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의 기도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오빠의 딸인 조카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데, 동생 부부가 그 무렵에 사이가 틀어져 버려 올케가 결혼식 불참을 선언했다. 집안 가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라 오빠네의 걱정이 컸다. 결혼식을 한 달 반 정도 남기고 올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찾아가서 달래봤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마리아』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불치병을 앓던 사람이 한 달 동안 매일 성모송 천 번을 바치고 치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즉시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눈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성모송을 바쳤다. 직장에서 일하는 중에는 일에 정신이 팔려 기도문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신기하게도 끊이지 않고 성모송이 외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에 천 번을 제대로 채우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성모님께서 기도하는 이의 정성을 보시지, 일일이 숫자를 세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도를 해나가던 중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정말 하느님이 올케의 마음을 돌려주실까? 내 기도가 이루어질까?’ 하는 거였다.
내 기도를 점검해 보았다. 우선, 기도 지향이 하느님 뜻에 맞는지 살펴보았다. 부부가 혼인 생활을 잘 이어 나가길 바라실 테니 한 단계는 통과했다. 다음으로는 믿음 없이 바치는 나의 기도 자세가 문제였다. ‘내 기도가 이루어질까, 아닐까?’ 하면, ‘하느님도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묵주기도로 드리는 9일 기도도 같이하고 있었는데, 빛의 신비 2단에서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시중꾼들에게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씀하신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건 예수님이 하실 일이고, 내가 할 일은 독에 물을 채우는 것이다. 그 뒤의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예수님의 영역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지에 대한 의심과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간절함이었다. 예수님에게 치유 받은 병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간절하고 끈기 있게 예수님께 매달린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가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허약한 몸으로 힘센 장정들 사이를 비집고 예수님 가까이 가기까지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나도 믿음에 간절함을 더해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고 애썼다.
그렇게 기도해 나가던 중, 결혼식을 열흘쯤 남겨둔 때에 동생네 집에 갔는데 대화 중에 올케가 말했다.“근데,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요.”그 말을 들은 동생이 바로 백화점에 데려가 몇십만 원짜리 정장을 사 주었다.
기도가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서도 기도로 힘을 보태주었으면 한다. 기와를 벗겨내고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내려보낸 이들은 병자의 가족이 아
닌 친구들이었다. 예수님은 이웃의 믿음으로도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잊지 말자.
고흐가 “난 나의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라고 한 것처럼, 나는 나의 기도로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내가 정성과 진심을 다해 바치는 기도가 세상 어딘가에서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가 닿기를, 그리고 각자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주위에 선한 기운을 퍼뜨리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김선애 에밀리아나 내가 본당,인천교구 연중 제14주일 주보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