한다. 자꾸 독송(讀頌)하여 살피면 「선가구감」의 대의가 이 한 허물 구에 있음을 각자가 가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배(禮拜)
예배라는 것은 법답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체(理體)는 안으로 밝고, 사상(事相)은 밖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이체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요, 사상은 드러나고 감춤이 있는 것이니, 이런 뜻을 알아야 법을 의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저 예(禮)를 차린다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요, 절한다는 것은 아만(我慢)을 조복(調伏)받는 것이니, 나의 참된 성품(性品)을 공경(恭敬)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예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경을 행하기 때문에 아만이 끊어진지라 감히 그를 훼상(毁傷)하지 못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키기 떄문에 방탕하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악한 뜻을 길이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있으면, 비록 형상을 다투어 공경하지 아니하여도 언제나 예배하는 것이 되느니라. 착한 생각이라는 것은 마음이 순진하고 솔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을 착[善]한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상법(事相法)이란 그것을 밖으로 쓰면 나타나는 것이요, 안으로 버리면 감추는 것이라, 밖으로 공경함을 들어 안으로 진정 밝히는 것은, 성품과 외상(外相)이 서로 응(應)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만일 다시 외상(外相)으로 쫓아 예배하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안으로는 곧 탐(貪)·진(嗔)·치(痴)를 일으켜 항상 악념(惡念)을 행하고, 밖으로는 부질없이 외양(外樣)만을 나타내어 거짓 예경(禮敬)을 지을 것이니, 어찌 진실한 예배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성현(聖賢)을 속이는 것이라. 반드시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면서 악도(惡道)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탁발화(托鉢話)
덕숭산(德崇山) 수덕사(修德寺)에서 하루는 혜공(惠公) 스님이 탁발화(托鉢話) 공안(公案)을 내게 물었다. 나는 말하되
『나는 그런 것을 말할 생각도 아예 못 낸다.』고 하였더니, 혜공 스님은
『그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습니까? 암두(巖頭) 스님의 연극으로만 보십시오.』하였다.
나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행이 없는 부처가 없고, 소림문하(小林門下)에 거짓말을 한 조사(祖師)가 없다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니, 그 뜻[意]을 따라 나도 한번 해 보리라.」하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삼동(三冬) 결제 동안에 남 모르게 정진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탁발화의 골자(骨子)가 부러져 나왔다.
그 뒤에 선학원(禪學院)에서 향곡(香谷)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때 향곡 스님이 이 탁발화 법문을 말씀하기에 나는 그 스님에게
『어떤 것이 암두의 말후구(末後句)인가?』하고 물었다. 향곡 스님은
『덕산(德山)이 옳은가? 암두(巖頭)가 옳은가?』하고 되물었다. 내가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누가 덕산·암두의 옳고 그른 것을 물었는가?』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 탁발화에 대해서는 그 말후구(末後句)를 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말후구에 대하여 묻는다면
『안불견(眼不見)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이불문(耳不聞)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고 대답하리라.
교의(敎意) 선의(禪意)
어떤 학인이 조실 스님에게
『교(敎)의 뜻과 선(禪)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하고 묻자 조실 스님은
鷄寒上樹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鴨寒下水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
라 하셨다.
교의 뜻과 선의 뜻을 물었는데 어째서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고 하였는가? 교자(敎者)와 선자(禪者)는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만일 나에게 물으면
『유수성불견(流水聲不見)이라, 즉 물은 흘러도 소리는 보지 못한다.』라고 하리라.
농어십측(弄語十則)
혜암(惠菴) 스님이 대흥사(大興寺) 주지 청하(淸霞) 화상에게 황정(黃精)을 보냈더니, 청하 스님이 물어 왔다.
『내년 봄에 새 싹이 틀 때 오셔서 그것을 키워 주십시오.』
혜암 스님이 답하였다.
天氣溫溫新春日 하늘 기운이 따뜻한 새로운 봄날에
新芽初自聳離眞 새싹이 처음 돋아 오르매 스스로 진을 여의고
傍人若問何奇特 무엇이 기특하냐 누가 물으면
南山燒炭北山紅 남산에 숯을 구우니 북산이 붉었도다 하리.
[문] 『새 싹은 어디서 키웁니까?』
[답] 『남산에서 키우느니라.』
[문] 『쓸 데가 없습니까?』
[답] 『참으로 쓸 곳이 없을 데는 없다는 말도 못하느니라.』하시고 송(頌)하시기를
無用則用 쓸 것 없다는 것이 곧 쓰는 것인데
如何無用處 어떤 게 쓸 것이 없는 곳인가?
若眞無用處 만일 참으로 쓸 곳이 없다면
無言則無 없다는 말도 곧 없는 것이다.
畢竟如何 필경에 어떠한고?
日出扶桑國 해가 부상국에 뜨니
江南海嶽照 강남의 바다 묏부리에 빛이 비춘다.
하셨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어떤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걸어가는데 그 뒤에 그를 잡아 삼키려고 사나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었다. 생사가 박두한 그는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井]이 있고 등(藤)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등나무 넝쿨 하나를 붙들고 우물 속을 내려가 보았다. 거기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고, 또 우물 중간 사면에는 네 마리 이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가운데 매달려 있었는데, 그 위에서는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 그 등나무 넝쿨을 새기고 있었다. 만일 쥐가 새겨 그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면 그는 그 밑의 독룡에게 잡혀 먹힐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그는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 보았다. 그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뚝뚝 떨어져 그 입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그 꿀을 빨아 먹으면서, 그가 처해 있는 절박한 경계도 모두 잊어 버리고 단맛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용성(龍城) 선사가 도봉산(道峰山) 망월사(望月寺)의 조실로 계실 때에 전국 선지식 스님들에게 물었다.
『그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받아 먹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겠느냐?』
① 고봉(古峰) 선사는
『아야, 아야!』하고
② 전강(田岡) 선사는
『달다, 달다!』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아프고 단 데에 빠져 들어갔다면, 어찌 아프고 달다 하는 생각이 일어날 여지가 있겠는가? 달다고 할 그 때에 벌써 그 독룡의 입 속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만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입으로는 꿀을 빨면서 손가락으로 독룡의 아가리를 가리킨다.』고 하리라. 그리고
『상신실명(喪身失命)이라. 즉 몸도 잃고 목숨도 잃는다.』고 하겠다.
관음석불(觀音石佛)
만공(滿空) 선사가 어느 날 관음석불(觀音石佛)앞에서 문득 보월(寶月) 스님에게
『이 석불님 상호가 어떠하신가?』하고 물으시니, 보월 스님이 대답하되
『참! 거룩하십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만공 선사는 말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살피건대 보월 스님의 참 거룩하단 말씀은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보월 스님이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리려고 하다가 자신이 먼저 넘어진 것을 알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보월 스님이
『참 거룩하십니다.』할 때에 만공 조실 스님께서는 그냥 방장으로 돌아가실 것이 아니라. 마땅히
『내가 보월 볼 면목이 없네.』라고 하시고, 다시 보월에게
『자네가 「참 거룩하십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으니, 어느 곳에서 불상(佛像) 거룩하신 것을 보았는가?』라고 반드시 한 말씀 물어 보았어야 했었는데 그 말씀이 없으셨다.
아무 말씀없이 방장으로 그냥 돌아가신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고, 이(理)로 말한다 하더라도 만공 조실 스님을 걸고 넘어뜨려 버렸으니, 보월 스님께서 체면이 부족한 처사를 하시었고, 또 사(事)로 따져 말한다 하더라고, 경(經)에 이르시기를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고 했는데, 불상(佛像)이 「거룩하십니다」라는 생각을 일으키시었으니, 이것은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 되는 것이므로, 부처님에게 또한 불효자가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만공 조실 스님께서 나에게
『이 불상이 어떠한가?』라고 물으신다면, 보월 스님과 같이 그렇게 답변을 아니하고
『노원제처(老猿啼處)에 벽층층(壁層層)이라. 즉 늙은 원숭이 우는 곳에 벽이 층층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것이다.
고목한암(枯木寒巖)
옛날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施主)노파 한 분이 십년 동안 그 스님을 정성껏 돌보면서 그의 딸을 시켜 조석(朝夕)으로 시봉하게 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그 딸에게 일렀다.
『오늘은 네가 공양상을 물린 뒤에 그 스님 무릎 위에 올라 앉아 네 얼굴을 그의 얼굴에 대어 비비면서 「이런 때의 스님의 뜻이 어떠합니까?」하고 여쭈어 보아라.』하였다.
그 날 그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 암주 스님은
枯木依寒巖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니
三冬無暖氣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
하였다.
이 뜻은 「네가 3년 동안 내 앞에서 나를 시봉했지마는, 나는 네게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딸은 스님의 말을 그대로 그 어머니에게 전하였다. 노파는 딸의 말을 듣고는 그 스님의 공부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저런 속한(俗漢)이를 부질없이 3년 동안이나 돌보아 왔었구나. 참으로 분하다.』하고는, 그 스님을 쫓아내고 토굴에 불을 질렀다.
납자들아, 어째서 그 노파는 그 암주 스님을 속한이라 했는가? 그렇게 청렴하고 결백하게 지내온 그 암주가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났는가?
그 처녀가 스님을 안고 물었을 때, 어떻게 답을 했으면 쫓겨나지도 않고 토굴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겠는가?
전강 스님이 항상 이 법문을 잘 말씀한다 하기에 나는 법거량을 해 보려고 찾아가 위 공안(公案)에 대하여
『스님께 한 마디를 들으려고 내가 찾아왔소. 한 마디 일러 보시오. 그러면 나도 그냥 듣지 않고 한 마디 이르겠소.』하였다.
전강 스님은
『스님은 귀가 먹어 내가 소리를 질러야 말을 하니, 숨이 차서 나는 못하겠소.』하였다. 나는
『그렇다면 그 말은 어떻게 하였소? 이래서야 탁마를 어찌할 수 있겠소?』하고 대들었더니,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만일 이것을 내게 묻는다면 나는
『미란도침옥부도(迷瀾倒侵玉浮屠)라. 즉 흐린 물결이 거꾸로 옥(玉) 부도를 침노한다.』하리라.
그 노파가 화현(化現)이라 하더라도 암자까지 태워 버리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말로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한 것은 좀 지나치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인들이 무어라 말씀했는지 궁금하여, 동래 선암사(東萊仙岩寺)에 가서 석암(錫菴) 스님에게서 염송(拈頌)을 얻어 보았더니, 거기도 그 노파의 허물이 적혀 있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以前) 소식(消息)
혜월(慧月) 스님 회상(會上)시 사(師)께서
『삼세심(三世心) 불가득(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 何心)인고?』라는「주금강(註金剛)의 법문을 제방에 돌리신 일이 있었다.
그 후 혜월 스님을 시봉하였던 부산 선암사 정 운암(鄭雲岩) 스님이 위 공안(公案)에 대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수덕사 능인 선원(能仁禪院)에 주석하시던 만공(滿空) 선사에게 물어 오기를
『「삼세심(三世心) 불가득(不可得)인데 점마하심(點 何心)인고?」라는 법문을 아무리 참구(參究)하였어도 그 향상(向上)을 보지 못하였사오니, 만공 스님께서는 소승을 위하여 친절히 그 선지(禪旨)를 일러 주십시오.』라고 서신을 보내 왔었다.
만공 선사는 이에 대하여 답하시기를
『위음왕불 이전(威音王佛以前)에 이미 다하여 마쳤느니라.』라고 하셨다.
그 때에 보월 선사가 만공 선사의 답하신 그 서신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큰 스님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을 하고, 그 서신을 태우고[燒] 나서
『누구의 눈을 멀게 하시려고 이런 답을 하십니까?』라고 말씀을 드리니, 만공 선사는 그 자리에서 금선대(金仙臺)로 가시어 칠일을 면벽(面壁)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시게 되었다. 그동안에 보월 스님은 만공 선사를 대신하여 정 운암 스님ㅇ게
『배호서(背湖西)하고 향영남(向嶺南)은 심중(心中)에 부절여의(不絶餘疑)이더니 여금(如今)에도 부절여의로구나. 견후(見後)에 소각(燒却)하고 갱절여의(更絶餘疑)하라.』라고 쓴 답서를 송부하시었다. 칠일 정진을 마친 만공 선사는 보월 스님을 부르시고 말씀하시기를
『보월이, 내가 자네한테 십년 양식을 받았네.』라 하시며, 두 스님 사이에 밀계(密契)가 있었다. 이윽고 보월 스님이 대신한 답서에 대하여 만공 선사는
『참으로 밝은 답이로구나.』라 하시고, 위 문답은 그 후로 끝이 났었다.
위 법문에 대하여 한 마디 하겠는데, 보월 스님이
『누구의 눈을 멀게 하려 하십니까?』라고 하였을 때에, 어지하여 만공 스님으로서
『그것은 내 허물이거니와 그렇다면 자네는 무어라 하겠는가?』라고 받드시 한 말씀 물어 보시어야 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큰 선지식(禪知識)이신 스님이 그것을 묻지 아니하시었는지 지금 만공 스님이 생존해 계시면 한번 여쭈어 보고 싶은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보월 스님이
『누구의 눈을 멀게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한 법담(法談)이 참으로 올바로 한 말씀이라면, 당시 혜월 스님의 위 점마하심(點 何心)의 물으신 법문에 대하여
『나는 어느 마음에다 점을 치겠습니다.』라고 한 말씀하시고 난 후에, 만공 스님의 서신을 태웠어야 하는데 그런 말씀없이 무조건
『누구의 눈을 멀게 하시려고 하십니까?』라고만 하시었으니, 보월 스님의 이 말씀이 참으로 바로 하신 말씀인지 후일 눈 밝은 사람이 있어 그 허물을 말할까 염려가 되는 것이다.
만일 혜월 선사께서 나에게 그것을 물으신다면 나는
『안산(案山)에서 이미 점을 쳐 마쳤노라.』라고 답을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