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32코스 :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과 자란만의 아름다운 풍경
부포사거리-선동마을-무선저수지-보현식당-(무선~동산 임도)-수태재-학동마을-금단마을-임포마을-임포항
20211013
부포사거리에서 32코스 시작지점을 출발한다. 가을날 오전 9시의 햇볕이 좋다. 남파랑길은 사천·진주 방향 국도 33번 상정대로 옆 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오른쪽 황금들판 저편의 마을이 구미마을, 상동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상정대로 구미 버스정류장 옆에 구미마을 '서니무정' 표석이 세워져 있다. '서니무정'이 무슨 뜻일까? 건너편 구미마을을 바라보니 무성한 정자목 한 그루가 보인다. 아하, 저 나무가 서니무인가 보다. 그 아래 정자를 '서니무정'이라 이르는 것이겠지. 이렇게 추정하며 바삐 길을 걸었다. 구미마을 망림교회 입구에서 농로는 상정대로와 만난다. 상정대로 횡단보도 앞에 구미마을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설명글을 읽어보니 '서니무정'은 '서나무징이'를 이르며 '서정마을'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다. '서니무정'은 정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락을 이르며 구미마을은 장자터·점터·서나무징이 등 세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음도 알았다.
상정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선동마을로 들어선다. 앞쪽에 떡 버티고 서있는 산이 무이산, 이제부터 남파랑길 32코스는 무이산과 수태산 자락의 임도를 따라가는 지루한 길로 이어진다. 선동경로회관을 지나면 무선저수지, 조금 더 올라가면 문수식당 옆 무이산 등산로 입구다.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왼쪽에 호반모텔, 더 올라가면 '수류운재관'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가정집인지 음식점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입구에 석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고, 그 안쪽에 일반 가정집이 있으며, 그 아래 계곡에도 주거시설이 있었다. 그곳에서 올려보니 수태산 아래 보현암 약사전의 거대한 약사여래금불좌상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금불좌상은 32코스 끝지점 학림리 하일초등학교와 하일교회에서도 하나의 징표가 되어 보였다.
보현식당 위에서 길은 보현암 약사전 방향(왼쪽)과 문수암 방향(오른쪽)으로 갈라지고, 문수암 방향으로 들어서면 길이 네 갈래로 갈라진다. 갈림목 오른쪽 위는 문수암, 문수암 왼쪽 등로는 무이산, 갈림목 왼쪽 위 등로는 수태산, 등로 아래 왼쪽 임도는 무선-동산을 연결하는 임도, 남파랑길은 무선-동산 간 임도를 따라 수태산 자락을 빙 둘러간다.
남파랑길 32코스의 어려움은 여기서 모두 끝난다. 이제부터는 다리의 고통을 지우며 눈의 복을 누리는 시간이다. 상리연꽃공원 갈림목과 수태재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수태산-보현암 약사전 거대한 약사여래금불좌상-돌구산의 산줄기와 대상물을 살피는 일은 가슴 벅차다. 또 앞쪽으로 자란만과 자란도를 비롯한 섬들이 있는 한려해상경관에 환호하며 넋을 빼앗긴다. 특히 임도의 쉼터정자에서 바라보는 자란만과 멀리 벽방산 풍경을 조망하는 것이 압권이었다.
구절초 하얀 꽃들과 꽃향유 자홍색 꽃들을 살피며 임도를 계속 걸어나가면 왼쪽에 '종점까지 6km'가 남아 있음을 알리는 남파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학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우뚝 솟은 좌이산이 이정표가 된다.
남파랑길 32코스에서 지금까지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에 빠졌다면, 학동마을에서부터는 인간의 땀방울이 맺쳐있는 경관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오랜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살피며 감동한다. 학동마을은 전국 제일의 전주 최씨의 집성촌이라고 한다. 학동마을 옛 담장을 쌓은 선인들의 노력과 정성에 감탄한다. 고적한 분위기의 돌담길을 걸어 전주 최씨의 고택들을 살피며 인간 삶의 흔적을 들여다 보는 일은 남파랑길을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학동마을은 최형태公이 1670년경에 들어와 전주 최씨 세거지로 개창되었는데, 입향조 최형태公의 5세손 최필간公이 1809년경 분가하여 건립하였다는 최영덕씨 고가(=고성 최필간 고택=학동 최승지댁)가 학동마을 고택의 중심이 된다. 안내지를 읽어 보면 최필간公의 손자 매사(梅史) 최태순公이 학동마을 전주 최씨 가문을 부흥시키는 중심 역할을 한 것 같다. 고택 사랑채 현판은 학림헌, 대청마루 들보에 여러 '敎旨'를 표구한 것을 비롯하여 사진 등이 걸려 있는데, '梅史' 편액이 돋보였다.
학동마을의 전통 한옥과 옛 담장, 돌담길을 걸어나오면 탁 트인 들녘과 목적지 임포항이 지척에 보인다. 남파랑길은 임포항으로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오른쪽 금단마을의 하일초등학교를 거쳐 금단마을 입구 고성음악고등학교로 나온다. 금단마을 입구에서 남파랑길은 들녘길을 걸어 임포마을을 지나 임포항으로 나아간다. 학림리 학동마을이 전통마을의 묵향을 풍기는 수묵화 풍경이라면, 임포항으로 이어지는 임포마을은 다방, 횟집, 식당가, 현대 다층주택, 폐가 등 우리의 현재적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유채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포항 앞 32코스 끝지점이자 33코스 시작지점에서 32코스를 끝낸다. 임포항 부두 끝으로 나가서 자란도와 자란만 그리고 오른쪽 우뚝한 좌이산을 살폈다. 이 풍경을 보러 길게 돌고 돌아서 이곳에 왔다. 무엇이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국토순례라는 욕망에 이끌려 생전 처음으로 소가야 땅 고성을 걸어서 임포항에 왔다. 임포는 무슨 뜻인가? 임포항 지명은,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아(梅妻鶴子)' 자연에 은거했다고 하는 송나라 때의 임포의 삶을 반영하고 있을까?
임포항 앞 바다는 잠시 고요하다. 자란도는 왼쪽에, 사량도는 오른쪽 끝에 알바트로스처럼 바다에 앉아 있다. 순간, 이 풍경을 흔들며 인간 삶의 역동성이 솟아오른다. 발동선 한 척이 요란한 소리에 물결을 일으키며 바다로 나간다. 좌이산이 우뚝 이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성군 상리면 부포리 부포사거리의 남파랑길 31코스 끝지점이며 32코스 시작지점에서 출발한다.
'서니무정'이 무슨 뜻일까? 구미마을 이야기에는 '서나무징이(서정마을)'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그렇다면 서니무정, 서나무정, 서나무징이 등은 모두 서정마을을 가리키는 말로 구미마을의 한 구성 지역이 되는 듯하다.
구미마을 세 곳 가운데 중앙의 오래된 정자목이 서 있는 곳이 '서니무정'(서정마을)인 듯
왼쪽에 망림교회가 보이고, 그 뒷산이 대보산인 듯. 평온한 농촌 마을 풍경을 보여준다.
구미마을 입구에서 상정대로를 건너 선동마을로 들어간다.
남파랑길은 등로 뒤쪽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동산리 방향의 임도를 따라 남파랑길을 따라간다.
왼쪽 뒤 끝에 벽방산, 오른쪽에 자란만이 리아스식 해안을 형성하고 있다.
자란도와 자란만 풍경이 미세먼지 속에 흐릿하다. 오른쪽에 사량도가 왼쪽으로 길게 뻗어나와 있다.
오른쪽 삐쳐나온 섬은 사량도
전주 최씨 최형태公이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알을 품는 꿈을 꾸고 이곳으로 찾아와 보니 가시덤불이 우거진 황무지이긴 하나 학이 날개로 감싸안은 듯 아늑한 '백학포란지형'의 명당임을 확인하고 이곳을 학동이라 이름짓고 이곳에 정착한 때가 1670년경이라 한다. 학동마을은 전국 제일의 전주 최씨 집성촌이라고 한다.
입향조 최형태公의 5세손 聖和 최필간(崔必侃)公이 1809년에 지은 집이다. 현판은 '매사려(梅史廬)', '매사(최필간의 손자 최태순의 호)의 농막집'이라는 뜻인 듯. 현재는 최필간公의 7세 후손 최영덕씨 소유인 듯, 그래서 '최영덕씨 고가'라고도 불린다.
동백나무 뒤 짧은 담은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해 주는 담장
우측으로부터 과객방과 마구간-솟을대문-창고2동으로 되어 있었으나, 2011년 3월 관계 당국으로부터 한옥체험장 사용승인을 받아 화장실과 마구간-대문-객실과 식당으로 용도변경되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최필간 고택을 나와 전주 최씨 종가댁으로
왼쪽 뒤는 하일면사무소
학림천을 따라 오른쪽 임포항 방향으로 진행
앞쪽에 자란도가 보인다.
임포항의 고성군수협하일지점·위판장과 남파랑길 32코스 끝지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