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가 되었는데...'
나는 자꾸만 쏟아지는 잠을 뿌리치고 길 건너편을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
들이 가끔 웅크린 내 등을 쓰다듬었다. 뭐니뭐니해도 손길은 그 아이의 손길
이 최고였다.
그때도 꽃을 시샘하는 바람처럼 쌀쌀한 봄이었다. 나는 엄마고양이로부터
버려져 목련나무아래 고픈 배를 안고 거의 죽을 듯 엎드려 있었다. 생선냄새
가 나를 이끌었다. 어묵이랑 떡볶이를 파는 가게 앞이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 야옹 소리한번 내지 않고 있던 터였다.
"엄마, 이것 보세요."
들뜬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살그머니 눈을 떠 아
이를 보았다. 아이는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이가 눈
에 띄었다.
"누가 고양이를 버렸네."
뒤따라 나온 아이의 엄마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거 봐요. 엄마, 우리 키워요."
"엄마가 아니라 너야. 이제 네가 고양이 엄마가 되는 거야."
아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나를 안아 조그만 박스에 헝겊을 깔고 우유를 접
시에 담아주었다. 조금 들쩍지근한 비린내가 나지만 그런 대로 맛있었다. 아
이는 내가 혓바닥으로 열심히 햝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배가 불
러오자, 그제야 나는 실컷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고양이엄마가 된 아이는 내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넌, 이제부터 미루야. 미루는 하늘이란 뜻이야. 하늘처럼 넓고 푸른 고양
이로 자라야 돼."
아이는 나를 안고는 연신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이 닿는
감촉에 눈을 감았다.
"넌 또 자는구나. 잠꾸러기야. 잠꾸러기 미루."
그러면서 아이는 또 쓰다듬어 주었다. 아침에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
는 헝겊이 깔린 박스에서 먹고 자고 그야말로 편한 생활을 하였다. 오후쯤
되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항상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오늘도 마찬
가지였다.
"미루야! 잘 있었어? 밥은 많이 먹었고?"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야옹할 뿐이었다.
"얘가 네 고양이니?"
어느 사이 아이 옆에 웬 낯선 여자아이가 보였다.
"응. 미루야."
"너무 귀엽다. 만져봐도 되니?"
"그럼. "
나를 안은 아이가 친구에게 나를 건네듯 팔을 내밀었다. 나는 친구의 손이
닿는 게 싫었다. 털을 삐쭉 세워 소리를 질렀다. 친구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나를 싫어하나 봐."
친구는 입을 삐쭉거리며 속삭였다. 아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미루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를 엄마로 알거든."
그러면서 아이는 나를 연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손짓을 친구는 부
러운 듯 바라보았다. 애처롭기까지 했다.
'한번 쓰다듬게 해 줘?'
나는 살짝 꼬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아이의 엄
마가 아이들을 불렀다.
"미루는 그만 내려놓고 이것 먹고 집에 가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볶이 한 접시를 내밀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입맛을
다시며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다시 박스에 담겨졌다. 아이는 친구와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는 재잘대며 가게를 나갔다. 나갈 때는 잊지 않고 나를 쓰다듬어
주며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고 갔다. 나는 그 웃음을 햇살인양 느끼며 따뜻한
오후를 보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아이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친구는 여전히 품에 안
은 나를 부러워하고, 아이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아이는 나를 내
려놓고 친구와 집으로 가 버렸다. 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종일 가게
에서 나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친구와 늘 같이 있다. 여전히 내 주
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가게에 와서 떡볶이나 어묵을 먹는 아이들이 있
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어른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항상 나를 쓰다듬어 주
고 지나간다. 그래도 나는 쓸쓸하다. 언제 어느 때고 아이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살랑대는 봄바람에 꽃내음이 내 등을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쓸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버리고 간 엄마고양이가 생각났
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나를 한번은 찾아와 줄까? 나는
먹는 것도 마다 한 채 골똘히 엄마고양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
을 봄바람이 알았는지, 엄마냄새를 싣고 왔다. 그 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
로 아이는 친구와 집으로 간 뒤였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커서 박스에서 나
와 가게 앞 은행나무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를 들으
며 매연 속에서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실은 아이가
사라진 육교 위를 보고 있었다. 문득 나도 저 육교 위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
을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한 마리 검은 고양이가 살금살금 사람들이 없는 틈
을 타 내려오고 있었다. 몸짓이 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아주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주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
었다. 검은 고양이는 말없이 다가와 다짜고짜 혀로 내 몸을 햝았다. 나를 낳
아 준 엄마고양이였다. 나는 너무 반가웠다. 엄마고양이는 앞장 서 걸어갔다.
나는 잠시 주춤거렸다. 돌아보니 아이의 엄마가 탁자를 닦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떠나기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엄마고양이 뒤를 따
라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나를 쫓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내가 기다리는 아이의 걸음은 아니었다.
엄마고양이를 따라 도착한 곳은 가게 건너편에 있는 백화점이었다. 엄마고
양이는 백화점 주차장 근처에 있는 덤불 숲에 집이 있었다.
'잘 컸구나.. 멀리 가려고 했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어..'
엄마고양이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였다. 엄마고양이는 인근 음식점의 쓰레
기통을 뒤져 맛있는 고기를 가져왔다. 내가 처음으로 맛보는 거였다. 엄마고
양이는 연신 나를 혀로 햝았다. 엄마고양이를 따라다니는 잿빛 고양이가 있
었다. 항상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고 처음 내 종족을
보았다. 사람이 아니라 네발로 땅을 딛는 동물이었다. 간혹 음식점 앞을 어
슬렁거리다 보면 수채 구멍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쥐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동물이나 아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긴 꼬리를 잡아보고 싶
은 생각이 들게 하는 동물이었다.
"이렇게 잡는 거야."
하면서 엄마고양이가 날쌔게 쥐를 한 입에 물고 왔다.
"엄마 살려두면 안돼요?"
"뭐라고?"
"너무 불쌍해요."
엄마고양이가 놀래서 입을 벌리는 사이 떨어진 쥐가 재빠르게 하수구 구
멍으로 도망쳤다.
"다시 돌려보내요."
처음으로 잿빛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눈빛이 매서운 고양이였다.
"사람 냄새가 너무 많이 나."
엄마고양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엔 그득 눈물이 고여있었
다.
"얘야. 우리는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아. 너를 데리고 가려 했는데 안
됐구나."
엄마고양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요? 엄마?"
"......."
엄마고양이는 대답대신 혀로 내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마치 내 눈물을 닦
아주는 듯 했다. 잿빛고양이가 앞장 서 걸었다. 엄마고양이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두 마리의 고양이는 몸을 날려 뛰어갔다.
홀로 남은 나는 하늘을 보았다. 어느 사이 어두워진 하늘엔 별들이 조롱
조롱 걸렸다. 문득 사람의 품이 그리웠다. 둥그런 달님이 아이의 얼굴을 품
고 있는 듯 보였다. 밤바람은 시원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춥고 배고팠다.
따뜻한 헝겊이불이 간절해지는 밤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가게를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문
은 닫혀 있었다. 나는 은행나무아래 엎드려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눈앞을
흐렸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익숙하게
듣던 소리들이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여서인지 잠이
몰려왔다.
"어머 미루야!"
내가 잠을 깰 사이도 없이 나를 덥썩 안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그 아이였
다.
"미루야, 어디 갔었니? 우리 미루를 누가 훔쳐갔나 생각했지. 잘 있었어?
배는 안 고파?"
아이는 숨이 막힐 듯 나를 꽉 안았다. 새삼 다시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학교 갔다올 때까지 꼼짝 말고 여기 있어. "
아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애원했다. 아이의 엄마도 내가 돌아 온 것이
기쁜지 일을 하는 틈틈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여느 날과 달리 사람들의 손
길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엔 뒤를 돌아
보던 엄마고양이의 눈빛이 남아있었다.
"널 데리고 가려했는데 안됐구나..."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듯 하늘엔 하얀 구
름들이 몽실몽실 모여있었다. 마치 긴 여행을 앞둔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