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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4-10-11 임병호 논설위원
월요칼럼 / ‘통일마을’ 사람들
정식 명칭이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인 ‘하나원’이 개원된 이후 5년동안 3천70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탈북민들은 안성시 삼죽면에 있는 하나원에서 두 달 간 생활하며 적응교육을 받은 뒤 사회로 배출된다.
문화탐방·구매체험·봉사활동 등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그램, 기초 직업 교육, 전산 및 운전, 심리안정 및 정서순화 프로그램 등이 탈북민들에게 교육하는 주요 내용이다.
하나원은 독일, 이스라엘의 예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난민 수용 프로그램을 참조로 설립됐다. 정부는 탈북민의 성공적인 사회 적응을 위한 정착금 지급과 주거지 및 직업 알선 등 5년 간 ‘특별대우’를 해주고 궁극적으로는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까지 고려해 탈북민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인 사고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정부가 해주는 것이 적다며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탈북민들이 “‘탈북민 마을’ 건설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나서 정부를 당혹에 빠트렸다
‘탈북민 마을’은 탈북민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두리하나선교회(대표 천기원)와 두레교회(목사 김진홍) 등 교계 단체가 경기도 화성시 모처 야산에 마련한 50만평 대지에 100가구 거주 규모의 통일마을이다. 마을 안에는 주택과 농지·소규모 공장 등이 들어서고 탈북민들은 농업이나 식품 가공 등에 종사하면서 집·토지·공장 등을 공동 소유하게 된다. 수익은 노동량에 따라 차등 배분하고 생필품은 스스로 번 돈으로 사게 된다. 북한의 협동농장에 남한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내년 초 탈북민 20~30가구가 이 마을에 시범적으로 입주해 공동체 생활을 할 예정이다. 지난 8월11일 발족한 ‘통일 마을 준비위원회’에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 이영덕 전 국무총리, 대학생선교회 김준곤 목사 등 8명이 참여했었다. 그런데 정작 ‘통일 마을의 주인’이 될 탈북민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이유 중 하나가 집단적으로 모여 살지 않고 보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였는데 산 속에 모아 놓는다고 한다면 어떤 탈북민이 거기에 가려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국내의 탈북민들은 비록 사회 적응 능력이 미비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섞여서 살고 싶어할 것이다. 탈북민들끼리 모이면 오히려 적응 능력이 더디어지고 불평·불만이 더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통일 마을에서는 아무래도 농장이 중심이 될 터인데 북한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온 사람들이 농사짓기를 꺼려할 것은 예견되는 일이다. 탈북민들이 통일마을 입주를 꺼리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국민들의 차별 의식과 시선이 싫어서라고 한다. 사람들이 “ 아, 저기는 탈북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 하고 생각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기는 했지만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가운데 정착에 실패하여 사회적 낙오자로 전락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이들을 마치 ‘이등 국민’ 대하듯 한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적응교육이 충분치 못한 게 더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폐쇄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탈북민들이 불과 2개월 정도의 훈련기간을 거쳐 초기 정착지원금 1천300만원을 받고 모든 게 이질적인 남한 사회에 무리없이 편입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앞으로 정부는 대북 지원도 좋지만 보다 먼저 목숨을 걸고 남한을 찾아 온 탈북민 정착촌 조성에 행정편의 제공, 비용 분담 등 적극적인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물론 국민들도 탈북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입으로는 ‘통일’과 ‘북한 동포 돕기’를 외치면서, 어떤 면에서는 통일을 먼저 몸으로 실천한 탈북민들을 백안시해서야 되겠는가. 혹시라도 ‘통일 마을’을 ‘혐오 시설’로 경원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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