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김영길행우가 한은동우회 소식 9월호에 제가 올린 향조회 소개글을 보고 얼마 전 저에게 보내온 글입니다.
김행우는 지난 6월 16일 조재연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되었다는 기사를 이튿날 아침 읽고 감격을 하여 떠오른 단상을 적어두었었는데 마침 동우회 소식지를 본 후 저에게 그 글을 보내온 것입니다.
이 글은 향조회 게시판에도 올렸는데 김행우를 아는 분들이 많아 이곳 쌍육회 밴드에도 올리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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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재연 변호사!
조재연 변호사는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74년도에 한은에 입행했다. 내가 인사부 근무하던 78년 초 쯤, 서슬퍼런 유신시절 재무부 김용환 장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조재연 행원을 장관실로 보내라는 거였다. 그 날 아침 중앙일보에 당시 한은 물가조사과에 재직하던 조재연 행원에 대한 기사가 났었다. 그 해 방송통신대학 수석 졸업, 대학편입검증시험 수석, 성균관대 법대 편입 수석입학 등 3관왕의 타이틀을 붙여서였다.
재무장관실에 다녀온 조재연 행원에게 물어보았다. 김장관께서 본인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했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격려와 함께 금일봉을 주시더라는 것이다. 짓궂게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얼마더냐고 물었더니 5만원이라고 했다. 당시 행원 봉급의 2~3배가 되는 큰 금액이었다.
나는 그가 왜 4년제 야간대학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2년제 방송통신대학을 갔는지 문득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았다. 당시 한은에서는 상고를 졸업하고 입행한 초급행원들은 4년제 야간대학에 들어가 미흡한 학력을 채우고 또 진로를 바꾸곤 하였다.
그는 어머님이 시장 좌판에서 장사를 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데, 새벽에 리어카로 물건을 싣고 시장에 좌판을 벌이고 저녁이면 걷어 산꼭대기 집으로 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들은 중,고등학교에 다녀서 도울 수 없어 자신이 은행 출근 전에 어머님과 함께 시장에 리어카를 끌어다 드리고,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끌고 와야 하므로 매일 출석하는 야간대학은 다닐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때 이 말을 듣고 충격이 매우 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정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상고를 졸업하고 한은에 들어오면 누구나 야간대학을 쉽게 가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얼얼한 감정이 한동안 쉬 가시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여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할 즈음, 한은을 퇴직하고 공부에 전념했고 얼마 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후에 그는 판사로서 엄혹한 군사정권 하의 시국 및 이념 관련 사건에서도 시민의 인권과 약자편에 서는 판결로 지상에 간간이 이름을 올렸다.
가족의 생계를 돕느라 한은에 다니면서도, 퇴근 후 야간대학에도 제대로 갈 수 없어 전파에 의존하는 방송통신대학을 다녔다는 그가 이제 대법관이 된다는 소식이다. 멀리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신선한 이야기이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2017.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