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Johnny weir 갈라 My way, 보겠습니다.
voice는 감각적 표현이고,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외면에 해당합니다.
voice를 통한 그 연기는
절망을 마주하고 그것을 애써 부정하는 story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의 흐름 느껴지나요?
그 감동은
절망을 부정한들 그것은 어디에도 가지 않으나, 그럼에도 거기서 보잘 것 없는 위안을 찾은 데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my way이겠지요.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이나, 기쁨과 슬픔 중 분명 기쁨입니다.
그리고 청각을 통해서 사람의 외면적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피겨 프로그램 속 character를 창조하려면,
사람의 내면, 즉 무대 위 인물의 연기가 필요하고, 관념적 skater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Johnny weir skating을 보면,
그 느낌이 일상/사실/현실적이라기보다 꿈결/환상/초월적인데,
이것은 심상의 세계, 즉 사람의 내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관념적 표현입니다.
또한 엔딩을 보면,
보잘 것 없는 위안,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을 찾은 미소가 걸려있는데,
이는 voice의 외면적 기쁨과 부합하는 skating의 내면적 기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skating을 통한 그 연기는
피하고 싶은 절망에 상처를 입은 image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뜻 느껴지나요?
시각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적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피겨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하는 character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서 전하는 감동입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사람의 생각, 상념입니다.
관념적 스케이터 Haein Lee 쇼트 Storm입니다.
곡은 감각적 표현이고,
무대 위 배우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외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연기는
절망을 마주하고 그것을 애써 부정하는 story를 썼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의 흐름 느껴지나요?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이 청각을 통해서 사람의 외면적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이 곡은 앞서 언급한 My way와 동일한 story와 감동을 전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 형상이 같습니다.
피겨 프로그램 속 character를 창조하려면,
사람의 내면, 즉 무대 위 인물의 연기가 필요하고, 관념적 skater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Haein양 skating을 보면,
그 느낌이 일상/사실/현실적이라기보다 꿈결/환상/초월적인데,
이것은 심상의 세계, 즉 사람의 내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관념적 표현입니다.
또한 쇼트와 프리 안무를 맡은 톰 딕슨과 셰린 본 역시
story가 아닌 image를 그리는 관념적 안무가이고,
이것은 실제(reality)가 아닌 심상(마음)을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몸에 맞고 편한 옷을 입은 skating을 볼 수 있습니다.
skating을 통한 연기는
곡의 외면적 기쁨과 부합하는 내면적 기쁨, 즉 피하고 싶은 절망에 상처를 입은 image, 이와 같은 뜻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을 찾은 미소나 웃음을 연기에서 볼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피하고 싶은 절망에 상처를 입은 image라는 뜻이 불분명합니다.
또 달리 말하면,
피겨 프로그램 속 character의 외면과 내면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형상이 상념인 곡의 연기에서 관념이 흔하게 하는 실수입니다.
Haein양은 쇼트와 프리를 갈라처럼 편하게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4대륙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움을 견제하는 듯한 것이 긴장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곡과 부합해야 할 뜻이 불분명함도 뭔가 무의식적으로 심리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관념은 말 그대로 보고 생각함입니다.
곡을 들으며 관조하듯 기쁜 표정과 슬픈 표정을 짓다보면,
곡과 부합하는 뜻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뭔가 석연치 않다면,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나름 감으로 짚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편한 마음가짐이 바른 뜻으로 인도합니다.
Yuna양 갈라 Only hope의 형상은 상념이고,
심상의 세계, 즉 사람의 내면 역, 피하고 싶은 절망에 상처를 입은 image를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연기합니다.
편한 마음가짐과 거기서 비롯되는 진실한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감각적 스케이터 Jia Shin 쇼트 The giving입니다.
곡은 관념적 표현이고,
무대 위 인물에 비유할 수 있고, 사람의 내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연기는
피하고 싶은 절망에 상처를 입은 image를 그렸습니다.
이와 같은 뜻이 느껴지나요?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이 청각을 통해서 사람의 내면적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이 곡은 앞서 My way와 Storm과 동일한 형상이나,
그 표현은 감각이 아닌 관념입니다.
피겨 프로그램 속 character를 창조하려면,
사람의 외면, 즉 무대 위 (인물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필요하고, 감각적 skater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Jia양 skating을 보면,
그 느낌이 꿈결/환상/초월적이라기보다 일상/사실/현실적인데,
이것은 실제의 세계, 즉 사람의 외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감각적 표현입니다.
또한 안무 역시 image가 아닌 story를 쓰는 감각이고,
story는 곧 몸 속이 아닌 몸 밖의 세계, 실제(reality)를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몸에 맞고 편한 옷을 입은 skating을 볼 수 있습니다.
엔딩을 보면,
보잘 것 없는 기쁨, 즉 일말의 기쁨을 찾은 미소가 걸려있는데,
이는 곡의 내면적 기쁨과 부합하는 skating의 외면적 기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령 performer 속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와 같이 real하게 웃을 수 있는 연기, 무대 위 reality를 남기는 표현이 감각입니다.
만약 performer가 Haein양이라면, 무대 위 마음을 남기는 관념이 되겠지요.
skating을 통한 그 연기는
절망을 마주하고 그것을 애써 부정하는 story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의 흐름 느껴지나요?
시각을 통해서 사람의 외면적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피겨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하는 character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서 전하는 감동입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사람의 생각, 상념입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는 명곡입니다.
굳이 조예가 있는 사람, 혹은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그냥 감동이 다가옵니다.
즉 형상이 뚜렷하고 강렬한 곡입니다.
Johnny weir 갈라보다 감동이 덜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연기가 아닌 선곡 탓이겠지요.
두 선수 모두 자기 근본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스케이터이고,
향후 또한 현 안무가와 더불어 자기 표현에 충실하면 될 일입니다.
다만 감동은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프로그램 thank you이고, 성적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