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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T.V 무상사 무비스님의 법화경 산림
무비스님의 행복특강
법화경, 꽃을 피우다
2009년 9월 23일
제 25 강 - 1
무비스님의 불교 T.V 무상사 ≪ 법화경, 꽃을 피우다 ≫ (25-1) 중 일부
오늘은 16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공부할 차례입니다.
≪법화경≫을 28품이라고 하면은 전(前) 14품을 적문(迹門)의 내용이다, 그리고 후(後) 14품을 본문(本門)의 내용이다, 크게 그렇게 나눕니다.
물론 14품, 전(前) 14품(品)속에도 본문(本門)의 내용이 있고, 후(後) 14품(品)속에도 적문(迹門)의 내용이 있습니다마는 대체적으로 전 14품은 적문의 내용이 중심이 되고 후 14품은 본문의 내용이 중심이 된다,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적문(迹門)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적인 우리의 삶의 모습, 그리고 부처님으로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역사적인 사실, 이러한 것들을 적문이다, 자취다, 흔적이다,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긴 모습이다, 이렇게 이제 본다면, 또 우리로 본다면 지금 우리들이 나이가 몇 살을 먹었고 성씨는 누구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다 하는 그런 그 이력에 관한 그런 입장을 우리가 적문(迹門)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본문(本門)이다, 라고 하면 우리의 그 내면의 궁극적 입장을 본문(本門)이다 그래요. 부처님으로 보더라도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없이 그 역사적인 사실의 근저(根柢)가 되는 본체(本體)가 되는 그런 입장을 본문(本門)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후 14품 본문 내용 중에서도 앞에서 <종지용출품>에서 본화보살(本化菩薩)이 난데없이 등장을 합니다. 무수한 보살들이 본래 교화되어 있는, 본래로 보살, 다시 말해서 본래로 보살인 입장을 밝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을 해서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로 보살이기 때문에 그냥 땅에서 언제 보살행을 했는지도 모를 그런 오랜 세월 전부터 보살로 있었던 그런 많은 보살이 땅에서 솟아 올라왔다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그런데 보살이 그렇게 많은데 그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이 교화했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든지 기타 사람들은, 대개 이제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부터 2,600년 전에 가비라 성에서 태어나가지고, 또 가야성에서 멀지 아니한 부다가야에서 성도(成道)를 하셔가지고 기껏 ≪법화경≫설할 때 까지 출가한 이후 한 40 여년 동안 설법을 하신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언제 그 많은 보살들을 교화했는가? 이런 이야기로 이제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대들이 나를 그렇게 알고 있지만 그건 나의 형상적인 모습이고 나의 본체적인 모습, 본래의 나의 모습, 나의 궁극적인 자리는 그런 너희들의 안목으로 그렇게 보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러면서 나의 진정한 생명의 역사는 무한히 오래고 오래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그 수많은 보살들을 교화했다고 하는 말도 맞고, 그리고 이 자리에 우리를 위시해서 부처님 당신이나 어느 때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이 불과 100년 미만 살다가는 그런 역사적인 삶을 살지만 그러나 본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영원히 살고 있다! 영원히 살고 있다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고 있다하는 그 사실을 들어내는 내용이 바로 <여래수량품>이고 또 <종지용출품>의 본화보살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요즘 아주 발달한 과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기도 하면 좀 쉽겠지만 옛날에는 정말 설명하느라고 하는 것이 <종지용출품>과 <여래수량품>이라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밖에 달리 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나의 이 육신 대개 사람들을 이 육신이 나라고 생각하잖습니까? 그 이상 벗어나서 달리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해요. 근데 이 육신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금만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이해하기로 하면 이게 어디 60살 먹었다고 60살짜리밖에 안 됩니까? 아니에요. 또 기껏해야 뭐 나의 몸이 육척이라고 하면 육척의 내 한정적 나의 모습 이것만이 내가 아니에요. 이 드넓은 우주와 저 많고 많은 삼라만상, 천지만물과 사실은 더불어 함께하고 있는 거예요. 이 육신도, 공간적으로 보면 그래요. 또 시간적으로 보면 60세라든지, 70세라든지, 80세라든지 그 한정된 나의 생명의 수명의 끝이 아니라 내 육신의 생명도 역시 무수한 세월을 두고 어느 한순간 어떤 인연에 의해서 내가 이러한 모습을 지었을 뿐이야. 예를 들어서, 나무가 종이가 되고 종이가 다시 흙이 되고 흙이 다시 무슨 다른 어떤 물질로 전환이 될 수도 있고 그렇듯이 우리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육신은 다른 우주만물 여러 가지 것으로부터 내가 이렇게 탄생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60년이다 70년이다 도저히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만 보더라도. 정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육신만 보더라도 사실 그래요. 그 육신이 한정된 어떤 다섯 자다, 여섯 자다 하는 그런 한정된 어떤 공간이 차지하고 있는 그것만이 내 육신이 결코 아닌 거예요. 조금 이제 불교적인 상식을 가지고 눈을 뜨고 보면 그러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선 우리가 수백 명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해 토해놓은 숨을 여러분들이 들이마시고 여러분들의 생명이 유지돼요. 여러분들이 토해놓은 숨을 내가 들이마시고 내가 호흡하고 내가 생명을 유지해갑니다. 나와 여러분들과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사람과의 관계가 전부 똑같이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있습니다. 이게 나만의 생명이 아니에요. 요즘 신종 플루 라고 해서 들어올 때 우리가 소독약을 손을 바르라고 어떤 거사분이 그렇게 권해서 나도 바르고 들어왔는데 한 사람이 말하자면 감염되면 다 감염되는 거예요. 그게 어찌 한사람의 문제입니까? 그거 보십시오. 결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내 육신은 여러분들과 전부 연결이 되어있어. 내가 토해놓은 것을 여러분들이 마셨잖아요. 여러분들이 토해놓은 숨을 내가 마셨어. 어떻게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고 기분 좋을 수도 있는 사실이지만 이게 엄연한 사실이야. 그 숨을 내가 마시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 이제 산에 있는 나무, 건물, 온갖 저 오염, 차에서 내뿜는 그런 탁한 공기까지도 나의 육신을 형성하고 내 생명을 유지해 가는데 일조를 하고 있어. 좋은 공기만이 아니라 나쁜 공기도 좋던 싫던 나는 마시고 더불어 함께 사는 거야.
전부 좀 다른 눈으로 들여다 보면 전부 이게 한 몸이야.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주1), 천지는 하늘과 땅, 천지는 전부 나하고 한 뿌리고, 만물은 나하고 한 몸이라고 했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한 몸 아닙니까?
내가 토해놓은 것을 여러분들이 쉬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 순간 생명유지는 그렇게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 사람 옆에 사람 그래서 이 수백 명 사람들이 다 같이 토해놓은 것을 다 같이 나눠서 들이마시고 또 토하고 들이마시고 토하고 들이마시고 이러면서 우리가 같이 생명을 유지해가는 거예요. 이게 어디 한 몸입니까. 어찌 개인입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운명을 함께 하고 있어. 만약에 독한 그런 병균에 감염이 됐다면 우리 모두 다 같이 그 독한 병균에 감염될 수밖에 없어. 이게 어찌 한 몸이 아닙니까? 자기만의 삶입니까?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걸 이제 불교는 참 일찍이 성인들이 깨달으셔가지고 인드라 경개무이?,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주2), 일즉일체(一卽一切)요 다즉일(多卽一)주3) 하는 그런 그 표현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 이제 제일, ≪법화경≫에서 제일 어렵다고 하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여래수량품. 여래의 생명은 무한히 길고 길다. 따라서 우리들의 생명의 역사도 무한히 길고 길다. 무한히 길고 긴 세월동안 내 한 육신은 무한히 드넓은 공간에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하고 있음으로 해서 내 수명은 무한히 길고 긴 거야.
그저 어떤 인연에 의해서 50년 전, 60년 전, 70년 전에 요러한 모습으로 새롭게 어떤 형태를 갖췄을 뿐이야. 그러다가 또 인연이 될 것 같으면 또 이 형태가 흩어져. 그렇지만 그 본래자리, 본질의 입장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형태가 변해서 그렇지 그것은 영원히 그대로 유지하는 거야. 그 질량불변의 법칙 이라고 일찍이 세상 물리학에서도 이야기하는 거야. 불교는 2600년 전에 그런 이야기 다했구요.
그런 관계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앞에 문제되는 것만 문제시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어떤 급한 상황들 때문에 그런 것을 다 잊어버리고 또 챙기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이제 힘들게, 힘들게 살다보니까 요즘은 이제 조금씩 이제 세상에서도 그런 것을 이제 이해하고 그런 문제에 눈을 뜨게 되고 공동의 문제라고 하고 전 세계가 같이 공동으로 의논해야할 것은 이 자연파괴라든지 무슨 지구온난화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이 이게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의 문제고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일이다, 라고 이렇게 모두 이제 조금씩 참 깨우쳐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늦었지만 그래도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크고 작은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사실 따지고 보면 불교 안에 있어요. 불교 안에 다 있습니다. 일찍이 불교의 세상의 식자(識者)들이 눈을 뜨고 그 해결의 열쇠를 불교 안에서 찾으려고 했더라면 일찍이 찾았을 것인데, 모두 명예와 이익에 눈이 어두워가지고 그만 거기에 빠져가지고 정신없이 살다보니까, 또 정치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게 더 심하거든요. 심하니까 그런 그 세상 공유할 문제를 고민하고 살펴볼 겨를이 없는 거야. 그래서 오히려 시민운동가들이 그런데 대해서 더 앞서있고 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문제해결을 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그런 참 고마운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습니다. 이 여래수량품은 바로 세상의 그런 일들과도 관계가 있고 그런 그 큰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하는 뜻에서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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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죠. 현세는 뭡니까? 가까운 것. 가까운 건 뭡니까? 내 삶의 역사는 기껏 60년, 70년, 80년 그건 아주 가까운 거예요. 그런데 이 가까운 나의 삶의 역사에서 석가모니로 말하자면 석가모니의 한 인생에 있어서 석가모니의 영원한 생명을 밝히는 것이고, 또 우리들의 지금 70~80년 된 이 생명의 역사 속에서 오히려 아주 멀고먼 영원한 생명을 밝혀낸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려고 한다하는 그런 뜻으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고 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 (1) 세 번 주의를 주다’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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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요.‘삼계삼청(三誡三請)’이라고 그렇게 이제 표현합니다. 세 번 경계를 한다. 주의를 주다. 라고 이렇게 제가 제목을 달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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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이렇게 부처님이 한 번만 해도 될 것을 세 번이나 이렇게 당부를 합니까? 지금 우리는 기껏해야 이 한 생명 60~70년 내지 오래 살아야 100년 정도 살다가 가는 이 생명, 60년 생명 눈앞에 보이는 이것만 가지고, 이 형태 이 모양만 가지고 모양이 조금만 변해도 그만 못 알아보거든요. 조금만 변해도 못 알아봐.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저 나무로 변해있으면 내가 나무인지 아무도 모르나. 요즘 뭐 다행히 수목장(樹木葬)을 하니까 나무가 우리 부모 되니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런 뜻이 아니고, 내가 나무가 된다니까. 내가 흙이 되고, 내가 저 공기가 되고, 내가 저 흰 구름이 되고, 푸른 하늘이 돼요. 내 육신이 통째로 푸른 하늘이 되고, 통째로 흰 구름이 되는 게 아니고, 나무도 되고, 흙도 되고, 흰 구름도 되고, 푸른 하늘도 되고, 흘러가는 시원한 바람도 되고, 날아가는 새도 되고, 새의 울음소리도 되고, 때로는 저 버스가 내뿜는 매연도 되고,
그렇게 변해있으면 못 알아보는 거야 이게. 그런 상황에서 부처님이 그 모두가 너다! 그리고 60년의 삶, 100년의 삶이 너가 아니라 영원한 삶이 너다!
이걸 어떻게 이해시킬까, 도대체. 그러니까 부처님이 세 번 당부하는 거예요. ‘그대들은 여래의 진실하고 참된 말을 마땅히 믿고 이해하라!’ 이게 쉽게 이해될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오늘 마침 재를 지내 계시는 분도 계시는데 이것은 육신의 영혼만 영원한 것이 아니에요. 육신도 영원합니다. 단, 형태를 바꿔가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이에요. 형태를 바꿔가면서.
이제 여러분 현재 교육을 좀 받고, 특히 이제 물리학[物理學, physics] 쪽에 조금 관심이 있게 공부를 하신 분들은 충분히 이해를 하실 거예요. 이런 이론은.
물질도 영원하다, 라고 하는 것. 사실 이 세상의 어떤 과거의 발달된 그런 어떤 기계를 동원하더라도 이 가벼운 종이 한 장 완전히 못 없앱니다. 이 한 장을 못 없애요. 물론 태우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없어졌다는 게, 요 형태가 없어졌다는 것이지 이 종이의 본질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어떤 발달된 과학으로도 이 종이 한 장 같은 이것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신소재라는 것도 전부 변화시킨 것이지 신소재 아니에요. 변화된 소재야. 전혀 아무것도 동원하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낸 소재는 없습니다. 이 세상엔. 종이 한 장도 못 만들어요. 그게 뭡니까.
불생불멸(不生不滅) 아닙니까! 이거 없애지 못한다, 불멸(不滅)이야!
새로운 것을 도저히 못 만들어냅니다. 불생(不生)이야! 사실 물질도 이 가벼운 종이 한 장도 그 존재의 실체를 규명해보기로하면 그런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신이 없어졌다고 결코 없어진 게 아니야. 요 육신의 형태가 그저 잠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뿐이야. 이러한 사실을 알면요, 그냥 그대로 영가천도야! 그대로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게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 그것은 부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진리야.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에 근데 그러한 진리를 눈뜬 사람이나 알지 아무나 아느냐 이말이야. 아무나 알지를 못하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세 번이나 당부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2) 세 번 청하다’, 제자들도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이렇게 부처님이 세 번 경계를 하셨다 해서 물러날 제자들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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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보는 성불은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이 기껏해야 다 안다 이겁니다. 석가모니 가비라성에서 석가족의 태자로 몇 살 먹어 출가해가지고 6년 수행하고 천도해가지고, 그 다음 40년 남짓, 이제 ≪법화경≫을 설할 때까지가 40년 남짓했어요. 그러니까 전체나이로 한 74~75 됐을 무렵에 이 ≪법화경≫이 새겨졌다라고 그렇게 알면 됩니다. 그건 이제 현상적인 모습이야.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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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그것만 알죠. 이건 이제 석가모니의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역사적인 사실.
그 본질은 전혀 도외시해버리고 어떤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 다음 이제 ‘ (4) 본래성불(本來成佛)을 밝히다’
이걸 우리가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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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같이 또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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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정말 아무리 길고 긴 세월을 이야기한다하더라도 우리는 기껏해야 무슨 뭐 무한이다, 영원이다 이런 표현밖에 못해요. 그런데 여기서 어떻습니까? 오백만억 아승지 나유타 삼천대천세계를 어떤 사람이 부수어 아주 작은 먼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동방으로 가면서 오백 천만 억 나유타 아승지 세계를 지나서 먼지 하나를 내려놓고 그리고 또 오백 천만 억 나유타 세계를 지나서 또 먼지하나를 내려놓고 이렇게 해가지고서 그때 나중에는 먼지가 떨어진 세계나, 먼지가 떨어지지 않고 그냥 지나간 세계 이 모든 세계를 또 다시 갈아가지고 또 작은 먼지를 만들어서 그 먼지 하나를 가지고 일 겁으로 친다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산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길고 긴 세월을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까? 도저히 이 세상 어떤 다른 책에도 아무리 길고 긴, 예를 들어서, 거리를 말할 때 우리는 광년(光年)을 이야기하죠. 햇빛의 어떤 속도. 햇빛이 달려서 1년 간 것을 1광년 그래요. 1억년을 지나가면 1억 광년 이런 표현까지 합니다. 그래봤자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간의 숫자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예요. 또 불교에서는 무한한 우주공간을 말할 때는 뭐 몇 억 광년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와 같이 길고 긴 세월을 이야기하는데 끝에 가서 뭐라고 내가 성불한 지는 이 보다도 더 지나간 것이 그냥 조금만 지나간 게 아니고 백 천만 억 나유타 아승지 겁을 더 지나갔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한마디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일찍이 태어난 적도 없고 일찍이 소멸한 적도 없다. 다만 우리가 이 외형을 한 번씩 심심하니까 그 모습 그대로 가지면 심심하니까 한 70 80년 내지 오래가봐야 한 100년 만에 한 번씩 바꿔가면서, 바꿔가면서 형태를 바꿔가면서 구름도 됐다가 구름 하나만 되면 좀 재미없으니까 조금 나눠가지고 저 청청한 나무도 됐다가, 또 한 조각은 또 저쪽에 푸른 하늘에 주기도 하고, 또 한 조각은 흘러가는 시냇물에 주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분산해요. 그래서 아까 그 이야기했지만 여기에요, 우리 몇 백 명 계시지만 너도나도 없어 이미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이 호흡의 입장에서는 이미 네 꺼 내 꺼 없어. 전부 한타랭이라. 지금 30분 이상, 일찍 오신 분은 한 시간 이상 계셨는데 한 시간 이상 남의 호흡을 들이마셨는데 그 힘으로 유지하고 있어. 그것을 어찌 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어, 옆에 사람 생명이지. 전부가 옆에 사람 생명이야 이게,
이미 나는 내 생명이 아니라고. 이미 우리는 그런 존재야. 좀 더 그것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이 서울시 전체, 아니 우리나라 전체, 좀 더 확대하면 이 지구전체, 좀 더 크게 확대하면 이 우주공간 전체와 더불어 나는 한 몸이야. 이미 그렇게 됐어요. 공간적으로 내 육신이 그렇다면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그리고 내일의 나, 그리고 100년 뒤에 얼굴을 다른 모습으로, 저 푸른 하늘로 흰 구름으로, 저 청청한 나무숲으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개울물로, 그래서 다시 또 어떤 인연이 결합하면 토끼도 되기도 하고, 노루도 되기도 하고, 호랑이도 되기도 하고, 또 사람으로 되기도 하고,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게 이게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이게 우리의 실체예요. 시간도 공간도 없는 거예요. 무한과 영원, 무궁일 뿐이야. 무한한 생명과 그래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무량수(無量壽)라고 하잖아요. 무량수(無量壽). 무한한 생명, 그건 이미 우리들 자신의 실상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무량수라고하는 것도요.
그래서 여기에 이런 말을 하고 또 이런 내용을 저는 저의 상식을 동원해서 이해시키려고 합니다마는, 참으로 이것은 깊이 사유하고 명상해야 조금 맛을 들일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근데 한 가지 비유를 들어서 이러한 것을 우리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것을 우리는 지금 우리 상식은요, 부단히 흘러가고 생멸하고 변화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 지식이 돼있고, 우리 상식이 돼있고, 우리의 살림살이가 돼있어요. 그러니 부처님은 아니야, 아니야 영원한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라고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예를 가지고 한번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조금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차를 타고 내가 예를 들어서, KTX를 타고 부산을 오르내리면 내가 열심히 달리니까, 저 빌딩도 달리고 큰 아파트도 막 사정없이 달리고 심지어 산도 막 달리는 거야. 여러분들 그런 경험 다 해보셨죠. 산도 막 달리고 빌딩도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빌딩도 사정없이 달려. 바람을 쌩쌩 일으키면서 달린다고 빌딩이. 그건 왜 그렇게 달릴까요? 내가 달리니까 달리는 거야. 내가 열심히 가니까 가지 않고 있는 빌딩도 가고, 가지 않고 있는 수천만 년 꼼짝달싹하지 않는 저 산천초목도 달리는 거야. 이건 무슨 말인고 하니 불교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생멸심(生滅心)’으로 내가 생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까 생멸하지 않는 것도 역시 생멸하고 있고 내가 생멸하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이 빌딩 가만히 있잖아요. 여러분들도 가만히 있는 거야. 내가 생멸하지 않으니까 다 가만히 있어. 아시겠죠? 내가 생멸하지 아니한 입장에 딱 들어서면 모든 존재는 생멸하지 않습니다. 외형이 생멸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본체 자리에 내가 딱 앉아보면 모든 존재는 다 불생불멸입니다. 연기마저도 불생불명이야. 저 흘러가는 한 조각 구름, 1분이면 금방 변해버리는 그 구름마저도 불생불멸이라. 근데 생멸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백만 년 있는 저 관악산도 휙휙 지나가버린다니까. 생멸해버려 그냥. 순식간에 생멸해버려요. 내가 생멸하니까! 생멸하는 안목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전부 생멸해요. 생멸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도 생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생멸하지 않는 세계가 있어. 있는데 그걸 우리가 우리의 인격이 못 돼있어 아직도 생멸하지 않는 자리가 내 인격체가 못 돼있기 때문에 그저 생멸하고 변화하는 것만 내 안목이 돼있고, 내 지식과 내 지혜가 돼있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잣대는 생멸하는 잣대라 이게!
생멸하는 잣대로 모든 것을 보니까 부처님도 생멸하고 무슨 뭐 모든 존재가 다 생멸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잣대가 그렇게 생멸하는 잣대로 돼먹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한 이치를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나? 그러면서 세 번 당부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 여기서 밝힌 불생불멸의 내용이 그와 같이 길고 긴 역사라고 하는 것을 여기서 이제 이야기하려고 하면서 내가 성불한 지는 이 보다도 더 오래다. 무수한 세월 더 오래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이해를 시킬른지 나도 참 말해놓고 봐도. 그런데 이건 공덕이 무량합니다. 이 사실에 대해선 공덕이 무량합니다.
그래서 뒤에 이제 <여래수량품>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전부 공덕품이 나와요. 공덕품. 공덕품이 세 개가 나와 <분별공덕품>, <법사공덕품>, <수희공덕품>. 이 사실이 너무나도 위대한 일이기 때문에 이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뜨고 이해를 조금만 할 것 같으면 거기에 따르는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덕품이 무려 세 개나 붙었다니까 뒤에. 대단하잖아요 이게. 그래서 후 14품 중에서는 이 <여래수량품>이 안목(眼目)이다, 이렇게 이제 표현을 합니다. 또는 요품(要品)이다 그래요.
≪법화경≫ 중에서도 요품하면 으레 <여래수량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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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화 사진
º 地圓 스님
사진 및 동영상 촬영
º 慧明華님 º 석천 慧江님 º 문수법공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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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으므로 내 수명은 무한히 길고 긴 如來壽量品(여래수량품...)ㅡ 생멸하는 안목으로 보면 세상만사 모두가 생멸 즉,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는 모든 존재의 실상인 不生不滅(불생불멸...)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크고 작은 해결의 열쇠는 바로 불교 안에 있다. 고운 자취로 오셔서 불사 봉행해 주신 모두의 본화보살... 明星華보살님 참 고맙습니다. _()()()_
現世의 일에서 永遠을 밝히다...._()()()_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
不生不滅...고맙습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本來成佛...고맙습니다. _()()()_
“그대들은 여래의 진실하고 참된 말을 마땅히 믿고 이해하라.” ...明星華 님! 고단하실텐 데 바로 올리셨군요.. 공부 잘하고 갑니다..고맙습니다..당신은 부처님..._()()()_
不生不滅..일찍이 태어난 적도 없고 일찍이 소멸한 적도 없다...고맙습니다 _()()()_
天地與我同根(천지여아동근)이요 萬物與我一體(만물여아일체)라, 또한 모든존재의 실상은 不生不滅(불생불멸)이다,明聖華님 바뿌신데에도 글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_()()()_
온 염화실 법우님들께 최상의 낭보임에 틀림이 없네요. 큰스님과 염화실법우님들께 감사합니다. _()()()_
明星華님 감기조심하시고 늘~건강하세요..._고맙습니다..._()()()_
明星華님 고맙습니다. _()()()_
明星華님 고맙습니다. _()()()_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우리는 생멸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들에게는 모두가 생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종이를 태우면 종이의 형태는 없어지지만 종이의 본질은 없애질 못합니다. 우리도 죽으면 형태가 바뀔 뿐이지 우리의 생명의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_()()()_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생멸하는 안목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전부 생멸해요. 생멸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도 생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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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 순간이 영겁이고 영겁의 세월도 일 순간속에 있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순간의 삶을 영원한 삶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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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생명,우리들 생명은 무한히 길고 길다
내 육신은 길고 긴 세월동안 무한히 넓은 공간에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다
어떤 인연에 의해서 60년 70년 머무르다 또 흩어진다
따라서 우리 육신의 수명도 무한하다
우리들의 70-80년 되는 생명의 역사속에서 멀고 먼 영원한 생명을 설하시기에 앞서 주의를 세 번 주심
-"그대들은 여래의 진실하고 참된 말을 믿고 이해하라'
不生--새로운 물질을 만들지도 못한다
不滅--종이 한 장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다만 변화할 뿐
--不生不滅
세 번 주의를 주신 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무한히 먼 예전부터 본래 성불하신 것,우리 생명의 무한함,불생 불멸,영원함을 밝히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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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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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안에서 보던 세상이 깨어지고 온 세상이 내 품안으로 들언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랩해서 두고 두고 보면서 음미해봐야겠습니다.
나무중중무진법계
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