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판화 이야기
목판화를 화선지에 먹으로 찍다.
한국화물감으로 색을 입히고.
[水印목판/水性목판이 아닌 #水墨목판]
우리나라 '현대목판화'는 참으로 기형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기법과 재료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한국 목판화 역사를 거칠게 일별해 보면 조선 말/초기 일제시기까지만 해도 '먹'을 재료로 화선지/한지에 찍었고, 그에 따른 다양한 목판 보조재료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노골적 지배가 진행되면서 소위 신식이라는 미명하에 배웠다는 사람들은 모두 석유 슬러지에서 추출한 유성잉크를 사용하게 되고, 그에 따라 보조재료 또한 그에 맞는 '고무 로울러'등과 같은 도구로 바꿔 쓰게 된다.
70년대까지도 '가리방'이라고 불렀던 등사판 재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그 때부터 일천년이상 쓰여졌던 목판재료와 도구는 '전통 판화'라는 이름으로 구석으로 밀려나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내몰리게 된다.(그 후 우리의 '먹판화'는 '민간전승'이라고 포장되어 박제화되어 명맥만 유지하게 된다.)
명칭 또한 인화(찍은 그림)에서 '판화'로 바꿔 부르게 된다.
찍는 재료가 바뀌니 각법이 바뀌고 표현의식까지 바뀌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찍는 종이 또한 유행처럼 한지/화선지에서 두터운 양지(펄프지)로 바뀌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60년대 이후 제도권을 장악한 대학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서구유학파들에 의해서 더욱 공고화 되었다.
너도 나도 유성잉크에 두터운 펄프지로 찍는 목판화가 지배하게 된다.
유성잉크의 맛과 먹의 맛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판문화 생태계는 유성목판으로 획일화 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초중등교육과정 속에서 확대 재생산 되었다.
그래서 일반인은 물론 미술 종사자들에게 조차도 '먹판화'는 잊혀졌고, 박제화된 전통의 영역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60~70년대 몇몇 기성작가들 중 박수근/이응로/김상유등이 한지에 먹으로 찍은 판화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수꽝스럽게도 얼마 전에 박수근 미술관개관 기념으로 제작한 그의 복제 목판화는 양지에 프레스로 유성잉크로 찍었는데, 어찌 박수근선생의 송판에 각을 하여 한지에 찍은 '먹판화' 맛이라 할 수 있을까?
복제에도 격이 있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 목판문화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닌가?)
80년대 소위 '민중판화'부류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오윤을 비롯하여 대부분 작가들이 잉크는 유성을 썼으나, 종이는 한지를 썼으며, 프레스보다는 손으로 찍은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80년대 말 한국미술사를 전공했던 명지대 이태호교수가 일찌기 먹으로 찍을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몇사람들이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먹으로 목판화를 찍는다는 것은
그냥 한두번의 시도로 되살려 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사라진 도구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재료와 도구가 바뀌면 표현 감성 또한 그 변화에 따라야 비로소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즈음부터 문헌도 찾아 보고, 전통판화란 이름으로 민간의 영역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곳을 찾아 다녔었다.
당시 해인사 앞에서 고바우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있던 이중호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인 5~60년대에 경판인쇄 조수로 일하였고, 후에 스승의 뒤를 이어 경판 도감을 역임한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익힌 전통 먹인쇄만 가지고는 현대적 '먹판화 표현'을 하는데는 엄연한 한계가 있어서 그로부터 수년간 단절된 먹판화의 맛을 찾는 실험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와 달리 전통시대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급격한 문화적 단절을 겪지 않고 지나 온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이 두 나라는 현재 목판화 인구/시장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목판화 중심국가이다.
잘 아시다시피 이 두 나라는 목판문화 역사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근대 이후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아뭏든 그 초기 먹으로 찍은 판화를 다시 꺼내어 본다.
그리고 발표 당시에 새 이름도 지었다.
'수묵목판'이라고,
또한 다양한 색을 쓰기도 하면서 '채묵목판'이라고 적었다.(안료는 석채와 한국화 물감을 쓴다.)
참고로 중국은 전통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인목판'이라 부르고 있고, 일본은 현대에 이르러 수성의 재료를 쓴다하여 '수성목판'이라 부른다.
#수묵목판
#채묵목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