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사무엘상 2장 12절, 창세기 22장 12절
엘리의 아들들은 망나니들로서 야훼를 몰라보고 <공동번역>
엘리의 아들들은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쉬운성경>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표준새번역>
저희 부모님은 어릴적부터 60이 넘도록 교회 문 턱을 넘어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절'과는 절친이셨고, '점'과는 친구였으며, '토정비결'은 비타민C와도 같은 분들이셨습니다. 60이 넘는 때까지 교회라는 곳을 간판으로만 보고 지내셨던 부모님께 당연히 성경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 편으로는 중3때 친한친구에게 전도되어 교회를 갔을 때에도 어떠한 종교적 부딪힘도 없었고, 사전지식이 없었기에 물보다 흡수가 빨랐고, 말씀에 대한 호기심과 기쁨과 재미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내 발견하게 된 결정적 단점은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사실 어릴적부터 부모님이 해 주신 기도가 쌓인다는둥, 어릴적 머리맡에서 읽어주신 성경이 다 기억에 난다는둥, 그런 이야기들을 질투 때문에!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위 엄마 뱃속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모태신앙' 친구들에게는 날마다 더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솔직히 덜했지만, 반면에 기초가 정말 튼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말씀에 심겨져 온 굳은 뿌리가 보였던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전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말입니다.
마치 아브라함과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믿음을 가진 아내를 만나고, 믿음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꿈꿔왔던 일, 바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말씀에 뿌리내리게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할 때가 왔습니다. 어떠한 어색함도 없이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말씀을 듣는 것이 일상이며, 말씀을 들으면서 잠이 들고, 머리맡에서 눈물로 축복기도를 하며, 자기들끼리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학교 친구들을 위해, 심지어는 그날의 이슈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두고 기도하는데까지 지금은 와 있습니다. 실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선물로 받았을 때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을 얼마나 멋지게 키워냈습니까?'믿음의 가정'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들이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못해신앙'이 될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청지기로서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르치고 다그치는 입장이 아니라 함께 아이들과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솔직히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제가 배울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점점 더 순수함을 잃어가는데,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기도 하고, 회개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보석을 맡은 청지기로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함께 성장해 가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동역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믿음의 가장'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실수하고, 저 역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저 역시 부족하기에 가끔은 아이들 보기 민망할 때도 참 많습니다. '솔선수범'이란 단어 때문에 느낀 압박감도 많았기에 때론 억지로라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를 포기하거나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믿음의 아버지'를 통해 축복이 임했던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가정에도 펼쳐지도록 그런 '믿음의 가장'이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혹시 '가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버지만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히려 이 가장이란 존재가 '믿음을 가진'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희 원가족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기에 저는 저희 부모님에게는 '영적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적 가장'이 되어 부모님과 예수님이 기쁨으로 만날 다리가 되고자 수많은 노력과 인내의 기도 중에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처럼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드립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거 쉽지 않으시지요? 그런데 이 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혼자이지만..저처럼 이제는 당연히 '믿음의 가정'이 되는 자연스러운 그날이 찾아올 것을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 혼자, 아내 혼자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적 가장'입니다. 여러분이라는 '영적 가장'으로부터 신앙이 흘러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내가 먼저 조금 더 빨리 그리스도를 만난 이유는 남편보다, 아내보다, 아이들보다 나를 '영적 가장'으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나'를 통해 흘러가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발로 서 있는듯 위태로워 보이고 지치고 힘들지만 여러분의 신앙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서서히 그 외발이 두발이 되고, 어깨동무가 되고, 강강수월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은 눈물과 기도, 헌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음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먼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 기도, 헌신 속에서 더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시게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게 '영적가장'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습득되어 결국 여러분의 가정도 온전히 '믿음의 가정'으로 거듭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가장으로부터 습득되어 지는 가정의 신앙은 가장 먼저 그 가정이 '튼튼한 교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먼저 영적 가장이 말씀으로 올바르게 서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 부모님들이 습득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습득된다'는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 표준새번역>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2장 14절, 표준새번역>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요한1서 3장 18절, 표준새번역>
'영적 가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바로 당신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영적 가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하며 사랑으로 그 나라를 실천하는 바로 당신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당신이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여 당신의 가정에 신앙이 습득되어지게 만드는 '영적 가장'입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있는 '홉니와 비느하스'의 이야기는 결코 분석하면서 이 모양 저 모양 살펴보면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들처럼 표현한 구절이 없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가장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사무엘상 2장 12절, 표준새번역>
심지어 공동번역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망나니'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 더 슬픈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이런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영적 가장', 바로 그들의 아버지, 제사장 '엘리'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가장이었던 엘리로부터 습득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저지른 온갖 잘못을 상세하게 들었고,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무엘상 2장 22절, 표준새번역>
'영적 가장'이었던 엘리는 자신으로부터 습득되어진 신앙이 가정에 나타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의 무게감과 신앙을 아들들에게 꼭 보여주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의 악행을 들었을 때, 듣자마자! 당장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모욕한 죄로 그들을 죽이거나, 제사장의 자리를 당장 박탈시켜 유배를 보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들었을 뿐, 타일렀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음으로 두 아들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무시하도록 방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혹시 영화 '친구'를 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여러모로 저에게 기억이 많이 남는 영화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극 중 준석이(유오성 분)와 상태(서태화 분)가 옥상에서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학력고사를 망치고 가출을 하고 자신을 찾아온 상태에게 준석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중학교 때 한 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한 놈이라도 내를 뭐라 하는 쉐끼가 없는 기라 그 때 한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믄 혹시 내가 그 때 정신을 차릿을 지도 모르는데" 이 대사가 참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이야기를 하면서이 영화가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하나입니다. 분명하게 엘리는 아버지로서, 영적 가장으로서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무엘상 2장 후반부에 이어서 나옵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다음 성경 구절을 천천히 한 절씩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 한 이야기입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네 조상의 집이 이집트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지 않았느냐?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네 조상 아론을 선택해서, 나의 제사장으로 삼아, 나의 제단에 올라와 분향을 하게 하며, 에봇을 입고 내 앞으로 나아와 내 뜻을 듣도록 하지 않았느냐? 또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불살라 바치는 제물을 모두 너희의 몫으로 차지할 권리를, 네 조상의 집안에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나에게 바치라고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그러므로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지난 날 나는, 너의 집과 너의 조상의 집이 제사장 가문을 이루어 언제까지나 나를 섬길 것이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제는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만 존중하고, 나를 경멸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네 자손과 네 족속의 자손의 대를 끊어서, 너의 집안에 오래 살아 나이를 많이 먹는 노인이 없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너는 고통을 받으면서,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베푸는 복을 시샘하며 바라볼 것이다. 네 가문에서는 어느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 자손 가운데서 하나만은 끊어 버리지 않고 살려 둘 터인데, 그가 제사장이 되어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맹인이 되고, 희망을 다 잃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변사를 당할 것이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한 날에 죽을 것이며, 이것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사무엘상 2장 27~34절, 표준새번역>
정말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저주를 내리십니다. 성경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적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상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패하고, 하나님을 무시한 엘리를 포함한 모든 엘리의 가문, 제사장들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 실패한 '영적가장'으로부터 습득된 가정의 신앙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까지 해야합니까?' 누군가는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결정하시기까지 수많은 기회들을 놓쳐버린 '영적 가장'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회초리를 들고 올바로 가르쳤다면 어땠을까요? 무엇보다 '엘리' 스스로 그런 신앙인의 모습을 보인 '영적가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가장으로부터 습득되는 가정의 신앙은 가정 밖으로 나왔을 때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튼튼한 뿌리를 내리어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게 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저는 이 부분이 솔직히 많이 약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 속담처럼 어린 시절부터 깊게 뿌리 내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하는 중요성을 환란이 다가올 때마다, 시험이 찾아올 때마다 통째로 흔들리지는 저를 보면서, 절로 곱씹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저부터 시작되는 이 믿음의 가정에서는 이 흔들림이 최소한으로 줄어들도록,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습득되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서 있는 영적 가장으로부터 습득되는 가정의 신앙이 말씀 위에 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되는 것이리라! 믿으면서 오늘도 말씀 위에 저부터 서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혹시 '믿음의 가정' 속에서 현재 가장이시든, 남편 홀로 가장이시든, 아내 홀로 가장이시든, 자녀로서 홀로 가장이시든 그 어떤 위치에 있든지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에 세우신 하나님의 '영적가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론 막중한 책임감도 있지만 더 많은 시간 그 책임감에 더해서 제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세밀한 축복이 더 해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영적가장' 여러분! 더욱 하나님을 붙들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는 그 날까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신앙은 바로 가장으로부터 습득되어지는 가정의 신앙임을 인지하시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그 희망으로부터 시작될 아름다운 미래가 바로 여러분이 누릴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 모든 '영적가장'님들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으로부터 습득되어진 가정의 신앙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신앙이 되시길, 그런 가정을 소유하신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제사장과는 완전히 반대 모습을 가졌던,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영적가장'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짧은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장 10~12절, 표준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MYLdPqOJB8Y
https://www.youtube.com/watch?v=6XoLSO8CJyw
https://www.youtube.com/watch?v=OCjmjoJ-aSg
https://www.youtube.com/watch?v=m12SfqPELIo
https://www.youtube.com/watch?v=G9bPNx33lO0
https://www.youtube.com/watch?v=Bts1-WbVW3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