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와 ‘東海’ 地理名稱
독도는 동해 상에 위치하는 한국의 고유한 영토로 다양한 지리적 특색을 갖고 있다. 탐험시대이래 독도가 외국인 탐험가들에 의해 처음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 될 때부터 지나치게 과소 평가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서 통치하면서 독도를 자기의 영토인양 이름을 바꾸었으며, 광복이후에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식민지하에서 우리의 고유한 동해 명칭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됨으로서 동해상의 독도 위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세계적인 지도책에는 독도 혹은 다게시마로 적고 있으며 동해는 일본해로 쓰고 있어 이에 대한 시정이 시급하다. 본 강연에서는 우선 독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독도의 지리적 개관을 먼저 다루고 동해 지리명칭과 관련하여 그간 국내외에서 진행된 학자들의 연구를 통하여 동해명칭의 기원과 그 역사에 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아울러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동해 명칭이 고지도상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이용되어 왔는가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종합하여 그 윤곽을 파악 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일본해 명칭이 언제부터 국제사회에서 공식화되었는가를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과 관련하여 추적하였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동해명칭을 표준화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성과를 밝히고자 한다.
해저 약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전기부터 후기, 약 460만년 전부터 250만년 전 사이에 생성되었다. 울릉도가 약 250만년 전부터 생성된 것에 비해 약 200만년 앞선다고 봐야 한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인 2개 바위섬과 주위의 약32개 바위와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목은 임야이며 37필지에 면적은 186.173㎡이다. 독도의 대표적인 섬인 동도와 서도는 폭 110~160m의 얕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져 있다.
(동도) 동도는 최고봉 99.4m로 북쪽에 2개의 화산흔적이 있으며, 정상에 비교적 평탄한 부분이 있다. 해안은 10~20m의 단애를 이루고 있으나,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섬의 동쪽 끝부분에 깊이가 100m 정도 되는 컵모양의 분화구가 있는데, 분화구에서 바다까지 바닷물이 왕래하는 동굴(천장굴) 두개가 있어 호수를 이루고 있다. 경사면에는 부분적으로 20~30㎝ 두께의 토양이 지표를 형성하고 있다.
(서도) 서도는 최고봉 174m로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이다. 독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넓다. 경사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있고, 해안 단애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또한 특이한 점은 북서쪽 해안의 물골 바위틈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물은 하루 한 드럼 정도의 분량으로 독도에서의 생활에 귀중한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서도간 최단거리는 약 170m이고, 해안선은 약 5㎞ 정도이다.
토심은 깊은 곳이 60㎝ 이상인 곳도 있으나 대부분 30㎝ 미만으로, 토양입자가 식물뿌리에 밀착되어 있어 토양유실의 가능성은 낮으나 서도의 일부 노출된 토양의 경우 토양유실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부근 지역의 기후는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띠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약 12℃이며 최난월인 8월의 기온도 24℃를 초과하지 않아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다. (연중 85%가 흐리거나 눈비가 내려 비교적 습한 지역이다.) 그리고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0℃로 온난한 편이다. 울릉도 인근은 안개가 많고 연중 흐린날이 160일 이상이며, 강우일수는 150일 정도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48㎜로 1,400㎜ 정도이다. 겨울철 강수는 대부분 적설의 형태이며, 폭설이 자주 내린다. 울릉도의 바람은 서풍과 남풍계열이 출현빈도가 높으며 연간 평균풍속은 4.3㎧이다.
3. 동해지명에 대한 국내외 연구동향
그러나 본격적으로 동해지명 표기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4년 6월 New York에서 개최된 UN 지명전문가회를 통해 앞으로의 종합적인 연구와 대책이 요구되었으며, 동시에 9월 서울에서 UN환경회의가 열리면서 회의 자료상에 표기의 잘못이 지상에 보도되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다시금 동해 표기 문제는 범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이와 함께 1994년 11월에 외무부는 산하에 사단법인 동해연구회를 새로이 발족하여 이 문제를 전담하여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대처하도록 하였다. 이후 동해명칭에 대한 국내 연구는 물론 이웃나라 중국, 러시아, 일본에서 수집 정리된 자료와 연구가 1994년 11월이래 1999년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친 국내외 세미나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모두 62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1) 동해연구회 국제세미나에는 동해표기문제 뿐만 아니라 바다지명, 일반지명, 그리고 각 국가의 국가지명위원회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각국의 지명 전문가, UN 지명전문가, 그리고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IHO)에서 지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자들이 초청되었으며, 그 중에는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캐나다, 사우디 아라비아, 몽고, 일본, 러시아, 이란, 헝가리, 미국, 중국 학자들이 있었다. 일본 학자로는 1995년에 靑山廣夫(Hiroo Aoyama)교수, 1997년에 澁谷 武(Shibuya Takeshi)교수, 1999년에는 古廐忠夫(Tadao Furuyama)교수와 櫛谷圭司(Keiji Kushiya)교수가 논문을 발표한바 있다.
4. 東海地名 表記의 歷史的 變遷
먼저 역사적인 문헌 기록으로 볼 때,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전 이래 문헌상에서 東海로 불러왔으며, 廣開土王陵碑(411년)를 비롯하여 三國史記(1145년)와 三國遺事(1284년), 高麗史(1452), 朝鮮實錄, 世宗實錄地理志(1454년), 新增東國與地勝覽(1530), 增補文獻備考(1908)등과 같은 사료집에서 수많은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李相泰(1995) 연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역사문헌상에 동해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 高句麗 本紀 시조 동명성왕 기사에서 비롯되는데2) 北夫餘가 東海邊 迦葉原으로 옮겨 동부여를 건국한 시기는 중국 한나라 연호인 神爵 3년으로 서기로는 B.C. 59년에 해당되는 것으로 동해라는 명칭은 삼국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동해의 명칭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호국사상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었으며, 삼한, 해동처럼 우리 나라를 가르치는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울릉도를 搜討 하면서 동해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李相泰, 1995). 특히 광개토대왕비 기록에는 “...守墓人烟戶 賣句余民 國烟二 看烟三 東海買 國烟三 看烟二...” 부분이 관찰되는데(李裕岦, 1973) 여기서 東海買(다른 문헌에는 ‘東海賈’로 표기되어 있음)는 고구려 초기 동해안에 위치하였던 동옥저 부근의 지방으로 동해라는 이름을 빌려 불리던 곳으로 추측되나 앞으로 사적으로 그 지리적 위치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이같이 동해명칭은 우리 나라의 역사적 문헌 속에서 끝임 없이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국토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朝鮮王朝實錄에서는 무려 150 여 곳에서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太祖에서 成宗기간 만 무려 40여 군데 東海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중 동해 기록 중 가장 많은 부류는 동해 자체에 대한 位置와 潮流나 소금생산, 海溢과 관련되는 바다 特性을 논하고 있으며, 그 다음 많은 부류가 祭祀와 관련하여 東海神祀에 대한 기사이며, 그리고 일부는 中國故事를 인용하는 글에서 중국의 동해를 가르치는 것들이었다.
현존하는 古地圖의 표기는 全圖와 地方 部分圖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고지도 전도는 기록상으로 여러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나(이 찬, 1977) 실제 대부분이 남아 있지 않아 표기를 추적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일부 全圖에는 바다에 대한 명칭이 없거나 단지 ‘海’ 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고지도 全圖 중 처음으로 ‘東海’를 표기한 것은 新增東國輿地勝覽(1530)의 八道總圖로 확인되고 있다(李 燦, 1992). 이 팔도총도에는 동해와 함께 서해, 남해의 기록이 모두 육지에 海神祭祀를 치르는 神祠가 있는 곳에 표기되어 있다. 高麗 이래 서해신사는 황해도 豊川, 남해신사는 전라도 羅州에, 동해신사는 강원도 襄州(襄陽)에 두고 나라의 中祀를 지냈다(太宗實錄 28卷 14년 8/21-1414년 山川 祀典制度 및 世宗實錄 卷128 五禮 辨祀條 참고). 조선시대 양양에 동해묘는 동해를 지키고 다스리는 해신을 모신 곳으로 모든 해신과 강신 사당 중에서 그 위상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鄭永鎬, 1997). 즉, 이 점은 세 개의 바다 중에서 동해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중요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8세기 말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官撰地圖인 輿地圖속에 我國總圖에는 동해로 표기되고 있으며, 1770년대 혹은 1789-1793년간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의 天下都地圖에는 소동해로(李 燦, 1992; 양보경, 1995) 표기되고 있어 동해표기가 범국가적으로 일반화 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9세기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에는 그 표기가 빠져 있으나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학교용 지도로 편집된 많은 지도에는 대한해, 조선해, 일본해 등이 혼용 사용되었다.
그 밖에 전도가 아닌 지방도나 부분도에서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16세기 편찬된 東國地圖에는 ‘東低大海’라 적고 있으나, 1740년대 편찬한 嶺南地圖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관방지도인 西北界圖에는 각각 동해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奎章閣에 소장된 18세기 이후 편찬된 廣與圖, 海東地圖, 關東勝覽 속에 많은 郡縣地圖도 동해명칭이 사용되었다. (양보경, 1995). 비록 축척은 다양하지만 郡縣志 속에 地圖로는 18세기 중엽에 편집된 與地圖書에 실린 慶州府에 ‘慶州府之地圖’와 강원도 杆城, 함경도 吉州지도는 각각 東海라 표기하고 있으며, 경상도 監營지도에는 東大海 그리고 함경도 監營과 慶興지도에는 단지 大海라고만 적고 있어 동해안을 면하고 있는 군현에 따라 다소 표기의 강조를 달리하고 있다.
(2) 中國, 러시아, 日本에서 동해의 표기
중국의 문헌과 지도상의 기록조사는 사실상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간 지도분야에서는 일부 古地圖 책(曺婉如 外, 1990과 1993)과 歷史地圖集(譚其驤主編, 1982)이 출간되어 그 윤곽을 확인 할 수 있으나, 문헌 자체에 대한 연구는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동해에 대한 논의는 지난 3년간 국내에서 발표된 논문에 의존하여 정리한 것이다.
중국문헌 기록에 따르면 後漢부터 兩晉당 南北朝까지는 고유한 명칭이 없이 단지 동해를 ‘海’, ‘大海’, ‘東低大海’로 만 인식하여 왔다. 특히 舊唐書 卷 199의 高麗傳, 新羅傳, 日本傳과 新唐書 卷 219의 黑水靺鞨傳 및 卷 220의 高麗傳에서도 “大海”, “海”의 총칭만 사용하였다. 그러나 新唐書 卷 219 渤海傳에는 南海로 기재하고 있으며, 初學記 권 6에 의하면 동해는 “渤海 혹은 滄海라고도 부른다”고 적고 있다(吳松弟, 1995). 이후 중국의 遼(916-1125), 宋(960-1279)시기는 東海로, 元(1271-1368), 明(1368-1644)시기에는 한때 고래가 많다는 의미로 鯨海라고 했으며, 淸시기에는 동해 동북부 일대해역을 ‘東海’라고 하고 남반부를 ‘南海’ 불렀다(表 1참조). 鯨海라는 명칭은 環宇通志, 滿洲原流考(1778년)에 기재된 “鯨州之海”에서 나온 것으로 “鯨川之海”라는 뜻이다(陳才, 安虎森, 1995). 이후 曺廷杰이 光緖 11년(1885년) 西伯利東偏紀要에서 일본해와 동해를 혼용하기 시작하면서 일본해라는 별칭이 처음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 고지도상에서 관찰되는 명칭은 문헌과 흡사한 시기로 대략 요, 北宋시기로 東海라고 표기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元대 1265-1274년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與地圖로서, 이 지도에는 일본을 작은 섬으로 그리고 한반도는 동쪽 변두리에 대륙에 일부로 표현하고 나머지 동쪽 바다를 모두 “東海”라고 표기하고 있다. 즉, 현재의 황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현재의 동해를 하나의 대해로 고려하여 표기한 명칭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표기의 전통은 12세기 돌에 그린 華夷圖(+1137)에서 처음 관찰되며, 그후 16세기 중국 四海華夷總圖에서와 같이 중국 고지도상에서 한반도의 모습이 정확히 표현 될 때까지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明대에서 예수회 선교사 Matteo Ricci가 소장하였던 세계지도를 中文으로 번역하여 1602년 북경에서 판각하여 만든 坤輿萬國地圖는 현존하는 중국지도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중국의 동쪽 바다를 ‘동해’라고 쓰고 있었음에도 이 지도에서는 유독 ‘大明海’라고 표기하였는데 이는 ‘일본해’와 함께 명나라와 일본의 국명을 의식하여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지도는 외국인이 중국에서 번역하여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 당시 한국보다 일본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이 지도는 이후 중국지도 제작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며 이후 일본해 명칭이 중국인이 제작한 지도상에 나타난 것은 1875년 鄺其熙가 만든 地球五大州全圖, 1886년 陣兆桐의 萬國輿圖, 宣統 2년 王先謙(1842-1917)의 亞洲地理志略 제1권 중 悉畢爾全圖에 표기되었다. 그리고 1894년 中外地與圖說集成에 아세아 전도에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奚國金, 1995; 陳才, 安虎森, 1995; 楊寧一, 1997). 이 시기에 중국은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로부터 발간된 자료를 참고하거나 직접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기초로 하여 지도를 출간함에 따라 20세기가 되면서 대부분 지도들이 모두 일본해 명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의 문헌과 고지도 자료로 보아 중국에서의 ‘東海’ 표기는 오랫동안 표준화되어 왔음을 실증하고 있으며, 일본해의 표기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19세기 말에 와서 서서히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1943년 7월 19일에는 중국 重慶에서 개최된 주요 6개 學術團體(중국과학사, 중국지리학회, 중국식물학회, 중국동물학회, 중국기상학회, 중국수학회)의 연차총회에서 `지리학회 회원인 張國鈞이 일본해 명칭을 太平海로 개칭하자고 제안하여 토의된 바 있으며, 이 제안이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회원들은 명칭을 바꾸는 것이 합당하다고 인식하였다(中國 重慶 中央日報, 1943년 7월 20일 제2면 ‘六學術團體年會’). 이후 1947년에 지리학자 宇右任은 일본해 표기를 반대하면서 그 대신 太平海로 명명 할 것을 제안하였고, 1948년 간행된 最新中外地名辭典에는 일본해가 太平海로 수록되어 있다(杜祥明, 1996). 이후 중국에서는 이 새 이름을 통용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639년 러시아인이 처음 태평양연안에 도착한 이후의 일이다. 즉, 러시아인이 동쪽에 도착하였던 17세기에서 18세기 초기까지의 대부분의 지도들은 이 동쪽 바다를 ‘Vostochnoe More-Akiyan(Eastern Sea-Ocean)'라고 명명했으며, 때로는 북해에 비하여 따뜻한 바다라는 의미에서 ‘Tiopole more(Warm Sea)' 라고도 불렀다(Naumov, 1997). 그리고 1687년 Nic Witzen의 ‘Noord en Oost Tartarye’는 동해를 동양해(Oceanus Orientalis)라고 했으며, 1725년 N. Goman의 지도에는 동해(Eastern Ocean)로, 1734년 I. Kirilov 역시 동해(Vostochnoe)로, 1737년 권위 있는 Peterbourg Academy of Sciences에서 출간한 아시아지도에서는 한국해(Kopeckoe Mope)로 표기하고 있다(Postnikov and Pospelov, 1995). 이후 1745에서 1791년에서 발간한 대표적인 지도들은 모두 한국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인으로 동해를 처음 탐험한 Adam Johann Krusenstern (1770-1846)은 1813년 그린 Chart of the Northwest Part of the Pacific Ocean에 1787년 동해를 탐험한 프랑스 탐험가 La Perouse가 그린 해도 상에 일본해 이름을 그대로 답습하였지만, 러시아 정부는 1844년 발간한 최후의 공식지도에서도 동해를 ‘한국해’ 라고 표기하고 있다(Postnikov and Pospelov, 1995). 이후 러시아 해군과 많은 지도들은 유럽식 표기를 따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18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고지도에는 동해에 대한 고유한 이름이 없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日本에서 18세기 이후 발간된 권위 있는 지도 가운데 많은 지도가 1870년까지 동해를 朝鮮海로 표기하고 있어 일본해 명칭이 뒤늦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07년 幕府에 의해 세계지도 제작을 명령받은 高橋景保는 1809년 新鐫總界全圖 부도에 日本邊界略圖를 제작하였으며 이 지도는 막부의 승낙을 받아 출간하게 되는데 이 당시 주변지역의 새로운 지식을 모두 수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天理大學附屬天理圖書館, 1993, 34). 이 지도에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1810년 高橋景保의 新訂萬國全圖, 1838년 阿部喜任의 萬國全圖, 1850년 杉田玄端의 地學正宗圖, 1855년 松田綠山의 地球萬國全圖, 1870년 明治改訂.萬國輿地分圖 등의 지도는 대표적으로 동해를 朝鮮海로 표기하고 있다(任正爀, 1995; 靑山廣夫, 1995). 그러나 이후 출간된 일본지도는 예외 없이 모두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어 정책적으로 정부가 표기에 관여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1854년 松田綠山의 지도와 1871년 그의 지도 萬國全圖에 표기가 달라졌으며 1871년 橋本澄月의 新正輿地全圖도 일본해로 적고 있어 이시기가 전환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871년 이후 출간된 일본지도에서 조선해 표기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 시기는 중국 지도책에서 일본해 명칭이 나타나는 때와 그 시기를 같이 하고 있다.
서구, 특히 유럽국가 중심으로 발견시대 이후 발간된 고지도는 그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종류의 지도들이 이 지역에 대한 탐험 지식이 없이 기존 지도를 참고로 하여 제작된 것이 많아 그 중요성을 평가하기가 대단히 힘든 상태이다. 또한, 대부분의 고지도가 해양과 바다 명칭에 대하여 고유한 기준 없이 다양하게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근거와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서구에서 제작된 고지도상의 동해바다에 대한 표기는 발견시대 이후 한반도의 윤곽이 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동해연안에 대한 여러 차례에 걸친 실측 탐험작업이 진행되면서 표기된 지명을 통해서 그 변천을 추적하여 볼 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 처음 진출한 포르투갈 탐험가와 상인들이 남긴 고지도, 프랑스의 지도제작과 탐험가의 동해안 탐험, 영국의 이 지역 진출과 해도제작, 그 밖에 네델란드, 이태리, 독일인들에 의해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만들어진 고지도들은 동해명칭 변화를 추적하는데 그 근간을 이루리라고 본다.
프랑스 지도학자들의 한국과 이 지역 지도제작에 대한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의 지도제작이 18세기 유럽 지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백성현, 1996). 1679년 Jean-Baptiste Travernier(1605-1689) 가 중국여행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가지고 일본지도(Carte Des Isles Du Iapon)에서 동해를 OCEAN ORIENTAL과 MER DE COREER로 표기하면서 동해가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해의 명칭은 프랑스 지도제작의 전성시기와 많은 관련을 찾을 수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4대에 걸친 Cassini家의 지형도와 세계지도 제작은 프랑스가 표준지도제작에 세계적인 리더쉽을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Thrower, 1996; Martin and James, 1993). 특히, Cassini가 수집한 자료들은 Guillaume de Lisle(1675-1726)에 의해 세계지도로 편집되었다. 이로서 18세기 프랑스에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는 가장 권위 있는 지도로 인정을 받게되었다.
그는 당시 중국지도 전문가 Jean-Baptiste d'Anville(1697-1782)과 그의 사위 Philippe Buache(1700-1773)와 함께 지도제작을 하였다. 그런데 G. de Lisle은 많은 지도를 남겼는데 그 중에 1700년에 지구의에는 MER ORIENTALE로, 1705년 아시아지도에는 MER ORIENTALE와 MER DE COREE, 1723년 아시아지도에는 MER DE COREE로, 1740년 중국지도(신세계지도장)에 MAR DI COREA로, 1782년 동반구도에는 M. de Coree로, 1800년 Dezauche가 수정 출간한 ‘Carte D'Asie' 지도에까지 Mer De Coree로 일관성있게 표기하였다. 그러나 1805년 지도에서는 MER DE COREE ou du Japon으로 그 표기가 바뀌었다. 이로써, 거의 1세기에 걸쳐 프랑스가 가장 과학적이고 권위 있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동해표기의 일관성을 유지한 것은 정확한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 하나는 이시기에 중국과 이 지역에 널리 선교사업을 하던 선교사로부터 자료를 얻었을 것이라는 점(백성현, 1996)과 또 하나는 그의 동생인 천문학자 Joseph N. De Lisle(1688-1768)가 러시아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1726-1747년까지 두 번에 걸쳐 실시된 Bering 해역과 북태평양에 대한 실측 탐사에서 얻은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Joseph N. de Lisle는 탐험에서 돌아와 1750년 Map of the North Pacific를 출간하였는데 이 지도에도 동해를 “MER DE COREE”로 표기하고 있다. 그는 탐험에 참가하는 동안 탐험자료를 먼저 파리에 지리학자 Jean-Baptiste d'Anville에 보내 1732년, 1735년, 그리고 1737년에 지도가 출간된 바 있다(Breitfuss, 1964). 이 시기가 사실상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탐험자료가 지도 작성에 쓰이게 된 때였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 발간된 지도학자 Didier Robert de Vaugondy(1723-86)의 LE JAPON(1749) 지도와 Nicolas Bellin(1703-1772)의 JAPAN WITH EZO AND KAMCHATKA(1752) 모두 일관되게 ‘MER DE COREE'로 표기하고 있어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프랑스에 알려진 동해에 대한 호칭은 처음 1708년-1716년간에는 예수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다음은 현지 탐험 자료를 기초로 하여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787년 la Perouse(1741-ca.1788)의 탐험이 다시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이후, 10년 뒤 동료에 의해 작성된 1797년 그의 탐험지도(Carte Generale des Decouertes faites en 1787 dans les Mers de Chine et de Tartarie)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기까지 프랑스에서 동해는 보편화되었던 지명이었다고 본다.
이 당시 영국의 지도 제작은 이웃나라와 비교하여 다소 뒤떨어져 있었다. 영국의 많은 지도들은 네델란드(Dutch)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연유로 18세기초 영국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지도가 동해를 ‘Sea of Korea"로 표기하고 있다. 1680년대 네델란드인으로 영국에 와서 지도를 제작한 Herman Moll(fl.1681-1732년)은 1710과 1712년 런던에서 일본지도를 출간하면서 동해를 ‘Sea of Corea'로 표기하고 있다. 그후 1744년, 1747년, 1752년, 1760년경에 출간된 Emanual Bowen(1700-1767)의 A Complete Atlas 세계지도첩 Asia 도폭과 일본 도폭에는 모두 동해에 'SEA OF KOREA'로 표기하고 있으며, 1771년에 처음 출간된 대영백과사전에 아시아지도에는 ‘SEA OF COREA’로 표기하고 있어 프랑스와 같은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Aaron Arrowsmith(1750-1823)는 1790년 지도제작소를 설치하고 처음 A Chart of the World upon Mercator's Projection, showing all the New Discoveries, ...with the Tracts of the most distinguished Navigators since 1700를 출간하고, 곧이어 1798년과 1799년에 세계지도를 출간하면서 그간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표기하여 온 동해명칭을 ‘SEA OF JAPAN'으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대영백과사전은 1817년 출간된 개정판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유럽제국의 지도들은 새로운 탐험지도의 영향을 받아 일본해의 표기 빈도가 차차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전반에 걸쳐 이 두 명칭이 국제적으로 모두 통용되어 왔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고지도에 대한 검토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 동해가 어떻게 일본해로 대치되었는가에 대한 연유를 파악하기에는 대단히 힘들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본이 1560년대부터 포르투갈과의 교섭하기 시작하고 1641년부터 네델란드의 선교사와 상인을 받아들여 국제간에 교류에 힘썼으며, 1832년에는 일본 나가사기 데지마섬에 의사로 체류한 독일인 Philip F. von Siebold(1796-1866)가 高橋景保의 지도를 번역하여 독일에서 출간하고 이에 1840 년 일본 자료를 근거로 하여 KARTE VOM JAPANISCHEN REICHE를 유럽에서 출간하는 과정에서 일본해로 대치되어 나갔다는 점이다.
5. 식민지시대 ‘일본해’ 명칭의 국제적 표준화과정
해양(Ocean)과 바다(Sea)의 명칭에 대한 국제적인 공식화 역사는 191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설립되면서 부터이다. 이 기구는 국제적 항해안전과 수로업무의 통일화를 위하여 1899년 워싱턴과 1912년에 세인트 피터스브르그에서 개최된 관련 국제해양회의(International Maritime Conference)를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그러나 실제 국제수로기구의 정기총회는 1919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1921년에는 국제수로국(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이 설치되었다. 런던총회에서는 모두 24개국의 참가하였으며 이 회의에서 일본은 Sakonji와 Yamaguchi 해군사령관과 Minato 정부관리를 파견하였다. 또한, 이 회의에서는 해도와 바다의 한계에 대한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는데, 그 주요내용으로는 지명은 표음적이 아닌 문자적 표기로 하고, 지명표기에 공식방법이 없는 국가들은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의 표기법을 쓰고, 로마표기법이 없는 국가들은 속히 국제표기체계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의안이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해양과 바다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통일하고 공식화한 첫 단계이다.
이 결의안에 따라 각 회원국은 공식적으로 IHB에 바다명칭 결정에 책임 있는 개별국가의 정부기관이나 연구소의 이름과 주소를 1922년 9월 이후 등록하게 되었다.(Circula-Letter No. 36 of 1922, Transcription of Place-Names, 1922, 9. 28참고). 이에 따라 회원국이 IHB에 보고한 지명관계기관의 명록이 1924년 11월 국제수로사무국 정규간행물에 출판되게 이른다. 일본은 이 관련보고에서 바다에 대한 이름은 정부가 결정한다는 사실과 제국해군 수로국을 연락처로 명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1919년 회의에서 바다의 한계에 대한 결의안(Resolution, Section IV-B) : “수로지와 등대표가 일치되도록 지리적 항해통보(항로고시) 마련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하였다(IHO, 1920, 36). 회원국은 위 결의안에 따라 해당 바다의 한계에 대한 자료를 모두 IHB에 제출하였다. IHB는 1923년 2월 15일 일차적으로 이 자료를 정리하여 시안을 만들었다. 곧 IHB는 이 시안을 회람서신(No. I-H of 23) 형식으로 회원국에 배포하여 국제수로국의 결정과 제안에 대하여 이의가 없는지 문의하기에 이른다. 바다한계를 명시한 이 시안에 처음으로 동해가 "Japan Sea"로 표기되어 전 회원국가에 회람되게 된 것이다. 이때 이 시안에 구체적으로 "Japan Sea(Mer du Japan)"의 한계를 방향에 따라 명시하고 있다.
이 회람서신에는 모두 48개 바다 및 해양의 한계와 각 바다의 이름이 등록되었다. 이로써 1923년 2월 15일을 기해 “일본해”가 동해를 대신하여 국제사회에서 공인을 받기 위하여 회원국에게 회람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 시안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1926년 10월 26일 - 11월 10일까지 모나코에서 개최된 제2차 국제수로회의록에 요약되어 있으나, “일본해” 명칭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는 논의는 한 건도 없었다(IHB, 1926, Report of the Proceedings, 47). 기록에 의하면 모두 14개 나라에서 이 제안에 대하여 회신을 보냈으며 그중 일본을 포함하여 10개 나라가 수정안을 제출하였다. 각 나라별 구체적인 수정안은 확인되지 않으나 일본에 경우 Naikai or Inland Sea를 새로 추가하였으며 Japan Sea의 한계를 규정하는 경계 중 남동쪽과 북동쪽 경계에 대하여 일부 수정을 가한 것으로 기록상에 나타난다. 결국 1926년 회의에서는 여러 나라의 수정안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좀더 검토하도록 사무국에 돌려보내게 된다.
이후 사무국은 문제되는 지역에 대한 한계를 조정하여 1929년 모나코에서 개최된 제1차 보충국제수로회의에 최종 출간물 Spec. Pub. No 23(1928년 8월에 출간됨) Limits of Oceans and Seas을 제안서로서 제출하여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게 되었다(IHB, 1929, Report of the Proceedings, 249).
이로써 1929년 국제적으로 동해명칭은 “일본해(Japan Sea)"로 공식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해양과 바다의 한계(Limits of Oceans and Seas) 책자는 1937년, 1952년, 1986년에 각각 개정판이 나왔지만 ‘일본해’ 표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현재까지 모든 해도와 관련 세계지도에 동해가 ‘Japan Sea’로 표기되고 있다.
그간 정부의 관련 부처(해양조사원)에서는 1994년이래 IHB에 ‘일본해’ 표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바 있으며, 아울러 IHO회원국에도 동해표기를 사용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1997년에는 제15차 회의가 모나코 IHO본부에서 4월 14일 - 25일까지 개최되었으며 정부는 “해양과 바다의 한계” 책자에 ‘일본해’ 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동해(East Sea)표기를 포함하여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이러한 ‘동해’명칭에 대한 우리 정부의 수정 제의는 앞으로 회원국의 종합적인 의견을 수렴한 뒤에 IHB에서 2000년까지 개정판을 내게 될 때 표기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IHB역시 1972년이래 지명표기에 대한 자체 결의안을 채택하여 국제적으로 지명표기에 있어 동일한 시책을 적용하고 있으며, 아울러 지명의 국제표준화를 위하여 1974년 채택된 지명표준 결의안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결의안 중 A 4.2.6은 동해와 같이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지리적 양상에 대한 명칭에 있어 한 이름으로 통용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 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 4.2.6. - It is recommended that where two or more countries share a given geographical feature (such as, for example, a bay, a strait, channel or archipelago) under a different name from, they should endeavour to reach agreement on fixing a single name for the feature concerned. If they have different official languages and cannot agree on a common name form, it is recommended that the name forms of each of the languages in question should be accepted for charts and publications unless technical reasons prevent this practice on small scale charts. e.g.English Channel/La Manche
이어 2000년 1월 17-28일 까지 New York UN에서는 제20차 UN지명전문가회의가 개최되었다. 동해명칭의 국제적 표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모두 3개의 Working Paper를 본회의에 제출하였다. WP-24 (Working Group on Evaluation and Implementation)는 우리 정부와 South Africa 정부가 함께 제출한 실무위원회 구성에 대한 제안서로서 채택되었다. 이로써, 앞으로 그간에 UN지명표준화회의에서 채택된 모든 결의안에 대하여 이행여부를 평가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WP-96 (Implementation of Resolution III/20 on Geographical Features beyond a Single Sovereignty)을 제출하여 UN에서 법률적으로 적절성에 대한 요구하여 현재 검토 중에 있다. 본회의에서도 일본 대표단은 이미 Working Group 설치가 통과된 사항에 대하여 그 적절성 여부를 들어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또 다른 하나의 진전은 그간 대단히 소극적이 였든 미국 지명위원회(The US Board on Geographical Names) 가 처음으로 동해 명칭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을 청취하기위하여 지난 4월 11일과 18일에 Washington D.C.에 한국정부대표를 초청하였다.
그 밖에 정부는 다양한 국제회의에서 일본해의 명칭을 동해로 표기하거나 병기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 제작사와 방송, 신문, 잡지사에도 일본해 표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동해의 표기를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Rand McNally 지도회사의 최근 발간된 지도(Rand McNally and Company, 1997, 28-31)는 SEA OF JAPAN(EAST SEA)으로 표기하였으며, Canada 회사인 Warwick Publishing Inc.는 1997년 The Cartographic Satellite Atlas of The World에서 TONG-HAE/NIPPON-KAI (SEA OF JAPAN)로 generic term으로 표기하여 국제 표준화를 기하고 있다. 1998년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Global Resources에서 발간한 Humanitarian Response Planning Map에는 Sea of Japan(East Sea)로 적고 있다.
그러나 동해(East Sea) 중심의 표기를 시작한 지도도 최근에 급격히 그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지도제작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 예로는 1997년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에서 발간한 Demograph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rop Use Intensity 지도에는 East Sea로 표기하고 있으며, International Geographical Union에서 발간하는 1999년 Bulletin 49(2) 135쪽 Orographic Map of Korea(E. Dege)에서는 EAST SEA(Sea of Japan)으로 표기하였고, 미국에서 발간된 H. J. de Blij and Peter O. Muller, 2000, Geography: Realms, Regions, and Concepts (John Wiley & Sons Inc.) 책속에 많은 지도에서 East Sea(Sea of Japan)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금년부터 National Geographic Society에서 발간하는 모든 지도에 한국 중심지도에는 East Sea(Sea of Japan)으로, 세계지도에는 Sea of Japan(East Sea)로 그 표기 방법을 바꾸었다. 인터넷 지도로 www.atlapedia.com/online/maps/political/Korea에는 EAST SEA/SEA OF JAPAN으로 완벽한 병기를 하고 있으며, 미국 오레곤 대학의 http://darkwing.uoregon.edu/~felsing/kstuff/korean_ Peninsula.GIF의 지도는 East Sea로 쓰고 있다.
7. 요약
일본에서는 1870년대까지 대체적으로 ‘조선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어 왔으나 이후 발간되는 모든 국가 발간지도에서 ‘일본해’로 바꾸어 쓰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유럽제국에서 17세기이후 한반도의 윤곽이 세계지도상에서 반도 형태로 표현됨과 비슷한 시기에 동해의 명칭을 ‘Sea of Korea’로 쓰기 시작하였다. 비록 일부 지도에서 ‘Sea of Japan'이라는 명칭을 혼용하기도 했지만,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권위 있는 지도에서는 18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걸처 예외 없이 이 같은 전통을 유지하였었다. 그러나 동해안 지역에 대한 유럽인의 탐험이 빈번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유럽에 소개되어 ‘일본해’의 표기가 많은 지도에 쓰기 시작하였다고 보인다.
실제적으로 ‘일본해’가 공식적으로 표준화 된 것은 1919년 처음 국제수로기구가 설립되어 해양과 바다의 명칭을 표준화하는 결의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약 10년 뒤 1929년에는 ‘일본해’를 국제적으로 공식화하게 이른다. 한국정부는 1997년에야 처음으로 IHO회의에서 이를 정정하여 줄 것을 요청한바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1992년 UN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표기의 국제적 표준화를 요청한바 있으며, 2000년 1월 UN회의에서 관련 결의안에 대한 법률적 적절성 검토를 요청하고 UN 결의안 이행과 평가에 대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2) <<三國史記>> 卷 第13, 高句麗本紀 第1 始祖 東明聖王, ...後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 將使吾子孫 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宜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國號東夫餘(그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아뢰기를, ꡒ일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ꡐ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다 나라를 세우도록 할 것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東海) 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은 가섭원(迦葉原)이며, 토질이 오곡(五穀)에 적당하여 도읍할 만하다.ꡑ고 하였습니다.ꡓ 하고, 이에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였다: 해석은 조선실록에서 전재).
金基萬, 1994, “동해냐 일본해냐: 한.일 갈등 전모,” 新東亞, 11月, 338-347. 金 新, 1997, 잃어버린 동해를 찾아서, 도서출판 두남. ______, 1997, “동해표기의 실태와 대응방안,” ‘97 제4회 동해연구회 학술발표대회 발표논문집, 20-30. 김영호, 1994, “동해 · 일본해 이름 개정운동의 경위와 전망,” 「동해」지명에 관한 학술 세 미나. 김찬규, 1994, “국제관계에서 지명이 가지는 의미,” 「동해」지명에 관한 학술 세미나, 23-30. ______, 1995, “東海냐 日本海냐!: 國際關係에서 地名이 가지는 意味,” 국제법평론, 4, 177-181. 나홍주, 1997, “현행 ‘일본해’ 명칭 변경을 위한 행동의 시기,” 「동해」 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164-181. 盧啓鉉, 1994, “동해를 일본해라니...,” 자유공론, 331, 138-149. ______, 1997, 조선의 영토, 서울: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______, 1993, “고지도상에 나타난 동해(일본해)지명 연구‘, 논문집, 제28집, 대구교육대학 교, 259-279. 大韓地理學會, 1992, “特輯: 東海 地名에 대한 地理學 세미나, 地理學 제27권 제3호(통권 48호), 262-287. 杜祥明, 1996, “일본해 명칭에 대한 예비조사 연구,”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워크샵 주제발표 I, 2-5. 백성현, 1996, “동해 표기에 있어 18C 프랑스 지도의 중요성에 관한 고찰,”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워크샵 주제발표 II, 17-35. 서정철, 1978, 1-3월, “한반도 천의 얼굴: 유럽 고지도는 말한다 1-10,” 한국일보. ______, 1991, 서양고지도와 한국, 빛깔있는 책들 102-23, 서울: 대원사. ______, 1995,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동해-일본해의 명칭에 대하여,”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 논문 발표 I, 70-87. ______, 1997, “고지도의 동해 - 일본해 명칭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고찰,” 「동해」 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36-51.
______, 1996, “民族感性 側面에서 본 東海와 獨島問題,” 「동해」연구회 학술발표대회 논문 발표, 2-6.
_______, 1992, "발견시대 전후 동해의 인식,“ 地理學, 제27권 제3호, 278-283. _______, 1994, “동해지명과 유엔 지명전문가 회의,” 「동해」지명에 관한 학술 세미나, 41-47. _______, 1997, “국제수로기구(IHO)와 ‘일본해’ 명칭의 공식화 과정,” ‘97 제4회 동해연구회 학술발표대회 발표논문집, 33-45.
이상태, 1995, “歷史文獻上의 東海 表記에 대하여,” 사학연구, 50, 473-485. 李裕岦, 1973, 廣開土聖陵碑文譯註, 大東文化史. 李 燦, 1977, 韓國古地圖, 서울: 韓國圖書館學硏究會. ____, 1991, 韓國의 古地圖, 서울: 汎友社. ____, 1992, “韓國의 古地圖에서 본 동해”, 地理學, 제27권 제3호, 263-267. 任德淳, 1992, “政治地理學的 시각에서 본 東海地名,” 地理學, 제27권 제3호, 268-271. ______, 1997, “육지와 바다 지명의 표준화와 이의 정치적 도구화,” 「동해」 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96-105. 任正爀, 1995, “일본해인가, 조선해인가-그 호칭을 둘러싼 역사적 경위”, 朝鮮科學文化への アプロ-チ, 東京: 明石書店, 209-223. 韓相復, 1992, “해양학적 측면에서 본 동해의 고유명칭,” 地理學, 제27권 제3호, 272-277. ______, 1996, 동해의 울릉군 독도 연구자료집, 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______, 1996, “Orient Sea - 연안당사국이 사용할 수 있는 단일 명칭,”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워크샵 주제발표 I, 26-43. ______, 1997, “동해라는 명칭은 기원전 37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동해」 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106-113. 鄭永鎬, 1997, “東海廟에 關한 小考,” 靑藍史學, 創刊號, 한국교원대학교, 1-12. 曺婉如 外, 1990, 中國古地圖集: 戰國-元, 北京: 文物出版社. _________, 1994, ____________: 明代, ___________________. 朱士光, 1997, “중국 역사문헌에서 본 청말 일본해 명칭의 변화,” 「동해」 지명 표준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 52-64. 陳才, 安虎森, 1995, “일본해(동해) 지명의 기원- 우리의 관점,“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 논문 발표 II, 34-53. 靑山廣夫, 1995, “고지도로 본 일본해 호칭,”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 논문 발표, 88-102. 奚國金, 1995, “역사상 중국동북부의 민족과 일본해 명칭의 변화,” 「동해」지명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 논문 발표 III, 17-31. 粕野義夫, 1975, 日本海의 謎, 築地書館. Naftali Kadmon, 1994, “국내외 지리지명의 표준화,” 「동해」지명에 관한 학술 세미나, 31-40. 天理大學附屬天理圖書館 編, 1993, 古地圖の中の日本, 東京: 天理 Gallery. 譚其驤主 編, 1982, 中國歷史地圖集, 地圖出版社. Allen, John L., "Lands of Myth, Waters of Wonder: The Place of the Imagination in the History of Geographical Exploration" in David Lowenthal and Martin J. Bowden, Geographies of the Min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p.41-62. Baddeley, J. F., 1917, "Father Matteo Ricci's Chinese World Map 1584-1608," Geographical Journal, Vol. L, pp.254-70. Bagrow, Leo, 1966, History of Cartography, revised and enlarged version, Cambridge: Havard University. Borisovskaya, Natalia, 1992, Early Printed Maps and Plans: 15th-18th Centuries, Moscow: Galaxy Publisher. Breitfuss, Leonid, 1964, "Early Maps of North-Eastern Asia of the Lands around the North Pacific, Imago Mundi, Vol.III, pp.87-99. Dickinson, R. E. and O. J. R. Howarth, 1933, The Making of Geography, Oxford: The Clarendon Press. Glacken, Clarence J., 1967, Traces on the Rhodian Shore: Nature and Culture in Western Thought from Ancient Times to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Gohm, Douglas, 1972, Antique Maps: of Europe, the Americas, West Indies, Australasia, Africa, the Orient, London: Octopus Books. Harley, J. B. and David Woodward, 1988, The History of Cartography, Vol. 1, Chicago: U. of Chicago.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1920, Report of Proceedings, International Hydrographic Conference, London, 1919. International Hydrogrphic Bureau, 1922, "Transcription of Place-Names," Circular-Letter No. 36 of 1922, 28th September 192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23, Circular-Letter No. I-H of 1923, 25th Feb. 192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November 1924, "Transcription of Places Names," Hydrographic Review, Vol. II, No. 1, 33-3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26, Report of The Proceedings of the Second International Hydrographic Conference, Monaco, 26 October-10 November 192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August 1928, Limits of Oceans and Seas, Special Publication No. 23, Monte-Carlo.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29, Report of The Proceedings of the First Supplementary International Conference, Monaco, 9-20 April 1929. Kerr, Adam, 1997, "The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and its Involvement with Geographical Place Names,"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Seminar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Special Emphasis Concerning the 'East Sea', Seoul, 11-12 June 1997, 15-35. Kim, Young-Ho, 1992, "Sea of Change," Morning Calm, Vol. 16, No. 10, pp. 17-21. Matsutaro, Nanba, 1973, Old Maps in Japan, Osaka: Sogensha Inc. Needham, Joseph, 1954 and 1959,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ume 1 and 3, Cambridge: The University Press. Nunn, G. E., 1925 and 1992, The Geographical Conceptions of Columbus: A Critical Consideration of Four Problems, New York: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Portinaro, Pierluigi and Franco Knirsch, 1987, The Cartography of North America, New York: Crescnt Publishers, Inc. Postnikov, Alexei V. and Evgenii Pospelov, 1995, "The History of Russian Names for Seas, with the Special Reference on the Development of Korean(Japanese Sea Presentation on Maps(Seventeenth through Nineteenth Centuries)," Proceeding of The International Seminar on the Geographical Name of 'East Sea', Seoul, 24-26 May 1995, 36-61. Potter, Jonathan, 1989, Country Life Book of Antique Maps: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Maps and How to appreciate them, Secaucus, NJ: Charwell Books Inc. Rand McNally Company, 1997, Premier World Atlas, USA. UN Economic and Social Council, 1998, International Names Meeting in the Republic of Korea, Paper submitted by the Republic of Korea, E/Conf.91/Crp.9(12 January 1998), Seventh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Walter, Lutz, 1994, Japan: A Cartographic Vision(European Printed Maps from the Early 16th to the 19th Century), New York: PRESTEL. Wallis, Helen, 1965, "The Influence of Father Ricci on Far Eastern," Imago Mundi, Vol. XIX, 39-45. Wright, John Kirtland, 1965, The Geographical Lore of the Time of The Crusades,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nc. |