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굉장히 재능이 넘치고 사회적으로도 꽤 성공한 사람이었는데, 좀 뒤늦게 터진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의외로 "집터"였습니다.
내가 전에 살던 곳에서는 뭐 하나 되는 게 없었는데,
여기로 이사오고 나서부터 다 잘 되기 시작했다니까?
신기하지? 진짜 땅의 기운, 집의 기운 같은 것이 있나봐.
나는 절대 이사가지 않고 여기서 평생 살 거야.
과학이 종교를 밀어낸 후,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기에 믿을만하지 못한 것들이라고 평가됩니다.
미신이라는 말 자체가,
미혹할 미(迷)에 믿을 신(信), 즉, 잘못된 것에 빠져 미혹되다라는 뜻이죠.
하지만, 과학을 수십년간 연구해 온 과학자들조차
공부를 잘해서 유수의 명문대를 거친 지식인들조차
크고 작은 미신들을 믿으며 그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당, 신점, 굿, 부적, 타로, 풍수지리 등등.
그렇다면 왜 똑똑한 사람들이 과학적이지 않은 현상을 믿게 된 것일까?
미신과 방어기제
극심한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인해 심리 상태가 잔뜩 위축되고 왜곡되어 있는 경우,
이 사람들이 어떠한 의식을 통해 자신이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정화되었다고 믿게 된다면,
실제로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많이 개선될 수 있다.
이 과정이 초자연적인 관점에서는 엑소시즘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내면의 극심한 불안, 분노, 우울의 감정 등이 해소되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
즉, 엑소시즘은 귀신을 쫓는 작업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앙금과 홧병을 축출하는 작업인 것이다.
글 초반의 집터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내가 성공한 것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겁니다.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결국 세상이 알아줬구나 라던지
내가 성장해서 결국엔 이만큼 이뤄낼 수 있었구나 라던지 말이죠.
그런데,
자신의 성공을 관찰하면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희미한 불안감에 휩싸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과연 잘나서 성공한 걸까?
이번엔 운이 너무 좋았어. 운이 다하고 나면 난 어떻게 될까?
내가 실제보다 과대평가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실망하겠지?
난 지금 실력보다 더 좋게 포장되어 있어. 이 포장지가 뜯겨지면 난 어떻게 될까?
이처럼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
실제로는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세상을 속이고 있는 사기꾼처럼 느끼는 현상을
임포스터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오해나 착각이며,
곧 정체가 들통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을 갖게 되죠.
'나는 사실 딱히 재능이 없어.
그게 바로 내가 이 나이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이겠지.
그런데 지금 난 세상의 주목을 너무 받고 있어. 내 능력 이상으로.
하지만, 별 일 없을 거야.
내가 이 집에서 계속 사는 한, 이 집의 기운이 날 지켜줄 테니까.'
영화 <더킹>에서 검찰청 권력의 중심에 있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은
다음 대선의 향방을 알기 위해 용한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점쟁이가 점지한 대선후보에 올인하여 자신의 운명을 맡기죠.
부장검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을 의사결정을
고작 신점에 의지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디 욕망이란 불안과 한몸으로 태어난 샴쌍둥이 같은 존재입니다.
욕망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달성한 욕망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일평생 거대한 불안과 맞서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신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요?
무당, 신점, 굿, 부적, 타로, 풍수지리 등등.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돈은 벌만큼 벌었겠다,
이 돈으로 내 불안을 경감시킬 수만 있다면,
이게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인간의 진짜 실력은 베일에 감춰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그 베일이 얼마나 값지고 멋진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미신을 믿고 안믿고는 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이고 똑똑하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내면에 얼마나 거대한 욕망과 불안이 자리잡고 있냐에 달려있죠.
결국, 뇌가 과도한 불안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미신을 믿기로 결정한 겁니다.
뇌 입장에서 이게 과학적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할까요?
이 믿음으로 인해 불안과 각성 수준이 낮아졌다면, 이 시스템을 채택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사람에 따라,
어떤 이는 이렇듯 미신에 기대고, 또 어떤 이는 인문학에 기대며,
또 어떤 이는 술과 담배에, 또 어떤 이는 정신과 약에 기댄 채
힘들고 고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고 나의 내면을 정화하는데 과연 어떠한 조력자와 함께 할 것인가?
꼭 심리학만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건강한 믿음이라면, 초자연적인 존재도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기타 여러가지 것들이 우리를 지지해줄 수 있겠죠.
인생은 길고, 삶에서 고통은 불가피합니다.
꼭 여러분들만의 불안과 고통을 다스리는 노하우를 얻길 바랍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해당되는 내용들이고 내란수괴가 떠오르기도 하고ㅎㅎ 임포스터 전에 차클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탈피하려면 자존감을 높여야 할텐데 쉽지 않네요ㅠㅜ
미신을 믿는 배경에는 커다란 욕망과 불안이 자리한다.. 오늘도 배워갑니다. 자회사의 경영권을 탈취하려고 시도한 누군가와 범죄 사실을 은닉하고자 국지전과 쿠데타를 시도한 미치광이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